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3350m의 랑무쓰는 마을 전체가 티베트 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서쪽에는 험준한 산악지대가 둘러쳐 있고, 동쪽으로는 초원이 둘러싸고 있는 자그마한 벽촌이다. 마을에는 티 없이 순박하고 친절한 티베트인과 후이 이슬람교도들, 그리고 한족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마을 북쪽에는 쵸르텐과 곰파가 곳곳에 지어져 있는 산이 있다. 마을 서쪽에는 다청 케르티 곰파(Dacheng Lamo Kerti Gompa)가 있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가 방문한 곳이다. 1413년에 세워진 이 라마사원은 의학, 천문학, 불경과 탄트라를 공부하는 700여 명의 승려들이 살고 있다.
▲마을의 중앙을 흐르는 시냇물
입장료를 받는 스님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일본말 안내문은 있는데 한국말 안내문은 없다. 스님께 다음에는 "韓國"이라고 써 보이며 다음에는 한국말 안내문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하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마을 가운데로는 시냇물이 시원스럽게 흐른다. 물이 맑다. 그래 흐르는 물처럼 살아가야 해. 차갑고 맑은 물속에 때 묻은 영혼을 씻어내려야 해. 그런 생각들이 흐르는 물속으로 스며들었다. 아내와 나는 어찌하여 이런 외계와 같은 오지를 걷고 있을까? 그런 나는 누구일까? 흠, 그걸 안다면 도를 깨친 것이겠지.
▲마을 전체가 너와집 지붕으로 되어 있다.
너와지붕으로 역은 지붕에는 돌들이 놓여 있다. 마을을 산책하는 느낌은 꼭 어느 외계의 마을에 온 것 같다. 할아버지 한분이 비틀거리며 오체투지를 한다. 그는 정확히 3보를 걷고 나서 두 손을 합장을 하고 이마와 가슴에 댄 다음에 천천히 엎디어 무릎을 땅에 대고 팔을 뻗혀 온 몸을 땅에 밀착을 시키고 사원을 향해 절을 한다. 누더기를 걸친 그의 모습은 거지행색이나 다름없다.
3보 1배, 삼보 1배,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의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현세와 미래세 그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러나 절을 하는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저 온 몸으로 절을 할 뿐이다. 저 무조건 적인 믿음! 그들은 생각을 하기 전에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한다. 아아, 인생이란 무엇일까?
두 사람이 사원입구에서 우체투지를 하고 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주판고동을 옆에 두고 절을 한다. 1배를 하고 주판 고동 한 알을 올리고, 2배를 하고 다시 하나를 올리고. 그는 절을 하는 횟수를 주판고동으로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아마 3천배를 하는 것 같다. 이들이 공통적인 점은 말이 없다는 것이다. 침묵, 묵언! 묵언정진이다. 거기엔 오직 절만하는 사람만 있고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후이 이슬란사원
▲배고픈 영혼을 위한 보시
사원 위 굴뚝처럼 생긴 곳에는 티베트인이 무언가 태우면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보릿가루인지 야크 기름인지 모르겠다. 이 의식은 배고픈 영혼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천천히 걷는데도 숨이 찬다. 모든 움직임이 슬로비디오처럼 행동해야 한다. 느림의 미학을 확실하게 배우는 것이다.
▲털이 부숭부숭하게 난 야크는 티베트인들에게 매우 유익한 동물이다.
마을 언덕에는 야크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야크는 거의 3000m 이상에서만 서식을 하는 티베트의 귀한 동물이다. 티베트인들에게 우유를 주고, 털을 주며, 고기를 주고, 무거운 짐을 운반해주는 매우 유익한 동물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숨이 헐떡거리고 다리도 피곤하다. 나는 어느 외계 마을에 불시착을 한 지구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다. 숙소로 돌아와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외계에 불시착을 한 지구인?
오후 4시에 피터와 나는 천장 터를 가 보기로 약속을 했다. 그 때까지 휴식을 취하자. 천장 터는 더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무서워서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기야 도끼와 칼로 죽은 시체를 동강을 내어 새들에게 바치는 장례식을 어느 여인인들 볼 수 있겠는가?
▲랑무쓰는 티베트 사원과 이슬람 사원이 공존을 하고 있다. 너와 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어느 외계마으렝 온 느낌을 준다.
▲주판 고동을 올리며 3천배를 올리고 있는 티베트 인들. 묵언 속에 오직 절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