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위에 붉게 타오르는 단풍
국립서울현충원을 산책하며…
서울 아이들이 살고있는 아파트 바로 건너에 동작동 국립묘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만 가면 국립묘지를 산책하곤 합니다. 시월도 다 가는 가을의 막바지에 서서 이른 아침 아파트 뒷길로 이어지는 국립묘지 산책길을 나섰습니다.
낙엽이 떨어져 쌓이고 쌓여 국립묘지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마치 부드러운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합니다. 잣나무와 참나무, 벚나무 등 활엽수 낙엽 카펫을 밟으며 묘지로 이어지는 길이 참으로 아름답기만 합니다. 발 밑에 와 닿는 낙엽의 감촉과 낙엽특유의 냄새가 참 좋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 묘지위에 선혈처럼 타오르는 단풍. 호국영령들의 혼이 되살아 난듯 붉게 타오르고 있어 늦가을 현충원을 산책을 하게 되면 국가와 자신에 대하여 저절로 많은 것을 생각케 된다.
오솔길을 벗어나면 나무로 만든 오작교가 아파트 동네와 국립묘지를 연결합니다. 그 다리 위에도 낙엽이 휘날리며 떨어져 내립니다. 다리를 건너면 곧 피톤치드가 싱그러운 냄새를 풍기는 잣나무 숲으로 들어갑니다. 서늘한 산소가 폐부 깊숙이 빨려 들어갑니다. 저절로 심호흡이 됩니다. 사람들이 이른 아침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는 모습이 퍽 평화롭게만 보입니다.
▲국립묘지로 이어지는 아파트 뒤 산책길. 낙엽이 융단 카펫을 이루고 있다.
▲국립현충원으로 건너가는 다리위에도 낙엽이 우수수 지고 있다.
▲피톤치드가 쏟아져 내리는 잣나무 숲
▲국립현충원에서 가장 높은 동작대. 이곳에 서면 서울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동작대 앞 정자
잣나무 숲을 지쳐 올라가면 국립묘지에서 가장 놀은 서달산 동작대가 정상에 우뚝 솟아있습니다. 동작대에 올라서면 서울 남산과 백운대, 여의도, 한강, 관악산이 한눈에 보입니다. 관악산 공작봉 기슭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은 관악산을 중심으로 뻗어내려, 사방의 산이 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호위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또한 전체의 형국이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쭉 펴고 있는 모습이며,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형상이라고 합니다.
▲동작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여의도 방향
▲백운대와 서울 중심가. 스모그가 뿌옇게 끼여 있다.
▲웅장하게 국립묘지를 호위하고 있는 관악산
좌측은 웅장한 산맥의 흐름이 용이 머리를 들어 꿈틀거리듯 한강을 감싸 호위하는 형상이고, 우측은 힘이 센 호랑이가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듯하며, 전후좌우로 솟은 사방의 봉우리와 산허리는 천군만마가 줄지어 서 있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정면 앞산을 바라보면 주객이 다정하게 마주앉은 모양이고, 멀리 보이는 산은 마치 물소뿔 모양이며, 한강물은 동족에서 흘러나와 서쪽으로 흘러들며 마치 명주 폭이 바람에 나부끼듯 하늘거리며 공작봉을 감싸 흘러내려가고 있는 듯합니다.
▲장군묘역에서 바라본 국립묘지와 한강.
지하의 여러 갈래 물줄기가 교류하여 생기가 넘치는 명당자리이며, 하나의 산봉우리, 한 방울의 물도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 곳이 없으며, 마치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을 가진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합니다(국립서울현충원 홈페이지 참조).
▲현충원 내의 산책로에는 낙엽이 융단처럼 깔려있다.
동작대에서 내려와 철책산 안으로 들어가면 유려한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낙엽 냄새가 코를 찌르고 참나무 낙엽이 더욱 두껍께 깔려 발이 폭폭 빠질 정도입니다. 그렇게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고즈넉한 산사가 나타납니다. 바로 호국지장사입니다. 국립묘지에 잠든 영혼을 위로하듯 호국지장사는 기도하듯 고요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호국지장사 뒤의 아름다운 단풍과 잘 익은 감
▲은행나무 단풍이 너무나 아름답다!
▲현충원의 호국영령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찰 호국지장사
▲종각
▲2500개의 불상을 지장보살을 감싸고 있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부처되기를 마다한 지장보살
▲약수터 앞의 수련지
호국지장사는 고려 공민왕 때 보인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시대에는 화장사라고 했는데, 현충원이 들어서면서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국가 사찰이 되면서 호국지장사로 개칭을 했다고 합니다. 선조가 이곳에 조모인 창빈 안 씨를 장사하면서 이 절을 조모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삼아 중수를 하면서 갈궁사라고 하였는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며 6.25 후에부터 호국영령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원찰로 삼았습니다.
은행나무 단풍이 너무나 노랗게 달려 있어 마치 금화를 보듯 눈이 부십니다. 종각 뒤 감나무엔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습니다. 단풍나무 사이로 마지막 중생을 제도할 때까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상이 지긋이 사바세계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 지장보살이 내려다보는 아래에 약수터가 있습니다. 약수를 받기위해 빈병을 든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습니다.
▲약수터 위에 있는 약사여래보살상과 그 뒤로 지장보살상이 단풍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약수를 마시거나 뜨다보면 바로 앞에 모신 약사여래보살님과 그 위 언덕에 있는 지장보살님께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절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약병을 들고 중생들의 병을 치료해주는 모습을 하고 있는 약사여래보살님의 모습이 퍽 자비스럽게 보입니다.
약사여래보살님 뒤로 은행나무 노란 단풍과 붉은 단풍이 매우 아름답게 비추입니다. 그 단풍 사이로 지장보살님이 지옥 중생의 고통을 벗어나게 해줄 듯 구원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입상을 중심으로 뒤로는 2500여개에 이르는 작은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작은 불상들 사이로 커다란 바위가 툭 튀어 나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350년이 넘은 느티나무는 현충원의 내력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노파의 젓가슴처럼 보이기도 하는 느티나무
호국지장사에서 시원한 약수를 한잔 마시고 내려오다가 거대한 느티나무 한그루를 만났습니다. 수령이 315년이라고 하는데, 1985년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니 지금은 350살이 다 되었군요. 높이 15m, 둘레 450cm의 느티나무는 이 현충원의 역사를 가장 속속들이 잘 알겠지요. 마치 늙은 노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느티나무는 두 팔을 높이 들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앞가슴이 톡 튀어나온 듯한 나무 혹이 눈길을 끌고 있네요. 이 느티나무는 현충원의 호국영령들을 지켜주는 나무의 정령처럼 보입니다. 느티나무에 합장 배례를 하고 길을 계속 갑니다.
산등성이에 큰 길이 나 있고, 은행나무가 도열해 있습니다. 노란 은행잎이 길을 덮고 있습니다. 그 길을 계속 따라가면 이승만, 김대중 박정희 대통령 묘소로 가는 이정표가 나옵니다. 박정희 대통령 묘소가 가장 위에 있고, 그 아래 김대중, 이승만 대통령 묘소가 있습니다. 묘역으로 가는 길은 단풍잎으로 현란하게 물들어 있습니다.
▲왕릉보다 큰 박정희 대통령 묘소. 10.26 기념행사를 치른 뒤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수많은 화환이 묘지를 감싸고 있다.
박대통령 묘소에는 서거 33주년 10.26기념행사를 치른 지가 얼마 아니 되어서인지 많은 화환들이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망자는 말이 없습니다. 마치 왕궁처럼 모셔진 묘역은 그 어떤 왕을 보다도 크게 보입니다. 과연 본인 당사자가 죽은 후에 저렇게 큰 묘지를 원했을까요?
나는 문득 임기에 대통령직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죽은 후 장애인이었던 딸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에 묻힌 드골대통령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파리에서 287km나 떨어진 콜롱베라는 작은 마을로 낙향을 하여 여생을 마친 후 72달러짜리 참나무 관에 넣어져 딸 안느의 옆에 묻혔습니다. 정치에만 골몰하여 장애인이었던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그는 죽음을 앞두고 그의 딸 안느의 곁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거인 드골은 그렇게 작은 묘지에 묻혔지만 후세 사람들은 그의 정신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묘소는 일반인의 묘소보다 엄청나게 큽니다. 국민들에게는 묘지면적을 줄이라느니, 화장을 하라느니 하면서 사회지도층의 묘소는 왜 그리 크게 만드는지 도대체 앞뒤가 맞지가 않습니다. 말보다 행동을 보여주는 양심이 있는 정치인이야말로 우리가 깊이 추앙을 해야 합니다.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느냐"고 막말을 하면서 공약을 남발하고는 선거 뒤에는 공약을 헌신짝처럼 뒤집어엎는 정치인은 이 땅에서 정말로 사라져야 합니다. 아니 그런 정치인에게는 표를 주지 않는 유권자들의 지혜가 더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입니다.
▲묘역에 단풍은 다른지역의 단풍보다 더 붉게 타오르고 있다. 호국영령들의 선혈이 단풍으로 타오른 것일까?(장군묘역에서 바라본 박정희 대통령 묘소)
그러나 묘역 앞의 단풍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장군묘역에는 수많은 별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별을 단 사람도 사병들도 망자는 말이 없습니다. 묘역 위로 붉은 단풍만이 호국영령들의 선혈처럼 뚝뚝 떨어져 내립니다. 유난히 붉게 타오르는 단풍은 아침 햇빛을 받아 더욱 빨갛게 보입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오는 문턱에 서서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낍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항상 존재 할 수 없으며 언젠가는 사라져 갑니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국립서울현충원을 산책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호국영령들의 혼이 되살아 난 듯 선혈처럼 불타오르는 단풍을 바라보게되면 자신의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국가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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