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혜경이 엄마로부터 온 김치와 흰떡

찰라777 2011. 12. 9. 03:59

혜경이 엄마가 보내온 김치와 가래떡 

 

 

 

▲혜경이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김치

 

 

 

섬진강 수평리 마을로부터 택배가 한 박스 왔다. 꽤 무거운 택배 박스를 들고 오며 발신자를 보니 혜경이 엄마로부터 온 것이다! 나는 마치 혜경이 엄마를 보듯 반가운 마음에 부엌에 있는 아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보, 혜경이 엄마로부터 온 택배야!"

"어머, 그래요! 뭘 또 보냈지?"

 

 

택배를 열어보니 김장김치 세 포기와 떡국을 끓여 먹을 수 있는 흰떡이 차곡차곡 들어있다. 우리가 수평리 마을에 사는 동안 얼마나 우리를 도와주었던 그녀였던가? 그녀는 낯선곳에 정착한 우리들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농사를 짓는 법, 녹차를 따서 덖는 법, 야채를 기르는 법, 벌레를 잡는 법, 모종을 하는 법,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며 가꾸는 법 등. 또 그녀는 손수 농사지은 야채 등 농산물을 철따라 수시로 우리 집 대문에 놓아두고 가곤 했다. 그녀는 생면부지의 마을에 귀촌을 한 우리들의 맨토역할을 해주었다.

 

 

▲혜경엄마가 보내준 지리산 김치

 

 

우리가 장기 출타를 할 경우 그녀는 집 안팎 화초에 물을 주고, 텃밭에 물도 주었다. 아내가 툭 하면 서울로 병원을 가는 등 장기 출타가 잦은 우리는 아예 집 열쇠 하나는 그녀에게 맡기고 다닐 정도였다. 그녀와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부지런한 그녀는 너무나 순박하고 희생정신이 강했다. 마을에 일이 있으면 자기 집 일은 제처 놓고 남의 일부터 도와주었다.

 

 

30년이 넘게 홀로 살고 있는 그녀는 한국판 솔베이지 같은 여인이다.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쓸 수가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허락을 받아서 그녀의 기구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쓰고 싶다. 그녀의 일생은 정말이지 현대판 솔베이지 같은 드라마 같은 삶이다.

 

 

그녀보다 연상인 아내를 혜경이 엄마는 친언니처럼 따랐다. 아내는 외로운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는 상담자 역할을 했다. 아내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하던 밖으로 새어 나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환자들의 상담역으로 봉사를 해왔던 아내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다. 훌륭한 상담자란 남이 이야기를 그저 잘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아내는 그녀의 한 맺힌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는 당나귀 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또 혜경이 엄마가 날마다 품일을 하러 나가기 때문에 아내는 5일마다 열리는 구례 장이나 읍내에 가서 혜경이 엄마가 필요한 물건을 사다 주는 일도 수시로 해주었다. 따지고 보면 두 여인은 서로의 맨토이자 맨티였다.

 

 

아내가 수평리 마을에 그토록 집을 짓고 살고자 했던 것도 혜경이 엄마의 영향이 크다. 그런 이웃을 어떻게 다시 사귈 수 있으며 산골 어디서 만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시골은 생각보다 정을 붙이고 살아가기가 쉽지가 않다. 더욱이 집성촌인 경우에는 알게 모르게 텃새가 심하다.

 

 

우리는 너무나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급히 집을 비워주게 되어 수평리마을은 물론 인근에 이사 갈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혜경이 엄마와 갑자기 해어져야만 했다. 아내는 서울에 와서도 혜경이 엄마를 그리워하며 수시로 통화를 했다. 그런 혜경이 엄마로부터 택배가 온 것이다! "세상에!"를 연발하며 아내는 당장 혜경이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 김장을 하고 나서 언니 생각이 났어요. 언니 김치는 우리 집에 다 있잖아요. 그래서 김치 몇 포기와 떡국을 좋아하는 언니를 생각하며 흰떡도 뽑아서 좀 보냈어요……."

"세상에나! 너무 고마워. 마을 사람들은 다들 잘 계시지?"

"그럼요."

"서울에 한 번 와야지. 우리가 초청을 할게."

"김장이 다 끝나야 해요."

"김장 끝나고 꼭 와야 해?'

 

 

아내의 옆이 앉은 나는 두 여인이 서로 통화를 하는 이야기들이 그대로 들려왔다. 아내는 차표를 끊어서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니 일만하지 말고 서울에 와서 한 일주일 푹 쉬었다가 가라고 했다.

 

 

혜경이 엄마는 남의 일을 워낙에 꼼꼼히 잘 해주어서 일을 잘 하기로 입소문이 나있다. 동네 주변뿐만 아니라 구례읍, 순천, 남원, 여수 등 먼 도시에서도 날마다 그녀를 불러 댔다. 농촌에는 사계절 할 일이 많다.

 

 

매실 따기, 녹차 따기, 밤 따기, 감 따기에서부터 건축 잡부, 청소, 김장, 정원 가꾸기, 휴가철 음식점 일…… 안 하는 일이 없다. 때로는 멀리 제주도까지 가서 귤 따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바빴다. 또 그렇게 품팔이를 해야 살림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계절마다 전국에서 그녀에게 오는 주문이 많다. 매실차, 녹차를 담가서 보내고, 콩, 고추, 깨 등 각종 양념을 주문을 받아 보낸다. 밤, 감 등 과일도 보낸다. 심지어는 김장도 해서 보낸다. 이문을 남기지 않고 무공해 농산물을 정성을 들여 보내 주기 때문에 각종 주문이 철따라 쇄도한다. 이번에 보낸 김치도 주문 받은 200포기를 담그면서 보낸 김치란다.

 

 

▲섬진강 혜경엄마가 보내준 흰떡

 

 

우리도 이사를 하기전에 텃밭에 심은 배추와 무를 그녀의 도움을 받아 김장을 담갔다. 그리고 그 김장김치를 담아 놓은 김치냉장고를 그대로 그녀의 창고에 보관을 해 두고 올라왔다. 혜경이 엄마가 다음 주에 이사를 갈 우리집으로 김치냉장고를 용달차에 실어 보내주기로 했다. 그녀는 요즈음 김장을 하느라고 바쁘다고 했다. 그녀는 김장이 끝나고 바쁜 일이 끝나면 오겠다고 했다.

 

 

"여보, 혜경이 엄마가 서울에 오려면 미장원에 가서 머리도 예쁘게 해야 한다며 걱정을 하는군요."

"저런, 미장원에 안 가도 예쁜데?"

"그래서 서울에 와서 미장원에 함께 가자고 했어요."

 

 

▲지리산 만복대 억새능선에서

 

 

미장원 가서 머리를 예쁘게 하고 오겠다는 순박한 혜경이 엄마!

아내는 혜경이 엄마에게 콩을 주문했으니 콩 값을 부치면서 서울로 오는 고속 버스표 값을 얹어서 보내라고 했다. 차비를 보낸다고 하면 절대로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란다. 나는 그녀에게 콩 값에 버스표 값을 보태서 보냈다.

 

 

아내는 그녀가 서울에 오면 맛있는 것도 좀 사주고, 여기 저기 구경도 함께 다니겠다고 한다. 새로 이사를 갈 임진강 주변도 구경을 시켜주고… 아내와 나는 혜경이 엄마가 서울에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금 우린 혜경이 엄마가 보내준 김치를 북북 찢어서 밥을 먹고 있다. 김치에서 혜경이 엄마의 소박한 손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아침엔 흰떡을 조청에 찍어 먹고 있다.  고마운 혜경이 엄마! 아아, 수평리 마을이 그립고, 혜경이 엄마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