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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속의 또 다른 인도, 다르질링에서 길을 잃다

찰라777 2012. 8. 12. 05:58

여행자의 발목을 잡는 이상한 나라. 인도....

 

나는 인도를 싫어하면서도 사랑한다. 인도는 참으로 이상한 곳이다. 아휴~ 인도는 지긋지긋해! 무더위에 사기꾼들이 득실거리고, 거리에는 소들이 건방지게 걸어다니며 똥을 싸고, 생선 썩는 냄새가 여기 저기서 진동을 하고...

 

어떨때는 지겹도록 인도가 싫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리워지는 곳이 인도다. 삐끼와 사기꾼들은 신경을 자극하여 화를 돋구지만 꾸밈이 없는 풍경과 인도사람들의 삶은 과히 매혹적이어서 시간은 또 다시 나를 인도로 불러들인다.

 

 

▲거리에서 간방지게 걸어다니며 똥을 싸는 인도의 소(2001년)

 

11년전 인도를 처음갔을 때 바라나시에서 델리로 가는 기차 속에서 만난 프랑스 아가씨의 말이 생각난다. 배낭을 맨 채 홀로 서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인도에 온 느낌이 어떠세요? "Strange! 인도는 생각할수록 참 이상한 나라예요. 자꾸만 나를 끌어 당기거든요." 그녀는 인도를 다섯번째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2년 후에 다시 인도로 갔다.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기 위해 며칠째 다람살라에 머물고 있는 동안 어느 찻집에서 짜이를 마시며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한 여행자를 만났다. 그는 미국에서 홀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2년 전 프랑스 여행자에게 질문했던 똑 같은 질문을 했다. 인도에 온 느낌이 어떠세요?

 

"Strange! 인도는 생각할수록 참 이상한 나라예요. 다음에는 절대로 인도를 오지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이번에 열번째로 인도여행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다람살라에서 만난 달라이 라마(2005년)

 

2012년 4월 나는 세번째로 인도 땅을 밟고 있다. 사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부탄이다.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탄으로 날아가면 금방 갈 수 있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듯이 나는 다시 인도 땅을 밟고 서 있다.

 

덥고, 시끄럽고, 냄새나는 인도가 뭐가그리 좋아서 다시 인도에 왔느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도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아, 인도요! 인도는 생각할수록 참 이상한 나라예요. 때로는 인도가 싫으면서도 다시 발목을 잡는 곳이 인도거든요." 

 

▲인도 라다크 헤미스 곰파 축제(2005년 라다크 레 헤미스곰파)

  

인도속의 또 다른 인도, 다르질링

 

그러나 다르질링은 인도 속의 또 다른 인도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피부색도 다르다. 날씨도 서늘하고 산정에 펼쳐진 풍경도 원래의 인도와는 영 딴판이다. 인도 속의 또 다른 인도가 다르질링이다.

 

다르질링은 원래 시킴의 영토였으나 18세기 네팔의 구르카(Gurkhas) 족에게 빼앗겨 지배를 받다가 19세기 들어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 의해 지배가 중단되고 말았다. 영국과 구르카족 사이의 분쟁 와중에 영국 장교 두 사람이 다르질링의 고요한 산마루에 있는 도르지 링을 발견하고 휴양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2100m가 넘는 산정에 세운 휴양도시 다르질링

 

인도가 독립을 하고 나서부터 구루카 족은 다르질링의 주요 정치 쟁점이 되었다. 1986년 구르카 해방전선은 폭동을 일으켜 1988년 인도정부와 타협이 이루어지며, 다르질링 고르카 힐 의회를 결성하여 자치권을 부여 받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탈한 구르카랜드 해방 기구(GLO)와 무장파 구르카 자원대(GVC)는 줄곧 완전 분리를 요구하며 아직도 종종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거의가 네팔어를 쓰고 있는 거리는 마치 네팔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네팔인들이 많다..

 

▲어슬렁거리기에 딱 좋은 다르질링 초우라스타 거리

 

▲피서객으로 붐비는 초우라스타 거리

 

다르질링 메인 거리는 초우라스타이다. 초우라스타 몰(Mall 시장)은 자동차가 들어 갈 수 없다. 몰 입구에 도착을 하니 피서객들로 붐비고 있다. 갖가지 의상을 입은 인도의 피서객들이 몰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배회하고 있다.

 

몰의 왼쪽에는 레스토랑과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고, 그 반대편에는 천막을 다닥다닥 세워놓고 갖가지 의상과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늘어 서 있다.  

 

▲인도를 머리에 이고 있는 것처럼 무거울 텐데... 노부부는 미소를 짓고 있다.

 

자동차에서 배낭을 내리자 두 명의 늙은 짐꾼 부부가 우리 짐을 운반하겠다고 다가 온다. 짐 하나에 20루피. 깡마른 늙은 부부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등에 짐을 멘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마치 인도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엄청 무거울 텐데 두 부부는 미소를 짓고 있다. 행복한 미소인가, 포즈를 위한 미소인가. 모르겠다. 하여간 웃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두 부부가 힘든 노동을 해서 먹고 살자고 하는 데....아내와 나는 짐을 그 늙은 짐꾼 부부에게 맡기기로 했다. 더구나 다르질링은 해발 2134m의 고산지대로 짐을 지고 가면 숨이 가쁘다. 고산지대라 날씨는 서늘하고 밤에는 약간 춥가까지 하다. 짐을 몇 개씩이나 이고지고 거뜬히 걸어가는 두 부부의 모습이 사뭇 경이롭게까지 보인다.

 

▲앞 뒤로 배낭을 매고, 한 손엔 쇼핑백, 한손엔 카메라를 든 청정남 님

체력의 한계를 테스트 해보겠다며 대단한 각오를 보였다. 완전히 배낭여행 체질..

  

그런데 고산지대에서 체력을 테스트 해보겠다는 청정남 님은 큰 배낭은 등에 지고, 작은 배낭은 앞가슴에 걸고, 오른 손에 카메라, 왼손에는 쇼핑백을 들고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완전 무장을 한 병사처럼 보여서 우리는 쿡쿡 웃었다. 체력의 한계를 시험해 보겠다는 각오가 비장하다. 그래도 웃고 있는 청정남님은 완전히 배낭여행 체질이다.

  

“호호, 완전무장을 한 병사처럼 보여요.”

“이번 기회에 내 체력의 한계를 테스트 해 보고 싶습니다.”

“아주 좋은 기회를 잡았네요!”

   

다르질링은 산마루 경사면을 따라 도로와 급경사를 이루는 계단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초우라스타 거리는 다르질링의 다운타운으로 좁은 골목길 양쪽에 노점상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어슬렁거리며 구경하기에 딱 좋은 거리다. 

 

▲어슬렁거리기에 딱 좋은 초라우스타 거리

 

우리들의 숙소는 몰의 끝자락 광장에 위치한 벨레브 호텔이다. 초우라스타 광장에 있는 매력적이고 오래 된 호텔로 창가에서 광장을 오가는 관광객과 옵저버리 힐, 그리고 맑은 날이면 멀리 칸첸중가까지 조망할 수 있는 호텔이다. 3층 객실로 올라가니 홀에는 오래된 스토브가 놓여 있다.

 

▲배낭을 지고 벨레베 호텔로 들어가는 아내와 정선생

 

▲오래된 벨레베 호텔의 거실 분위기. 스토브가 정겹다

 

“저 스토브에 고구마를 구어 먹으며 딱 좋겠네요!”

“흐음. 그렇군. 옛날 초등학교 교실에 있었던 스토브와 비슷하군요.”

   

이 호텔 주인은 티베트 사람으로 과거에 달라이 라마를 위해 일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티베트가 중국의 침략을 받자 히말라야를 넘어 탈출을 했다고 한다. 벽에는 그 당시의 사진들이 생생하게 걸려있다.

 

 

 

▲달라이 라마를 위해 일을 했다는 벨레베 호텔 주인의 티벳 탈출 사진. 나라를 잃은 슬픔은 크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국력을 키워 나라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는 것.

 

 

초우라스타 거리에서 길을 잃다

 

벨레베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인파로 붐비는 초우라스타 거리를 지나 쿵가(Kunga)라는 티베트 레스토랑으로 가다가 나는 그만 일행들을 놓쳐 버렸다. 진짜 여행은 길을 잃고나서부터 시작이라고 했던가.

 

초우라스타의 밤품경은 과히 매력적이다. 질서가 없는 자유로움, 밤새 방황을 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골목길은 프라하의 황금소로나 리장 고성의 언덕 길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그런 길을 그냥 죽 지나 간다는 건 억울하다. 길을 잃어버리더라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구경거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다가 길을 잃어 버렸던 초우라스터 거리 풍경

 

길을 잃어 보아야 다르질링 안 아닌가. 쿵가는 몰 입구 어디에 있다고 했어. 다만 아내가 화를 무척 내겠지. "당신은 항상 그래요. 남은 생각하지도 않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을 빼고 다닌다고요." 뭐 그런 힐책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내 생각은 적중했다. 몰 입구 삼거리에서 나를 찾느라 두리번 거리는 청정남님과 아내를 만났고, 곧이어 아내의 질책 소리가 들려왔다. 하믄 하믄, 당신 말이 다 맞아, 여보 미안해요!

 

티베트 난민들의 생활도 엿볼 수 있는 다르질링

 

쿵가레스토랑은 입구에서부터 티베트 풍이 느껴진다. 부엌 천장에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걸려 있다. 나라를 잃어버린 티베트인들은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 인도의 북부 이곳 저곳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 다르질링에도 티베트 난민 자활센터가 있다. 1959년 티베트 난민들을 위해 설립된 티베트 난민 자활센터는 노인들을 위한 주거지, 고아원, 학교, 공예작업장들이 들어서 있다. 쿵가 레스토랑도 티베트 난민이 차린 음식점이다.

 

나라 잃은 슬픔은 크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국력을 키워 나라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면 잔소리겠지만 나라를 잃고 나면 설 땅이 없다.

 

우리는 뚝빠와 모모, 볶은밥 등을 골고루 시켰다. 쿵가는 좌석이 몇 개 안 되는 매우 좁은 레스토랑이다. 쿵가 요리는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많다. 뚝빠를 시켜 먹었는데 맛도 그런대로 괜찮다. 뚝빠는 우리나라 칼국수와 수제비의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티베트 국수다. 다만 독특한 향이 우리나라 국수와는 조금 다른 맛을 낸다.

 

▲티베트 식당 쿵가

  

▲천장에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걸려 있다.

 

▲우리나라 칼국수와 비슷한 뚝빠

 

▲매콤한 소스

 

▲모모

 

▲볶은 밥

 

▲그리고 식후에 마시는 짜이 한잔의 맛!

 

저녁을 먹은 후 짜이를 한 잔 마시고 몰을 어슬렁거리며 구경을 했다. 밤이 되자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더운 지방을 피해 피서를 온 인도인들은 스웨터에 털모자까지 쓰고 머리와 목, 어깨까지 숄을 걸치고 있다.

 

인도인들은 추위에 민감한 것 같다. 우리는 초우라스타 거리를 기웃거리다가 광장 오른편에 있는 커피숍에서 카푸치노를 한 잔씩 마시며 몸을 녹이며 휴식을 취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델리에서 바그도그라를 거쳐 다르질링까지 왔던 여정, 정말 긴 하루였다.-0-

 

 

■ 다르질링 초우라스타 거리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