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시카고 여행

바람의 도시 시카고 도착...21년 만에 만난 감격의 재회

찰라777 2016. 12. 15. 19:13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시카고에 도착하다

 

▲미시간호수에서 바라본 시카고


928일 밤 8시시 20,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같은 날 밤 740분이다. 무려 13시간의 긴 비행 끝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것이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문명의 이기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오대호의 영향으로 바람이 많이 불어와 '바람의 도시(Windy City)'라고 불리는 시카고는 미국 중·북부 지역의 정치, 경제, 물류의 중심 역할을 하는 미국의 제3대 도시다. 일리노이 주에 속하는 시카고 당을 밟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흑인 오바마가 꿈과 희망을 일구어 간 도시 시카고! 그런가 하면 일리노이 주는 링컨대통령의 정치적인 고향이기도 하다. 숙명적일까? 링컨 탄생 200주년 기념의 해인 2009,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링컨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기차를 타고 워싱턴에 입성했다. 1863년 링컨대통령이 흑인의 노예해방을 선언한 후 246, 흑인 출신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위대한 사람들의 위대한 여정이다! 그런데 나는 일생동안 무엇을 했을까? 하하,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아내의 손을 잡고 이곳 시카고로 여행을 떠나온 것 자체가 큰일을 해낸 것 아닐까? 범부의 삶은 그런 것이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시카고 다운타운

 

오헤어 국제공항은 북미에서도 가장 바쁜 공항의 하나로 입국장은 많은 승객들로 붐빈다. 미국의 입국수속은 까다롭다. 출입국심사관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훑어보며 마치 죄인을 취조를 하듯 이것저것 묻는다. 이래서 나는 입국이 까다로운 미국에 가는 것이 싫다.

 

시카고엔 왜 왔느냐? 관광을 하러 왔다. 시카고에 며칠간 머무르나? 이틀간 머문다.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느냐? 캐나다로 간다. 캐나다는 왜 가느냐? 단풍을 보러 간다. 캐나다에선 며칠간 머물 예정이냐? 10일 정도다. 그 다음엔 어디로 가느냐?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이런 시시콜콜한 질문을 퍼붓더니 얼굴 사진을 찍는 것도 부족해 다섯 손가락 지문까지 다 찍으라고 한다. 정말이지 임국심사대에 서면 인민재판을 받는 기분이 들어 여행기분이 싹 잡치고 만다. 강대국일수록 입국 심사는 까다롭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가니 훤칠한 키에 레슬링 선수처럼 몸집이 좋은 조상환 현지 가이드가 미소를 머금으며 반겼다.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고 믿음직한 느낌이 든다. 까다로운 입국심사관과는 대조적으로 친숙한 그를 만나니 기분이 좀 누그러든다. 이번에 참좋은여행사를 통해서 함께 온 캐나다 단풍 단체여행객은 30여명이다. 오늘밤은 시카고 야경을 관광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룹과 떨어져야 한다.

 

미스터 조, 우린 오늘 밤에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야 하는데.”

그곳이 어디에 있지요?”

노스 링컨 웨스트 포스터 애비뉴에 있는 다래정이란 한국식당입니다.”

, 저도 그 식당을 압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저녁 가는 시카고 다운타운과 방향이 다른데 어떻게 하죠?”

택시를 타고 가서 동창생을 만난 후 호텔로 갈게요.”

괜찮겠어요? 시카고엔 와 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초행길이요. 허지만 꼭 만나보아야 할 사람이라 가야만 하오.”

그럼조심하시고, 오늘 저녁 꼭 호텔로 오세요. 내일 아침에는 일찍 움직여야 하니까요.”

 

비행기에서 만난 시카고 교포


다래정은 교포사회에서는 꽤 이름이 나 있는 모양이다. 인천공항에서 시카고로 오는 비행기 옆 좌석에서 우연히 시카고에 43년 간 살고 있다는 교포를 만났는데, 그도 다래정을 안다고 했다. 금년에 75세인 그는 젊은 날에 열심히 일을 해서 저축한 돈으로 아내와 둘이서 세계의 이곳저곳을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고국인 한국과 중국, 캄보디아를 여행하고 시카고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여행이야기기로 꽃을 피웠다. 여행자들은 여행이야기를 하다보면 십년지기처럼 금방 가까워진다. 그는 내가 아내와 단 둘이서 세계일주를 했다는 말을 듣고 무척 놀라워했다. 그것도 아픈 아내와 함께 라고 했더니 더욱 놀라워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지요?”

하하, 아내는 죽어도 좋다고 할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또 죽기 전에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지요. 그런 아내의 소원을 좇아 나야 그저 용기를 냈을 뿐입니다.”

용기라, 그 용기를 낸다는 것이 실상은 어려워요. 저도 몇 번 배낭여행을 시도하려고 생각했다가 그 용기가 없어서 그만 두고 했지요. 아직 남미 여행을 가지 못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니 한 번 시도해 보아야겠습니다.”

누구나 한 번만 해보면 할 수 있습니다. 제 친구 매형님은 올해 78세인데 홀로 배낭여행을 다니고 있어요. 80세까지 100개국이 목표인데 거의 채워가고 있어요. 그 형님은 영어도 잘 못해요. 그런데도 용기 하나로 세계를 휘 젖고 다니고 있지요. 80세 되는 해에 나름대로 기록한 여행기를 엮어서 세계일주 여행기를 책으로 펴내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참 대단하군요. 저도 원래는 75세까지만 해외여행을 다니고 그만 다니려고 했는데 한 5년 더 다니려고 하고 있어요. 보시다시피 아직은 두 다리로 성성하게 걸을 수 있으니까요.”

, 아주 건강하게 보이는데요. 지금 상태로는 90100세까지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100세시대가 열리니까요. 하하.”

하하, 그렇기는 합니다만

 

서로의 관심사가 여행이라는 공동분모이다 보니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시카고에 도착했다. 내가 공항에서 내려 다래정을 찾아간다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그 동창생이 공항에 마중을 나오겠지요?”

아니오. 운전이 설어서 공항에 나올 수가 없다고 하네요.”

저런, 시카고에 꽤 오래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20년 넘게 살았지요.”

그런데 아직도 공항에 오는 길을 몰라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 친구는 집에서 가까운 시장과 가게만 차를 몰고 다닌다고 하네요.”

아이고, 이해가 잘 안가는 데요. 가는 방향이 같으면 내가 모셔다 드릴 텐데.”

아이고,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시카고의 한국토속음식점을 다래정을 찾아가다

 

그는 택시 운전사에게 노스 링컨 포스트 애브뉴라고 말하면 다 안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다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와 해어져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생인 정단 씨와 함께 우리는 택시 정류소로 갔다. 한국에서 구글 지도를 통해 검색을 해보니 오헤어 공항에서 다래정까지 택시로는 30여분, 대중교통은 1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되어 있었다. 시간이 충분한 배낭여행길이라면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것이다. 오헤어 공항에서 시카고 시내로 접근하는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은 블루라인(Blue Line)지하철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지하철을 타면 1인당 5달러다. 그런데 택시를 타면 40~50달러에 팁은 별도다.



▲구글지도에 나온 다래정 간판

 

공항 택시 정류소로 가서 택시를 탔다. 운전사는 흑인이다. 나는 경계심을 놓치지 않고 노스 링컨, 포스트 애브뉴"라고 말했더니 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 거렸다. 30대로 보이는 젊은 흑인 운전수는 마음씨가 착해 보였다. 나는 마치 시카고에 사는 사람처럼 행세를 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야 나를 만만치 않게 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긴장을 풀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다.

 

나는 그에게 다래정의 주소(5220 N Lincoln Ave)가 적힌 지도를 보여 주었다. 구글지도에 시카고 다래정을 검색하면 전화번호와 사진까지 자세히 나온다. 다래정은 토니 수파마켓(Tony's Supermarket) 앞에 위치한 아주 작은 규모의 한국토속음식점이다. 세상은 참으로 편리해졌다.






I-90번 고속도로를 타고 오며 운전사와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그는 무척 순박하고 친절했다. 너무 겨계심을 품은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이민을 왔다고 했다. 부모님은 아직도 에티오피아에 살고 있고, 자신은 홀로 미국으로 건너와서 결혼도하고 시카고에서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화제를 대통령 선거로 돌렸더니 그는 당연히 클린턴 힐러리를 지지한다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는 유색인종에 대하여 차별을 하는 트럼프가 싫다고 했다.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어느새 다래정에 도착했다.

 

다래정 앞에서 내리니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생인 유영자 씨 부부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택시에서 내리자 영자씨의 남편이 재빨리 택시요금을 운전수에게 지불했다. 내가 만류를 하자 마중을 나가지 못해서 미안해요.” 하면서 그는 계면쩍게 웃었다. 아내와 정단 씨 그리고 다래정의 부부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의 재회를 나누었다. 실로 21년 만에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생들이다. 그들은 한국에서도 땅 끝에 가까운 전남 무안군 일로면 일로초등학교 36회 졸업생들이다. 얼마나 반갑겠는가?




 

다래정 부부는 시카고로 이민을 와서 21년 째 이곳 다래정 한곳에서 함흥냉면과 불고기, 비빔밥 등 한국토속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다래정 간판 밑에는 고향의 맛 그대로’, 함흥냉면이란 메뉴가 시골스럽게 쓰여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10여개의 식탁이 놓여있고, 벽에는 동양화가 몇 점 걸려 있다. 좁은 주방에는 냉면기계를 비롯하여 취사도구가 놓여있다. 한국의 시골 음식점 풍경을 연상시킨다. 작은 주방에서 세 명의 멕시코인 종업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노부부는 21년 간 이민생활의 애환과 함께 꿈을 키워 온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이들 부부를 종종 만난 적이 있었다.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생모임에 초대를 받아 부부동반으로 국내 여행도 여러 번 가기도 해서 유여사의 남편 김봉식씨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21년이란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는 머리칼은 희고 벗어져 어느덧 노인이 되어 있었다. 하긴 나도 이미 노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21년 만에 만난 감격의 재회

 

원래 영자 씨의 남편은 한국에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잘 나가는 교사였다. 그는 가끔 시도 쓰는 시인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하고,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영자 씨가 먼저 미국으로 떠나 머물게 되자 그만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중에는 그도 할 수 없이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오게 되었고, 영자씨의 음식솜씨를 살려 생업으로 다래정을 운영하게 되었다.



 

어쨌든오랜만에 재회를 하게 되니 정말로 감개가 무량했다. 영자 씨는 몇 년 전부터 우리들한테 꼭 시카고에 한 번 와달라고 아내와 전화통화를 자주하곤 했다. 사실은 이번 여행은 나의 칠순기념 여행이다. 아내는 나의 칠순여행을 캐나다 단풍여행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유여행으로 계획을 했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패키지 상품을 오게 되었다. 자유여행으로 오면 시카고 동창생 집에서 여유롭게 머물 수도 있고, 천천히 캐나다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1012일 날 큰 아이 영이의 수술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패키지 상품을 찾게 되었다. 마침 참좋은여행사의 여정이 시카고에서부터 시작을 하게 되어 이 상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영자 씨는 오직 우리들만을 맞이하기 위해 그날 하루 영업을 중지하고 일반 손님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다래정 안으로 들어가니 식탁에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있었다. 아이고, 이거야 정말! 킹크랩, 불고기, 염소탕, 김치찌개, 그리고 수십 가지의 한국토속반찬.





우리는 모두 그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정성이 가득 들어있는 반찬과 진수성찬이 상다리가 쓰러지도록 차려져 있었다. 한국음식점 보다 더 토속적인 반찬들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원래 영자 씨의 음식솜씨는 한국에서도 최고였다. 그 집에 초대를 받아 가면 언제나 과식을 했으니까.

 

우리는 아이들 어깨보다 더 큰 킹크랩 다리를 뜯어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이 가는 줄을 모르고 회포를 풀었다. 그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영자 씨의 집에 잠깐 들렸다. 다행히 영자 씨의 집은 다래정과 우리가 머물 호텔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는 김선생이 운전을 하는 볼보 RV차에 함께 탔는데, 운전을 곧 잘했다. 자동차에는 내비게이션도 없었다. 나이가 들어 이민을 오다보니 모든 게 낯설고 두 부부가 울기도 많이 했다고 한다. 말도 통하지 않고, 먹고살기도 힘들고, 자식들도 부양을 해야 하고그래서 오로지 식당일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시장-식당을 개미 쳇바퀴 돌 듯 줄기차게 하다 보니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더라는 것. 운전이 서툴러 차를 몰고 다른 곳을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사정을 헤아려보니 이해가 갔다.

 

영자 씨는 오래 전부터 우리가 오면 머물 방을 청소를 하고 단장을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소박하게 살고 있는 집안의 풍경이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정말 그들과 함께 며칠 머물고 싶었다. 12시가 넘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영자 씨의 집을 나왔다.




 

한국에서 누렸던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면부지의 타국에서 부지런함과 성실성, 그리고 끈질긴 노력으로 음식 맛을 내며 21년을 살아온 그들이 자랑스럽고 장하게만 보였다. 구글 지도에서 <시카고 다래정>을 치면, 다래정에 대한 정보와 사진이 자세하게 나온다. 시카고에서는 한국의 토속음식점으로는 꽤 명성을 날리고 있는 샘이다. 이게 한국인의 저력이 아니겠는가?

 

그들과 함께 더 오래 머물고 싶지만 헤어져야 했다. 당초 여행프로그램이 시카고에 이틀간 머문다고 하였는데, 맙소사 알고 보니 내일 저녁 숙소는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3시 반이나 떨어진 그랜디래피즈에 위치하고 있었다. 글렌비애(Glenview) 지역에 있는 호텔로 돌아오며 한국인의 생활력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느꼈다.

 

밤늦게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그룹 시카고의 하드 투 세이 아엠 쏘리(Hard to say I'm sorry)가 흘러나왔다. 정말 누구나 서로 약간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할까? 연인들조차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휴일이 필요할까? 그러기에 서로 더 머물길 원하고, 헤어짐이 미안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