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완(Chitwan)은 ‘정글의 심장’이란 뜻이다. 8000m급 히말라야만 있을 것으로 상상되는 네팔에서 치트완처럼 푸른 정글 평원을 만나고 나면 그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네팔의 중앙에 자리 잡은 치트완 국립공원은 동서 80km, 남북 23km에 달하며 갠지스 강으로 흘러가는 랍티 강을 끼고 있다.
파르바 야생동물 보호구역까지 합하면 1,432㎢에 달하는 거대한 정글이다. 치트완 정글은 네팔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일찍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코끼리 사파리 등 야생동물 천국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제발, 코끼리를 때리지 말아요!
★성난 코끼리, 웃는 코끼리(2010.10.14 치트완정글)
▲치트완 정글에서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출처:http://chitwannationalpark.net)
치트완 정글은 코끼리를 타고 정글 돌아보는 코끼리 사파리로 유명해지고 있다. 치트완 정글에는 지구상에서 멸종되어 가는 벵골호랑이와 코뿔소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오래전에는 이 정글에서 호랑이와 코뿔소를 흔히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의 상류층들의 수렵으로 수백 마리의 호랑이와 코뿔소가 사라져갔다.
영국의 조지 5세는 1911년 치트완에 11일 동안 39마리의 호랑이와 18마리의 코뿔소를 사냥한 기록이 있다. 1933년부터 1940년 동안에는 네팔의 마하리자 왕족이 433마리의 호랑이와 53마리의 코뿔소를 죽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행해지는 무자비한 수렵은 동물들을 슬프게 한다.
네팔 정부는 사라져가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이 지역을 1961년부터 코뿔소 지장 한데 이어 197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부터 야생동물 보호를 강화했다. 따라서 1960년대에는 100여 마리의 코뿔소와 20여 마리의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550여 마리의 코뿔소와 80여 마리의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호랑이들이 정글 주변에 가끔 출현을 하여 소돌을 부리기도 한다.
▲치트완 정글 코끼리 사파리 출발점. 높이 4m, 몸무게 5~7톤의 거대한 코끼리
장님 코끼리 만지기
10년 전 치트완 정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타이거 탑스 Tiger Tops 로지에 머물 때는 밤에 호랑이가 포효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러나 소우라하에서는 호랑이의 포효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과연 호랑이를 만날 수 있을까? 다음 날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코끼리 트레킹에 나섰다.
오픈 트럭을 타고 코끼리 사파리 장소를 이동을 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사파리 출발장소에 다다르니 거대한 코끼리들이 사각형의 틀 안장을 등에 얹고 기다리고 있다. 코끼리 한 마리에 사육사 한 사람이 타고 있다. 홀로 타고 가면 좋으련만 사각형 안장에는 무려 네 명이나 탄다. 사육사까지 합하면 다섯 명이다.
▲정글을 해집고 가는 코끼리 사파리
4m가 넘는 키, 몸무게 약 5~7이나 되는 코끼리를 타고 나니 갑자기 타잔이 된 기분이다. “오~아아아아~ 아아아~ ” 타잔이 따로 있나? 코끼리를 탄 지금 내가 바로 타잔이지. 어험~ 그런데 지상에서 가장 커대한 코끼리가 움직이자 어질어질 현기증이 일어난다. 타잔이 되기는 다 글렀군.
기둥처럼 생긴 코끼리 다리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간다. 이건 오두막 한 채가 움직이는 것 같다. 사각의 링에 탄 네 명의 중생들은 “우아!” “헉!” “에게게~”, “와우~”… 각자 한마디씩 비명을 지른다. 호야 호야! 좋다는 의미겠지
그런데 나는 코끼리를 탄 맹인이 되고 만다. 군맹무상群盲撫象. 코끼리 등만 바라보이니 그릇된 판단만 하는 중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도의 경면왕(鏡面王)이 어느 날 맹인들에게 코끼리라는 동물을 가르쳐 주기 위해 그들을 궁중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신하를 시켜 코끼리를 끌어오게 한 다음 소경들에게 만져 보라고 했다. 얼마 후 경면왕은 소경들에게 물었다.
"이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느냐?"
그러자 소경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예, 알았나이다."
"그럼, 어디 한 사람씩 말해 보아라."
소경들의 대답은 각기 자기가 만져 본 부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달랐다.
"무와 같사옵니다." (상아)
"키와 같나이다." (귀)
"돌과 같사옵니다." (머리)
"절굿공 같사옵니다." (코)
"널빤지와 같사옵니다." (다리)
"독과 같사옵니다." (배)
"새끼줄과 같사옵니다." (꼬리)
"선남자들이여, 이 소경들은 코끼리를 제대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잘못 말한 것도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 코끼리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떠나서 또 달리 코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출처 : 열반경)
여기 나오는 코끼리는 불성(佛性)을, 소경은 어리석은 중생을 비유한 말인데, 중생은 불성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고, 또 모든 중생에게는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코끼리 등에 앉으니 작은 다락방처럼 생긴 사각의 링만 바라보인다.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우매한 소경과 같은 중생이다. 자신의 이기주의에 집작하여 코끼리의 부분만 만지고 다른 부분은 알지 못한다. 즉 자기의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사물을 그릇판단하고 있다. 이 사회는 코끼리 전체를 보고 코끼리를 조련하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제발 코끼리를 때리지 말아요!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정글 깊숙히 들어 가는 코끼리
이윽고 코끼리가 출발을 할 때마다 탑승객들은 비명을 지른다. 정글 속으로 지쳐 들어가는 코끼리 등에 낮아 있으니 어질어질하고 땅이 아득하게 보인다. 호랑이가 공격을 해오면 어쩌지? 코끼리가 난폭하게 달리는 일은 없을까? 여행자들은 사각의 링에 앉아 별별 상상을 다 해본다.
어쩐 일인지 내가 탄 코끼리는 술 취한 코끼리처럼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녀석은 가다가 코끼리풀을 보면 뜯어먹느라 발걸음을 멈춘다, 코끼리 조련사가 호통을 치며 때로는 채찍으로 갈겨대면 이내 코끼리는 움직인다. 아이고, 코끼리가 얼마나 아플까? 제발 때리지는 말아주오. 두들겨 맞는 코끼리 등에 앉은 나는 안절부절 코끼리에게 미안한 생각만 든다.
다시 한번 보는 화난 코끼리, 웃는 코끼리
코끼리는 조련사에 따라 달라진다
▲조련사와 코끼리. 치트완 정글 사파리에서
그런데 우리 뒤쪽에 따라오는 코끼리는 조련사와 혼연일체. 조련사는 유쾌하게 코끼리를 어르고 달래면서 갖은 묘기를 다 보여 준다. 돈을 던지면 돈을 코로 감아서 조련사에게 주고, 모자를 던지면 모자를 코로 집어 준다. 조련사는 코끼리 코위에 올라가 멋진 묘기를 보인다. 두 조련사를 바라보며 문득 술 취한 코끼리를 길들이는 부처님의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이 왕사성 죽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악인 데바닷다는 아자타사투 왕에게 부처님을 살해하자고 제의했다.
“대왕이시여, 부처님은 매일 같이 아침이면 성에 들어와 걸식을 합니다. 그때 왕께서 소유하고 있는 사나운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 풀어놓으면 부처님을 밟아죽이게 할 수 있습니다.”
왕은 데바닷다의 말을 듣고 ‘내일 아침에는 술 취한 코끼리를 풀어놓을 것이니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명을 내렸다. 소문을 들은 성안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부처님에게 전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성 안으로 걸식을 나오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들의 요청을 물리쳤다.
“걱정하지 말라. 여래의 몸은 아무나 해칠 수 없다. 저들이 온 세상을 술 취한 코끼리로 가득 채운다 할지라도 여래의 몸에 털끝 하나 다치게 할 수 없으리라. 왜냐하면 여래는 세상에 나와 결코 남을 해친 일이 없었으므로 남의 해침도 받지 않을 것이다.”
▲치트완 정글 코끼리 사파리
이렇게 말씀한 부처님은 과연 다음 날 아침 왕사성 거리로 걸식을 하러 나갔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놀라서 큰 소리로 웅성거렸다. 아자타사투 왕은 부처님이 아침 탁발을 나온 것을 확인하고 조련사를 시켜 코끼리에게 독한 술을 먹이게 했다.
“부처님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닥쳐올 변고의 징조도 알지 못하니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으랴. 너는 빨리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 내보내라. 부처님을 해치게 하라.”
사나운 코끼리가 술에 취해 날카로운 칼을 매달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시자 아난다는 불안한 마음에서 피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두려움 없이 술 취한 코끼리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술 취한 사나운 코끼리가 부처님 앞에서 칼을 버리고 무릎을 꿇으며 여래의 발을 핥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코끼리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타일렀다.
“분노의 마음으로 나쁜 짓을 하면 지옥에 떨어지고 독사나 뱀의 몸을 받게 되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성내는 마음을 버려서 다시는 축생의 몸을 받지 말라.”
이 모습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크게 감동하여 마음이 깨끗해졌다. 코끼리는 목숨을 마친 뒤 하늘나라에 태어났다. (증일아함경 )
얼마 전 “술 취한 코기리 길들이기”란 책을 쓴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영국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아잔 브라흐마는 명문대학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물리학을 장학생으로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생에서 폭탄을 만든 일보다 정신적인 삶, 영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커져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불교 서적을 읽던 중 자신이이미 불교도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등학교 교사직을 버리고 태국으로 건너가 스스로 삭발을 하고 수행승이 된다. 그가 수행생활 중 깨달음을 담은 내용이 “술 취한 코기리 길들이기”란 책이다.
청부살인. 아자타사투 왕은 자신보다 잘난 부처님을 데바닷다에게 청부살인을 시키는 골이다. 데바닷다는 코기리에게 다시 독한 술을 먹여 청부 행동대원을 만들고. TV를 틀면 그런 장면의 영화나 드라마가 너무나 많다.
“걱정하지 말라……. 저들이 온 세상을 술 취한 코끼리로 가득 채운다 할지라도 여래의 몸에 털끝 하나 다치게 할 수 없으리라. 왜냐하면 여래는 세상에 나와 결코 남을 해친 일이 없었으므로 남의 해침도 받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여래처럼 남을 해친 일이 없는 지도자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우왕좌왕 하는 이 세상 전체를 바라보고 술 취한 코끼리를 잠재울 수 있는 지도자는 이 땅에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