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연으로 찰라의 <섬진강 일기>는 <임진강 일기>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섬진강 일기를 애독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휴전선 155마일에 얽힌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안개 낀 임진강
새로운 인연을 맺으며...
피빛이 우유빛으로 변한 계곡은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실루엣을 연출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하얀 안개로 덮어저버린 강은 남과 북이 따로 없다.
그곳엔 그저 엄마의 젖을 짜 놓은 것 같은 풍요로운 우유빛 세계가 뽀얗게 서려 있을 뿐이다....
남북한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흐르는 임진강! 피의 역사가 흐르는 곳이다. 가까이는 6.25 한국전쟁 때 치열했던 임진강 전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 때의 임진강 전투, 삼국시대 치열한 세력다툼까지 임진강은 그 지형적 특성때문에 전쟁과 다툼때문에 말없이 희생된 민초들이 피와 눈물이 흐르는 슬픈 강이다.
그러나 임진강은 그 아름다운 풍광때문에 가는 발길 되잡고, 다시 되돌아서게 하는 곳이다. 안개가 자욱이 낀 오늘의 임진강은 온통 우유빛이다. 피빛이 우유빛으로 변한 계곡은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실루엣을 연출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하얀 안개로 덮어저버린 강은 남과 북이 따로 없다. 그곳엔 그저 엄마의 젖을 짜 놓은 것 같은 풍요로운 우유빛 세계가 뽀얗게 서려 있을 뿐이다.
안개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비극의 현장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좋으리라. 새들이 안개속에서 지저귄다. 보이지 않는 새들이지만 노래 소리는 매우 평화롭다. 누가 임진강을 전쟁의 강이라고 하겠는가? S자를 그리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면 그저 평화롭게 유영하는 한마리 물고기가 될 것만 같다. 백학이 안개를 제치며 유유히 하늘로 비상을 한다. 그러나 백학은 곧 안개 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새들과 물고기, 그리고 강을 흐르는 맑은 물과 하늘을 오가는 공기는 경계선이 없다. 오직 인간만이 경계선을 그어 놓고 비극의 현장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새나 물고기, 말을 하지 못하는 강물과 공기만도 못하는 미물이다. 어찌 스스로 그어놓은 경계선에 발을 묶어 놓고 울부짓고 있는가? 시공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오가는 새들과 강물이 부럽다. 아아, 우유빛 나는 강물아, 인간의 욕망으로 그어진 경계선을 허물어 다오!
임진강에 오기전 아침에 일어나 한강을 바라보니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었다. 남한산성에서 떠오른 해는 마치 계기 일식을 하듯 안개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신비스러웠다! 어떤 알 수 없는 좋은 예감과 기운이 감돌고 있는 태양.... 그 아래로 아침 출근을 하는 차량들이 안개 낀 한강에서 유영을 하듯 안개 속을 헤집으며 느릿느릿 기어간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저렇게 정체를 하며 기름을 마구 써도 되는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은 안개 때문에 더욱 느리게 기어 간다. 저마다 무슨 사연, 일터, 무슨 인연이 있기에 아침 일찍 차를 몰고 가는 것일까?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 없다. 나는 블로그의 창을 열고 다시한번 청정남 님이 남겨놓은 댓글을 천천히 일어 내려 갔다.
"……제가 경기도 연천에 집을 한 채 소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데 한번 찰라님을 모시고 초청하고 싶습니다. 경기도 연천이어서 그곳은 임진강이 흐르는 곳입니다. 찰라님께서 임진강 일기를 쓰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그곳에 사신다면 조건은 없습니다.……"
섬진강에서 임진강으로 이어지는 묘한 인연
블로그에서 알게 된 청정남님은 지난 23일 찰라의 블로그에 위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섬진강에서 임진강으로? 그의 댓글을 읽는 순간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섬'자와 '임'자 하나를 교체하면 강의 이름은 똑 같다. 그것은 마치 영어의 'change'가 'chance' 단어 중에 'g'가 'c'로 변함에 따라 가져오는 느낌과 같다는 생각이 번뜩 지나갔다. 변화는 새로운 기회로 다가온다는 진리가 아니겠는가?
청정남님의 댓글은 나에게 매우 신선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아내와 나는 그의 마음에 감동이 되어 일단 그를 만나기로 했다.
내가 거처하고 있는 동서울에서 그가 살고 있는 파주시까지는 54km의 거리였다.
9시 10분에 집에서 출발하여 그의 집에 도착한 것은 10시 30분.
청정남님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도착하여 전화를 하였더니 반가운 모습으로 그가 다가왔다. 처음 만나는 순간이지만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런 낯익은 모습이었다. 전생에 오랜 인연이 있었을까? 우연히 드라이브를 왔다가 인연이 되어 파주시에서 살게 되었다는 두 부부의 모습은 오랜 지기처럼 다정다감했다. 아파트 벽에 대리석 타일을 붙여 리모델링을 한 내부 구조는 마치 전원주택 내부를 연상케 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돈을 몇 십년간 저축을 하여 리모델링을 했다는 그의 말에서 무언가 보통사람과는 다른 이미지를 느끼게 했다. 술과 담배를 하지않는 돈을 매일 저축했다니... 그 발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아내가 갑자기 저혈당이 왔다. 저혈당이 오면 온 몸에 식은땀이 나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현상이 온다. 일반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저혈당이면 응급실로 실려 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랜 경험으로 병원에서 응급처치 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에 침착하게 대처를 하여 그 위기를 벗어났다. 주스와 초콜릿을 먹은 아내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 우리는 당뇨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그렇게 힘든 건강상태로 그렇게 많은 나라를 여행하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런 현상은 언제 어디에서든지 올 수가 있지요.여행을 하지않고 집에서도 더 많이 올 수가 있지요. 지나간 일을 돌이켜 후회하지 않고, 다가오지 않는 미래를 미리 걱정을 하지 않으며 현재의 점점이 이어지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런 여행은 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의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삶 그자체로 보시면 됩니다. 좋게 말하면 두려움을 떨쳐 버리는 속알머리 없는 용기라고 할까요? "
아내와 나는 그렇게 점점이 이어지는 삶의 현장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내가 기운을 되찾자 우린 곧 그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임진강변이 나왔고 임진강은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남북한의 경계선을 이루는 임진강 풍경이 실루엣처럼 차창에 어리며 지나갔다.
강심에 안개가 낮게 드리운 임진강,
벌거벗은 나무들,
그리고 그 건너 갈 수없는 땅 북녘하늘 밑……
그런 3차원의 세계가 묘하게 대조를 이루며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것은 몽환적인 느낌을 주기도 했으며, 아득히 먼 다른 세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세계였다!
임진강이 바라보이는 언덕
청정남님의 별장은 임진강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서 있었다. 그는 별장으로 가는 길에 동네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며 무언가 선물도 챙겨 주기도 했다. 이웃과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하는 모습에서 그의 너그러운 성품을 엿볼 수 있었다.
언덕위에 서 있는 전원주택은 낯선 풍경이었다.
주변에는 안개 위에 유영하고 있는 집들이 띠엄띠엄 서 있었다.
안개 속에 떠 있는 작은 갤러리를 연상케 했다.
바로 코앞에는 임진강이 흐르고 있다.
도대체 남과 북의 경계선이 지척인 거리에 전원주택을 지어 놓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슬아슬한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일까?
"따지고 보면 이곳이 가장 안전해요. 포탄이 날아가면 서울근교로 먼저 가지요. 이곳 무인지대에 포탄을 쏠 필요가 있겠습니까?"
군사분게선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가 들여준 이야기다.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하지않는가?
임진강하면 사람들은 괜이 멀고 아득하게 생각을 하고
위험스럽고 갈 수 없는 곳으로 생각을 하게된다.
그러나 임진강은 가까웠으며, 풍경은 아름다웠다.
금가락지(金家樂地)라고 새겨놓은 정자의 현판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金씨 가문의 낙원?
곡수정(曲水亭)라 명명한 정자도 운치가 있어 보인다. 물이 굽어서 흘러가는 곳이란 뜻이란다.
어린 시절 어렵게 자라온 그는 항상 꿈을 꾸며 살아왔다고 한다.
이 '금가락지'란 집도 그의 그런 꿈에서 발상이 된 집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항상 아스아슬한 질곡을 살아오지만 꿈이 있기에 이름다운 것이다.
꿈이 없는 인생은 죽어 있는 삶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항상 꿈을 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눈돈자는 소년처럼 생기가 있었고, 행동은 솔직함과 담백함이 묻어 났다.
그런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괜히 행복하고 흐믓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와 나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다.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에서 만나 이렇게 처음 만나는 순간인데도 마음이 흐믓하니 말이다.
설령 그 시간들이 길지않아도 상관이 없다. 다만 이 순간의 즐거운 마음이면 족하다.
사람은 어떤 환경이 변하면 다시 본질로 돌아가면 된다.
어떤 일이 실패하던 성공을 하던, 성사가 되던 아니되던 다시 본질로 돌아가면 새로운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태어날때 맨주먹이 듯 본질은 항상 변함이없기 때문이다.
새들이 안개속에서 노래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잔디마당이 시원하게 펼쳐진 언덕에 목조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집 주위에는 항아리를 엎어놓아 정겨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마당 앞 정자에는 바둑판도 놓여 있었다.
그것은 별로 꾸밈이 없는 작은 갤러리를 연상케 했다.
그런데 사람이 살지 않아서인지 집의 정경은 어쩐지 허전하고 외로워 보였다.
집은 역시 사람이 살아야 한다. 사람냄새가 나는 집이야 말로 살아있는 집이다.
다른 어떠한 화려한 꾸밈보다도 사람 냄새가 나는 집이야 말로 살아있는 집이다.
집은 사람이 살며 습도와 온도, 기운을 불어 넣어 주어야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아무리 으리으리한 저택이라고 공허하다.
청정남님도 그것을 아쉬워 했다. 원래 이 집에서 살며 서울로 출퇴근을 하려고 했는데, 주력하는 사업이 있으니 펜션을 할 수도 없고, 임시로 거주하는 사람을 들일 수도 없는 처지라는 것. 어쨌든 이 집에 살며 집에 온기를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필요 하던 차에 섬진강에서 불가피하게 떠나온 내 소식을 접하고, 아무런 조건 없이 이 집에 거주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쨌던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지 고마운 일이다.
"익숙하지 않는 것에 대한 호의, 새로운 것에 대한 선의를 가지면 그것이 곧 내 것이다. -니체-
정말, 살다보니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다! 갑자기 살 곳을 잃은 나에게 이런 일이 다 일어나다니…. 나는 니체의 말을 상기시키며 잠시 숨을 고르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는 호의였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는 호의, 새로운 것에 대한 선의를 가지면 그것이 곧 나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 아니겠는가.
낯선 것에 대한 도전, 이것은 언제나 흥미진진한 삶을 부여해 준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낯선곳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악! 소리 나는 풍경에 놀라고,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에 충경을 받으며 아픈 것을 잊어버리는 여행! 그것은 아내에게 최고의 명약이었다. 즉, 여행은 난치병에 걸린 아내에게 기적같은 명약을 선물해 주었던 것이다.
미니 2층으로 지어진 전원주택은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우리에겐 너무나 과분할 정도로 질 꾸며진 집이었다. 넓은 정원, 탁 트인 거실, 부엌, TV, 냉장고, 미니 2층 다락방, 신비하게 펼쳐진 임진강변…… 그것은 내가 꿈꾸어 왔던 전원주택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즉석에서 그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섬진강에서 전원생활을 하다가 터전을 잃은 우리에겐 다시없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곳이 섬진강이면 어떻고 또 임진강이면 어떻겠는가? 어머니의 산 지리산과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이곳 풍경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나의 감성을 자극했다. 남과 북의 첨예한 대치 현장, 피로 얼룩진 전쟁터, 지리산이 빨치산의 피가얼룩진 곳이라면 이곳은 6.25 동족 상잔의 비극이 얼룩진 곳이다. 허나, 어떤 곳이든 우리에게는 도심을 벗어난 전원생활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와 우리 사이에 '찰나'의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교차했다. 찰나는 영원으로 통한다. 설령 내가 이곳에서 단 하룻밤을 묵는다 해도 그것은 영원의 시간이다. 우리의 삶도 긴 것 같지만 돌이켜 보면 번개처럼 지나가고 만다. 그는 당장 내일부터라도 이곳에 머물라고 하면서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뭔가 뜨거운 것들이 온 몸의 혈관을 타고 빠르게 교감을 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단 한 시간을 만난 여행자라도 할지라도 마치 10년 100년을 만나온 오랜 지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런 느낌이다.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에서 만난 그와 우리 사이게 그런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삶은 지혜로 살아가야 한다.
지혜란 무엇인가?
지혜는 내부와의 관계이다.
사람은 익숙한 것을 만나면 아무런 생각이 없이 그저 지나치고 만다.
익숙하 것들은 생각이 없는 것이다.
낯선 곳에 서면 생각의 산파가 열린다.
바로 여행이란 낯선 곳은 생각의 산파가 열리는 곳이다.
그래서 여행의 시작은 지혜의 문이 열리는 곳이다.
석가와 공자, 예수, 세상의 많은 성현들도 여행에서 지혜를 얻었다.
스티브 잡스도 대학시절 인도여행에서 어떤 영감과 창의력을 습득했다고 한다.
단순한 지식은 생각이 없다.
지식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같은 것이 아닌가?
하드디스크의 용량이 아무리 커도 윈도우 같은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지혜는 컴튜터의 용량을 돌아가게 하는 윈도우와 같은 것이다.
그는 지혜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오랜 생활의 여행에서 체험한 지혜의 그릇이 커 보이는 넉넉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 말 속에서 그것을 느낄 수가 았었다. 그와의 만남은 마음으로 통하는 기류에서 오는 텔레파시 같은 인연이 아닐까?
태풍전망대의 성모마리아
전원주택에서 나온 우리는 임진강변을 드라이브하며 태풍전망대로 향했다. 임진강이 뱀처럼 꼬불꼬불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S자 도로를 따라 30여분을 달리니 최북단 지대인인 태풍전망대에 도달한다. 태풍전망대는 평양에서 불과 140km 떨어진 수리봉에 자리 잡고 있다.
▲태풍전망대의 성모마리아 상과 충혼비
이곳은 남북한 경계선이 불과 800m 밖에 안 되다니… 이건 너무 가까운 거리다. 초기에 군사분계선은 남북한 각각 2km 사이를 두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이 먼저 슬그머니 남쪽으로 밀고 내려와 분계선을 설정했고, 이에 질세라 남한도 슬쩍 한계선을 밀어 올렸다고 한다. 피차간의 기 싸움의 현장이다. 그러다보니 불과 800m 지척의 거리에 분계선이 맞닿게 되어 버린 것이다.
성모상이 자비로운 모습으로 북쪽 향하여 DMZ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비로운 성모상과 삼엄한 철조망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교차한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언제쯤 한계선을 허물고 자유로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남북한이 통일되고 자유로이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제일먼저 기차를 타고 북한 땅을 통해 중국과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나는 백두산과 러시아를 여행하며 그런 염원을 담은 적이 있다.
이제 찰라의 시간이 이곳 남과 북이 첨예하게 펼쳐지는 임진강에서 열리게 될지도 보른다.
낯선곳에 선 찰라의 마음은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쿵쿵거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 3.8선의 경계가 무너지는 환상이 짧게 스치고 지나간다.
성모상 앞에서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를 해본다.
그 날이 오면 나는 제일 먼저 기차를 타고 도라산역을 통과하여
북녘땅을 지나 세계일주 기차여행을 떠나리라.
(2011.11.28 기차를 타고 북한땅을 지나 세계일주를 떠나는 날이 오기를 꿈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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