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에서 임진강까지
천리길을 달려온 블루베리...
과연 임진강 추위에 견뎌낼까?
▲임진강으로 이사를 오기전 수평리 마을 집에 있는 블루베리
▲임진강으로 이사를 온 블루베리
지난 12일 날은 내가 그동안 살았던 구례 수평리에 다녀왔다. 새로 거소를 마련한 임진강집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짐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여기저기 맡겨놓은 짐 중에서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겨올 심정으로. 마침 안산에 살고 계시는 형님께서 1톤 트럭을 가지고 계시는 데 그 날 시간을 내어 갈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형님 댁에 가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6시에 안산을 출발하여 구례로 향했다. 하룻만에 다녀오려면 새벽같이 출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산을 빠져 나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탔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 새벽임에도 고속도로는 출근차량으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과연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국민이다. 서평택 IC에서 안산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자 차들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평택IC에서 경부고속도로에 진입을 하자 다시 차량이 홍수를 이루며 붐비고 있다. 치열한 삶의 생존경쟁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라 했던가? 수평리에서 바라본 노고단
화물차라서 속력을 내지 못한 관계로 5시간이 걸려 11시 경에야 구례에 도착을 하였다. 구례를 떠난 지 20일여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구례에 살았던 일이 벌써 아득한 옛날처럼 느꼊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그러나 지리산과 섬진강으로 거기 그대로 있어 말없이 나를 반겨주고 있다.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고 시인은 노래 했던가? 그런데 나는 어떤 이유에서건 벌써 지리산을 찾고 있으니 견디기 어려운 모양이다.
▲섬진강도 그대로 변함없이 유장하게 흘러가고 있다
사실 임진강에는 살림에 필요한 물건들이 거의 다 있으므로 별로 가지고 갈 것도 없었다. 다만 나는 책이 필요했고, 아내는 자식들처럼 기른 화초가 필요했다. 나는 책도 절반은 넘게 버렸다.
미타암에 들려 꼭 필요한 짐만 몇 가지 챙기고 수평리 마을로 갔다. 내가 살았던 집을 보니 대문이 굳게 닫혀있다. 우리가 사는 동안은 대문을 한 번도 닫은 적이 없었는데… 아마 대문을 닫은 것으로 보아 집주인이 출타중인 모양이다. 사실 정들었던 집인지라 한번 둘러보고도 싶었는데 서운한 마음을 금치 못하여 개울을 건너 혜경이 엄마네 집으로 갔다.
▲지리산 미타암 풍경
혜경이 엄마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마을사람들이 여기저기 골목에서 나와 반겨주었다. 나는 마치 고향 사람들을 만난 듯 반가웠다. 혜경이 엄마네 집에 보관해 두었던 블루베리와 버섯나무, 그리고 화분과 화초를 실었다. 그리고 겨울옷과 이불을 실었다. 짐을 챙기고 나니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참나무 버섯
"짐을 가져가시면 이제 영 안 오실 건가요?"
"아니요. 아직도 짐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필요한 것 몇 가지만 가지러 왔어요."
마을 사람들이 짐을 다 실어 가는 줄 알고 물었다. 그러나 이곳에 살려 다시 올 것인 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잠시 다녀가기는 하겠지만 한 번 떠난 곳을 살기위해 다시 온다는 것은 쉽지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점심을 먹고 가라는 혜경이 엄마의 권유를 뿌리치고 수평리 마을을 떠났다. 갈 길이 바쁘기 때문이다. 섬진강에서 임진강까지는 우리나라 최남단에서 최북단 휴전선까지 자는 먼 길이다.
▲맛이 개운하고 깔금한 섬진강 다슬기 수제비
수평리 마을을 떠난 우리는 섬진강을 건너 토지면에 있는 <섬진강다슬기>집에서 다슬기 수제비로 점심을 먹었다. 혜경이 엄마네 집에서 점심을 먹지 않고 그냥 온 것은 미안하기도 하지만 다슬기 수제비가 더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요사이 통 얼굴을 뵐 수 없네요잉."
"네, 우리가 이사를 했어요."
"오메! 그래여 어째 이상 터라.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꼭 들렸는디. 근데 어디로 이사를 갔다요?"
"서울로요."
"아니 집을 구하신다더니 어째서 서울로 이사를 갔당가?"
"네, 집을 구하지 못해서 일단 서울로 이사를 했답니다."
"서운해서 어쩌까이. 다시 내려올 것이지요잉."
"글쎄요."
섬진강 다슬기 집을 우리는 퍽이나 자주 드나들었다. 수제비 맛이 일품이기도 하지만 전부 국산 수제비에다가 아주 친절하기 때문이다. 우릴 찾아온 친지들은 거의 이 집에 들려 다슬기 수제비 먹더니 이 수제비를 먹으로 다시 한 번 와야겠다고 할 정도로 맛이 깔끔하고 좋다.
수제비를 한 그릇 맛있게 비우고 우리는 토지면을 떠나 다시 길을 떠났다. 화엄사 입구를 지나 왼편으로는 구례읍을, 오른편으로는 길게 누워 있는 노고단 능선을 바라보며 구례를 지나갔다. 거기에 산은 말없이 그대로 있었다. 사람은 변해도 산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마음 속으로 노고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며 지리산을 바라보았다. 화엄사 IC를 진입하여 순천 전주 간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자동차는 곧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리고 지리산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구례에서 연천까지는 먼 길이었다. 더구나 월요일인지라 서울근교에 다가오자 차들이 다시 밀려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연천 <금가락지>에 도착을 하니 밤 7시가 넘었다. 나는 형님과 함께 대강 짐을 내려놓았다.
섬진강에서 멀리 임진강까지 이사를 온 블루베리가 다소 걱정이 되었다. 블루베리는 영하 20도에서도 살아간다고는 하는데 과연 금년 겨울을 잘 버텨나갈지 걱정이다. 그러나 블루베리 열 구루를 베란다에 죽 늘어놓으니 갑자기 친구가 많이 생긴 듯 마음이 훈훈해졌다. 마그노리아 종은 아직 단풍이 지지 않고 붉게 달려 있었다.
안쪽 거실에는 란과 관음죽 그리고 문주란을 들여놓았다. 거실에 화초를 들여 놓으니 역시 집안 분위가 싹 달라졌다. 섬진강에서 멀리 휴전선까지 실려 온 녀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추운 북쪽으로 오다보니 추위에 떨어서인지 잎도 조금 시들해져 있다.
▲겨울 임진강은 어쩐지 추워보인다. 이 추운 곳에서 블루베리가 살아남을까?
사람이나 화초나 추위를 타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인 나는 춥다고 옷을 껴입고 모자도 썼는데, 녀석들은 벌거벗은 채 딸고 있다. 녀석들은 말은 하지 못하지만 춥다고 야단들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다 신경세포가 있다. 녀석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따뜻한 섬진강에서 추운 임진강으로 데려왔으니 잔이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제부터 사람인 내가 책임지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
녀석들을 어둠 속에 던져두고 잠시 떠나는 마음이 별로 좋지가 않다. 나는 갑자기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법정스님은 그토록 애지중지 아끼던 난을 지인에게 주어버리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했는데…
그런데 나는 너무나 많은 친구들을 섬진강에서 데리고 왔다. 하기야 속인인 내가 어찌 법정스님의 삶을 넘겨볼 수 있겠는가? 벌써부터 블루베리와 화초들을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금가락지를 나와 임진강변에 있는 매운탕집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오니 밤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