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밤이 그리웠다!
문득 산사의 밤이 그리웠다! 고즈넉한 가을밤의 산사의 밤은 어디에 있는가. 지리산이다. 지리산 하고도 화엄사 뒤 중턱에 고요하게 자리 잡은 마타암이다. 그곳은 언제나 나를 품어주는 넉넉한 방이 있고, 그보다 더 넉넉한 각초스님의 여유로운 마음이 나를 언제나 보듬어 주는 곳이다.
“방에다 군불 지펴 놓을 게요.”
스님은 언제나 간결한 대답을 하셨다. 그러나 그 간단명료한 말 속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휴대폰 공간을 넘어 먼 곳이지만 그 공간에는 빙긋이 웃으시는 스님의 미소가 서려 있었다. 청정한 스님의 여유로운 미소, 그 누구보다 넉넉한 미소가 허공에 그려졌다.
스님의 모습 따라 빙그레 웃으며 나는 지리산으로 차를 몰았다. 추석 연휴기간이지만 목포에서 순천으로 가는 10번 고속국도는 한가하기 그지없었다. 순천에 도착할 즈음 아내가 순천 친구 한 테 전화를 하는 바람에 순천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순천에서 865번 지방도를 타고 청소골 계곡을 지나 계족산 넘었다. 아는 사람만 가는 한적한 길이다. 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구례군 간전면이 나온다. 간전면 수평리… 얼마나 그리워했던 땅이던가? 그 수평리 마을을 떠난 지 9개 월 만에 밟아보는 땅이다.
1년 반 동안 둥지를 틀고 살았던 마을, 그곳엔 형제처럼 지냈던 혜경이 엄마가 있다. 수평리 마을은 그대로 있었다. 언제나 만나보고 싶은, 정이 뚝뚝 들었던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수평리마을에서 혜경이 엄마와 오랜만에 해후를 했다.
혜경이 엄마는 손수 만든 밑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추어탕에 매실장아찌, 우엉뿌리, 씀바귀나물… 모두가 지리산 토속냄새가 물신 풍기는 반찬이다. 밥 한 그릇을 맛나게 비웠다. 저녁을 먹고 자기 집에서 극구 자고가라는 혜경엄마를 뒤에 두고 우린 미타암으로 향했다.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섬진강 19번 도로를 따라 화엄골로 들어서니 고즈넉한 산사의 길이 우릴 반겨주고 있었다. 심무가애.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화엄사 입구 입석이 퍽 인상적이다. 마음에 걸림이 없다면, 도인의 경지가 아닌가!
미타암은 화엄사에서도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꾸불꾸불한 비포장도로를 2km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져 울퉁불퉁한 길을 올라가니 미타암 불빛이 보인다. 너무 늦게 도착한 건 아닌가? 암자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스님이 벌써 나와 계신다.
“스님,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별말씀을… 대웅전 옆 요사에서 머무세요.”
“예, 스님.”
스님은 앞장서서 요사로 안내를 했다.
“방이 신방처럼 깨끗하네요?”
“리모델링을 좀 했지요. 너무 허름해서요. 허허. 피곤할텐데 그럼 편안히 쉬세요.”
“네, 스님…”
대웅전에 가서 참배를 하고 나와 하늘을 보니 달이 휘영청 떠있다. 달빛이 고고하다. 오리온 좌가 바로 머리위에 더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별자리다.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고즈넉이 자리잡은 암자가 달빛을 받아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세상과 별리된 암자는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그래서 사람은 가끔은 세상과 물리적으로 떨어진 곳에 머물러 보아야 한다.
잠시 토방을 거닐다가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고요한 미타암의 밤이다. 사람은 가끔은 세상과 떨어진 곳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가끔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그런생각, 저런생각 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2012.10.2 지리산 미타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