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한 대로 이뤄지는 지고한 정원’, 시가체에 도착하다
▲시가체 도심에 세워진 자전거 타는 동상에 올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티벳소녀와 소년. 해발 4000m에서 천천히 걷다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거구로 가는 느낌이 든다.
5월 25일 오후 5시 30분, 티벳 제2의 도시 사가체에 도착했다. 태양이 뜨겁고 매우 거조하다. 해발 3900m로 라싸보다 300여 미터 높은 지역이지만 고소증이 적응이 되어 걷는데 별로 지장이 없다. 지리산 정상보다 두 배나 더 높은 지역이 아닌가?
해발고도를 3900m라고 표기하는 것보다 3.9km로 말을 하면 어느 정도 고도 인지를 더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티벳지역은 한 번 들어가면 해발 고도가 4km 전후가 된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마치 하늘 길을 걷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높은 하늘 길을 아내는 나 보다 더 잘 걷는다.
▲해발 4000m의 고도를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내
“여보, 천천히 좀 걸어요.”
“지금 천천히 걷고 있는데요?”
“더 천천히… 숨이 차서 따라잡기가 힘이 드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내가 환자고 아내가 보호자가 된 것 같다. 이렇게 우리가 해발 4000m 고도를 별로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것은 지난 한달 동안 중국 차마고도지역을 계속해서 트레킹을 하며 왔기 때문이다. 이런 페이스라면 아내는 에베레스트도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시가체는 최근 네팔대지진의 여파로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시가체 지룽현의 도로변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네팔강진은 티벳 지역에도 상당한 피해를 입게 했다. 10만 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시가체 지역은 지난달 네팔 지진 당시 6천여 명의 주민이 고립되었다가 구조되기도 했다. 당시 티벳 전역에서는 25명이 숨지고 12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웅장하게 둘러선 성곽 아래 들어선 시가체 풍경
웅장하게 둘러쳐진 시가체 성곽 아래 자리를 잡은 시가체의 중심은 단연 타실룬포사다. 우리는 티벳탄 파머 게스트하우스(Tebetan Farmer's Hotel) 짐을 풀고 타실룬포사 향했다. 말만 호텔이지 흙벽돌로 지은 허름한 창고나 다름없다.
▲우리가 머물렀던 티벳탄 파머 게스트하우스(Tebetan Farmer's Hotel)
시가체(Xigaze)는 ‘뜻한 대로 이뤄지는 지고한 정원’이란 의미로 ‘시가 삼트 두페이 트모’의 약칭이다. 시가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브라마푸트라 강이 흐르고, 남쪽에는 히말라야 산맥이 우뚝 솟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산이 있다. 시가체는 티벳 서남부의 농축산물 집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티벳의 수도 라싸가 관세음보살의 화신 달라이라마의 도시라면, 시가체는 아미타불의 화신인 판첸라마의 도시다. 판첸라마(Panchen Lama)는 겔룩파의 법맥을 따르는 승려다. 달라이라마 5세가 그의 스승 롭상 갸초 걜첸(1569~1662)의 환생자를 찾는 데서부터 판첸라마의 계보가 시작되었다. 5대 달라이라마는 자신의 스승인 추키 겐첸이 죽자 그의 전세영동(轉世靈童, 환생자라는 의미)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쫑가파의 제자 케도프제를 제1대 판첸라마로 선정한 후 윤회를 거듭하며 제10대 판첸라마까지 이어진다.
판첸라마와 달라이라마는 각자 환생을 거듭하면서 판첸라마가 어릴 때에는 달라이라마가 스승이 되고, 달라이라마가 어릴 때는 판첸라마가 스승이 되어 서로 가르침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판첸라마는 달라이라마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서열이다.
1959년 제14대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을 떠나지만 10대 판첸라마는 중국의 식민통치가 된 시가체에 그대로 남았다. 그는 중국 문화혁명 당시에도 중국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독립을 부르짖다가 실각을 하여 10여 년 동안 감금을 당했다. 감금이 풀린 후에도 티벳의 독립을 위해 힘쓰다가 1989년 1월 28일, 타실룬포사에서 행사를 주관하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입적을 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중국정부를 비판하는 연설을 했기 때문에 암살을 당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가 입적을 한 후 6년이 지난 뒤, 14대 달라이라마는 1989년 4월 25일 암도지방에서 태어난 겐뒨 최끼 니마를 제11대 판체라마로 지명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6세의 어린 소년인 판체라마를 정치범으로 납치하여 가족들과 함께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금해 버렸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11대 판첸라마는 지금까지 행방을 알 수가 없다.
▲6세의 11대 판첸라마(자료 : 아리러브 티벳)
그리고 중국정부는 1990년생인 ‘갤첸 노르부’를 11대 판첸라마로 내세워 그들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 가짜 판첸라마는 진짜 환생자와 같은 고향인 티베트 북부 나취지역 '하리종' 출신으로 공산당원인 티벳인 부모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한다. 가짜 판첸라마는 어릴 때부터 베이징에서 교육을 받고, 역대 판첸라마가 머물던 타실룬포사에 머물지 않고 주로 북경에 있는 티베트 불교 사원에 머물다가 중국 정부가 필요하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주인을 잃은 시가체는 라싸에 비해 황량하고 쓸쓸하다. 거리에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나는 구시가지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로 헐떡거리면서 아내의 뒤를 쫓아갔다. 드디어 금빛 찬란한 타실룬포사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타실룬포사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아내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시가체 거리 풍경
어찌 저 여인을 아픈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오히려 피골이 상접한 내 모습이 환자처럼 보일 뿐이다. 아내는 참으로 여행체질로 타고난 사람인 모양이다. 집에 있으면 툭하면 병원 응급실 신세를 지기 마련인데 여행만 떠나면 생생 날아다닌다. 아마 평생처럼 여행만 해야 하는 체질일까?
▲해발 4000m 고지에서도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는 아내의 모습
해발 4000m에서 느림의 미학을....
타실훈포사로 들어가는 광장에는 자전거를 타는 동상과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그린 동상이 서 있다. 염주를 목에 건 어머니와 역시 염주를 팔목에 낀 아이의 모습이 천진난만하게만 보인다. 그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청동상 앞에서 여유로운 포즈를...
그 옆에는 자전거를 타는 동상이 서 있다. 이 높은 지역에 자전거를 타는 생뚱맞은 동상은 왜 세웠을까? 자전거 동상에 앉아있는 소녀의 모습이 천진스럽게만 보인다. 자전거 동상 앞에는 티벳 전통 복장을 한 남자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는 모습을 한 동상이 서 있다. 마치 자전거를 타고 온 서양인이 티벳인에게 길을 물어보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렇게 높은 지역에서 자전거 타는 동상을 보니 마음이 느긋해진다. 시간이 거꾸로 느리게 가는 느낌이 든다. 느림의 미학! 티벳에서는 저절로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 흙벽에 하얀 회칠을 한 건물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시가체는 라싸보다 훨씬 티벳다운 풍경이다.
▲라싸보다 훨씬 티벳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시가체의 풍경
시가체의 중심가를 벗어나면 유채 밭과 감자밭이 나타난다. 우마차들이 들판을 가로질러 다니고 농부들이 한가롭게 당나귀를 몰고 간다. ‘뜻한 대로 이뤄지는 지고한 정원’이라는 의미를 가진 시가체의 풍경이다. 우리는 느린 동작으로 구시가지에서 타실룬포사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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