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생이국으로 굳게 닫힌 산문을 열다
문경 희양산 봉암사를 가다
용솟음치는 기운이 서린 희양산
문경 봉암사 입구에 들어서니 우선 원추형의 흰 바위 봉우리가 시선을 압도한다. 이 거대한 흰 바위를 보는 순간 티베트의 수미산을 연상케 한다. 힘이 불끈 솟는 느낌을 받는 우람한 봉우리는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어 나무나 풀이 잘 붙어 자라지를 못한다. 이러한 단일 바위의 형태는 한국의 산중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백두대간의 단전 희양산. 화강암 암봉이 우뚝 솟아 있어 거대한 기운을 느낀다.
희양산은 대한민국의 등뼈인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곧게 뻗어 내려오다가 갈지(之)자로 꺾어진 곳에 우뚝 솟아 있다.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에 우뚝 솟아있는 희양산은 백두대간의 '단전'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999m의 화강암 암봉은 멀리서 보아도 단단하고 거대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 거대한 화강암 바위는 마치 갑옷을 입은 기사가 앞으로 치달리는 형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그 기상이 드세고 기가 세게 느껴진다. 그 매서운 기를 느끼는 봉우리 아래 너른 터에 봉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절을 창건한 지증대사(신라 헌강왕 때)는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라며 희양산 남쪽 너른 터에 봉암사를 창건 선풍을 크게 떨쳤다.
유홍준 교수도 입산거절을 당했던 철통같은 산문
봉암사는 아무나 갈 수 있는 절이 아니다. 1년 중 일반 대중에게 산문을 여는 기간은 부처님 오신 날인 4월 초파일 단 하루뿐이다. 봉암사 홈페이지 보면 이런 팝 창이 뜬다. 묵언정진을 하고 있는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어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1년 중 단 하루만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하는 봉암사는 참선을 하고 있는 스님들께 대중공양을 하는 경우에는 문을 열어준다. 때문에 유홍준교수도 봉암사 문화 답사를 사전 허락 없이 갔다가 문전박대를 받기도 했다.
서울에서 7시에 출발한 우리는 문경새재로 향했다. 여덞 분의 보살들과 함께 참선을 하고 계시는 100여분의 스님들께 매생이 국 공양을 하기 위해서였다. 1년 중 단 하루만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하는 봉암사는 참선을 하고 있는 스님들께 대중공양을 하는 경우에는 문을 열어준다. 우리는 마침 지리산 미타암 각초스님께서 봉암사 동안거에 들어가 계시어 스님의 인연으로 추운 겨울 봉암사로 가게 되었다.
스님들께서는 "묵언정진"중이라 통화나 문자 메시지 전달을 일체 할 수 없다. 봉암사 원주 (살림을 맡아 하는 스님)스님께 전화를 걸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매생이를 좀 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수행 중인 스님들께서 뜨거운 매생이 국을 잡수고 싶어 하시는데 이 추운 겨울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네, 스님, 저희들이 한번 구해보겠습니다."
봉암사에는 100여분의 스님들께서 용맹정진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우리는 장흥과 강진, 완도로 전화를 해서 매생이를 수소문 했다. 매생이는 장흥과 강진 일대 남해안에서 아주 추운 겨울철에만 나온다. 마침 강진 매생이 집산지에 마을과 연결이 되어 이장님으로부터 200여명이 먹을 수 있는 매생이를 구할 수 있었다.
매생이국 대중공양으로 굳게 닫힌 산문을 열고...
싱싱한 매생이를 승용차 두 대에 나누어 싣고 문경새재로 향했다. 진눈깨비가 흩뿌리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조심스럽게 달려가는데 아침 일출이 휘영청 도로 가운데 결렸다. 우리는 문경재재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태양을 바라보며 봉암사 산문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역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희양산의 우람한 봉우리였다. 티베트의 수미산을 닮은 희양산은 아무리 보이도 기운이 용솟음친다.
▲부처님 오신날 1년에 단 한번 산문을 개방하는 봉암사는 아무나 갈 수 있는 절이 아니다. 봉암사는 100여명의 스님들이 묵언을 하며 용맹정진하고 있다.
오전 10시. 일주문 입구에 도착을 하니 쇠줄이 걸려있고 경비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군대보다 더 엄격하게 입구를 철통같이 걸어 잡구고 일반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일주문도 매생이를 들고 간 우리들에게 부드럽게 열렸다. 굳게 닫힌 산문도 부드러운 매생이국에는 부드럽게 열리고 있다.
나도 사실은 몇 해전 이곳에 아렵게 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서는 설음을 당했었다. 그 당시 제주도에서 출가한 원구스님이 결제에 들어가 용맹정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갔는데, 스님은 다른 곳으로 이미 옮겨버리고 아니계셨다.
하여는, 오늘은 사전에 허럭을 받기도 했지만 매생이 덕분에 무사통과다. 입구를 통과하니 계곡을 따라 소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그 소나무 사이로 거대한 화강암 암봉이 용솟음치듯 나타난다. 과연 스님들께서 결과부좌를 틀고 용맹정진에 들어갈만한 산세다.
신라 헌강왕 897년에 지증도헌국사가 창건한 봉암사는 당시 심층거사가 대사의 명서을 듣고 희양산 일대를 희사하여 수행도량으로 간청하였다. 지증대사는 처음에는 거절을 하다가 "산이 병풍처럼 사방에 둘러쳐져 있어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흩는 것 같고 강물이 멀리 둘러 쌓여는 즉 뿔 없는 용의 허리가 돌을 덮은 것과 같다"며 "이 땅을 얻게 된 것이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고 경탄하며 대중을 이끌고 절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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