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도록 아름다운 지구의 속살을 거닐다
[중국귀주성기행] 수많은 폭포가 숲을 이루고 있는 마링허 협곡 ▲마링허협곡에 걸린 무지개
마링허 협곡에 도착을 하여 계곡 밑으로 빠져 들어가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하늘에 사흘 맑은 날이 없다'는 귀주성이 아닌가! 짧은 여행기간에 귀주성에서 햇빛을 보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여행하는 동안 내내 흐리고 어두운 날씨 탓인지 갑자기 눈이 부셨다. 어둡고 음침한 계곡에 눈부신 햇빛이 비추이니 눈이 갸름해진다. 고향이가 햇빛을 보면 눈이 갸름해지는 이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우! 저기 무지개 좀 봐요!" "와아~ 푸른 이끼 벽에 걸린 무지개가 참으로 기기묘묘하네요!" ▲폭포의 숲을 이루고 있는 마링허대협곡
정말 기기묘묘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무지개다. 수직 절벽에는 태곳적부터 거북이 등가죽처럼 끼어온 석회암 위에 푸른 이끼가 끼어있고, 그 위에 실핏줄 같은 폭포가 물안개처럼 현란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지개는 바로 그 실핏줄 폭포에 서려 있었다. 켜켜이 층을 이룬 이끼 절벽에 한줄기 시퍼런 칼날처럼 서늘하게 그어져 있는 무지개는 참으로 아름답다. ▲협곡 절벽에 거북이 등가죽처럼 켜켜이 퇴적된 석회암과 이끼 자연은 이처럼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저 무지개는 사흘 맑은 날이 없다는 귀주성에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풍경이다. 황과수대폭포를 돌아보며 나는 내심 멋진 무지개가 걸린 폭포사진을 찍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무지개가 걸린 황과수폭포가 내내 머릿속에 잠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풍경을 나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실 날 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황과수폭포를 돌아보았지만 끝내 무지개는 나타나지 않았다. 날씨가 계속 흐리고 햇빛이 비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이란 풍경을 찍는 것이 아니라 때를 찍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도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꽝이다. 그런데… 이곳 마링허 협곡에서 나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횡재를 만나고 있었다. 비록 거대한 무지개는 아니지만 태고를 숨 쉬고 있는 절벽에 서린 한줄기 무지개는 나를 기쁘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마치 물안개가 낙차를 하며 떨어지는 절벽에 영롱하게 서린 무지개는 말과 글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나는 폭포에 걸린 무지개를 내 작은 네모난 상자에 마음껏 잡고 또 잡았다.
마링하 협곡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고 깊다. 흥의시 동쪽 6km 지점에 위치한 마링허 협곡은 약 7,000만 년 전 지각운동과 하천의 침식에 의해 생성된 길 74.8km의 대협곡이다. 협곡의 깊이도 200~400m로 깊다. 가장 깊은 곳은 500m에 달한다. 만봉호 유람선에서 점심을 먹고 뱃놀이를 한 후라 몸이 나른해져 낮잠이나 한숨 때렸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시간에 도착한 마링허 입구의 풍경은 실망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입구를 지나 협곡에 도착하여 미끄러운 돌계단을 조심조심 걸어내려 가자 사방에서 으르렁 거리는 폭포 군과 아찔한 계곡 풍광이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어둑어둑한 계곡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폭포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염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마치 폭포가 숲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랄까?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처럼 넓고 거대하지는 않지만 카르스트 지형이 빚어내는 기묘한 경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펼쳐져 있다. 석회암 암석들이 풍화작용을 거치며 켜켜이 만들어낸 절벽은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법한 기기묘묘한 풍경을 나타내고 있었다. 푸른 이끼가 낀 벼랑에는 기묘한 버섯처럼 생긴 석회암 퇴적물이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고 있어 무시무시한 느낌마저 든다.
협곡 양쪽은 가파른 절벽이 서로 맛 서고, 계곡의 물살은 급류를 이룬다. 급하게 떨어지는 폭포소리, 노도처럼 흘러내리는 급류가 계곡의 암벽에 부딪치며 내는 요란한 소리가 귀청을 떨어져 나갈 것처럼 때렸다. 협곡 위에서 하천바닥을 바라보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낙수가 깊게 홈통을 파 놓은 것처럼 좁고 깊었다. 물살이 급하게 흘러내리는 깊은 계곡은 땅이 갈라진 틈새처럼 보였다. 그래서 일까? 중국 사람들은 마링허 협곡을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라고 말한다. 마링허 협곡을 걷다보면 마치 상처가 난 지구의 속살을 들여다보듯 걷는 느낌이 든다. 우주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지구는 곳곳이 아프다. 나는 지구촌 곳곳을 여행하며 아픔으로 몸부림치는 지구의 모습을 목격해 왔다. 온난화 현상으로 점점 녹아내리는 히말라야 설산과 파타고니아의 빙하, 쓰나미가 덮친 인도의 벵골만,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네팔의 대지진… 이처럼 지구는 몸살을 하며 곳곳이 아프다. 그러나 아픔 속에서도 지구는 고통스러운 상처에 새살을 돋우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은 아픈 만큼 성숙 해진다'는 말이 있다. 지구도 아픈 만큼 성숙해 지는 것일까? 지구는 그 아픈 상처에 다시 새살을 돋아내어 아름답게 아물어 간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는 것처럼 지구는 고통스런 상처 속에서 몸부림을 치며 새살을 뻗히고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바라보는 마링허 협곡의 무지개가 그렇다! 태고를 숨 쉬고 있는 이끼 낀 절벽에 서린 무지개는 정말이지 슬프도록 아름답다. 7천 만 년 전 지구는 이 지역에 땅이 갈라지는 아픔을 겪어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픈 상처에 지금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풍경들이 다시 잉태되고 있다. 수백 개의 폭포, 수백 개의 하천, 수백 개의 동굴로 되살아나며 인간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해주고 있다. ▲귀주성 마링허협곡은 수많은 폭포가 숲을 이루고 있다.
협곡을 걷는 길은 절벽 중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인간은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상처를 보기 위해 또 하나의 작은 상처를 내서 길을 만든 것이다. 이 길을 만들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고 포클레인으로 후벼서 땅이 갈라진 상처에 또 하나의 상처를 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상처 위를 희희낙락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러나 자칫 한발자국이라도 헛디디면 저 널름거리며 흘러가는 성난 파도에 휩쓸려 물고기 밥이나 까마귀밥이 되고 말 것이다. 협곡을 잘라내 길을 내는 것도 부족하여 곳곳에 다리를 건설하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놓고 있다. 출렁다리와 데크, 자동차가 다니는 다리가 협곡의 중간과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저 다리를 만들기 위해 인간은 이미 상처가 난 절벽에 쇠파이프를 박고 콘크리트 기둥을 세워 또 다른 상처를 내고 있다. ▲마링허 협곡에 아슬아슬하게 건설된 다리와 엘리베이터
저 수없이 떨어져 내리는 폭포는 고통으로 신음을 하며 흘러내리는 지구의 눈물일까? 계곡을 흘러내리는 성난 파도는 인간에게 다시는 상처를 내지 말라는 경고일까? "형님, 이 폭포를 보니 연천 동이리 주상절리 폭포가 생각나네요!" "아하, 그러네. 작은 규모지만 동이리 주상절리도 비만 내리면 수많은 폭포가 생겨나지……." ▲연천군 둥이리 주상절리 폭포를 연상케하는 폭포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걸어가며 폭포를 감상하던 병용 아우가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한 말이다. 내가 실고 있는 연천군 동이리 임진강변 주상절리도 규모는 작지만 이곳 마링허 협곡과 유사하게 절벽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장마철에 비가 내리면 한시적으로 수많은 폭포가 흘러내리곤 한다. 최근 동이리 주상절리도 경기도에서 '평화누리길'을 건설한다고 절벽 밑을 파헤쳐 길을 내 놓고 있다. 그러나 어설프게 건설된 평화누리길은 곳곳이 상처투성이다. 절벽 밑을 파헤친 길은 장마철만 되면 곳곳이 깊게 패이고 절벽의 일부가 허물어져 내려 위험하기 짝이 없다. ▲마링허협곡 폭포
한탄강과 임진강을 어우르는 연천 전곡 일대의 주상절리는 약 30만 년 전에 용암이 흐르다가 물과 접촉하여 침하작용으로 만들어진 절벽이다. 임진강 주상절리도 지구의 아름다운 하나의 작은 상처이다. 또한 삼팔선상에 분단의 아픔을 담고 있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상처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풍경들에게 무엇으로 보답을 할 수 있을까? 지구는 우리 몸과 같이 살아서 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체다. 폭포가 숲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마링허 협곡을 거닐며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지구를 우리 몸처럼 아끼고 보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내 맴돌았다.
(중국 귀주성 마링허 협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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