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멈추지말고 흘러라

찰라777 2010. 9. 6. 07:57

 

 

수평리를 출발하여 섬진강변에 이르니 비가 주룩 주룩 내립니다. 빗줄기는 주먹처럼 굵어지다가 가늘어 지고 가늘어졌다가 다시 굵어집니다. 섬진강을 흐르는 물도 흙탕물로 변해 있습니다. 지난 16일, 17일 사이에 내렸던 엄청남 폭우가 생각이 나서 갑자기 겁이 납니다. 그러나 강물은 많은 것을 흘러가게 하고 있습니다.

 

(사진 : 수마가 할키고 간 섬진강)


“멈추지 말고 흘러라.”


섬진강을 흐르는 강물을 그렇게 일러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슴에, 머리에 품고 있기 때문에 불행한지도 모릅니다. 컴퓨터에 너무 많은 메모리를 저장해 놓으면 속도가 느려지고 마침내는 벅이 되어 컴퓨터가 멈춰 버리는 우리의 뇌도 너무 많은 것들을 기억하려고 하고, 생각을 하다보면 멈춰 버리는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떠오르는 생각을 강물처럼 자꾸 자꾸 흘러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흘러가는 사유야 말로 오히려 생동감이 있지 않겠습니까?


태풍 곤파스의 영향권이 서서의 접어들기 시작한 이곳 섬진강은 때때로 돌풍이 불어와 나뭇잎이 휘날립니다. 제발 좀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비오는 날 혼자서 먼 길을 운전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더구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한 비가 내리는 날에는 그 위험수위가 더 한 것 같습니다. 바퀴는 물장구를 튀기고 지나가는 트럭들이 지지직 하고 물방울 튀기는 순간에는 앞에 물벼락을 맞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졸음도 쫒을 겸 신비한 주문을 외우기로 하였습니다. 불경의 천수경에 나오는 “신묘장구대타라니”라는 다라니를 염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라니’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참된 말’ 즉 ‘진리를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라니는 무한한 뜻을 품고 있어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려고 하면 몇 생도 부족하다고 합니다. 마치 ‘어머니’와 같은 무한한 자비광명과 사랑을 간직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진언을 독송하게 되었는데, 잡념이 사라지고 생각이 ‘일념’으로 모아지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다른 노래나 기 샅은 것은 몇 번 염송을 하면 그냥 싫증이 나고 힘이 드는데, 진언은 아무리 외워도 도대체가 싫증이 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염송을 하면 할수록 힘이 나는 것이 진언인 것 같습니다.


불경에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입을 깨끗이 하는 진언)’ ‘옴 마니 반메 훔’ 등 여러 가지 진언이 있지만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 참으로 신기하고 미묘한 진언인 것 같습니다. 이 진언은 443자로 다른 천수경에서는 가장 긴 진언입니다. 그러므로 자칫 다른 한 생각을 가지면 진언의 단어가 헷갈려 놓치기 쉽습니다. 오직 진언만을 생각하며 일념으로 염송을 해야만 외울 수가 있습니다.


하여간… 구례읍을 벗어나면서부터 나는 이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다라니 염송 소리에 강물도 흘러가고 가로수도 흘러갑니다. 자동차도 흘러가고 하늘도 흘러갑니다. 세상이 모두 흘러가고 있습니다. 마음도 만물도 윤회의 사슬에 묶여 흘러가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삶, 멈추지 않는 삶, 흘려보내는 삶, 저장하지 않는 삶, 비워내는 삶… 

 

"멈추지 말고 흘러라."

 

그러나 나는 곡성 추억의 기차마을 종점인 "두가 현수교" 앞에서 가던 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강물도, 다리도, 추억의 기차도, 추억의 다리를 건너 다니던 사람들도 폭우가 쓸고 간 아픔을 간직한 채 멈추어 있었습니다.

<계속>

 

(2010.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