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 갈대 습지공원에서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오른쪽) 어미가 탁란한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다.
(사진출처=한겨례신문 김진수 기자)
5월 16일 이른 아침, 2층 다락방 커튼을 올리자 동이대교 밑으로 흘러가는 임진강 수위가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다. 북한에서 황강댐 수문을 열었을까? 황토색 물이 주상절리 적벽에 차오르며 점점 세차게 흘러내리고 있다. 봄 날씨답지 않게 갑작스럽게 내린 폭우로 사이렌을 울리며 낚시꾼들에게 대피를 하라는 경고 방송이 울리고 있지만 몇몇 강태공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낚싯줄을 강물에 담그고 있다. 강태공들은 참으로 질긴 근성을 가지고 있다.
여명이 밝아오면 오면 이곳 연천 임진강변 금굴산 자락 금가락지는 새들의 공연장으로 변한다. 까악까악~ 깍깍깍깍깍~깍깍깍깍깍~아침 까치소리를 들으면 운수 대통한다고 했던가? 이에 질세라 구구~ 구꾹구~ 구구~ 구꾹구~ 뒤질세라 산비둘기가 능청스럽게 울어댄다.
부엉부엉~ 부엉부엉부엉~ 바리톤 소리를 내는 솔부엉이, 솥쩍다 솥쩍다~ 구슬피 울어대는 소프라노 소쩍새(금년에는 솥이 적을 정도로 풍년이 올 것 같다), 짹짹짹~ 사이사이에 탬버린처럼 잽을 잽싸게 넣는 참새들, 꾸엉~ 꿩꿩꿩~ 장끼우는 소리, 딱다다다다다~ 딱딱딱~다다다다다다다~ 숲속의 전령처럼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 삐요요 삐요요~ 삐리릭 삐리릭~ 꼬르르르르 꼬르르르르~ 등등 이름 모를 새들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홀로 사는 우리 부부에게 새들은 좋은 벗이자 아름다운 이웃이다.
새들이 우는 이유는 새끼 새들은 먹이를 달라고 울어대지만, 성숙한 새들은 주로 짝짓기를 위해 열심히 울어댄다. 때로는 영역을 지키기 위해 울기도 한다. 새 소리는 대체로 맑고 쾌활하다. 그 이유는 새들이 우는 소리의 음폭변화가 한 옥타브 정도로 크게 느껴지면서 우리의 청감세포가 생동감과 쾌활함을 만끽하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뻐꾸기가 바로 머리위에서 뻐꾹뻐꾹~ 뻑뻐꾹~ 하며 청승맞게 울어댄다. 이층 다락방 위 신갈나무에서 나는 소리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유독 뻐꾸기 소리를 좋아했다. 봄이 오면 고향 뒷산에서 뻐꾹뻐꾹~ 하며 청량하게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를 찾아서 숲속을 헤매기도 했다. 청소년기에는 요나손의 뻐꾹 왈츠를 즐겨 들었다. 유럽으로 첫 해외여행을 갔을 때엔 스위스에서 뻐꾸기시계를 사와 방안에 걸어두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뻐꾸기 소리를 좋아했다.
은퇴를 한 후 나는 십여 년 넘게 숲 해설가로 활동을 하며 숲속에서 새들의 울음소리를 자세히 관찰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뻐꾸기의 실체를 안 후 나의 뻐꾸기 사랑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세상에!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새가 세상에서 가장 얌체 같은 존재였다니!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목청을 가다듬고 뻐꾹 뻐꾹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녀석의 소리가 넌더리가 나도록 싫다. 이제부터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뻐꾸기 소리가, 넌더리가 나도록 싫어하는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뻐꾸기는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는다. 녀석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가짜 어미로 하여금 먹이를 받아먹게 하는, 탁란(托卵)을 하며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새다. 다시 말하자만 뻐꾸기는 성악설을 대표하는 새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행태도 참으로 얌체처럼 한다. 뻐꾸기는 붉은머리오목눈, 때까치, 멧새 등이 정성을 들여 지어 놓은 둥지를 슬쩍슬쩍 탐색을 하며 알을 낳기 좋은 둥지를 고른다. 녀석은 다른 새가 3~4개의 알을 이미 낳아 놓은 둥지를 고른다. 그것도 색깔이 비슷한 알을 고른다. 그리고 다른 새의 알 하나를 꿀꺽한 다음, 얌체처럼 그 자리에 자기의 알을 낳는다.
▲탁란을 하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는 어미 뻐꾸기
▲탁란을 하기에 적합한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
▲알을 하나 없애고 낳은 뻐꾸기 알
순진한 가짜 어미 새들은 뻐꾸기 알까지 함께 품어준다. 그리고 10~12일이 지나면 뻐꾸기 알과 가짜 어미새의 알이 부화를 하여 새끼가 탄생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 같은 아기새는 알의 크기도, 새끼의 크기도 단연 뻐꾸기의 아기새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입도 압도적으로 커서 가짜 어미로부터 먹이를 가장 많이 받아먹는다.
그런데 알에서 부화한 뻐꾸기 새끼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른 새의 알과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일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했던가? 가짜 어미새가 보는 앞에서 아기 뻐꾸기의 밀어내기는 필사적이다. 어미새가 둥지에 있을 때 어미를 지지대로 삼으면 사이로 밀어내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애송이가 어찌 그런 악랄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맙소사! 둥지 밖으로 밀려난 가짜 어미 새의 새끼는 죽고 만다. 그리고 가짜 어미새가 주는 먹이를 독차지하며 자라난다. (관련동영상 : EBS생명, 그 영원힌 신비 http://naver.me/5OmIyybR. 2008.2.1./ EBS 새, 생존을 말하다. 2015. 11.25 https://www.youtube.com/watch?v=fEtW1-j--o0&t=2216s)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알과 새끼를 필사적으로 밀어내는 뻐꾸기 새끼
(출처: EBS 새, 생존을 말하다. 2015. 11 방영 캡쳐)
부전자전! 어미 뻐꾸기의 악랄함을 그대로 닮았다고 할까? 아기 뻐꾸기는 20여 일 넘게 둥지에서 먹이를 받아 먹은 뒤 둥지를 떠난다. 둥지를 떠난 뒤에도 일주일 정도 가짜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다. 그리고 위탁 산란을 하여 탁아를 맡긴 어미 뻐꾸기는 자기 새끼가 자라나는 과정을 주변에서 슬금슬금 지켜보다가 다 자라나면 데리고 떠나버린다.
이처럼 뻐꾸기는 어미새들의 본능을 이용한다. 보통 새들의 경우에는 붉은 입천장을 가지고 고음을 내는 둥지에 있는 새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 본능이 뇌에 입력되어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붉은머리오목눈이란 새는 자기보다 몇 배나 크게 자란 새끼 뻐꾸기가 붉은 입을 쩍쩍 벌릴 때마다 먹이를 입에 넣어준다.
▲출처: EBS 새, 생존을 말하다. 2015. 11 방영 캡쳐
탁아를 맡은 어미 새는 모성애를 발휘하여 뻐꾸기 새끼가 독립을 할 때까지 정성껏 먹여주고 키워준다. 그렇게 독립을 하여 어른이 된 뻐꾸기는 자기를 길러준 어미 새와 같은 종의 둥지를 강탈하는 배은망덕한 행위를 반복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늘 아침 뻐꾸기 소리가 유난히도 청승맞다. 뻐꾸기의 악랄한 행동을 안 후, 나는 거실에 걸어두었던 뻐꾸기시계도 치워버렸다.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내 자신이 뻐꾸기처럼 얌체 같은 행동을 한 적이 없는지를 깊이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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