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단 하나뿐인 나무누각다리 - 태안사 능파각
연두빛 새잎 사이로
맑은 물 철철 흘러내리고
속세를 건너가는 능파교 위에서
마음의 때를 씻어보네
아아, 이곳이 피안의 세계인가? -태안사 능파각을 건너며 2015.4.11 찰라-
▲국내에 단 하나뿐인 나무누각다리 태안사 능파교
태안사로 들어가는 냇가에는 연초록 새잎이 돋아나고 있다. 봄이 되니 산천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이끼 낀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철철 넘쳐흐른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흐르는 냇물을 따라 올라가니 냇물을 가로지르는 누각이 하나 나타난다.
다리위에 지붕이 있는 능파각이다. 지붕이 있는 다리는 세계 여러 곳에 있다.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도 등장하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다리인 스위스의 루체른의 <카펠교>도 지붕이 있다. 하지만 능파각이 다른 지붕 있는 다리와는 다른 점은 전각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각을 세운 다리를 누교(樓橋)라고 한다. 국내에 현존하는 누교는 송광사 삼청교와 청량각루교, 수원화성 화홍문이 있다. 그러나 나무로 된 다리는 태안사의 능파각이 유일한 존재다.
<태안사사적기>에 의하면, 이 능파각은 통일신라 문성왕 12년(850년)에 혜철선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태조 24년(941년) 광자선사가 고쳐지었다가, 이후 파손되었으나, 조선 영조 43년(1767년)에 복원하여 지금까지 몇 차례 중수를 거쳐 보존되고 있다. 또한 6.25 전란을 거치며 태안사의 모든 전각이 불에 타 손실되었으나 이 능파각과 일주문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귀한 문화재다.
▲누교는 전각기능을 하는 누각을 지탱하며 길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능파>란 ‘물결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닌다’는 뜻으로 미인들이 가볍고 아름답게 걸어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능파각은 천왕문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각을 자세히 살펴보니 양쪽 암반에 석축을 쌓아 교대(橋臺)로 삼고, 그 위에 큰 통나무(길이10m, 둘레 1.6m)를 보에 걸쳐 놓았다. 바닥판을 우물마루로 깔고, 다리 노면에는 주춧돌을 대신하여 장방형 침목 한단을 하인방으로 얹고 두리기둥을 올렸다. 정면 1칸, 측면 3칸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누교는 전각기능을 하는 누각을 지탱하며 길을 잇는 역할을 한다. 능파각은 천왕문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왕문은 보통 일주문 안에 세워지는데,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양옆에 금강역사상을 모신다. 지리산 화엄사 천왕문에도 부정한 기운이 통과할 수 없도록 막아준다는 금강역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 서 있다.
▲양쪽 암반에 석축을 쌓아 교대(橋臺)로 삼고, 그 위에 큰 통나무(길이10m, 둘레 1.6m)를 보에 걸쳐 놓았다. 바닥판을 우물마루로 깔고, 다리 노면에는 주춧돌을 대신하여 장방형 침목 한단을 하인방으로 얹고 두리기둥을 올렸다. 정면 1칸, 측면 3칸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능파>란 ‘물결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닌다’는 뜻으로 미인들이 가볍고 아름답게 걸어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파도를 헤쳐 나아간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능파>의 의미는 속세의 고해를 헤치고 피안의 해탈세계로 건너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전남 승주 출신 임보시인은 “개울위에 다락을 세웠으니 누각이요/개울 위에 다리를 놓았으니 교량이요/개울위에 다리를 절문을 얹었으니 산문이다/동리산 계곡 물 위에 뜬 봉황의 집”이라고 읊었다.
▲능파각 밑으로 태안사 계곡 맑디맑은 물이 철철 흘러내리며 세속에 묻은 때를 씻어주고 있다.
능파각을 건너기 위에서는 자동차를 밑에 세워 놓고 걸어가야 한다. 절집까지 도로가 나기 전에는 태안사 옛길을 걸어서 능파각을 건너갔다. 능파각을 건너 좁은 길을 걸어가면 태안사 옛 일주문에 도착한다.
동리산의 맑디맑은 계곡물이 철철 흐르는 냇물위에 세워진 능파각은 속세에서 더럽혀진 마음을 말끔하게 씻어 내리고 있다. 중생이여, 세속에 묻은 마음의 때를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걸어서 능파각을 건너가야한다.
능파각을 건너며 나는 30년 전에 친견을 했던 우리시대의 생불인 <청화큰스님>를 생각한다. 끝까지 겸손하고, 근면 검소한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셨던 큰스님의 족적을 나는 30년이 지난 지금 찾아가고 있다. 1985년 봄 태안사 금강선원 조실로 주석하시며, 동안거부터 3년결사(三年結社) 묵언정진에 들어가셨던 큰스님께서는 좋은 곳에서 대접 받으면서 편안히 안주하려 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노동을 하시며 좌선 정진, 염불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납자로서 겸양 공경의 모습을 견지하고, 재가신자에게도 항상 다정하게 공경의 말씀을 하시며 학처럼 고고하게 수행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으시던 청하큰스님을 떠올리며 나는 능파각을 건너갔다. 아아, 청화 큰스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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