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어머니
꽃보다 더 아름다운 어머니 마음
카트만두에 도착한 첫날밤, 시토울라 가족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꿀잠을 잤다. 네팔은 한국보다 3시간 15분 늦게 간다. 어디선가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트만두에도 닭을 키우나? 시차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눈이 일찍 떠진다. 농촌에 살고 있는 나는 한국에서도 보통 5시 이전에 일어나는 것이 나의 생활습관이다. 시토울라는 아직 곤히 잠을 자고 있다.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리다 밤늦게 잠자리에 들더니 피곤한 모양이다.
기분이 상쾌하다. 천정을 쳐다보니 벽에는 가족들의 사진이 가족의 역사를 말해주듯 전설처럼 붙어있다. 시토울라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손자들에 이르기까지… 시토올라 가문의 전설적인 표정이 나를 굽어보고 있다. 그만큼 가족들을 소중히 여기는 시토울라 가문의 마음이 엿보인다.
그는 한국에서도 네팔에서도 매우 바쁜 사람이다. 그를 깨우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슬며시 일어나 침대에 앉은 채로 고요히 명상에 들었다. 잠시 히말라야의 눈 덮인 산들이 떠오르고, 지진으로 무너지는 처참한 영상도 떠오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밤을 새웠을까?
오, 신이여!
부처님이시여!
관세음보살이시여!
지구상에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 주소서.
히말라야에서 먼동이 터 오르고 날이 점점 밝아지자 나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시토울라의 집은 3층에 꽤 넓은 테라스가 있고,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나는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주변에는 세차장도 보이고, 학교도 보인다. 세차장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종업원들이 일어나 부지런히 세차를 하고 있다. 창공은 맑고 푸르다. 저 멀리 히말라야의 눈 덮인 산이 보일 것만 같다.
옥상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다. 제라늄을 비롯해서 화분 가득 꽃들이 미소를 짓고 있다. 심호흡을 하며 아침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시토울라 어머님이 올라오셨다. 나는 어머님께 합장을 하며 “나마스테”하고 아침인사를 올렸다. 어머님도 “나마스테”하며 합장을 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마치 소녀처럼 티가 없어 보인다.
나마스테는 ‘내 안에 신이 어머니 마음속의 신에게 경배를 드립니다’란 뜻이란다. ‘나마스테’의 ‘나마’는 나는 고개를 숙이다를, ‘스’는 ~에게, ‘테’는 당신을 뜻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나는 당신에게 고개를 숙인다’라는 뜻이다. 세상에 태어남과 만남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며, 당신을 가능하는 모든 것에 경배를 드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어머님은 화분에 정성스럽게 물을 천천히 주었다. 물을 주면서 나에게 무어라고 네팔어로 계속 말씀을 하신다. 아마 짐작컨대 "꽃을 좋아하고, 꽃을 키우는 것이 취미이며, 매일 아침 물을 준다”는 뭐 그런 내용인 것 같다. 꽃을 키우는 마음은 아름답다. 꽃처럼 곱게 나이 들어가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물을 다 주신 어머님은 나에게 아래층으로 내려가자고 하신다. 세상의 어머니님들은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
부모는 백 살이 되어도 여든 살 아들을 어린아이로 본다
아래층으로 들어가니 시토울라가 그새 일어나 앉아서 전화를 받고 있다. 아마 아침 일찍부터 전화가 걸려온 모양이다. 그는 스마트 폰을 무려 3대나 들고 다녔다. 각자 용도가 다른 모양이다. 한손으로 전화를 받으면서도 다른 한손으로는 벨소리가 울리는 또 다른 스마트 폰을 받았다. 원, 꼭 그렇게 바쁘게 살아야만 할까? 그런 사이 시토울라 어머님은 차를 내오고 과일을 쟁반에 담아왔다. 그리고 무슨 갈고리처럼 생긴 작두모양의 쇠 날을 방바닥에 놓으시더니 그 걸로 과일을 깎았다.
저 우악스럽게 생긴 작두 모양이 네팔 전통 부엌칼이라고 한다. 공룡 모양 같기도 하다. 아마 대대로 물려온 무척 오래된 칼인 것 같다. 칼자루가 새의 몸통처럼 생겼고, 칼날은 기러기목처럼 길고 비스듬하게 앞으로 늘어져 있다. 칼날은 안쪽으로 나 있는데 어머님은 그 칼날로 과일을 깎았다. 내가 보기엔 위태위태하기 그지없는데, 어머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과일을 깎아서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과일을 깎아놓고 나에게 어서 먹으라고 손짓을 하고는 전화를 붙들고 있는 아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샐 사이 없이 뭐라고 아들에게 어린아이 타이르듯 말을 하고, 아들은 어린아이처럼 그저 빙그레 웃으며 전화를 주고받는다. 뭐랄까? 백 살 어머니가 여든 살 아들을 어린아이 다루듯 걱정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어머니의 표정이 다소 안타깝고 불안해 보인다. 분위기로 보아 아마 이런 말씀인 것 같다.
“우리 아들은 너무나 바빠요. 이야기를 할 틈도 없이 저렇게 계속 전화를 받고 있어요. 원 저렇게 바쁘니 아들이 건강이 걱정이 된답니다. 몸도 너무 많이 불어났어요. 아마 운동을 할 시간도 없나 봐요. 고향에 오면 좀 쉬어야 할 텐데 더 바빠요. 그래서 아들의 건강이 늘 걱정이 된 답니다.”
내가 보기에도 시토울라는 너무나 바쁘다. 나중에 시토울라에게 물어 보았더니 거의 80%는 내 짐작이 맞는다고 한다. 그도 네팔에 오면 어머님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 늘 미안하다고 한다. 어머님은 아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시는데 상황이 그렇지를 못하다는 것. 모처럼 오면 찾아오는 사람도 너무 많고, 할 일도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3층 현관에서는 시토울라 아버님이 오늘 우리들이 장학금 후원학교로 가지고 갈 짐을 포장을 하고 계셨다. 경비행기에 짐을 싣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박스에 나누어 포장을 해야 한다. 포장을 하시는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사실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포장을 하시는 아버님을 거들었다.
“제가 오면 늘 아버님이 고생이지요. 네팔에 오면 가져온 짐도 많고 가져갈 짐도 많아요. 그런데 내가 너무 바빠서 짐을 포장하지 못하고 그 일을 늘 아버님이 다 하시게 되요.”
아버님은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학교에 가지고 갈 짐을 7개의 박스로 나누어 정성스럽게 포장을 했다. 그래도 일을 하시는 모습이 매우 즐거운 표정이다. 심신이 매우 건강해 보이시는 아버님은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기꺼이 하시겠다는 표정이다. 보살이 따로 없다. 남을 위해 머무름이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이 보살이 아니겠는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머무른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금강경의 가르침이 섬광처럼 지내간다.
한국에 있는 아들을 위해 매일 기도를 하신다는 어머님
공항으로 떠날 시간이 되자 시토울라 어머님이 내 이마에 하얀 띠카(Tika)를 찍으며 축복을 내려 주셨다. 오늘아침에 찍어주는 띠카의 색깔은 붉은 색이 아니고 하얗다. 쌀로 만든 띠카다. 나는 무릎을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어머님의 축복을 받았다. 관세음보살이 따로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은 시토울라 어머님이 나의 관세음보살이시다.
어머니는 시토울라의 이마에도 띠카를 찍어주며 축복을 내려 주셨다. 어머니로부터 축복의 티카를 받는 그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그는 합장을 하고 어머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아마 아마 던야바드, 던야바드(어머니 어머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스런 어머니와 아들의 성스러운 순간이다. 그의 표정에는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란 의미가 가득 담겨있다.
네팔사람들은 80%가 힌두교를 믿는다. 시토울라 가족도 힌두교를 믿는데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힌두교 신자인 것 같다. 네팔의 가정집에는 거의 집집마다 앞마당에 소형 신전을 모시고 있다. 부엌이나 방, 작은 가게 안에도 소형 박스 같은 것으로 신전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버스나 택시, 심지어는 릭샤 안에도 가네샤 신이나 시바 신을 모시는 이동식 신전이 있다. 네팔 사람들은 자나 깨나 종교의 눈을 뜨고 살아간다. 종교의식이 몸에 늘 배어있다.
카트만두에 있는 시토울라의 집 3층에도 작은 신전이 있었다. 이마에 띠카로 축복을 내려주신 어머님은 나를 작은 신전으로 안내를 했다. 작은 신전에는 힌두의 수많은 신들이 빼꼭히 들어차 있다.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두루가, 가네쉬 신 등. 힌두교의 신은 3억3천이나 있다고 하더니 과연 이 작은 신전에도 많은 신들이 모셔져 있다.
어머님은 이 신전에서 아침과 저녁은 물론 수시로 푸자(pooja:기도의식)를 올린다고 한다. 특히 멀리 한국에 있는 아들 시토울라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드리신다고 한다. 20년 넘게 아들과 떨어져 있다 보니 늘 아들의 건강과 안전이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세게 어디를 가나 어머니들의 마음은 다 똑 같다.
나는 시토울라의 어머님 속에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님을 본다. 한국전쟁 당시 큰 형님이 군대에 계실 때 우리 어머님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올렸다. 들 샘에서 물을 길러와 사발로 한 그릇 지푸라기 위에 떠놓고 어머니는 신령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과 조상님께 비나이다. 우리아들 꼭 살아오게 해주서소!” 어머님은 매일 목욕재계하시고 동백기름으로 머리를 곱게 감으시고 참으로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리셨다.
그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큰 형님은 정말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셨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큰 형님은 논에서 일을 하다가 16살의 나이에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1955년까지 5년 동안이나 백마부대 최전선에서 전쟁에 참여했다. 수십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기적처럼 살아남은 것은 어머님께서 지극정성으로 드린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큰 형님은 <향수>라는 타이틀을 적어놓고 5년 동안 전선일기를 썼다. 그 일기장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나 큰 형님은 전선에서 동상을 입는 등 골병이 들어 49세를 일기로 어머님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님은 식음을 전폐하시고 몇 날 며칠 동안 통곡을 하시며 울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세상의 어머니들 마음 다 똑 같다. 지금 시토울라 어머님의 마음이나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우리 어머님의 마음이나 자식을 무한대로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똑 같다. 우리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가신지도 30여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 사진 앞에 앉아 가끔 “어머니!” 하고 속으로 불러 본다.
어머니보다 더 사랑을 주는 분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어머님을 생각하면 잘 해드리지 못한 불효 막급한 마음만 떠오른다. 그러니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 해야 한다. 이곳 세계의 지붕하고도 카트만두에서 시토울라 모자간의 다정스러운 모습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자파로 가는 비행기를 타로 가기 위해 화물차에 짐을 싣고 떠나는 우리들에게 어머님은 나와 아들에게 정원에 있는 꽃 한 송이를 따서 나와 아들에게 건내 주신다.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우신지 자동차 유리창을 들여다보며 잘 다녀 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꽃보다 더 아름다우신 어머니 마음을
어이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아들을 위해 늘 기도하시는 어머니 마음을
그 어디에다 견줄 수 있겠습니까?
무한대로 사랑을 주시는 어머니 마음을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마, 아마, 던야바드! 던야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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