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고 이쁜 내 아이들아!
이쁜 색시들의 면사포를 벗기며…
봄이 오면 나는 많은 아이들을 거느리게 됩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내 아이들과 조우를 합니다. 때로는 그들을 다독거려 주기도 하고, 다리를 만져주기도 하며, 밥을 먹여주기도 하며, 물을 마시게 해주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녀석들을 잘라주기도 하고, 때로는 뿌리째 근절시키기도 합니다. 그래도 녀석들은 다음 날 아침에 가보면 다시 내 아이들에게 얼쩡거리며 치근거리곤 합니다.
4월이 가고 5월이 오면 아이들은 시집을 보내도 될 정도로 부쩍 성장을 합니다. 그들을 보내기 정말 아깝고 싫지만 부득이 나는 면사포를 거두어내고 그렇게도 애지중지하고 아끼던 내 아이들을 하나둘 시집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서울에 아이들에게, 친구와 친척에게, 지인에게 시집을 가는 이쁜 아이들은 하얀 눈물을 흘리며 쥔장과의 이별을 서러워합니다.
6월이 새벽, 철원의 고대산 방향에서 붉은 아침노을이 드리워지기 시작합니다. 곧 붉은 태양이 솟아올라 올 것 같습니다. 전깃줄 위에 그믐달이 외롭게 걸려있습니다. 아내의 화단에는 야생화들이 으으으~ 눈을 비비면서 기지개를 켜고 있군요. 방실방실 웃으며 아침인사를 하는 꽃들의 미소가 아름답기만 합니다. 6월의 여왕 장미가 함박웃음을 웃으며 인사를 건넵니다. 노루오줌이 밤새 이불에 오줌을 쌌는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수그리고 있습니다. 곧 터질 것만 블루베리 열매가 아침 태양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아마 더 많은 햇볕을 달라고 애교를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꽃들의 인사를 받으며 채마밭으로 갔습니다. 면사포를 쓴 내 이쁜 아이들이 싱그럽기만 합니다. 케일 잎에 이슬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군요. 녀석들은 나를 반가워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을 가장 아껴주면서도 무정하게 멀리 시집을 보내버리는 쥔장이니까요.
나는 하얀 면사포를 거두어내고 이쁜이들만 골라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낼 준비를 했습니다. 내 이쁜이들은 쥔장과의 이별을 서러워하며 여기저기에 하얀 눈물을 뿌리고 있습니다. 이쁜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봅니다.
브로콜리야, 비트야, 청상추, 적치마상추, 오크상추, 신선초, 쑥갓, 로메인 상추, 양상추, 겨자상추야, 그리고 케일아, 너무 서러워하지 마라, 너희들은 더 좋은 주인을 만나 그들의 자양분이 되어 더 좋은 일을 할 테니까?
네, 허지만 쥔장님과 이별을 하는 것이 너무나 서럽습니다. 그동안 먹여주시고, 키워주시고, 잠도 재워주시고, 매일 신선한 물을 마시게 해주시고, 아침저녁으로 귀여워 해주신 쥔장님과 떨어져 멀리 간다는 것이 너무도 슬픕니다.
그래, 나도 너희들을 보내기 싫지만 너희들이 시들기 전에 더 보람 있는 일을 하도록 그러는 것이니 너무 서러워하지 말아다오.
그래도 슬퍼요. 그동안 독한 약이나 제초제도 뿌리지 않고 이렇게 면사포를 씌워서 벌레들의 공격을 막아주며 저희들을 보호해주는 분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쥔장님처럼 저희들을 자상하고 따뜻하게 보살펴주신 분은 아무 곳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렇지만 이게 너희들의 운명이니 어찌할 수 없구나. 세상의 모든 만물은 언젠가는 다 해어지게 되어 있는 법이란다. 그래도 너희들이 더 시들기 전에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내야 하지 않겠니? 시들고 나면 너희들을 데려가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내, 쥔장님 잘 알겠습니다. 쥔장님께서도 부디 건강하세요. 흑흑흑…
그래, 걱정 말고 너희들도 잘 가거라. 언젠가는 다시 만 날거다.
나는 이슬비에 촉촉이 젖은 아이들을 가지런히 정돈하여 발과 손을 깨끗한 물에 담가두고 싱싱함을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이쁜이들을 귀여워해주며 데려갈 테니까요. 식물들은 자신의 온 몸을 내주며 인간에게 희생을 합니다. 나는 오늘 오후에 내 이쁜이들을 일부는 서울로, 일부는 지방으로 택배라는 가마를 태워서 시집을 보내려고 합니다. 이쁜이들은 그 가마를 타고 멀리 멀리 시집을 가겠지요.
동물이나 식물이나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은 모두 이별이 아쉽고 서러운 것입니다. 이쁜이들을 시집을 보냈지만 아직도 면사포 속에는 나를 사랑하고 따르는 내 아이들이 남아 있습니다. 꽁지 빠진 새들처럼 다소 보기가 민망하지만 나의 보살핌으로 곧 다시 풍부한 육체미를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을 마시게끔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고 다시 면사포를 덮어주었습니다. 녀석들은 내 자식이자 애인들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나에게 무한한 자양분과 희망을 줍니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이쁜이들이 태양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군요. 고맙다! 내 이쁜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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