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길로 접어든 정글지대
엄청 덥다. 조금만 움직여도 등골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카트만두도 덥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곳 자파에 오니 카트만두는 냉장고나 다름없다. 같은 위도상의 네팔 땅이지만 고도에 따라 기온이 달라진다. 카트만두는 해발 1300미터다. 그런데 이곳은 해발 100미터 정도다. 무려 13배나 밑으로 내려왔으니 적도의 땅은 더울 수밖에 없다.
▲40도를 웃도는 정글지대. 소들이 한가롭게 길을 건너고 있다.
100미터 올라갈수록 0.65도의 기온이 내려간다. 13배나 내려왔으니 기온이 8.45도가 더 올라간다(13×0.65=8.45도). 시토울라의 말에 의하면 이 지역은 원래 지독한 정글지대였다고 한다. 그 정글지대를 유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하나 농지로 개간을 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인도 국경과 가까운 네팔 터라이 지역에 해당된다. 기록에 의하면 옛날 영국군이 터라이 지역을 통과할 때에는 말라리아모기에 물릴까봐 야영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더구나 4월과 5월은 1년 중 가장 더운 시기에 해당되는 계절이다. 과연 내가 버티어 낼까?
고행이 따로 없다. 이 길이 바로 고행 길이다. 낡은 봉고차에는 에어컨이 없다. 자동차의 문을 열고 달려야만 그나마 자연풍이 창밖에서 들어온다. 들어와 보아야 더운 바람이지만 그래도 그 바람이 제법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가다가 서면 뜨거운 지열과 푹푹 찌는 훈풍이 찜통을 방불케 한다.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사계절이 있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큰 축복을 받고 태어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에어컨도 없는 봉고차 안은 짐이 가득차 더욱 덥다.
더운 나라에 태어나신 부처님께서는 걸인처럼 맨발로 탁발 수행을 하지 않았는가? 따지고 보면 이 더운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수행자라는 생각이 든다. 더운 땅에서 수천 년 동안 생로병사의 역사를 이루고 살아오질 않고 있는가. 그런데 잠시 며칠 동안 봉사를 하러온 처지에 덥다고 하면 안 될 일이다.
그래도 이번이 세 번째 방문하는 길이라 제법 익숙해진 길이다. 자파(Jhapa)의 바드러푸르 공항에서 더먹(Damak)까지는 약 70km의 거리다. 강을 건너고, 숲을 지나고 벌판을 지나간다. 자전거와 릭샤, 소와 사람들이 뒤범벅이 되어 붐빈다.
10루피의 행복
드디어 더먹이다. 벌써 세 번째 오는 더먹은 내게 제법 익숙한 거리다. 릭샤와 오토바이, 자전거, 리어카 찻집, 노점상, 빽빽거리는 타타 자동차들, 거미줄 같은 전깃줄… 그 중에서 나는 1달러의 빚을 졌던 노점에서 찌아(인도의 짜이를 네팔에서는 찌아라고 부름)를 팔던 찻집에 눈이 꽂혔다. 네팔 사람들은 아침에 거리의 찻집에 모여 차 한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거리의 찻집에서 찌아를 파는 콧수염의 남자
5년 전 나는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다가 콧수염을 기른 그 찻집 남자주인에게 한 잔의 찌아를 주문했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앉아 찌아를 맛있게 마시고 찻값을 지불하려고 하니 내 수중에는 마침 루피가 없고 달러만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자말자 바로 환승을 하여 더먹으로 날아왔기 때문에 환전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찻집 주인에게 1달러짜리 지폐를 건네주자 그는 1달러짜리 지폐를 이저리 살펴보더니 이런 돈은 받지 않는다고 손을 훼훼 저었다. 그러면서 찻값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찻값을 4년 후인 2014년 더먹을 다시 방문했을 때 비로소 10루피(120원 상당)의 외상을 수 있었다. 찻값은 그때나 지금이나 10루피였다. 그때 나는 차를 마시고 4년 전에 외상값을 합쳐서 20루피를 콧수염의 찻집 주인에게 건네주자 그는 손을 훼훼 저으며 10루피만 달라고 하였다. 그는 4년 전의 외상값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직한 찻집 주인은 10루피만 받겠다는 것이다. 돈을 받지 않는 그에게 나는 일행들을 불러서 열잔 정도의 차를 팔아주었다.
▲세번째 방문한 더먹의 거리
그런데 오늘은 마음이 따뜻한 콧수염의 남자를 거리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 너무 늦은 시간이라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다가 오늘은 차를 마실 시간도 없었다. 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푸러마리마을로 가기 전에 티지야츄언(Tiiyachaun)에 있는 자나요티 초등학교(Janajyoti Primary School)를 방문하여 칠판과 컴퓨터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먹에 오면 나는 그 콧수염의 찻집 주인을 떠올리며 괜히 마음이 훈훈하고 행복해진다. 그를 생각하면 내 영혼이 왠지 따뜻해진다. 그는 거리에서 차를 파는 가난한 사람이지만 영혼이 부자인 사람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가난’이다. 가난은 우리들에게 물질적인 결핍이란 불편함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부족한 것들을 채우기 위해 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갖고 싶은 것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언제나 부족한 돈 때문에 시달림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돈을 벌면 벌수록 더욱 돈이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돈을 벌면 벌수록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옷, 더 좋은 가구, 더 좋은 카메라 등…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들보다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면 때로는 우리를 우울증과 상실감으로 몰아가고, 비관에 젖기 쉽다.
▲더먹의 거리표정. 사람들은 대부분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그런데 나는 네팔에 올 때마다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경제적인 안정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을 열망한다는 사실이다. 물질적인 욕구를 아무리 쫓아가더라도 일순간의 만족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연봉 몇 십억을 받는 부자들도 네팔에 오면 직장을 팽개치고 마음의 평온을 추구하는 순례자가 되기도 한다. 반드시 풍요한 물질이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나는 저 콧수염의 찻집 주인을 볼 때마다 나는 그보다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감사해야 할 것들을 이미 많이 가지고 있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게 된다. 가진 것에 감사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나를 반성하게 된다. 10루피의 외상 찻값을 받지 않는 콧수염의 남자는 마음이 ‘평온’한 자가 틀림없다. 나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미국의 복음 가수인 마할리아 잭슨의 말이 떠오른다.
“돈이 있으면 누구나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동전 한 닢이 없을 때 독립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시험이다.”
네팔의 가난한 아이들은 한 달에 1000루피(12,000원)이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1000루피는 이 아이들의 한 달간 생활비다. 그 생활비를 벌거나 가사 일을 돌보기 위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6년 전에 최초로 12명의 아이들을 선정하여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생활비를 지원했다. 6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들이 120명으로 늘어났다.
우리는 노트북에 네팔어 소프트웨어를 깔기 위해 잠시 컴퓨터 가게에 들렸다. 컴퓨터 가게에 노트북 30대를 맡겨두고 우리는 첫 방문학교인 자나요티 초등학교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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