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그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귀향한 대통령이다. <봉하일기>(책표지)는 그가 파란만장했던 5년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에 귀향해 227일 동안 살았던 짧은 생활을 <노짱의 편지>와 비서진들의 일기로 엮은 책이다.
16편의 <노짱의 편지>와 11명의 비서진들이 쓴 16편의 <봉하일기>. 이 책은 '그곳에 가면 노무현이 있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밀짚모자를 쓰고 노짱 특유의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책표지가 묘하게 눈길을 끈다.
지난해 여름 우연히 남해바다를 여행하며 봉하마을을 방문했던 나는 '이번에 새로 출판된 <봉하일기>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라는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이 책을 펴들었다. 일흔두 장의 사진과 함께 참여정부 시절 홍보수석실의 내로라하는 글쟁이들이 돌아가며 경어체로 써내려간 <봉하일기>는 읽어내려 가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봉하일기>는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라는 <노짱의 편지>로 시작됐다.
"집 청소하고 짐 정리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짐들 정리 하느라고 한 손에는 이삿짐 들고, 한 손에는 걸레 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26쪽)
2008년 2월 29일, <세상사는 사람>이란 누리집에 최초로 올린 귀향 대통령의 첫 번째 글이다. 한 줄 쓰고 인사를 다녀오고, 또 한 줄 쓰고 손님 맞고…. 돌이켜 보면 바쁜 일과 속에서도 <노짱의 편지>를 쓰는 순간이 노무현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노짱의 첫 편지 다음에는 김경수 비서관이 최초로 쓴 봉하일기 '봉하마을에 전입신고 드립니다'(2008년 3월 12일)가 소개된다. 누리집에 올린 이 글은 순식간에 10만 이상의 누리꾼들에게 읽혔다. 그때부터 비서진들은 귀향 대통령의 활동을 주제나 소재별로 정리해 알릴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돌아가며 봉하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대통령은 인사를 겸해 오늘 행사에 쓰라고 돼지 두 마리를 냈습니다. 귀향하는 날, 주민들은 2만 명이 넘게 찾아온 환영 인파를 '마을을 찾아온 손님'이라며 일일이 국밥을 대접했습니다. … 대통령이 낸 두 마리 돼지는 그런 마을 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김경수 비서관의 일기에는 전 청와대 비서진들이 대통령 사저에 모여 오전 9시 15분에 회의를 하고, 주민들과 상견례, 마을 뒷산과 화포천 쓰레기를 치우는 일, <민주주의 2.0> 누리집 개발을 위한 회의 진행 등 바쁜 일정이 담겨있다.
봉하일기는 첫 장부터 조용히 여생을 보내기 위해 낙향을 했던 대통령의 일정이 당초 취지와는 반대로 청와대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고 빡빡하게 소개되고 있다.
'노간지'의 바쁜 일정을 보여준 '월화수목금금금'
양성철 비서관이 쓴 '그곳에 가면 그가 있다'(2008년 3월 16일)에는 200~300명씩 그룹을 지어 찾아온 방문객들의 이야기가 기술돼 있다. 방문객들은 몇 초 간격으로 "대통령님, 나와 주세요!"라는 환호를 보냈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불려나와 인사하고, 사진 찍어주고, 질문에 답해야 하는 귀향 대통령의 바쁜 일정. 대통령은 귀향 3주 만에 7만 명의 방문객들을 맞이하게 된다. '노간지'(간지는 '센스있다, 빛이 난다, 폼 난다'라는 뜻의 신조어)라는 별명이 붙은 대통령은 방문객을 따돌리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논길로 도망가기도 했단다.
(▲ 자전거를 타고 들판을 달리는 노짱 ⓒ 부키 봉하일기)
안영배 비서관은 퇴임 후 한 달, 대통령의 하루가 청와대 시절과 다름없는 빡빡한 일정과 같다고 적고 있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청와대 시절보다 더 바쁘게 보내고 있다며, 일주일 동안 비서진은 휴일 없이 지냈다고 한다. 덕분에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고. 이어 비서관들은 장군차를 심는 대통령의 모습, 청바지를 입은 농군, 오리농법으로 친환경 '노무현표 오리쌀'을 생산하는 농군 등 귀향 대통령의 바쁜 일정을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추천사에서 대통령의 낙향에 대한 바람을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참여정부를 마친 후 나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조용하게 살고 싶어 양산의 시골에 내려왔지만, 대통령도 봉하에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지웠던 큰 짐들을 내려놓고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지내시길 바랐다."(15쪽)
그러나 퇴임 후 조용하게 살겠다고 고향에 내려온 대통령의 생활은 정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통령은 청와대 시절보다 더 일정을 빡빡하게 소화해야 했다. 방문객 숫자가 늘어나고, 인기가 올라갈수록 퇴임 대통령과 비서진들은 더 바빠지고 있었다. 비서진들은 청와대에 있을 때보다 더 바빠서 휴가도 가지 못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읽을 수록 안타까움만 생기는 <봉하일기>
"7월 21일 오후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 한국자생식물원 입구. 일행과 함께 스타렉스 승합차에서 내린 대통령은 어쩌면 하차 지점 바로 위에 걸린 큼지막한 현수막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식물원의 전경이나 주변의 풍광을 둘러볼 여유는 더더욱 없었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출현을 학수고대하던 적지 않은 숫자의 관람객들 때문입니다."(250쪽)
2008년 8월 4일, 윤태영 비서관이 '5년만의 여름휴가'라는 일기에 수록된 내용이다. 5개월 동안의 봉하마을 생활에서 모처럼 휴가를 간 대통령 일행은 휴식을 위한 휴가가 아니라 '농촌마을 가꾸기'란 주제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바쁜 일정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 5년 만의 여름휴가를 떠나 한국자생식물원에서 풀 썰매를 타는 '노간지' , ⓒ 부키 봉하일기
퇴임해 향리에 묻혀 살기에는 너무 젊었을까? 대통령의 의욕은 갈수록 충만해졌고, 할 일은 더욱 많아졌다. 우리는 쉼표를 찍고 대통령의 삶을 조용히 조명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대통령이 본래 낙향을 결심한 취지대로 사색하며 조용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바쁜 일정을 조율해야 하지 않았을까. 일정을 통제하는 강력한 충언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그 어느 비서관의 일기에도 찾아볼 수 없다. 모두 청와대 시절 보다 더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마치 큰 자랑이라도 하듯 다퉈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비서진들의 일기는 오히려 대통령의 의욕을 부추기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 감이 없지 않았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치솟는 대중의 인기에 너무 흥분돼 비서진들이 대통령을 좀 더 냉철하게 보필하지 못한 책임이 있지 않은가'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따뜻해지면 다시 인사드리러 나오겠다"는 마지막 인사
비서진들의 일기 중간중간에는 '세상사는 사람' 누리집과 방문객에게 드리는 인사를 <노짱의 편지>란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2008년 7월 16일 <노짱의 편지>에는 대통령 기록물 유출 논란으로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했던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쓴 편지도 공개돼 있다.
끝내 청와대에 보내거나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 편지는 "이명박 대통령님, 가다듬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로 시작된다. 편지는 "기록물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섭니다. 하느님의 큰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절박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 편지를 쓴 뒤 봉하마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던 봉하일기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오늘 쌀 사가지 마세요'(2008년 10월 26일)라는 <노짱의 편지>와 '봉하 오리쌀 꿀맛입니다'(2008년 10월 24일)라는 신미희 행정관의 일기를 끝으로 <봉하일기>는 227일 만에 막을 내린다.
2008년 2월 25일, 귀향 첫날 환영 나온 인파를 향해 "야, 기분 좋~다!"고 외치던 대통령의 귀향. 노무현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5일, "따뜻해지면 다시 인사드리러 나오겠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방문객 인사를 중단한다.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검찰 수사와 언론의 압박이 본격적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새끼오리를 논에 풀어주는 장면, ⓒ 부키 봉하일기)
"대통령은 사저에서 민주주의 연구와 '진보의 미래'집필에 몰두했다. '따뜻한 봄'은 오지 않았다. '저희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 대통령이 2009년 4월 21일 홈페이지에 쓴 글이다. 봉하마을은 몇 달 째 취재진에게 점령된 상황이었다. 대통령은 칩거를 넘어 연금수준의 생활을 했다. 사저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손님조차 자유롭게 왕래하지 못했다. 집이 감옥이 돼 버렸다. …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그 모든 걸 지고 가셨다."(김경수 비서관, '봉하 그 후' 305쪽)
봉하마을을 아름답고 살기 좋은 농촌 모델로 만들어 전국에 확산하는 일,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와 깨어 있는 시민들과 함께 시민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일. 이 두 가지 바람을 안고 고향에 내려온 대통령의 꿈은 허망하게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김경수 비서관은 시민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민주주의 2.0>이란 인터넷 토론 누리집을 만들었다. 그는 '시민민주주의 구현'이라는 대통령의 꿈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결국 시민들이 직접 해내야 할 몫으로,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그 단초를 보여줬다고 기술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나는 꼼수다>가 새로운 시민참여의 흐름을 확장시키고 있다고도 했다.
이어 깨어 있는 시민들이 스스로 대통령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으로 중단됐던 <봉하일기>는 시민들이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낙향한 지 1년도 안 돼 세상을 저버린 대통령도 저 세상에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서민들에게 정감이 넘치는 대통령의 사진들
노무현. 그는 분명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서민적이고, 대중과 가장 가까이 접했던 대통령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이 책에 실린 72장의 사진에 잘 나타나 있다. 밀짚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며, 하천과 야산에서 쓰레기를 줍고, 서민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논에 새끼오리를 풀어주고, 풀 썰매를 타다 '꽈당'하기도 하고, 콤바인을 손수 운전하며 벼를 수확하는 대통령. <봉하일기>에 실려 있는 사진들은 그가 귀향해 가장 행복하게 지냈던 순간들을 포착한 장면들이다.
<뉴욕타임스>는 노 전대통령의 퇴임 후 인기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다.
"과거에 한국에서 전직 대통령의 집을 찾아가 문밖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들은 관광객이 아니라 시위자들이었다면서 달라진 현상을 설명하고 노 전대통령이 재직 시에는 인기가 없어 임기 말에는 지지율이 30%를 밑돌기도 했으나 퇴임 후에는 새로운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세워왔다고 평했다.
신문(<뉴욕타임스>)은 생존해 있는 한국의 전직 대통령 4명이 서울에서 엄중한 경비 속에 살면서 일반 시민들과 어울리지 않고 있지만 노 전대통령은 반대로 봉하마을에서 자전거도 타고 나무를 심거나 농부들과 도랑을 청소하기도 한다."(<연합뉴스> 보도내용 인용, 2008년 4월 10일 치)
(▲ 콤바인을 손수 운전하며 벼를 수확하는 장면 , ⓒ 부키 봉하일기)
나는 315쪽에 달하는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뒷맛이 개운치가 않고 씁쓸하게만 느껴졌다. '바보 노무현'의 꿈이 너무 허무하게 부서진 탓일까. 퇴임하면 고향에 돌아가 편안하게 여생을 마치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처럼 그를 그냥 고향 봉하에서 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