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의 애마 칸타카의 무덤을 지나 정반왕의 스투파가 있는 곳으로 갔다. 정반왕 열반 탑은 카필라 성에서 북쪽으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카필라 성을 돌아 들판을 가로 질러 가는데 다 쓰러져 가는 초막이 나온다.
그 초막 안에서 두 여인이 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왔다. 그리고 그 뒤에는 노란 사두의 옷차림을 한 노인 한 분이 하얀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두른 채 뒷짐을 찌고 나왔다. 그 모습에서 나는 다시 싯다르타 태자가 사문유관을 하던 시절로 되돌아 간고 만다.
▲정반왕 스투파로 가는 길
▲석가족의 두 여인
석가족의 두 여인은 나를 위하여 기꺼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이마 가운데 티카를 둥글게 바르고 왼쪽 코에는 작은 구멍을 뚫어 코걸이를 했다. 소박한 두 여인의 미소 짓는 표정은 맑았다. 두 여인을 따라 나온 사두의 표정은 근엄했다. 하얀 터번을 두르고 이마에는 하얀색을 칠하고 이마의 정수리에는 빨간색을 칠했다.
사두Sadhu는 힌두교의 수행자다. 무소유를 실천하며 신의 축복을 내려주는 사람이다. 성지나 도시에 있는 대부분의 사두들은 걸인으로 가짜 다두들이 많다. 그러나 이 사두는 진짜 사두인 것 같다. 초막에서 나온 사두는 나에게 기꺼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수행자 사두
사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들판 길을 걸어가는 데 마을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 나왔다. 아이들 틈에는 분홍색 가사를 걸친 노 승려 한분이 있었다. 승려도 아이들 모두 맨발이다. 2500년 전에도 석가족은 맨발로 걸어 다녔을 것이다.
들판 가운데 작은 동산이 나오고 거기에 두개의 원형 스투파가 나왔다. 정반왕은 인간적으로는 매우 불행한 왕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난 후 7일 만에 마야왕비가 죽고, 그토록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던 아들 싯다르타는 출가하였으며, 둘째부인 마하파자파티에게서 태어난 난다와, 그리고 싯다르타 태자의 아들 라훌라까지 출가를 하여버려 외로운 일생을 보내다 쓸쓸히 열반에 들었다.
▲정반왕 스투파-마야부인과 함께 묻혀있다.
외로운 말년을 보낸 정반왕은 붓다의 사촌 동생인 마하마나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마야부인의 무덤에 함께 묻힌다. 그 무덤이 바로 이 스투파이다.
카필라국의 멸망을 막으려했던 인간 붓다
왕위를 이어받을 태자가 없는 카필라국은 코살라 국에 의해 멸망을 하고 만다. 코살라국은 당시 북부 인도에서 네팔에 이르는 매우 강대한 왕국이었다. 카필라국의 멸망은 부처님에게도 가장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카필라국은 부처님의 사촌이었던 마하남의 하녀와 코살라국 파사익왕 사이에서 태어난 유리왕에 의해 망하고 만다.
‘불교근본교설’에 나온 카필라국의 멸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성도 하실 당시 코살라국은 매우 강성한 국가였다. 당시 코살라국의 파사익왕(Prasenait)은 석가족의 처녀를 왕비로 삼고자 했다.
▲정반왕 스투파 순례
자기부족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석가족은 코살라국의 요청을 정면으로 반대할 수가 없어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었던 마하남(Mahanama)의 집에서 일을 하던 하녀의 딸 말리카(Mallika)를 석가족의 공부인양 분장하여 파사익왕에게 시집을 보냈다. 마하남은 싯다르타, 아난다, 난다, 라훌라 등 왕족이 모두 출가를 하자 정반왕으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은 부처니므이 사촌 동생이다. 그 하녀의 딸과 파사익왕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유리왕(Virudhaka)이다.
유리태자는 8살 되던 해에 외가인 카필라성에 궁술을 익히려왔다. 그때 카필라국에서는 새로 궁전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고 낙성식을 화려하게 할 계획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유리태자가 새로 지은 궁전에 들어가 꽃과 보배로 장식한 사좌 좌에 앉아 장난을 하자 화가 난 석가족 사람들이 유리태자를 보고 “이 거룩한 집에 계집종의 자식이 뭣 하러 들어왔느냐”고 꾸짖었다.
비로소 자기가 석가족 노비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유리태자는 울분을 참으며 코살라국으로 돌아가 언젠가는 이 굴욕적인 일에 대하여 앙갚음을 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 왕위를 이어 받은 유리왕은 군사를 일으켜 석가족 정벌에 나섰다.
▲스투파에 있는 오래된 고목
코살라국이 석가족을 정벌하기 위하여 출병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기원정사에 계시다가 코살라국 병사들이 오는 길목으로 가서 잎사귀도 없는 한 고목나무 밑에 결과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카필라국을 향해 진격하던 유리왕은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수례에서 내려 예배를 한 다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잎이 무성한 나무를 버려두고 어찌 이처럼 마른 나무 아래서 뙤약볕을 맞으며 앉아 계십니까?"
"왕이여, 친족의 그늘은 시원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내게는 친족의 그늘이 없다."
이에 부처님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유리왕은 “예부터 전쟁을 하다가도 사문을 만나면 군사를 거두라 했는데, 지금 부처님을 만났으니 어찌 나아갈 수 있겠는가”하고 군사를 거두고 물러났다.
이후에도 유리왕은 여러 차례 카필라국을 공격했으나 그때마다 부처님을 만나 공격을 하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네 번째 이르러서는 부처님도 속세의 죄업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기원정사에 머물렀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신통제일의 제자인 목건련이 자신의 신통력으로 유리왕을 막으려 하자 부처님은 오히려 만류하였다.
“설사 하늘을 땅으로 만들고 다시 땅을 뒤집어 하늘을 만들 수 있다해도 구원겁에 꽁꽁 묶인 인연이야 어찌 없어지겠느냐.”
▲인근에서 몰려든 아이들에게 지상스님이 선물을 주고 있다.
파사익왕을 속이고 석가족 하녀를 공주인양 꾸며서 시집을 보낸 속세의 원결을 부처님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여기서도 자신이 만든 업은 스스로 갚아야 한다는 진리를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정반왕의 열반 탑을 합장을 하고 세 바퀴 돌았다. 마야부인을 먼저 이 스투파에 묻고 나중에 합장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스투파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그 옆에는 작은 스투파가 하나 더 있는데, 시종들의 스투파로 추정된다.
한 소녀가 정반왕의 스투파에 맨발로 서 있다. 소녀는 아름답다. 소녀는 혹 마야부인의 환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