"바쁘면 내려서 걸어가겠지요"
-수평리 마을의 초복날 풍경
▲멈추어 선 버스안으로 복날음식을 넣어 주는 마을주민
덥다! 올해의 여름은 유난히도 더운 것 같다. 초복날 더위는 더욱 맹위를 떨치는 것 같다. 마을 앞을 지나가던 버스도 더위에 지쳤는지 멈추어 섰다. 버스에서 운전사 아저씨가 내리더니 마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헉! 무슨 일이지? 그런데 운전기사는 젓가락을 들고 태연하게 초복 잔치음식을 먹었다. 아이고, 어찌 이런 일이! 버스 안에 기다리는 승객들은 어찌하려고?
버스 안에는 대여섯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불평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앉아서 우리 동네 복날 잔치를 바라보며 운전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평리 마을에 이사를 온지 한 달이 채 안 된 나는 눈앞에 전개되는 풍경에 그저 놀랄뿐이었다. 나의 놀란 표정을 바라보던 동네청년이 운전사는 바로 이웃동네에 사는 분으로 시골 잔치 날에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나는 하도 신기하여 운전기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니, 기사님 승객들은 어찌하고 이러고 계시지요?"
"아, 네 괜찮아요. 바쁘면 내려서 걸어가겠지요. 하하"
바쁘면 내려서 걸어간다? 그것참… 어디 인도에서나 볼법한 풍경이었다. 인도에서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차장이 자기 고향을 지나 갈 때 기차를 세우고 볼일을 보고 가기도 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운전기사는 아무러렇지도 않은 듯 여유작작하게 음식을 먹었다.
동네 아주머니 한분이 떡과 고기를 들고 버스 창문으로 다가가 안에 있는 승객들에게 넣어 주었다. 승객들은 환하게 웃으며 떡과 고기를 받아먹었다. 도대체 시간을 잊어버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대한민국에도 이리 여유로운 풍경이 있었던가?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는 "바쁘다 바뻐", "빨리 빨리" 가 아닌가? 세계 어디를 가나 가장먼저 배우는 한국어가 "빨리 빨리"라고 한다. 남미나 아프리카를 갔을 때에 현지 음식점 종업원들은 다른 말은 모르지만 "빨리 빨리"란 말은 곧잘했다. 한 때 회사의 전화번호로 가장 선호를 받았던 것도 "8282"이다. 초고속 인터넷, 1초경영... 서울 도시를 살아가다 보면 속도전 때문에 그저 숨이 막힐 지경이다. "빨리 빨리"가다보면 사고위험만 가증되고, 인생의 저승길도 빨라지고 말지 않겠는가?
운전기사는 먹을 것을 다 먹었는지 동네 사람들에게 잘 먹었다고 하며 마치 선거 유세를 하는 의원님처럼 일일히 인사를 했다. 그리고 떡과 고기를 더 얻어 들고 버스에 타더니 웃으며 승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승객들도 운전사가 주는 고기와 떡을 받더니 즐거운 표정으로 웃으며 받아먹었다. 저 여유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황당하기도 하지만, 나를 무지하게 행복하게 하는 그림같은 풍경이었다. 흐미! 그냥 까닭없이 행복해지네!
더위를 이겨내는 마을 주민들의 초복 잔치
▲마을의 초복날 잔치풍경.
"주민 여러분, 오늘은 초복 날입니다. 주민여러분께서는 한분도 빠짐없이 마을 회관으로 나오셔서 초복 음식과 음료를 드시고, 윷놀이도 하시고 노래도 부르며 더위를 잊으시길 바랍니다."
아침 6시, 이장님의 방송이 마을을 울렸다. 섬진강으로 이사를 와서 맞이하는 첫 복날, 우리 마을에서는 마을 전체 주민이 모여 초복 잔치를 벌였다. 흔히 복날에는 개고기나 삼계탕을 먹는데 우리 마을에서는 돼지를 한 마리 잡고 육개장을 끓였다.
복(伏)날은 음력 6울부터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3번의 절기다. 즉 초복은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 중복은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로부터 첫 번째 경일이다.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초복에서 말복까지 20일이 걸리지만, 해에 따라서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되기도 한다.
올해는 초복이 7월 19일, 중복은 7월 29일, 말복은 8월 8일이 된다. 삼복기간은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이다. 초복 날은 바쁜 모네기를 끝내고 잠시 짬을 내어 쉬어가는 농한기이기도 하다. 중국사기에 의하면 삼복을 숭상하여 한때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고기를 나누어 주었으며, 민간에서도 더운 여름에 식욕이 떨어지는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육식을 하였다.
우리 마을에서는 초복 날에는 전통적으로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놓고 함께 모여 윷놀이도 하며 더위를 이겨내고 있다고 한다. 각자 집에서 복날 음식을 해 먹느니 함께 모여 서로 담소를 나누며 더위를 이겨내는 화합의 잔치를 한다는 것.
아침 일찍부터 마을사람들은 동네 어귀에 있는 커다란 팽나무 아래로 모여 들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회관 안에 자리를 잡고, 비교적 나이가 젊은 층들은 팽나무 아래 평상이나 바위 위에 앉았다. 팽나무 아래는 바비큐 구이로 돼지고기를 굽고, 계장 국을 끓였다.
이웃마을 사람들도 오다가다 들려 돼지고기에 술 한 잔씩을 나누며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 군의원님과 면 직원들도 수박을 한 통씩 들고 찾아와 마을 주민들을 격려했다. 수박 한통을 들고 와 마을에서 차린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그저 정겨워 보이기만 했다.
막 이사를 온 우리에게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이장님의 소개로 우리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올렸다. 어르신들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으며, 참으로 잘 이사를 왔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복날 윷놀이를 하며 더위를 이겨내는 주민들. 윷놀이 상품은 호미와 낫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팽나무 아래서 윷놀이를 하였다. 윷놀이는 1:1로 벌어졌다. 나는 70을 넘은 할머니와 윷놀이 게임을 하였는데, 우세하게 나가던 윷판이 애석하게도 막판에 할머니가 계속 모와 윷을 하여 내 말이 잡히는 바람에 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품으로 호미를 받았다.
복날 잔치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마을회관에는 구례읍에서 택시 운수 사업을 하시는 어느 여사장님이 노래방 기구를 기부를 해서 새로 설치를 했다고 한다. 나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떠밀려 회관 무대 위로 올라가 무려 세곡이나 못 부른 노래를 불러야 했다. 저녁식사까지 먹고 나서야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괜히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도시에서는 어찌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벽 하나를 두고서 누가 사는 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이사를 가던, 잔치를 하던, 초상을 치르던 남의 일처럼 모르고 지내는 것이 도시의 삶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랜만에 인간다운 삶을 맛보고 있었다. 온 동네 사람들과 이웃 동네 사람들까지 함께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농촌이야 말로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왔던 풍습이다.
참으로 풍성하고 여유로운 복날 잔치 풍경에 나는 푹 빠지고 말았다. 앞으로도 마을 모임이나 파티에는 꼭 참석을 해야 겠다. 그래야 함께 어우러지는 진정한 마을 주민이 될 것이 아닌가. 나는 갑자기 먼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았다. 마음은 풍요로워 졌으며, 시간은 느리고 여유롭게 흘러갔다. 나는 잠들기 전에 괜히 행복감에 젖어 깨소금 같은 비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2010.7.19 초복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