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킴여행의 백미, 짱구호수로 가는 험난한 길
▲ 목숨이 두 개인 사람만 갈 수 있다는 짱구호수로 가는 아슬아슬한 길
목숨이 두 개인 사람만
갈 수 있다는 짱구호수
히말라야 신이 허락을 있어야
갈 수 있다네.
자동차는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천 길 낭떠러지 험해도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워라.
그러나, 아찔한 절벽에서
목숨 내놓고 돌을 깨는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아아, 차를 타고 가기가 부끄럽네
해발 3753m에 위치한 짱구Changu(Tsomgo라고도 함) 호수는 시킴 여행의 백미다. 설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경이로운 짱구 호수는 중국 국경 너툴라Nathu La에서 불과 18km 떨어져 있다. 때문에 짱구 호수를 여행을 하려는 모든 여행자들은 사전에 여행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시킴인들은 이 호수가 원래 근처인 라뗀Laten에 있었는데 어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믿고 있다.
▲ 갱톡에서 약 42km 떨어진 짱구호수로 가는 길.
중국 국경과 불과 18km 떨어져 있어 여행허가서를 받아야 갈 수 있다.
갱톡에서 약 42km 떨어져있는 짱구 호수는 시킴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호수다. 갱톡까지 와서 짱구 호수를 보고가지 않으면 시킴여행은 헛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거리상으로는 그리 멀지않지만 짱구 호수로 가는 길은 시킴에서 가장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어떤 사람은 목숨이 두 개인 사람만 갈 수 있다고 혀를 내두른다.
어쨌든 우리는 짱구 호수를 가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아름답다는 짱구 호수를 안 보고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여행이란 한 번 때를 놓치면 영영 다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에 와서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어 볼 수도 있지만, 이런 오지를 다시 오기란 결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갱톡에 도착 한 날부터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기회가 있을 때 짱구호수를 가야 한다고 모두들 벼르고 있었다.
허지만 이렇게 험하고 아름다운 호수로 가는 목적은 저마다 다르다.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지대를 처음 가 본다는 청정남 님은 "내 심장이 과연 4000m 고산지대에서 얼마까지 버틸 수 있는지 이번에 시험을 단단히 해 보아야겠다."며 결심이 대단하다. 그는 이번에 우연히 만난 다섯 명의 여행팀 중 가장 젊은 피다.
바다님은 칠십을 넘긴 고령의 여성이다. 그녀는 젊은 날 백두대간도 했고, 이미 네팔의 3000m급 이상 히말라야 고지를 몇 차례 트레킹을 한 경험도 있다. 그런데 그녀는 칠십을 넘겨서도 4000m 고지대를 올라 갈 수 있는지 시험을 해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 될지도 모른다며 기어코 설산을 올라가겠다고 하니 참으로 그 결의가 가상하다.
69세의 무한도전님은 이번 다르질링, 시킴, 부탄으로 가는 오지여행을 위해서 매일 2시간 이상을 걸었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순발력을 높이기 위해서 그 나이에 복싱까지 배우고 있다고 하니, 그의 도전 정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이미 그는 남미의 안데스와 말레시아 키나발루 정상도 오른 경험이 있었다.
▲ 짱구호수로 가는 아슬아슬한 비탈길.
그러나 다섯 사람 중 가장 걱정이 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아내였다. 사실 나는 아내의 컨디션을 우려하여 짱구 호수를 가는 것을 포기하려고 했다. 2008년도에 심장이식을 한 아내에게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를 것 같아서이다. 그런데 아내의 생각은 다르다. "바꾼 심장으로 이런 고지에 적응을 하여 심장을 테스트를 언제 해 보겠어요. 이런 기회에 해보아야지요." 하며 밤새 조르는 바람에 그만 함께 가기로 결정을 하고야 말았다. 아내의 용기는 가상하지만 아내를 보살펴야 하는 내 입장은 아무래도 내심 걱정이 아니 될 수 없다.
10연 년 전 아내와 나는 5300m가 넘는 탕굴라 고개(5335m)를 넘어 티베트를 여행하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거쳐 네팔, 라다크까지 고산지대를 육로로 여행을 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페루 마추픽추 트레킹을 비롯하여 5000m가 넘는 안데스 산맥을 넘어간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는 아내가 심장을 이식하기 전 건강상태가 좋을 때였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 건강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이다.
▲ 우연히 모인 다섯명의 여행팀이 지프를 타고 짱구호수로 가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여행목적은 조금씩 다르다.
허지만 아내는 아직도 건강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환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정신과 육체의 어딘가에 크고 작은 병을 한가지씩은 지니고 살아간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매일 실내 자전거를 2시간 이상 타고, 걷기운동을 하며 몸을 닦고 조여 온 아내의 정신력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신력이면 어디엔들 가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사람을 받아 주어야 오를 수 있다. 히말라야 8000m 봉우리를 16곳이나 오른 엄홍길 대장도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어서, 산이 나를 받아줘야 오를 수 있지요. 산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순응할 때 정상을 내줬습니다."라고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는 38번의 도전과 10명의 동료를 잃은 끝에 산이 그를 받아주어 히말라야 8000m 급 16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과연 해발 4000m 이르는 짱구 호수가 우리를 받아줄까? 아무리 아름다운 짱구 호수라 할지라도 산이 받아줘야 오를 수 있다. 본의 아니게 이번 여행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번 여행팀을 무사히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으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하여간, 우리는 전날 갱톡에서 여행허가서를 미리 발급받고 타고 갈 지프와 여행가이드(여행허가 조건에 가이드가 동행을 해야 함)도 예약을 해두었다.
▲ 짱구호수로 아기 위해 렌트한 지프와 운전사 패마와 가이드 꾸르마
어쨌든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아침 일찍 갱톡을 출발했다. 사륜구동 지프차는 매우 튼튼하게 생긴 새 차다. 운전사는 자신을 패마라고 소개 했고, 꾸르마라는 가이드가 동승을 했다. 건장한 체격에 짧은 콧수염을 기른 패마는 늘 미소를 띠면서 편하게 운전을 했다.
아, 그런데 정말 장난이 아니다! 갱톡을 벗어나자 곧바로 급경사가 이어지며 가파른 비탈길로 접어들었다. 대관령 고개를 넘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어린아이들 소꼽장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초입에서부터 오금이 재리는 천 길 낭떠러지 길이 시작되었다. 바퀴가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까마귀밥 신세가 되고 말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비탈길을 패마는 너스레를 떨며 여유 있게 핸들을 이리저리 돌렸다.
"어? 무슨 사고가 났나요?"
"자동차들이 도대체 움직이지를 않네요."
▲ 앞선 차량의 고장으로 비탈길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
갱톡을 출발한지 20여분이나 지났을까? 그 좁은 비탈길에 차량들이 꽉 막혀 도대체 움직일 줄을 모른다. 패마가 운전석에서 내려 앞으로 가보고 오더니 지프 한 대가 고장이 나서 길을 막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인도의 운전사들이나 승객들은 이렇게 길이 막혀도 누구 하나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 그들은 모두 그 고장 난 지프로 가서 지프를 고치는 것을 조언을 해주거나 손수 고치기도 했다. 이런 일이 다반사로 흔하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자신들도 언제 그런 경우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프가 쉽게 수리가 되지 않자 그들은 힘을 합해서 지프를 옆으로 밀었다. 그러자 겨우 지프 한 대가 지나갈 만한 길이 생겼다. 정말 곡예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지나 갈 수 없는 그런 위험 길이다. 그런데 인도의 운전사들은 서로 차를 앞뒤에서 돌보아주며, 곡예를 하듯 그 아슬아슬한 길을 잘도 빠져나갔다.
▲ 고장 난 자동차를 옆으로 밀고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가는 우리 지프
"휴우~ 십 년 감수했네!"
"보기만 해도 아찔한 길인데 잘도 빠져 나가네요!"
이마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위험한 길을 빠져 나가자 우리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우리는 곧 절벽 아래와 계곡 건너에 펼쳐진 비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아름다운 비경은 아찔한 순간에 다가온다. 눈 덮인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소리, 푸른 삼나무 숲, 푸른 하늘에 둥둥 떠가는 흰 구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실오라기 같은 길을 지프는 외줄 타기를 하듯 슬금슬금 기어갔다. 스릴만점이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 삼나무 숲이 우거진 비경이 위험한 절벽 아래로 펼쳐졌다.
▲ 험한 길에 떨어져 내리는 아름다운 폭포수
절벽에서 목숨을 내놓고 돌을 깨는 사람들
"차가 다시 움직이지를 않네요?"
"무슨 사고가 또 났지?"
"이러다간 짱구호수인지 맹구호수인지 그 호수까지 가지도 못하는 것 아니에요?"
"정말 목숨이 두 개인 간 큰 사람만 올 수 있는 곳이네요."
자동차는 한 번만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가다서고 가다서고를 반복을 했다. 이번에는 도로를 넓히는 발파작업으로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를 치우느라 지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발파작업으로 가파른 언덕에서 돌이 무더기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매우 위험한 공사다! 그런데 우리도 이제 자동차가 멈추는 것에 대하여 점점 면역이 되어 가고 있었다.
▲ 발파작업으로 무너져 내린 돌더미
▲ 위험한 절벽에서 발파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절벽에서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 속에서 노동자들이 큰 망치로 돌을 내려치고 있었다. 생명을 건 작업이었다. 아차 잘못하면 절벽에서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에 그대로 묻혀 산송장이 될 것만 같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아찔한 절벽 가장자리에서 여성 노동자는 작은 망치로 돌을 잘게 부수어 깨고 있었다. 모두가 목숨을 건 작업이었다. 아아, 어디를 가나 민초들은 고달프다.
▲ 무너져 내리는 돌더미 속에서 돌을 깨고 있는 노동자
▲ 아찔한 절벽에서 돌을 깨고 있는 여인
그 장면을 보자 자동차를 타고 짱구 호수로 구경을 가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생존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찌 자동차가 잠시 멈추어 가지 않는 다고 불평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부처가 있다면, 예수가 있다면, 모두가 고통을 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가게 해줄 수는 없을까? 해묵은 생각이지만 위험한 절벽에서 목숨을 내놓고 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자 그런 화두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너진 돌 더미를 치웠는지 다시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우리는 곧 걍그라샤Gyanglasha라는 검문소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몇 차례 검문을 했는데, 이곳이 짱구호수로 가는 마지막 검문소라고 했다. 오는 도중 군데군데 군부대도 주둔하고 있었다. 검문소에서는 모든 차량과 여행자들을 하나하나 검사를 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간이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점과 우체국도 있었다.
▲ 짱구호수로 가는 마지막 검문소 Kyanglasha
우리는 패마의 누님이 운영하고 있다는 카페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며 뜨거운 짜이를 한잔씩 마셨다. 고산으로 올라갈수록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패마와 꾸르마는 아침을 걸렀는지 선채로 둑빠를 시켜서 후루룩 후루룩 만나게 먹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침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뚝빠를 맛있게 먹고 있는 패마와 꾸르마
이윽고 스탬프가 찍혀지고 통과사인을 한 우리들의 여행허가서가 나왔다. 검문소에서는 여행허가서에 나온 사진과 실물을 일일이 대조하며 통과를 시켜 주었다. 우리는 마치 2차대전시 독일 나치군의 검문소를 통과하듯 어렵사리 짱구 호수로 가는 검문소를 통과했다.
▲ 짱구호수로 가는 여행허가서. 마치 나치의 검문을 받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 눈길을 걷기 위해 장화로 갈아 신었다.
▲눈길을 걸어달 장화로 갈아신으며, 바다님과 청정남님과 함께...
▲ 장화를 신고 짱구호수로 걸어가는 아내(해발 3753m)
여기서부터는 해발 3000m가 넘는다고 했다. 사방에 설산이 장벽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도로사정이 여의치 않아 자동차는 몇 번이나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속에 로지처럼 생긴 건물이 나타났다. 이윽고 패마가 차를 멈추더니 언덕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버 데어, 짱구 레이크!(저 언덕을 넘으면 짱구 호수에요!)"
▲ 5월인데도 흰 눈이 덮인 설산
마침내... 우리는 짱구 호수에 도착한 것이다. 가이드 꾸르마는 언덕 아래로 내려가서 장화로 갈아 신으라고 했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장화를 신어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에서 내려 언덕을 내려가는 데도 숨이 찼다. 우리는 각자의 발에 맞는 장화를 골라 신고 숨을 헐떡거리며 언덕을 기어 올라갔다.
오색찬란한 타르쵸가 바람에 휘날렸다. 타르쵸에는 깨알 같은 불경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허공에서 나부끼고 있는 타르쵸를 향해 제발 무사히 이번 트레킹을 마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이런 오지에 오면 위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나약해지기 마련이다. 해서 설산을 오르는 사람은 누구나 기도하는 마음이 되고 만다. 오, 과연 히말라야의 여신은 우리를 받아주는 것일까?<계속>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지난 2012년 5월에 여행을 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