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김정일이 사망하던 날-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으로 이사를 가다

찰라777 2011. 12. 20. 07:40

김정일이 사망하던 날

꽁꽁 얼어 붙은 임진강으로 이사를 가다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

 

▲꽁꽁 얼어 붙어가는 임진강

 

 

12월 18일. 임진강 <금가락지>에서 처음으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금가락지는 낯선 곳이 아닌 익숙한 풍경처럼 다가옵니다. 그것은 어떤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뉴스를 들으니 17일 날 북한의 김정일이 사망했다고 하는군요.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묘한 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이 날짜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첫날 아침을 맞이한 그가락지

 

 

김정일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아무리 철권통치라 하더라도 인생은 허무하고 인간의 죽음은 누구나 못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다 변화를 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스스로 변화를 하는 것이겠지요. 김정일이 사망을 한 것도 따지고 보면 다음 생에 태어날 변화를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북녘 땅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기러기들

 

 

사실 나는 새로운 삶을 찾아 이곳으로 여행을 떠나 온 것입니다. 떠나지 않고는 여행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은 무엇을 이루기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여정의 하나일 뿐입니다. 따라서 여행도 어디에 도착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행은 비행기 안이고, 기차와 버스이며, 산, 바다와 강이며, 거리와 골목과 집안 일수도 있습니다. 여행은 선택한 여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여행을 두려워하면 갇혀버립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상실에 대한 두려움, 가난에 대한 두려움, 병고에 대한 두려움, 체면에 대한 두려움… 등 온갖 두려움은 인간의 상상력을 타고 끝없이 확산됩니다.

 

 

▲금가락지에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다.

 

두려움은 급기야 강박관념이 되어 만성 스트레스로 변하고, 스트레스는 병고로 연결이 됩니다. 두려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세상이 온통 위험과 함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독재자는 두려움을 통치수단으로 이용하고, 기업들은 물건을 팔기 위한 광고의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새들은 김정일의 죽음을 알까?

 

 

나는 북한의 김정일이 죽은 줄도 모르고 DMZ과 있는 최전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설사 알았더라도 이사를 했을 것입니다. 한 번은 인도 여행 중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람살라에서 라다크로 가기위해 아침 일찍 버스를 타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나섰습니다. 그런데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손에 신문을 들고 뛰어나오며 말했습니다.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

 

“미스터 초이, 제발 가지 말아요. 지금 카슈미르 부근 스리나가르에 파키스탄에서 쏜 미사일이 떨어져 20명이 죽고 많은 사람이 다쳤어요. 지금 그곳을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카슈미르 지역은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국경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친구의 말을 듣지 않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한 번 떨어진 미사일이 또 떨어지겠느냐는 생각을 하고서. 버스를 타고 보니 원주민이 아닌 여행자들은 이스라엘 4명, 한국인인 우리 두 사람, 이란인 1명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이스라엘 민족과 한국인이 가장 용감한 것 같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아무 탈 없이 스리나가르를 통과하여 라다크까지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은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 가는 것이다.

 

만약에 그 여정을 두려워했더라면 우리는 두려움에 갇혀버렸을 것이고, 여행은 중단되었을 것입니다. 여행은 변화의 일정입니다. 그것은 자유를 찾아 끝없이 흘러가는 여정입니다. 여행은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가고싶은 곳을 가는 것이비다.

 

그리스 크레타 섬에 가면 그리스의 유명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cos Kazantsakis의 무덤이 있습니다. 크레타 섬 헤라크리온에 묻힌 그의 무덤에는 두 불이 시가 비명碑銘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Nikos Kazantzakis

 

 

 

 

그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그리스의 독보적인 작가입니다. 이 묘비명은 <토다라바>라는 그의 작품에서 그가 인용했던 힌두의 우화에서 따온 것입니다. 여행자는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 또한 이곳 연천에 이사를 왔지만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행은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이니까요.

 

 

고구마 같은 부부사랑 친구들과 함께 맞이한 첫날 밤

 

▲밤에 등불이 켜진 금가락지 풍경

 

 

금가락지로 이사를 간 첫날, 부부사랑 친구들이 이곳에서 1박 2일을 머물기로 되어 있습니다. 부부사랑 친구들은 40년이 넘게 함께 해온 일곱 쌍의 고등학교 죽마고우들입니다. 한 달에 한 번 부부동반 모임을 갖는데 12월 달은 찰라가 이사를 간곳에서 모임을 갖기로 한 것입니다.

 

 

▲40년이 부부사랑 친구들과 금가락지에서 첫날 밤을 맞이하며 담소를 나누는 풍경

 

 

오래된 부부사랑 친구들은 늘 고구마처럼 변하지 않는 순박한 친구들입니다. 17일 날 부부친구들이 한 쌍 두 쌍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이불과 먹을 찬거리를 집에서 한 가지씩 준비를 해왔습니다. 이 근처에는 식당도 가계도 가까운 곳에 없으므로 각자 먹을거리를 준비를 해 온 것입니다. 우리도 그날 이사를 했기 때문에 아직 짐도 풀지 못한 채 거실에 쌓아두어야 했습니다.

 

 

▲각자 준비해온 음식으로 아침을..

 

 

우리는 각자가 준비해온 음식으로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유사를 한 부부가 흑산 홍어와 돼지고기를 삶아 왔습니다. 우리는 3합(홍어, 김치, 돼지고기)에 막걸리를 한잔씩 따라서 건배를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우리는 옛날이야기로 추억을 더듬으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라 했습니다.

 

 

▲금가락지 거실에서 바라본 아침풍경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다음 날 아침 밖을 바라보니 여명이 밝아 오며 아침노을이 곱게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노을이 진 임진강은 점점 얼어붙어 가고 있었습니다. DMZ가 턱 앞에 있는 임진강은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기러기들이 DMZ를 오가며 자유롭게 날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DMZ를 오가는 새들이 부럽게만 보입니다.

 

 

▲금가락지 베란다에 자리를 블루베리

 

 

DMZ를 바라보며 아침을 먹고 나서 친구들은 이삿짐을 옮겨 주었습니다. 책 박스를 이층으로 옮기고, 집안을 청소하며 이삿짐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친구들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일주일 내내 혼자 해야 할 일들입니다.

 

 

점심때쯤 금가락지의 주인인 청정남님께서 왔습니다. 그는 나에게 이 거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는 연배인 찰라를 형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 편이 편할 것 같기에 우린 의형제 지간이 되기로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은 후 차 한 잔을 나누며 담소를 나눈 뒤 우리는 함께 숭의전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청정남님(맨 왼쪽)과 함께한 부부사랑 친우들

 

 

아미산 자락의 품안에 위치한 숭의전지에서 바라본 임진강은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북에서 남으로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강물은 남과 북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강물이 추위에 점점 얼어붙고 있었습니다. 저 얼어붙은 강물을 건너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들이 침투를 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꽁꽁 얼어 붙은 임진강(숭의전지앞)

 

 

 숭의 전지

 

 

 어수각

 

 

 

▲사슴뿔처럼 보이는 숭의전지 느티나무

 

그러나 비극의 현장은 평화롭게만 보였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죽어서 난리를 치고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그저 평화롭게 임진강변을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몇 백년을 묵었을 느티나무들이 숭의전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나무들은 우리의 역사를 소상히 알고 있겠지요. 우리는 임진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숭의전지를 내려와 어수각에서 약수로 목을 축이고 친구들과 해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청정남님의 주선으로 동이리 마을 분들과 상견례를 가졌습니다. 현 이장님과 전 이장님, 그리고 우리 집에서 가까이 살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살 집터를 마련해 주고, 주민들과 상견례까지 세심한 배려를 해준 청정남님이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자유로의 연장선으로 새로 건설되고 있는 다리

 

연천은 비무장지대(DMZ)와 밀착되어 있어 ‘통일의 미래를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한반도의 중심지역입니다. 경원선 역이 중단된 신탄리역, 열쇠전망대, 제1땅굴, 태풍전망대 등 통일과 안보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김포에서 신탄리까지 이어지는 평화누리길

 

앞으로 찰라는 여건이 되는 대로 김포에서 신탄리역까지 이어지는 <평화누리길>을 걸어볼 생각입니다. 또한 임진강 하구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이어지는 155마일 비무장지대 길을 걸으며 비극의 분단역사가 흐르는 현장도 걸어서 여행을 떠나 볼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목적은 없습니다. 그저 내 땅 내 산하, 가보지 않는 길을 걷고 싶을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