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저우로 가는 길
랑무쓰에서 허쭤로
▲랑무쓰에서 허쭤로 가는 길은 상태가 양호하다.
정든 랑무쓰빈관을 나온 우리는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아침 7시. 짙은 안개 속에 버스는 랑무쓰를 출발했다. 버스에는 케이지의 멋진 색소폰 소리가 흐드러지게 울려 퍼졌다. 중국에서 오랜만에 들어보는 서양음악이다. 버스도 중국에서 타본 것 중 가장 최신식이다. 허쭤까지는 포장이 잘 되어 있어 3시간 이내에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다.
▲랑무쓰 빈관
랑무쓰를 출발한 버스는 5분 만에 간쑤성으로 진입한다. 랑무쓰는 쓰촨성과 간쑤성이 맞물려 있는 곳이다. 간쑤성은 대부분 산이나 사막으로 뒤덮인 거친 불모의 땅이다. 그럼에도 중국 역사상 간쑤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낙타를 탄 캐러밴들이 물건을 싣고 중국을 오가던 고대 고속도로인 그 유명한 실크로드가 바로 간쑤를 지나갔던 것이다.
불교도 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도입되었다. 신장에서 간쑤를 지나 실크로드를 따라 둔황까지 이어지는 석굴들은 불교가 바로 이 길을 통해 들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장법사도 간쑤성 란저우를 통해 서역을 거쳐 인도로 들어갔다. 또한 당태종의 딸인 문성공주도 란저우를 출발하여 당시 티베트 왕인 송첸감포에게 시집을 갔다고 전해진다.
▲해발 3500m 고원에서 풀을 뜯는 야크떼들
랑무쓰를 출발하여 10분 정도를 오르니 안개가 rje히고 설경이 펼쳐진다. 고원위에는 야크 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산허리에 띠를 두르며 흰 구름이 걸려 있다. 버스는 10시 경에 허쭤(合作)에 도착했다.
거리에는 흰 모자를 쓴 중국 후이족 이슬람교도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걸어가고 있다. 상점이나 음식점, 가게 등에도 모두 흰 모자를 쓴 후이 족들이다. 허쭤는 주로 간쑤성과 쓰촨성을 오가는 여행자들이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교통의 요지이다.
▲허쭤의 후이이슬람족들
허쭤에는 버스 정류장이 두 군데가 있는데 우리가 내린 정류장은 란저우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란저우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서 빵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했다. 2원을 주고 빵차를 탔다. 꽤 번잡한 거리를 지나 허쭤 정류장에 도착했다.
샤허냐, 란저우냐?
정류장에서 아내와 나는 잠시 의견이 엇갈렸다. 나는 이곳에서 가까운 샤허를 들려서 가자는 것이고, 아내는 갈 길이 바쁘니 그냥 란저우로 가자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행선지 때문에 아내와 종종 의견 대립을 하게 된다. 결국 나는 아내의 의견을 따른다.
샤허는 라싸를 제외하고는 가장 으뜸가는 티베트 불교사원인 라브랑 사원이 있는 곳이다. 겔룩파 학파의 6대 사원 중 하나인 라브랑 사원은 1200명의 승려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밀교, 신학, 의학, 천문학 등 6개의 연구소가 있는 곳이다.
▲허쭤의 시내 풍경
아내는 라싸에 가면 많은 티베트 사원을 방문할 수 있는데 구태여 이곳까지 들릴 필요가 있게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오지에 있는 여행지란 한번 지나치면 여간해서는 다시 가보기가 어렵다.
란저우 행 버스표를 사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특이하게 버스표를 살 때 여행자 보험료를 내라고 했다. 이상한 것은 버스를 이용하는 외국인들은 버스비와 별도로 여행자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허쭤에서 란저우까지 버스비가 43.5원인데 여행자보험료는 무려 40원이이나 되었다. 버스 값이 두 배가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보험에 들지 않으면 버스표를 아예 팔지 않았다.
간쑤의 이상한 여행자보험 제도
나는 이미 여행자보험에 들어있는데 왜 다시 보험을 들어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티켓을 파는 아가씨는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했다. 말은 제대로 통하지 않고 울며 겨자 먹기로 보험을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간쑤에서는 반드시 인민보험공사의 보험에 가입하도록 법제화하고 있었다. 현재 이 규정은 주로 란저우를 드나드는 경우나 간쑤 동부 지역에서만 적용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탑승자가 어떤 사고를 당하더라도 이 보험은 아무것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험의 존재 이유는 오직 공영버스 회사가 소송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주기 위한 것이다.
▲허쭤에서 란저우로 가는 버스. 버스요금에 해당하는 여행자보험을 들어야 한다.
20일짜리가 40원이고, 중국국제여행사나 일부 호텔에서는 5~10원 정도의 수수료까지 챙긴다. 배낭 여행자에게는 정말 슬픈 일이지만 더 골치 아픈 상황을 만나지 않으려면 보험에 들 수밖에 없다.
보험료 때문에 아내도 나도 썩 좋지 않는 기분으로 10시55분에 출발하는 란저우 행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우리는 노르웨이 트럼쇠에서 온 노르웨이 여성 여행자를 만났다. 그녀는 랑쓰에서 일주일간 머물다가 란저우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고 했다. 그녀는 베이징에서 몽고로 간 다음 시베리아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간다고 했다. 요즈음 유럽 배낭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배낭여행 코스의 하나이다.
▲란저우로 가는 간쑤성 풍경
간쑤성은 가도 가도 삭막한 오지였다. 사막에는 막고굴이 간간이 보였다. 황허에서 뻗어 나온 강줄기가 누런 황토색으로 흘러갔다. 버스는 오후 4시 30분에 남부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허쭤에서 5시간 30분을 달려온 것이다.
여기서 다시 란저우 역으로 가려면 버스나 택시를 타야 한다. 배낭도 무겁고 하여 우리는 노르웨이 아가씨와 합류를 하여 택시를 탔다. 란저우 중앙역까지 19원이 나왔는데 우리가 14원을 주고 그녀는 5원을 냈다.
▲란저우 역 풍경
란저우 역에서 골무드로 가는 기차표를 알아보니 마침 5시 49분에 출발하는 급행열차가 있었다. 그것도 일반석은 없고 침대표만 있었다. 이 기차를 놓치면 란저우에서 하루 밤을 자야 한다. 일반 좌석에 비해 값이 상당히 비쌌지만 우리는 침대표를 샀다. 1인당 151원이다. 노르웨이 아가씨는 다음 날 가는 기차표를 샀다. 란저우 역에서 우리는 노르웨이 아가씨와 해어졌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이 들었는데… 그녀는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란저우에서 골무드로 가는 기차
기차 시간이 촉박해서 란저우 시내를 돌아볼 겨울도 없었다. 우리는 역 구내에서 물과 빵을 사들고 기차를 탔다. 골무드로 가는 기차는 오후 5시 49분 정시에 출발했다. 중국의 기차는 항상 만원이다. 6호차 중단 3~4호 좌석, 기차는 다음날 오전에 골무드에 도착할 것이다. 우리는 무려 18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기차여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