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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순례4]카스피해에 도착하다!

찰라777 2017. 10. 30. 09:18



러시공항에서 8시간, 마법의 인형 마트료시카와 조우

 

장장 9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비행기는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과연 이 시대의 앨버트로스다! 비행기라는 문명의 이기는 세계여행 항로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에게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무려 8시간을 대기 한 후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한다. 휠체어 서비스를 받는 승객은 맨 나중에 나가야 한다. 승객이 다 빠져나간 뒤 맨 나중에 트랩을 나오니 키가 훤칠하게 큰 전형적인 러시아인 사나이가 휠체어를 준비하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휠체어 맨

 

하늘색 와이셔츠에 연두색 조끼를 걸친 그는 깡마른 체격에 머리를 박박 깎고 있었다. 눈자위가 짙은 그늘이 지도록 움푹 파 들어간 휠 체어맨은 재빠르게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더니 잰 걸음으로 트랩을 빠져 나왔다.


나는 몸이 불편한 아내를 위하여 휠체어 서비스를 미리 신청해 놓았다. 휠체어서비스를 미리 신청해 놓으면 장애인이나 환자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로 편리한 점이 많다. 우선 입국심사를 VIP승객에 준해서 빠르게 할 수 있다. 긴 줄에 서서 기다리는 시간 없이 입국통과에서 환승게이트까지 휠 체어맨이 모두 직행으로 이동을 하여 안내를 해준다.


더구나 환승이 복잡한 공항에서는 터미널과 터미널 사이가 길 뿐만 아니라 찾아가기도 쉽지가 않다. 심장이식을 한 아내는 심장병 장애인이다. 그런데다가 시시때때로 저혈당이 예고 없이 찾아오는 아내를 위하여 비행기를 탈 때마다 휠체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모스크바 세례메티예보 공항

 

우리는 휠 체어맨의 안내로 VIP 창구를 통하여 입국심사를 한 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D터미널을 빠져나와 E터미널로 이동을 했다. 셰레메티예보 공항터미널은 일자형으로 길게 터미널이 늘어져 있다. 승객들이 지나다니는 통로는 복도처럼 좁아 왕래하는 승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휠 체어맨은 북적거리는 승객들에게 비켜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 사이사이를 잽싸게 빠져 나갔다. 셰레메티예보 공항은 터미널과 터미널 사이에 좁은 통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는 어찌나 걸음이 빠르든지 내가 쫓아가기가 힘이 들 정도다.

 

D터미널에서 E터미널까지는 의외로 거리가 꽤 멀었다. 지나가는 윈도우사이사이에서 깜찍하게 생긴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Matryoshka) 인형들이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크크크 반갑다! 인형 안에서 점점 더 작아지는 인형이 계속 솟아나오는 마법의 인형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깜찍하다니까.





아내와 나는 15년 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며 작고 깜찍한 마트료시카 인형을 한 개 사와 거실 선반에 진열을 해 놓고 있다. ‘어머니 인형이라는 뜻을 지닌 러시아 전통 인형은 다산과 다복 그리고 부와 행운을 가져오는 인형이라고 한다. 오뚝이처럼 생긴 인형은 뚜껑을 열면 그 안에 작은 인형들이 마법처럼 계속 튀여 나온다.


큰 인형을 열면 안에서 작은 게 튀어나오고 그걸 열면 또 안에서 더 작은 게 튀어나오고 열면 더뎌 작은 게 튀어나오고, 열면 더더더하고 무한정으로 튀어나오는 작은 인형들. 인형 안에서 더 작은 인형들이 마법처럼 튀어나온다. 제일 안쪽의 것은 거의 손톱만한 크기. 양파처럼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인형. “인형의내부의인형의내부의인형의내부의인형의내부의인형크크크, 깜찍한 미소를 짓고 있는 러시아 인형을 바라보노라니 진땀을 흘리며 휠 체어맨을 따라가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마트료시카는 다섯개 정도부터 시작한다고 하며, 작은 인형들의 수가 많을수록 가격도 기하급수적으로 뛰는데, 여기서 유명 작가의 친필 서명이 쓰여 있는 수제 마트료시카는 100만 단위로 가격이 뛴다고 한다.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제품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지며, 속에 들어있는 인형 하나하나의 의상과 표정 그리고 배분에 들어가는 그림이 모두 다르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것인 마트료시카와 보드카이다.


바쁜 가운데서도 살짝살짝 깜찍한 마트료시카를 바라보며 E터미널에 도착했다. 휠 체어맨은 우리를 <Sirius Lounge>라고 표시된 룸으로 안내를 했다. ‘sirius’는 행성 중 가장 밝은 별이 아닌가? Sirius Lounge란 글씨 밑에는 <天狼星休憩室>이란 표시가 부언이 되어 있었다. 중국인들이 많이 온다는 징표다. 그렇다면 천랑성처럼 밝은 휴게실이란 뜻인가?


*휴게실 내부








휴게실로 들어간 그는 휴게실 문 앞에 앉아 있는 여자직원에게 우리를 인계하고 바쁘게 사라져갔다. 아마 다음 비행기에서 내리는 승객을 모시러 가는 모양이었다. “고맙소. 러시아 신사여!” 휴게실에는 다소 뚱뚱해 보이는 40대의 여직원은 메모지에 숫자를 기록하여 보여주었다.


메모지에는 <23:00, Pick up>이라고 적혀 있었다. 휠 체어맨이 23시에 데리러 온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휴게실 내에 있는 의자에 편안이 앉아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누울 수 있는 긴 의자를 택해 아내를 앉게 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 몇 명이 의자에 길게 눕거나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휴게실 내에는 TV, 체스, 전자레인지, 장애인화장실, 음료대 등 편리한 도구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장애인을 우대하는 러시아의 배려에 새삼 감사를 드려야 했다. 8시간 동안 대합실의 좁은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려면 피곤이 상접할 텐데 이렇게 우대를 해주다니 고마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12년 전 우리가 러시아를 여행할 때와는 서비스가 많이 좋아졌다. 1985년 페레스트로이카 사회주의 개혁이후 러시아도 개방의 물결을 타고 능률과 경쟁의 사회로 점점 변모해 가고 있다. 12년 전에는 모두가 공산주의와 관료주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여행이 이만저만 불편 한 것이 아니었다. 여행자 신고, 거주 이전의 자유, 불친절한 관료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변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장애인을 우대하는 이런 후한 대접을 받다니, 생존경쟁이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보다 복지시설이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러시아 공항에서 장시간 대기를 하는 여행자들은 <캡슐>이라는 공항의 유료간이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만약을 위하여 한국에서 출발을 하기 전에 셰레메티예보 공항 캡슐호텔 예약 사이트(http://v-exp.ru/en)에 들어가 보니 4시간에 10만 원 정도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휴게실의 긴 의자에 누워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캡슐 내부


캡슐호텔의 원조는 일본으로 이미 1970년대부터 등장했다. 캡슐호텔은 침대와 TV, 와이파이, 전화기 충전 시설 등을 갖추고 있고 치약, 칫솔 등도 제공된다. 갑작스럽게 항공편이 지연돼 발이 묶인 승객들이나 환승 고객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고 공항 터미널 의자라는 게 애초 잠자리용으로 고안된 게 아니다보니 누워도 팔걸이에 걸려 다리를 뻗을 수도 없다.


하지만 장거리 항공 여행객들에게 희소식이 날아들고 있다. 각국 공항이 속속 캡슐호텔 설치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이제 아크로바틱(곡예) 자세로 공항에서 잠을 잘 필요가 없어지게 됐다고 표현했다.


어쨌든우리는 캡슐호텔 대신 장애인 휴게실에서 푹 쉬고 다음날 새벽 010,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가는 아에로플러트 SU1852에 탑승했다. 물론 휠 체어맨이 장애인휴게실로 와서 아내를 휠체어에 편안하게 모시고 탑승을 시켜 주었다.

 

새벽 4시가 되자 비행기는 점점 고도를 낮추어가며 곧 바쿠 헤이다르 알리예프 공항에 도착을 한다는 멘트가 울려 퍼졌다. 고도를 낮춘 비행기는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이름만 들어왔던 카스피 해를 한 바퀴 빙 돌아 알리예프 공항에 안착을 했다. 한국을 출발하여 22시간 만에 도착한 카스피 해다!


휴우~ 마침내 도착했네!”

축하해요! 당신이 해냈어!”



▲하늘에서 내려다 본 바쿠 야경과 카스피해



카스피 해! 바다인가 호수인가? 아내와 나는 손을 마주 잡고 카스피 해에 무사히 안착을 한 것을 자축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거나 장거리 여행을 할 때는 이런 소소한 행동들이 피로감을 덜어준다. 2003년도에 세계일주를 하면서 장거리 비행 끝에 안착을 하면 승객들이 일제히 박수갈채를 보내는 경우를 종종 본적이 있었다.


얼마나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 여행길이었던가! 바쿠 공항에서도 우리는 휠 체어맨의 서비스를 받아 이미그레이션을 빠르게 통과했다. 공항대합실로 나가니 블라디미르 박이 훤하게 웃으며 우리를 영접했다. 6개월 전 조계사 찻집에서 만났던 블라디미르 박을 우여곡절 끝에 카스피 해에서 만나다니 실로 감개가 무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