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회향(廻向)을 할 시간입니다. 회향이란 정당한 대가나 결실을 내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 돌리는 것, 내가 닦은 공덕을 이 세상의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리며 다시 돌려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이곳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에서 받아만 온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을 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달 전부터 지리산을 향하여 108배를 하고 있습니다. 지리산은 나의 스승이자, 내가 이곳에 살면서 정신적으로 의지를 하며 살아왔던 의지처입니다. 산은 언제나 말없이 나를 받아 주었고,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습니다. 내가 108배를 하는 것은 어떤 종교적인 차원보다도 내 자신을 참회하며 마음을 단순화 시키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108배를 시작하면서 몇 개월 동안 복용을 했던 과민성장증후군에 대한 약도 끊었습니다. 일체의 약을 먹지않고 있지만 약을 먹을 때보다 훨씬 컨디션이 좋아졌습니다. 이 또한 지리산이 나에게 베풀어준 은혜입니다.
첫 번째로 그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이 나와 아내를 따뜻하게 품어준 너그러움에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사계절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보여준 그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감과 정신적인 풍요를 안겨주었습니다. 봄이면 섬진강변에 피어나는 매화, 산수유, 벚꽃, 배꽃, 밤꽃 등 수없이 많은 꽃들을 바라보며 이루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노고단의 원추리, 지리털이풀꽃, 섬진강을 휘감아 도는 운해.... 지리산이 주는 아름다움과 영감은 참으로 신성하고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자연은 언제나 나의 스승이자, 종교이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였습니다.
구례읍에 가면 <임규한의원>이 있습니다. 한동안 나와 아내는 임규 한의원에 침과 뜸을 뜨러 다녔습니다. 아내는 텃밭을 만들다 빠진 다친 어깨와 허리때문에, 나는 장이 좋지않아서 주로 뜸을 뜨러 다녔습니다. 서울에서 한의대를 졸업하고 이곳 구례에 터를 잡은 <임규한의원>은 의술도 의술이이지만 참으로 다정다감하고 때로는 교훈적인 말을 던져주곤 했습니다. 다 쓸어져가는 한옥을 리모델링을 하여 멋진 한의원 건물로 재생을 시킨 그곳에는 많은 환자들의 발 길이 끊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는 언젠가 집을 짓기위해 터를 찻고 있다는 나의 말을 듣고 그는 말했습니다.
"터라는 것은 아무리 찾는다고 해서 그냥 찾아지는 게 아니더군요. 저도 한의원자리를 찾느라고 상당히 긴 시간을 해매였는데, 어느날 지금 이 자리를 보고는 여기다! 라는 생각이 꽂혔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엉성하고 낡아서 형편이 없었지만 제마음 속에 필이 딱 꽂혀지더군요. 그래서 모든 걸 접고 이 자리에 터를 잡았습니다."
그는 낡은 한옥을 리모델링을 하여 아주 편리하고 환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건물로 개조를 하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을 수리하는 동안 그의 어머니와 그는 앓아서 누을 정도로 힘이 들어다고 합니다.
"건물을 지을 때에는 신뢰할만한 건축업자를 잘 선택에서 설계를 할 때 어떻식으로 설계를 해달라는 생각을 전달을 하고, 절대로 간섭을 하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간섭을 한다고 해서 더 좋은 건축물이 지어지는 것도 아니고교, 오히려 더 엉망이 될 수가 있거든요. 다 지어진 다음에 가 보시고, 다소 불편 한점이 있으면 살아가면서 고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열심히 환자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고향은 원래 하동 쌍계사 근처인데 구례가 좋아서 이곳에 한의원을 차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또 말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는 사람을 보지말고 지리산과 섬진강을 바라보세요. 그러면 마음이 풀릴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천차만별로 변하지만 산과 강은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 당신을 반겨주기 때문입니다."
나보다는 훨씬 어린 나이이지만 지리산 자락에 살면서 터득한 그의 마음은 늘 한 단계 위에 있었습니다. 요즈음 나는 그의 말처럼 사람보다는 산과 강을 더 자주 바라보고 있습니다. 거기 지리산과 섬진강은 변함없이 침묵을하며 저를 받아들여주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산하에 감사를 드리는 마음은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아, 지리산이여, 섬진강이여!
두 번째는 이 집에서 1년 반 동안 살게 해주신 집주인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비록 비어 있는 집이었지만 우리와 인연이 되어 지리산과 섬진강 자락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이 집과의 인연입니다. 그 동안 온 집안에 나와 아내의 손때가 묻을 정도로 집수리를 하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도시생활만 해왔던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가르쳐 주었던 산골생활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걸 손수 고치고 수리하는 멕가이버 같은 삶은 일종의 야생에서 서바이벌을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주었습니다.
세 번째는 너무나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대해 주신 소박한 수평리 마을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그 풋풋한 인심과 나눔의 정신은 내 인생에 있어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인간적인 삶의 시간이었습니다. 혜경이 엄마, 우체국 집 선배 부부, 준모 등산 대장, 수평상회, 권 여사, 큰어머니, 이장님, 동네 어르신들…… 모두 그 따뜻한 마음과 인정에 감사를 드립니다.
네 번째는 이곳 지리산 자락에 살면서 새로 인연을 맺어온 주변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천은사 입구 이속 찻집의 시안이내 가족-세계일 주를 할 때 그를 칠레 푼타아레나스에 만났는데, 그 인연으로 우리는 그가 살던 수평리 이집을 인수 받아 살게 되었습니다. 야동 마을 개구리집 부부-그들은 네팔에 살다가 지리산이 좋아서 지리산에 둥지를 틀고 산지가 7년이나 되었습니다. 전화와 TV, 자동차도 없이 딱 필요 한것만 가지고 텃밭을 가꾸며 수행 정진을 하고 있는 두 부부의 모습은 나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 주었습니다. 마치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그 담백함에 매료되며 나는 내 자신이 삶을 반성하고 참회를 할 때가 많습니다.
미타암 각초스님-스님과는 30년 넘게 인연이 있었는데 지리산에 오게 되어 다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계절마다 선방에 들어가 묵언 정진을 하시는 스님의 모습은 현실을 초월하는 정신세계에 머물러 계십니다. 이번 겨울에도 봉암사 선방에서 90일간 묵언 정징을 하신다며 홀연히 떠나 가셨습니다. 언젠가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10년 전에 이 암자를 지었는데요, 지금은 많이 후회를 하고 있어요. 중생활이라는 것이 삶이 끈적끈적 해지면 그곳을 등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야 하는데 이 암자때문에 늘 걸치적 거립니다. 암자를 지은 이 업 때문에 암자에서 도를 닦는게 아니라 암자를 유지하고 관리해야 하는 등 되려 시봉을 하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수행자는 한 곳에 3일 이상 머물지말라고 했는데, 집을 지어놓은 업 때문에 자꾸만 끄달리게 되니 수행이 제대로 될 턱이 없어요."
삶이 끈적거릴때 훌쩍 떠나가야 한다는 말씀은 속세에서는 듣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영어 속담에 "Leave a welcome behind you" 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남의 집에 3일 이상 머물지말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당신이 떠난 뒤에 좋은 인상을 남기도록 하라'는 말로도 생각이 됩니다. 언제 어디서든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좋은 인상을 남겨주어 당신이 없을 때라도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당신을 좋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이겠지요. 너무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당신의 단점이 자꾸만 보여져서 좋게 보여질 수만 없겠지요. 한편으로는 찰라가 이곳을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것도 그런 맥락의 한 단면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홍서원 정봉무무 스님-'못 말리는 지리산 스님들의 수행이야기'를 쓴 스님으로 책을 보고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늦게 출가를 하여 쌍계사 근처 토굴에서 수행 정진을 하고 계는 분입니다. 만수마을의 하봉규 시인과 염색가 안화자님, 순천의 김영애 부부-이 두 부부는 아내의 오랜 친구로 늘 형제처럼 우리를 보살펴 주었습니다. 안지희 여사-영애씨의 소개로 만났는데 벤자민과 아지안탐 등 화초와 맛있는 김치를 우리에게 선물하여 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욱선 조카 부부, 오미리 마을의 김내곤 씨 부부, 남원의 박선생님과 송 교수님, 하동 평사리문학관 최영욱 관장, 김인호 시인, 광양의 바이올렛님 …… 짧은 시간에 인연을 맺은 많은 분들에게 은혜를 입은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섯 번째는 이사를 할 때 서울에서 함께 와 도와준 친구 원석-그는 이틀 동안 머물며 집수리와 전기수리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청도에서 서울까지 와 이곳 지리산 집으로 짐을 옮겨 주신 <다시 뛰는 심장으로>의 김성곤 씨-그는 심장이식환자로 용달화물을 운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리산으로 이사를 한다고 하자 '짐은 제가 옮겨드려야지요'하면서 일부러 청도에서 서울까지 와서 지리산까지 짐을 옮겨 주었습니다. 아내의 친구 서울 종순 씨는 이곳까지 와서 이삿짐 정리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시골로 이사를 간다고 하니 서울의 친구들이 집에서 쓰지 않는 가구와 전기제품을 하나씩 내어 주었습니다. 장롱과 침대, 책상, 식탁, 카펫을 내준 친우 이봉, 소파를 보내준 아내의 친구 상금씨, 냉장고와 세탁기, 정수기를 보내준 막내처남, TV와 책장을 보내준 영애씨, 전축을 보내준 원석, 에어컨디션을 보내준 친우 정근, 완풍기를 달아준 학수, 도마와 카펫을 보내준 신익, 그리고 밥솥을 사준 부부사랑 친구들, 그례장에서 솥단지를 사들고 온 평수와 응규…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산골살림이 마련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우리가 가져 온 것은 김치냉장고와 내가 쓰는 컴퓨터 정도였습니다. 모두가 친구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산골살림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신 무소유 정신을 조금이라도 실천을 하고자 결심읋 하며 산골로 이사를 왔는데, 여기저기서 받은 살림살이가 집안에 가득차게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필요한 것을 너무 많이 소유하면서 살아가는 속물근성을 자긴 중생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제 이 많은 살림살이를 어떻게 처분해야 하나 하는 문제로 아내와 나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고, 가지고 가자니 너무 짐이되고... 해서 대부분의 살림을 마을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면 두고 가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는 누추하지만 이곳 수평리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동안 찰라의 집을 찾아준 많은 친척과 친구, 친지들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 동안 이 누추한 집을 참 많이도 다녀갔습니다. 나와 아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누추한 집을 이 세상의 그 어느 별장보다도 멋진 곳으로 여겨주고 좁은 방에서 함께 뒹굴며 며칠 밤을 보내주시던 분들에게도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사를 하고 처음 이집을 방문해주신 분들은 <다시 뛰는 심장으로>의 심장이식환우들이었습니다. 비바, 김성곤씨, 박주락씨, 푸른솔 임 등 비가 내리던 여름날 같은 환우의 입장으로 멀리 이곳까지 방문을 하여 주셨습니다. 대승이 조카, 안양 형, 광주 동서, 건주, 철홍 처남, 대용이 조카…… 많은 친지들이 찾아와 텃밭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응규, 하년, 평수 친구들은 더운 여름 날 찾아와 텃밭을 만드는 데 필요한 흙과 돌을 운반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부부사랑 친구들, 향운사 지상스님과 신도님들, 월명수, 선법성 보실님, 정재연 선생님, 정금자 보살, 대전의 황토님, 양평의 김병덕 부부, 제주도의 야생마 가족, 지구인 가족들, 광주와 정읍에서 오신 목사님, 멀리 호주 멜버른에서 날아온 존과 지나 엄마, 캐나다의 줄리안과 사만타 커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누 추한 집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함께 뒹굴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잊지 않고 누추한 집을 찾아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곳을 떠난다고 하니 별장이 하나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고 애석해 했습니다. 어떤이는 우리가 지리산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집을 짓는 모금운동을 해야겠다는 우스게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찰라의 <섬진강 일기>를 열심히 읽어주신 <하늘땅여행> 카페 회원님들과 <아내와 함께 떠난 세계일주>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변변치 않은 섬진강일기를 그토록 열심히 읽어 주시고 댓글을 남겨 주심에 더불어 즐거웠습니다. 멀리 아메리카에서 고향의 향수를 달래며 열심히 섬진강 일기를 읽으시면서 글마다 댓글을 남겨주시는 섬호정 선생님, 이태리의 호야님, 아녜스님, 황토님, 효원님, 피아골님, 재연님, 오해봉님, 다시뛰는 심으로 회원님들, 네팔캠프 회원님들, 수많은 블로그 회원님들.... 부끄러운 글을 애독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많은 신세를 진 우리는 이제 무엇으로 감사의 회향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들에게 진심으로 베풀어 주신 그 은혜와 정성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섬진강 일기를 접을 때가 되었습니다. 11월 21일 우리 부부는 일단 서울로 이사를 갑니다. 다시 이곳 섬진강변에 돌아 올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동안 고마웠고, 감사했으며, 함께 해서 행복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늦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군요. 이 비가 내리고 나면 겨울이 성큼 다가오겠지요. 계절의 변화는 이렇게 무심하게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늘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하고 번뇌에 빠져 있을 때 자연은 무심하게 흘러 갑니다.
계절은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갑니다. 걸림이 없이. 그런데 우리네 인간은 늘 무언가에 걸리며 고민하고 번뇌망상에 젖어들까요? 저 바람소리, 비소리처럼 그저 무심하게 흘러 갈 수는 없을까요? 지리산의 비소리, 바람소리에 찰라의 마음을 담아 여러분 창가에 이 글을 띄웁니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무심(無心)하게 걸림이없이 살아가자고 다짐하면서 말입니다.
아아, 지리산이여! 다시 오는 날까지 안녕!
(2011. 11. 20 지리산에서 찰라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