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검은 콩의 탄생
▲1년 동안 지은 검은 콩 서리태가 위대한 콩으로 변신하여 태어났다!
농부가 직무유기를 하고 한 달 간이나 집을 비우게 되었다. 네팔 칸첸중가 오지에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는 학교에 컴퓨터 전달 등 후원행사를 마치고 항공료가 아까워 인도 라자스탄과 남인도 고아까지 다녀오는 무리를 범했다.
나는 봉사라는 허울을 쓰고 여행을 다니는 무뢰한이 아닐까? 라자스탄 여행은 그야말로 고행중의 고행이었다. 전 일정을 그 유명한 인도의 낡은 기차를 타고 다녔으니… 밤기차는 물론이고 기차를 타느라고 허겁지겁 뛰고, 12시간이 넘게 흔들리는 기차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가 뭄바이에서 출발하게되어 있어 고아해변까지 다녀오는 만용을 부렸다. 밤에는 냉방이 어찌나 세게 나오는지, 그 통에 면역이 약한 아내는 감기가 들고 말았다.
여행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여행을 하는 동안 문득문득 염려되는 것은 연천 텃밭에 심어 놓은 배추와 콩이었다.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면 배추가 얼지는 않을까? 콩서리가 늦으면 콩이 다 튀어 나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되면 1년 농사 헛농사를 짓고 말텐데… 염려를 하며 집에 도착해 보니…
배추는 벌레가 절반을 먹고 겉이 살짝 얼어 있었다. 콩은 다행히 친구 응규가 꺾어서 가지런히 세워놓고 위에다 멀칭을 덮어두고 있었다. 고마운 친구여! 그 먼길을 대중교통을 타고 오고 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다니... 세워서 말려둔 콩대에서 콩들이 저절로 튀어나와 여기 저기 떨어져 있었다.
▲한 달 동안 집을 비운 사이 친구 응규가 콩을 꺾어 멀칭까지 덮어 두었다. 고마우이, 친구여!
▲가지런히 세워 둔 콩
“그래, 콩들아, 잘 있었나? 미안하구나. 얼마나 튀어 나오고 싶었으면 성질도 급하게 이렇게 튀어 나왔니? 이제 너희들을 잘 털어줄 테니 안심해라.”
마침 두 형수님이 콩 타작에 동참을 하여 주셨다. 우리 집 콩 타작은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털어낸다. 그냥 콩을 눕혀 놓고 작대기로 두들기는 방법이다. 콩은 살짝 두들기기만 해도 톡톡 튀어 나왔다. 그런데 둘째 형수님의 아이디어가 기발했다.
“작대기보다는 도리깨가 좋은데… 아제, 이걸로 도리깨를 만들어 볼게요.”
▲철사로 도리깨를 만들어 콩타작을 하시는 두 형수님들의 아이디어가 기발했다. 감사합니다. 형수님들...
형수님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 철사로 만든 도리깨
형수님은 미니 비닐하우스를 만들 때 쓰는 철사 줄을 묶어서 도리깨를 만들었다. 철사는 신축성이 있어서 도리깨 이상으로 효력을 발휘했다.
“형수님 아이디어가 기발하네요! 콩이 정말 잘 털어지는 군요.”
그렇지 않아도 콩들은 튀어나오고 싶어 안달인데, 신축성 있는 철사 도리깨를 맞은 콩들이 우수수 털려 나왔다. 형수님 덕분에 콩 타작을 순식간에 할 수 있었다. 역시 나이 드신 분들의 경륜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지혜이다.
▲나이드신 분들의 경험과 지혜는 돈을 주고도 살 수없는 귀한 것이다.
털어낸 콩을 선풍기를 돌려서 쭉정이를 날려 보냈다. 내가 선풍기를 돌리고 큰형수님이 콩을 담아주면 작은형수님이 선풍기 바람에 콩 쭉정이를 날려 보냈다. 쭉정이 속에서 검은 콩들이 속속 탄생을 하였다.
금년 6월 8일, 감자를 수확하고 난 뒤에 심은 몇 줌의 서리태 검은 콩이다. 무려 150여일 만에 이렇게 검은 콩으로 위대하게 다시 재탄생을 하는 것이다. 몇 줌의 검은 콩이 늘어서 무려 두 말은 족히 될 것 같다.
▲선풍기를 돌려 콩 쭉정이를 날려 보냈다.
쥔장이 직무유기를 해도 잘 자라주신 콩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콩을 꺾어서 말려준 응규에게 감사를 드리고, 콩 타작을 해주신 두 형수님들께 엎디어 감사를 드린다. 콩 타작을 하고 나서 각하가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벌레 먹은 콩을 골라내고 말리는 일이다.
▲쭉정이를 날려 보내니 영글대로 영근 콩이 탄생되었다.
▲쭉정이를 추려내고 있는 두 형수님
▲콩을 골라내고 있는 아내와 두 형수님들
▲골라낸 콩을 햇볕에 말리고 있다.
콩을 골라내는 데 물론 두 형수님이 동참을 해 주셨다. 예년 같으면 며칠을 걸려 골라내야 했는데… 두 분 형수님이 함께 하시니 하루 만에 말끔하게 골라냈다. 비록 나이가 드셨지만 형수님들의 손은 빨랐다. 두 분다 예전에 시골에 사시면서 농사를 지으신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말끔하게 탄생한 위대한 검은 콩을 바라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이제 콩들은 우리들의 밥상에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다. 1년 동안 잘 자라서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바칠 준비를 하고 있는 콩들을 바라보면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 장수촌 중 하나인 남미 에콰도르의 작은 마을 '빌카밤바'는 질병이 없는 장수촌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 모든 주민들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콩을 주식으로 섭취하기 때문이다. ‘빌카밤바’는 잉카어로 ‘신성한 평원’이란 뜻이다.
물론 빌카밤바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얌발라 계곡에서 쏟아지는 미네랄이 풍부하고 깨끗한 물인 철분광천수(아구아 데 아에로)을 마시고, 그 물로 씻으며 목욕을 하는 천혜의 자연이 주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장수의 비결은 안데스 고지에서 지은 콩을 주식으로 먹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10년 전 남미에 여행을 갔을 때 꼭 들려보고 싶은 마을 중의 하나였는데, 페루 리마에서 아내의 약이 든 배낭을 몽땅 도둑을 맞아 약을 구하느라 들리지 못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빌카밤바는 해발 1500m의 고지에 평균 기온이 섭씨 20도 정도의 온화한 기후를 가진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에서 145세까지 사는 세계 최고 고령자가 탄생하고, 100세 이상의 사는 장수인구가 늘어나면서 장수촌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다’라고 할 정도로 영양분이 풍부한 식품이다. 최근 블랙 푸드가 노화를 막고 면역을 증진시키는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불랙 푸드 중에서 대표주자는 바로 이 검은 콩이다. 이제 이 검은 콩 서리태는 육식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 우리 집 식탁에 1년 내내 오르며 위대한 영양소가 되어줄 것이다.
오늘은 자비공덕회 기도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날이다. 그동안 김장을 했던 김치와 가을걷이들을 싣고 나니 자동차 트렁크가 가득 찼다. 물론 수고를 해 주신 두 형수님들에게도 드릴 1년 농사 선물이 바리바리 들어있다. 그런데다가 아내는 김장 통을 여러 통으로 나누어 담아 실었다. 무공해 김장이니 조금씩 나누어 먹겠다며…
▲여러사람 입으로 들어갈 김장과 가을걷이. 트렁크에 가득 찬
김장과 가을걷이를 바라보니 엄청 부자가 된 기분^^
나는 밖에 말려 두었던 콩을 거실에다 널어놓았다. 영글대로 영근 위대한 콩과 트렁크에 가득 찬 가을걷이를 보니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엄청 부자가 된 기분이다. 그래, 나는 위대한 검은 콩을 1년 내내 먹을 수 있으니 부자 중의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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