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희망을 노래는 섬진강의 가을

찰라777 2011. 11. 5. 05:22

섬진강 가을끝자락에서 

이젠 희망을 노래하자! 

 

▲추수끝 평사리 들판에서 콩을 메고 있는 할머니와 포크레인으로 가을걷이를 하고 있는 농부.

 건초더미와 곤포상일리지가 듬성듬성 놓여있고, 파란 배추가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다.

 

 

 

 

 

 

 

 

▲하동 평사리 모래사장과 억새

 

 

섬진강 하면 우선 은빛 찬란한 물비늘 위에 춤추는 봄꽃 무더기를 떠 올리게된다. 매화, 산수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섬진강의 봄은 수많은 상춘객과 시인들을 불러들인다. 봄날의 섬진강은 날마다 축제의 연속이다.

 

춤추는 꽃 무더기/사랑 깊어가는 섬진강/누구나 한 번쯤은 걷고 싶은/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흐르는 곳/아니 가고 어찌 봄을 보낼 손가/어머, 저것 좀 봐/여기도 꽃 저기도 꽃 천지야…….

 

물 폭탄 쏟아지는 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섬진강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여행자들을 끌어드린다. 서늘해진 강물 위로 지리와 백운의 단풍이 곱게 드리워지고 물안개가 아침저녁으로 드라이아이스처럼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어준다. 시인은 그 환상적인 무대 위에서 울음 울다 못해 시로 노래한다. 그래서 가을 섬진강에 오면 모두가 시인이 되고 만다.

 

 

▲물안개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섬진강과 곱디고운 단풍

 

 

구례에서 차를 몰고 섬진강을 따라 내려갔다. 물안개 서린 섬진강은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강변 둔치의 억새들이 흰 머리칼을 휘날리며 생명의 끝을 춤추고 있다. 갈색으로 퇴색해 가는 몸뚱이는 바람 부는 대로 나부낀다.

 

그렇게 무더기로 피어나며 으스대던 벚나무들은 온 몸을 홀랑 벗어버린 채 앙상한 나목이 되어 있다. 차라리 벗어버린 나목들의 휑한 터널이 솔직하고 정직해서 좋다. 그 정직한 터널 속을 휘적휘적 걷다보면 응어리진 온 몸이 풀리고 카타르시스조차 느께게 한다.

 

▲벌거벗은 나목이 되어 터널을 이루고 있는 벚나무

 

 

더 정직해져야 한다/모든 가면을 훌훌 벗어버리고/벚나무의 나목으로/억새의 빛바램으로/시린 십일월의 강물에/온 몸을 던져야 한다./그리하면 덕지덕지 붙어있는 세월의 떼도/무성했던 상처의 아픔도/저 시린 강물에 씻겨 내리고 말리라.

 

벚나무 터널을 지나고 또 지나면 이윽고 평사리 넓은 들에 이른다. 거기 황량해진 들판엔 서희와 길상이 소나무 되어 서 있다. 토지의 사랑, 토지의 애착, 토지의 슬픔을 노래했던 그곳…. 황혼의 들판은 갈색으로 변해 있으나 두 영혼은 아직 푸르디푸르다. 평사리 들판 어느 곳을 가나 서희와 길상의 푸른 영혼이 보인다.

 

 

▲서희와 길상이 푸른 소나무되어 평사리를 지키고 있는 부부송

 

 

푸른 영혼이여/아름다운 사랑이여/영원하여라 영원하여라/사랑은 저 상록수처럼 변하지 않고/영원히 평사리 들판을 지키리라.....

 

평사리 들판을 가로 질러 건너가면 대봉감이 축제를 기다리는 홍등처럼 주렁주렁 열려있다. 아이들 머리통보다 더 큰 대봉감은 가을밤을 밝히는 희망의 등불이다. 저걸, 그냥 한 잎 넣고 움질움질 씹어 먹으면 속이 시원하고 훤해지겠지.

 

 

▲홍등처럼 주렁주렁 열린 대봉감은 희망의 등불이다.

 
 

대봉 감등이 어둠을 밝힌 토지길 따라 평사리공원으로 발길을 옮겨 간다. 하동포구로 시원하게 너른 은빛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하늘엔 "선홍빛 설레임 악양 대봉감 축제"란 애드벌룬 나부끼고 있다. 그 깃발 아래 두 눈을 부릅뜨고 쏘아보는 장승들이 섬뜩하게 다가선다. 목장승 앞에서 떨리는 가슴으로 묵념을 한다. 나부끼는 오방색 설치물이 강물의 전설을 전해 주듯 펄럭거린다.

 

그대 거짓으로 살면/혼내 줄 거여/똑 바로 살아/내가 네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아/저기 강물처럼 순리대로 살아야 해/그대여, 거짓으로 살아온 삶을 참회하라….

 

 

▲"똑 바로 살아야 해" 눈을 부릎뜨고 참회하라는 평사리 목장승

 

 

바스락 거리는 푸른 대밭을 따라 하동포구로 달려가면 언제나 짓 푸른 하동 송림이 기다리고 있다. 솔은 항상 푸르다. 떨어져 양탄자 된 솔잎 밟으며 송림을 걸어본다. 솔잎 향기가 땅에서, 하늘에서, 강에서, 바다에서 피톤치드 되어 온 몸으로 들어온다. 차가워진 섬진강은 찾는 사람도 없어 쓸쓸해져 가고 있지만, 송림은 늘 푸른 마음으로 싱싱하고 건강하게 길손을 맞이한다.

 

솔아 솔아 푸른 솔아/늘 푸른 마음으로/ 날 잡아 주오//내 마음 항상 푸르게 해주오/ 늘 푸른 희망이 넘치도록….

 

 

▲늘 푸른 향기로 희망을 안겨주는 하동 송림

 

 

섬진강 줄기는 하동포구에서 남해로 흘러들어 마침내 끝장이 난다. 전북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장장 225km 서사시에 마침표를 찍고 마침내 고향 남해로 돌아간다. 옥정호-순창-곡성-구례-하동-광양만을 지나 남해로 흘러드는 섬진강은 3도의 경계를 허물고, 지리산과 백운산을 품에 안으며 바다로 흘러간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은 한편의 장대한 서사시다.

 

해가 떠오르니 물안개 걷히고, 거기 지리산이 넉넉한 품을 열고 다가온다. 어머니 품처럼  깊고 포근한 지리산! 어머니의 산에 안긴 나그네는 낙엽 지는 길섶에서도 외롭지 않다. 늦가을 계절은 포구 모래톱 위에 아직 머물고 있다. 머지않아 겨울이 오리라.

 

 

 

▲3도의 경계를 허물고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게 다가오는 지리산(악을뜰에서 바라본 지리산)

 

 

 

▲섬진강의 끝자락을 가로지르는 하동포구와 광양을 잇는 철길

 

 

한 편의 서사시가 장대하게 흐르는 가을 끝 섬진강엔 늘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산정과 나무들과 강변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은 변해도 섬진강은 거기, 진리를 노래하며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래, 희망을 노래하자/가을의 끝자락 섬진강에서/다시 위대한 하루를 시작하자!

 

 

(2011.11.4 아침 섬진강에서)

 

 

 

 

섬진강의 끝자락 하동포구와 평사리 벌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