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찰라의 영농일기]융단처럼 부드러운 저 밭이 부럽네!

찰라777 2012. 3. 19. 07:26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3월 14일 수요일 흐림

 

 

밭이랑에 비닐 씌우기

 

 

▲잡초를 방지하기 위하여 밭이랑에 비닐을 씌우는 작업

 

 

오늘은 응규와 캡틴 서 그리고 문산에서 온 두 일군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문산인력센터 소개로 온 두 사람은 50대의 건장한 남자들이다. 그들이 합세를 하니 작업의 진척도가 훨씬 더 빨라졌다. 물끼가 촉촉한 땅이 밤사이에 땡땡 얼어있다. 그래서 오전에는 어제 일구어 놓은 이랑에 비닐을 씌우기로 했다. 비닐을 씌우지 않으면 잡초가 너무 번성을 해서 아무것도 재배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곡괭이로 언땅을 파서 흙을 일구고 그 흙을 삽으로 떠서 비닐을 덮어나갔다.

 

 

비닐을 씌우는 작업 역시 흙이 딱딱하고 돌이 많아 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먼저 곡괭이로 땅을 파서 흙을 일구고 그 흙을 삽으로 떠서 비닐을 덮어나갔다. 캡틴 서가 비닐롤이 끈을 달아서 끌고 두 일군이 삽으로 흙을 떠서 양쪽에 덮었다. 바람이 불어도 펄럭거리지 않도록 양쪽에 덮어주는 것이다. 너무 힘이 들어 중간에 간식도 먹고, 막걸리도 한잔 했다. 농부들이 술 참을 먹는 이유를 확실히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한 사람이 비닐 롤을 끌고 양쪽에서 삽질을 하여 비닐이

바람에 펄럭이지않도록 덮어나갔다.제초작업역할을 하는 비닐이다

 

 

점심은 두포리 여울식당에서 매운탕으로 먹기로 했다. 오늘 미산면에서 홍보대사 위촉식이 있어 친구들과 일꾼들만 여울에서 점심을 먹도록 하고 나는 미산면으로 갔다. 미산면에 도착을 하니 11시 30분이다. 도착하자말자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홍보대사 위촉장을 받았다. 그리고 면장님과 함께 삼화교 인근에 있는 웰빙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살다보니 이 나이에 홍보대사라는 직함도 같게 되다니… 하여간 기분은 좋았다.

 

 

▲밭 건너편에는 군부대다

 

 

점심을 먹고 바로 두포리로 와서 1시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까지 작업을 하면 절반정도까지 비닐을 씌울 수 있을 것 같다. 밭 바로 앞에는 포병부대가 있어서 숲 속에 세워놓은 탱크들의 포신이 우리 쪽으로 겨냥하고 있어 포신을 바라보며 작업을 하는 심정이 묘했다. 탱크들이 발동을 걸면 매우 시끄러웠다.

 

꿩들이 푸드득 거리며 날아가기도 했다. 개구리들이 이상한 소리로 울었다. 까르륵 까르를 우는 소리에 처음에는 새소리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아래 논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였다. 질척거리는 땅을 쇠스랑으로 고르고 비닐을 덮어 흙으로 눌러주는 작업은 생각보다 힘들고 더뎠다.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쓰게 되니 사지가 땅기고 허리와 목도 아프다. 힘들면 무조건 쉬었다. 그래도 문산에서 온 두 일꾼들이 힘이 있어 그런대로 일은 진척이 되어갔다.

 

오후 4시쯤 중년남자 한분이 차를 세우더니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무엇을 심느냐고 물었다. 내가 오갈피나무를 심는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소개를 하고 수인사를 나누고 보니 그는 바로 우리 밭 위에 있는 밭 소유주였다.

 

작년 수해로 흙이 다 떠날려 갔어요

금년에는 들깨나 심을까 합니다.

 

그는 작년에 수해로 밭이랑이 다 떠 날려가 버려 다시 흙을 받아 채워야 한다고 하며 혀를 끌끌 찾다. 했다. 위쪽 밭은 울타리를 쳤는데 그래도 고라니 등이 극성을 부려 채소농사를 짓기가 무척 어렵다고 했다. 그는 황토 흙을 한 트럭에 8만원씩 20트럭을 받아 밭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흙이 작년 수해로 다 떠날려 가버렸으니 또 흙을 받아 밭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며 한숨을 쉬었다.

 

 

▲작년 수해로 밭고랑이 다 망가져버린 이웃집 밭

 

 

도랑에서 물이 넘쳐흘러들어 밭이랑이 많이 망가져 있다. 다시 흙을 받아 채우고 트랙터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라는 것, 흙이 떠내려 간 자리에는 돌이 많은 흙이라서 농부들이 트랙터 작업을 하기를 매우 꺼린다고 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쟁기를 부러뜨리기 때문이다.

 

“금년에는 무엇을 심을 거죠?”

“다른 작물은 할 엄두가 잘 안 나서 들깨나 심을까 합니다. 들깨는 생장력이 강하거든요.”

“호박이나 고추는 심어보았나요?”

“고구마와 호박을 심어보았는데 고라니가 다 뜯어 먹어서 별 수확을 보지 못했어요. 고추는 땅이 질퍽해서 잘 안 돼요. 냉해를 입기도 쉽고요. 이거 이 밭이 애물단지에요. 울타리를 단단히 쳐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그냥 그대로 묵혀둘 수도 없고.”

 

법원읍에 살고 있다는 그는 처음에는 호기심에 그런대로 재미를 느꼈는데, 홍수로 밭이 무너지고 고라니들의 피해로 그만 밭이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밭을 묵혀두면 이행강제금을 매긴다는 둥 엄포를 놓아서 그대로 둘 수도 없어 고민이라는 것. 그는 심난한 듯 입을 쩝쩝 다시며 떠나갔다.

 

 

융단처럼 부드러운 자 밭이 부럽네!

 

오늘 작업은 절반정도까지 비닐을 씌우는 것으로 마감을 했다. 내일은 나머지 절반을 밭이랑을 만들면서 비닐을 씌우고 나무를 심기로 했는데 다 끝낼지 모르겠다. 나무를 심는 작업보다 사전 정지작업이 너무 어려웠다. 캡틴 서를 문산역으로 바래다 주고 응규와 나는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두포리에 있는 흙이 융단처럼 잘 골라진 밭을 보게 되었다.

 

 

▲융단처럼 부드러운 두포리 밭. 흙이 이정도는 되어야 무슨 농사든지 지을만 하지..

 

 

▲야성적인 우리 밭. 위 밭과 대조를 이룬다.

 

 

"밭이 저 정도는 되어야 일을 하기가 소랍지."

"정말 저 밭이 부럽네. 흙이 좋아야 좋은 밭이야."

"형이 처음에 말을 할 때에 난 저런 밭일 줄만 알았지. 저런 밭이라면 하루면 나무를 다 심을 수 있거든."

"글쎄 말이야. 지금은 저 밭이 부러기만 하군." 

"우리 밭은 저밭에 비하면 매우 야성적이야."

"야성적인 밭을 길을 들여야 하지않겠어 ㅎㅎㅎ."

"하긴 그래요."

 

융단처럼 부드러운 밭이 부러워 우리는 잠시 차를 세우고 그 밭을 돌아보았다. 이 정도 밭이라면 농사를 지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랙터로 한 번만 지나가면 밭이 융단처럼 잘 골라지는 밭.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가던 밭들인데 돌밭을 일구다 보니 좋은 밭을 보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저 밭이 부러웠다.

 

우리 밭은 저 밭에 비하면 길들이지 않은 야성적인 밭이다. 야성적인 밭을 길들이기가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좋은 흙을 받아서 깔아야 하고 퇴비를 많이 뿌려야 기름진 밭으로 변할 수 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고 나니 눈이 떡이 된다. 방에 들어가 누우니 세상모르게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말았다. 잠을 자다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아니지 농부는

돌을 줍고

나무를 심지...

 

 

하하, 이런 꿈을 꾸는 것을 보니 농부가 다 되었나 보다. 그래,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