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배우기 시작하며…
"이러다가 우리 둘 다 제비가 되는 거 아니야?"
▲ 한국의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구례군종합사회복지관
평생토록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다. 구례군 장애인 복지회관에서 무료 강의 프로그램을 발송해 왔다. 아내가 심장 장애 3급 장애인이서 발송을 한 모양이다.
"여보, 새해엔 무언가를 좀 배워야 할 것 같아요."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래 뭘 배우고 싶소?"
"여기, 서예, 제빵, 노래, 스포츠댄스 … 프로그램이 다양하네요."
시안이 아빠는 구례문화센터에서 일본어를 무료로 배운다고 한다. 자동차로 일본 일주를 꿈꾸고 있는 그는 그 꿈이 언제 이루어 질지 모르지만 이를 미리 준비하기 위하여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구례문화센터에 들려보니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이제 산골에도 문화혜택이 도시 못지않게 스며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섬진아트홀에는 324석의 공연장이 있고, 사회복지관에는 도서실, 소강당, 평생교육실, 문해교육실, 취미교실, 노래교실, 식당, 건겅증진실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청소년문화의집은 따로 있다.
지역주민에게 전문적인 복지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어려운 소외계층을 보호하며 지역사회문화발전과 복리증진을 위하여 이처럼 멋진 복지센터가 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주민의 몫이다.
"여보, 우리 스포츠 댄스를 배우면 어떨까요?"
"그거 조오치."
"스포츠 댄스는 부부가 함께 오셔야 됩니다."
▲중국어 교실
그렇게 해서 아내와 나는 건강에 좋다는 스포츠댄스를 배우기로 했다. 거기에다가 나는 중국어를, 아내는 노래교실을 추가로 다니기로 했다. 일단 등록을 하고 나니 새로운 용기가 솟아난다. 나이가 들어도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나태해지기 쉬운 마음을 추스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중국어는 수, 목요일 밤, 스포츠 댄스는 월, 금요일 오후에 들어 있다. 일주일에 네 번을 들락 달락 하게 되는 샘이다.
오늘은 수요일 중국어 강의를 처음으로 들으려 가는 날이다. 구례문화센터에 6시 20분에 도착하여 강의실로 들어가니 할아버지 두 분, 40대 남자 한 명, 50대 여자 한 명,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세 명이 앉아있다.
중국어 선생님은 흑룡강성에서 1996년에 구례로 시집을 왔다는 젊은 여성이다. 웃는 얼굴에 사람이 아주 좋아 보인다. 선생님은 교재도 복사를 해서 나누어 주었다. 1월부터 이미 시작을 하여 중국어가 완전히 먹통인 나는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배운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흥분이 된다. 중국을 그토록 여러 번 여행을 했지만 나의 중국어 실력은 "세세"와 "니하오"정도이다. 다행히 70인 넘은 두 어르신이 나에게는 용기를 불러일으켜 준다.
한 분은 아들이 북경대학에서 사귄 한족 여자와 결혼을 하였는데, 아들과 며느리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순전히 중국말로 하여 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한분은 아들을 조선족에게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본인이 직접 가서 선을 보고 데려오려고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 대단한 어르신들이다.
40대의 중년 남자는 아내 될 사람을 이미 중국에 정해 놓았는데,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다들 어떤 목적이 있어 중국어를 배우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딱히 이렇다 할 목적이 없다. 영어는 조금 할 줄 알고, 중국어는 어쩐지 배우면 좋을 것 같아 시작을 하게 된 것뿐이다.
중국어 선생은 매우 싹싹하고 친절하다. 중국어도 재미있게 가르친다. 일단 재미가 있다보니 통 알아듣지 못해도 1시간 반이 훌떡 지나가 버린다. 그녀는 낮에는 시부모 농사일을 돕고 틈틈이 관광안내원도 하며 저녁에는 중국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퍽 아름다워 보인다.
▲흑룡강성에서 온 중국어 선생님
시골에도 이제 다문화 가정이 크게 늘고 있다. 다문화 가정 120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네 환경은 이제 결혼도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우리 마을에도 베트남, 중국 등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다. 이제 외국인과 결혼을 한다고 하여 이상하게 생각할 일도 숨길일도 아닌 시대이다. 세계는 하나이다.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 보듬어 주고 안아주는 사랑이 절실히 필요하다.
시작이 반이다
어떻든… 시작이 반이라고 했지 않는가? 어떤 사람이 하도 일을 많이 하여 60세만 넘으면 일을 접고 편히 수겠다고 작정을 했다고 한다. 60세까지 열심히 일을 해 온 탓에 재산은 꾀 모았으니, 이제 여행이나 다니고 좀 놀면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것. 인생이 살 면 얼마나 살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어영부영 살다보니 90세를 넘게 되었다고 한다.
"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책을 쓰던지, 외국어라도 한 가지 똑 소리 나게 배워둘 걸. 30년을 허송세월을 보내고 말았구나!"
그러나 한탄을 하여도 90을 넘은 나이에는 너무 늦었던 것. 배움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요즈음 일본열도는 100세 할머니의 "약해지지 마"란 시집으로 들끓고 있다. 저자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올해 100세 할머니다.
그녀는 100년 전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나 열 살 무렵 가세가 기울어 학교를 그만 두었다. 이후 요리점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20대에 결혼과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33세에 요리사 시바타와 다시 결혼을 하여 외아들을 낳았다.
그 후 재봉일 등 부업을 해가며 살아오다가 1992년 남편과 사별을 한 후 우쓰노미야 시내에서 홀로 20년 가까이 살고 있다. 혼자 살면서 너무 힘들어 죽으려고 한 적도 있었던 독고노인이다.
그녀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홀로 중얼거리다가 그 중얼거림을 틈틈이 시로 썼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모아 둔 100만 엔을 털어 '약해지지 마'란 시집을 냈다. 그리고 지금 그 시집은 100만부가 팔려나가며 일본 열도를 감동시키고 있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시바다 도요-
백세 노인의 중얼거림은 시로 태어났다. 그리고 고령사회의 외로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일본 노인들을 크게 위로하고 있다.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초로의 나이에 아내와 스포츠 댄스를 배우며 도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길게 쓰는 것은 무엇일까?
나 역시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들며 약해지려는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것이다. 평생 익숙했던 서울이라는 도심을 떠나 지리산 산골에서 아내와 단 둘이 살아간다는 것은 자칫 약해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일은 스포츠댄스를 배우는 날이다. 아내는 오늘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서울 병원에 갔다. 나는 아내를 구례구역까지 바래다주었는데 아내는 내일 아침 첫차로 서울에서 내려오겠다고 한다.
"스포츠댄스를 배우는 첫 날인데 결석을 할 수 없지요."
"흠~ 이러다가 머지않아 두 사람 다 제비가 되는 것 아니오? 하하하."
"호호호, 제비가 되면 어때요? 암튼 내일이 기대 되요."
아내는 유쾌하게 웃으며 플랫폼으로 빠져 들어갔다. 생과 사의 담벼락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해온 아내는 내일을 생각하지않고 오직 오늘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런 아내가 대견하고 존경스러워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니 결코 약해지지 말자!
(2011. 2. 10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