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희망의 씨앗' 네팔방문기

끊어질듯 끊어질듯 하면서도...

찰라777 2014. 12. 4. 16:35

 

멀고도 먼 네팔 동부 다막에 도착하다 

 

네팔 동부 오지 마을인 쩌프러마리로 가는 길은 멀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7시간을 걸려 카트만두에 도착, 다시 20인승 국내선 프로펠러 비행기로 갈아타고 약 1시간여를 히말라야 설경을 보며 날아가야 네팔 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비라트너거르 공항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이 다막(Damak)이다. 네팔 동부 인도와 접경지역에 있는 인구 약 75,000명의 다막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세계국민행보지수 1위라는 부탄에서 축출된 네팔 난민 수용소가 있는 곳이다. 

 

 

▲다막시의 아침 풍경-2014.10.29

 

부탄은 19세기에 이주한 네팔인 약 10만 명을 1990년 이래 부탄 왕정에 반대를 하거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축출했다. 이들은 네팔계 로트샴파트스족으로 19세길 말 생계를 위해 네팔에서 부탄으로 건너가 터전을 닦으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다막에서 하루 밤을 묵은 다음날 아침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 쩌프러마리로 이동했다. 이 마을에 우리가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는 버드러칼리학교가 있다.  

 

 

▲쿠마리 복장을 하고 환영공연을 하는 네팔의 소녀들

 

버드러칼리 학교의 환영행사는 아침 9시부터 환영행사가 오전 내내 진행이 되었다. 네팔의 행사는 길다. 그들은 우리들의 목에 향기 나는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환영 리본도 달아주었다.

 

예쁘게 치장을 한 아이들이 춤과 노래를 부르며 환영공연도 해주었다.  아이들의 춤은 정말 깜직하고 귀여웠다. 맨발로 자연스럼게 율동을 보여주는 그 모습은 마치 천사들이 유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 교육장, 운영위원장 등 많은 유지들이 길게 이어지는 환영인사말은 정말로 지루했다. 그들의 인사말은 대부분 정치성을 띠거나 자신의 입지를 선전하는 내용들이었다.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환영을 하는 학교 운영위원장과 교장선생님

 

 

이런 겉치레 적인 행사는 생략을 해야 할 것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환영하는 행사도 생략을 해야 할 것들이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지 않은가? 보살은 마땅히 아무데도 머무르지 않고 보시를 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만약에 사람이 무엇인가에 머물러 보시를 한다면 마치 사람이 컴컴한 곳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어떤 것에도 머무르지 아니하고 보시를 한다면 햇빛이 밝게 비추어 갖가지 모양을 다 볼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한다면 그 준다는 자체도 잊어버리고 머무름이 없이 그냥 주어야 하는 것 일진데, 이렇게 장시간 환영식을 한다는 것이 도대체 누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막지역 국회의원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있는 케이피 시토울라

 

 

끊어질듯 하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환영인사말

 

그런데 케이피 시토울라씨는 네팔의 오랜 관습이 이러하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헸다. 만약에 이런 관습을 따르지 않으면 이곳 사람들에게 엄청 실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네팔에 오면 네팔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방도가 없다. 그나마 너무 오래 하지않있으면 좋으련만.

 

시토울라씨는 이곳 다막이 고향으로 버드러칼리학교가 자신이 다녔던 모교이다. 한국에서 23년 동안 살고 있는 그는 오랜만에 고향 모교에 오게 되니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다. 마치 그는 금의환향을 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 시골 오지에서 태어나 카트만두 대학을 나온 그는 23년 전에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에서 네팔투어여행사와 네팔전통식당 옴 레스토랑을 두 곳(삼청동 옴레스토랑, 광화문 옴 레스토랑)이나 경영을 하고 있으니 크게 성공을 한 샘이다. 네팔관광청한국사무소장을 민간자격으로 오픈하여 주한 네팔근로자를 돕고, 한국과 네팔 간 문화교류를 증진한 공로로 그는 몇 년 전에 서울시명예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끊어질듯 끊어질듯 하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네팔 유지들의 환영인사

보통 1사람당 20~30분씩 인사말을 한다. 맨 나중이 케이피 시토울라 씨 

 

네팔의 환영인사 말은 길다. 이 작은 행사에 무려 여덟 명의 지역유지들이 환영인사말을 했다. 이들의 인사말은 끝날 듯 말 듯 하면서도 길게 이어진다. 한 사람당 적어도 20~30분 정도를 한다. 시토울라 씨도 고향의 후배들에게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한 번도 보지도 못했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자비공덕회가 여러분에게 장학금을 후원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부처님이 태어난 나라라는 인연이 큽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는 그 인연을 소중히 여겨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하여 앞으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후배를 돕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비공덕회 국제운영위원기도 한 그는 후배들을 격려하는 인사말을 무려 30분 동안이나 했다. 여덟 명이 연설을 한 시간이 줄잡아 2시간을 훨씬 넘었다.

 

 

▲입추의 여지없이 버드러칼리학교 운동장을 꽉매운 환영인파.

그들은 오전 내내 행사가 끝날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열열하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 지루한 시간 내내 운동장에 앉아있는 환영객들은 한 사람도 자리에 이탈을 하지 않고 진지한 태도로 박수를 치며 앉아있었다. 그늘에 앉아서 그들을 내려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휴우~ 행사가 언제 끝나지?"

"도대체 끝날 기미가 안보여요."

 

거기에다 자비공덕회 운영위원장인 나와 지상 스님에게도 인사말을 할 시간이 할애 되었다. 나는 운동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3분이내로 짧게 인사말을 끝냈다. 지상스님은 맨 나중에 인사말을 했다. 우리들 상식으로는 좀 의아하다. 그런데 네팔에서는 가장 주요한 인사가 맨 나중에 인사말을 한다고 한다. 이것도 네팔에 오면 따라야 할 법이다.

 

 

 

▲짧게 인사말을 하는 필자와 맨 나중에 인사말을 하는 지상스님

 

 

오전에는 환영행사와 컴퓨터 전달식, 그리고 컴퓨터 교실 오픈 하고나니 오후 1시가 다 되었다. 우리는 학교 옆에 위치한 빠담의 집으로 가서 야외에 마련된 네팔 달바트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4년 전에도 이 빠담의 집에 점심을 먹었었다. 그 때는 환영행사가 지금보다 더 늦어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학교옆 빠담 집에서네팔 전통식사인 달바트로 점심을 먺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 나는 아내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사빈 당이의 집으로 갔다. 사빈이는 우리가 장학금을 후원하는 학생인데 그의 집이 거의 붕괴되기 직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짓도록 후원금을 보내 준적이 있어 어떻데 지어졌는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