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다 잘 될 거니 걱정말아요~
오후 7시 30분, 경이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도농역 공항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물론 아내와 큰 아이 영이도 함께 왔다. 홀로 아프리카를 떠나는데 이렇게 온 가족이 환송을 해주다니…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트렁크에서 여행가방을 내리자 아이들이 먼저 “아빠,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하며 차례로 포옹을 했다.
두 딸들과 포옹으로 이별의 정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아내와 이별의 포옹을 하는데 왠지 눈물이 나려고 한다. 하하, 하지만 남자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지. 늘 함께 여행을 다니던 아내를 두고 홀로 떠나서인가?
아프리카 여행은 아내와 나의 여행 버킷리스트에 들어 있는 하이라이트 여행지이기도하다. 그런데 건강상의 이유로 아내를 두고 홀로 떠나려고 하니 어쩐지 미안하기만 하다. 허지만 아내는 흔쾌히 나의 여행을 지지해주었다. 홀로 떠나기가 미안해서 여행가방도 내 서재에서 조심스럽게 싸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여보, 좁은 서재에서 가방을 어떻게 싸요.” 일갈 하면서 내 여행가방을 거실로 가져가더니 이것저것 챙겨 넣어주며 여행가방을 싸주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늘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여행가방을 싸며 좋아하던 아내가 아니던가! 그런저런 생각을 하니 어쩐지 아내가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여보, 너무 오버 하지 말고 조심조심 잘 다녀오세요. 특히 사진 찍을 때 조심해요.”
“하쿠나 마타타. 염려 붙들어 매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쿠나 마타타란 '다 잘 될거야, 문제없어' 란 뜻이라오. 하하, 걱정 말아요. 잘 댕겨 올 테니 당신 건강이나 잘 챙겨요.”
"호호호, 하쿠나 마타타, 참 멋진말이군요. 허지만 조심하세요.'
나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내를 아프리카 속담 '하쿠나 마타타'란 말로 아내를 웃기며 안심시켰다. ‘하쿠나 마타타’는 스와힐리아어로 ‘아무런 문제 없이 다 잘 될 거야’란 뜻이다. 아프리카인들이 사용하는 인사말인데 어쩐지 두려움과 부정적인 감정을 걷어내고,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신통한 주문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 하쿠나 마타타! 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는 것. 하쿠나 마타타! 걱정하지 말자. 다 잘 될 거야!
아내는 여행을 다니는 동안 늘 내 곁에서 먹 거리와 입을 거리를 챙겨주곤 했는데, 무려 한 달 동안이나 나 홀로 떠나보내는 것이 내심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허지만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떠나는 여행이 왠지 가슴이 벅차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떠나는 것이다. 더구나 이처럼 따뜻하게 환송을 해주고 기다려주는 가족이 있기에 즐겁게 여행을 떠날 수가 있다. 인간은 연어와 같은 존재이다. 회귀할 곳이 없는 인간은 힘든 방랑자이다.
한국시간 새벽 1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12시간의 비행 끝에 아침 7시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했다. 비가 억수로 내렸다. 아디스아바바는 적도에 가까운 해발 2400m 고원에 위치하고 있어 산소가 희박하다. 허지만 촉촉한 기운이 넘쳐나는 녹색의 천국 아디스아바바는 선선하고 숨쉬기가 좋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탓인가? 아디스아바바는 7~8월에 무려 500mm 정도가 비가 쏟아져 내리는 우기이다. 서늘한 날씨는 마치 우리나라 가을 날씨를 연상케 한다. 찜통더위가 연속되는 우리나라를 피해 마치 아프리카로 피서를 온 느낌이 든다.
‘아디스아바바’란 에티오피아 암하라어로 ‘새로운 꽃’(New Flower)란 뜻이다. 아디스아바바가 에티오피아 수도가 된 것은 1886년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도시의 탄생은 메넬리크 왕비의 우연한 청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수도는 해발 3000m가 넘는 엔토토(Entoto)였다.
엔토토는 전략적으로 방어요새를 갖추고 있었지만 나무숲도 없는 척박한 도시였다. 어느 날 메넬리크 왕의 왕비 타이투는 궁신들과 함께 엔토토 산맥 남쪽 기슭으로 소풍을 갔다가 우연히 온천을 발견하고 온천과 주변에 피어있는 갖가지 화초에 매료되어 그 지역의 이름을 ‘아디스아바바(새로운 꽃)’이라고 짓고, 왕에게 그곳에 별장을 하나 지어 달라고 청했다. 왕은 왕비의 청원을 받아들여 그곳에 별장을 지어주고 그 지역이 왕도로서의 환경이 적합하다고 인정하고 수도를 엔토토에서 아디스아바바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하여 내 머리 속에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다.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맨발로 뛰어 우승을 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은 1935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하여 6년 간 무단 점령을 하였다. 세계의 언론은 아베베의 우승을 이런 역사적 상황에 빗대어 표현했다. “에티오피아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모든 이탈리아군이 필요했지만, 로마를 점령하는 데는 단 한 명의 에티오피아군(아베베는 당시 군인신분)으로 가능했다.” 에티오피아에 아베베의 금메달 소식이 전해지자 자신들을 총칼로 짓밟았던 이탈리아인들 앞에서 거둔 승리였기에 국민들의 기쁨은 두 배였다. 아베베는 국민적인 영웅이 됐고, 황제는 하루아침에 그를 장교로 승진시켰다.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하여 또 한 사람 떠오르는 사람은 최초의 인류화석 ‘루시(Lucy)'다. 루시는 318만 년 전에 살았다는 인류의 조상이다. 이 최초의 인류 조상이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생각 같아서는 인류최초의 인간 루시를 당장 만나고 싶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공항에서 4시간을 기다린 후 케냐 나이로비로 떠나야 한다. 당초계획으로는 소풍투어를 통해서 에티오피아를 일주일간 여행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정정이 불안한 국가를 피해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인도로 가는 길 여행사의 아프리카 종단여행은 아디스아바바에서 환승을 하여 케냐에서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아프리카 땅에 도착한 나는 촉촉한 대지에 키스라도 하고 싶었다. 함께 온 일행들도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었다. 특히 병용아우가 가장 좋은 모양이다. 이번 아프리카 종단여행 합류한 일행은 여섯 명이다. 모두가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여행 마니아 들이다.
2년 전에 남미여행을 다녀온 병용아우는 틈만 나면 “형님, 아프리카 언제가요?” 하고 아프리카 여행 타령을 할 정도로 이번 여행을 고대해 왔다. 하지만 아내의 눈치를 보아오던 나는 선 듯 홀로 여행을 나선다고 말 하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아내의 윤허(?)가 떨어지고 내가 아프리카 여행을 간다고 나서자, 병용아우가 제일 좋아했다. 거기에 내가 가는 여행지는 지옥까지라도 따라 나서겠다는 정애자 선생님이 그의 친구와 함께 합류를 했다. 그녀는 76세의 고령인데도 여행에 관한한 젊은 아가씨 못지않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두 사람이 더 합류를 했는데 스스로 여행 초짜라고 하는 병용아우 육촌 동생부부가 합류를 했다. 여행 초짜가 아프리카 여행에 합류한다고 하여 다소 의아했는데, 그 어떤 사람보다도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빗방울이 부서지는 창밖을 배경으로 멋진 포즈를 취하며 아프리카에 도착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아디스아바바공항은 생각보다 혼잡했다. 여행객들의 대부분은 다른 여행지로 갈아타는 사람들이었다. 의외로 남미로 가는 여행자들이 많았다. 구리에서 공항버스에 올라 옆 좌석에 앉았던 외국인도 브라질 상파울루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탄다고 했다. 그가 구리역에서 버스를 탈 때 한국인 아가씨가 눈물을 훔치며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사연을 들어보니 인터넷을 통해 만난 사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좋아 인터넷을 통해 한국어를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그 아가씨를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 후 그녀가 남미여행을 와서 만나게 되었고, 그가 한국으로 와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고 한다. 세상은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더욱 겸손하고 선진국민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자신을 알렘 주니어(Arlem Junior)라고 소개한 그는 상파울루 인근에서 한국어 선생을 하고 있는데 수강생은 다섯 명 정도 된다고 했다. 몇 명 안 되지만 자신도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며, 또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그래도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서 즐겁다고 했다. 내가 한국이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냥 좋아요. 케이 팝도 좋고요. 그냥 한국과 한국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하며 씩 웃었다.
그는 브라질에서 모은 돈으로 한국에 왔다가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비자가 만료되면 다시 브라질로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그럼 언제 한국에 다시 오지요?"
"브라질에 돌아가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지요. 그래야 비행기표를 살 수 있으니까요."
참, 세상에 이렇게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니 놀랍다. 그는 상파울루 왕복비행기표를 120만원에 구매하였다고 했는데, 이는 새롭게 알게 된 항로였다. 전에는 태평양을 건너 남미를 가려면 2~300만원 하던 비행기 표가 이렇게 저렴해지다니 세상은 자구만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천에서 내 옆 좌석에 앉은 일본인 3세 아주머니도 아이들과 함께 에티오피아 항공을 이용하여 친정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이로비로 가는 비행기는 4시간 후에 출발하게 되어 있어 나는 공항내의 기프트 숍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구경하였다. 기념품 중에는 나무로 만든 목각인형들이 눈에 띠었다. 특히 흑단으로 만든 목간 인형들이 눈길을 끌었다. 아프리카 흑단(黑檀, ebony)은 매우 무겁고 광택이 뛰어나며 딱딱하고 검은 색 나무로 목재로서는 최고급에 속한다.
나는 어느 기념품 중에서 흑단으로 된 작은 마그넷을 한 개 샀다. 에티오피아 특유의 탈 같은 모습인데 검은 흑단 재질로 된 탈의 모양과 붉은 색 머리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겨우 엄지손가락만 한 마그넷이 10달러로 생각보다 비싸다. 값을 깎자고 했지만 기념품점 아주머니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허지만 여행 중에 어떤 장소에서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하면 영원히 사지 못하고 후회를 하게 된다. 나는 10달러의 거금을 주고 그 작은 마그넷을 한 개 샀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이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바로 나요.”하며 목각인형을 자신의 눈에 갔다 붙였다. 그 모습이 하도 우스워 나는 그만 까르르 하고 웃고 말았다.
기념품점을 어슬렁거리다 그 유명한 에티오피아 커피를 한잔 마셨다. 허지만 내 입맛에는 쓰기만 했다. 커피의 발생지라는 에티오피아 커피지만 우리나라 믹스 커피메이트 맛에 길들여진 탓일까? 뭐니 뭐니 해도 내 입맛엔 우리나라 믹스 커피 맛이 최고다.
공항 화장실은 너무나 더러워 차마 일을 볼 수가 없었다. 함께 화장실에 갔던 일행들은 참았다가 비행기 안에서 일을 본다고 다시 나오고 말았다. 에티오피아는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다.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못사는 나라이고 에이즈 감염률이 매우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천국의 땅이라고 자랑을 하지만 독재자가 정권을 휘두르며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정정이 불안하여 경제발전은 오히려 뒷걸음질을 한다. 반정부 시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일당독재를 하며 야권인사와 민중을 탄압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긴 복도에는 누워서 쉴 수 있는 안락의자 놓여 있는데, 여행자들이 길게 누워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빈 의자를 찾기는 그리 쉽지가 않았다. 한 참후에야 빈 의자를 발견한 나는 병용 아우와 함께 길게 누워 휴식을 취했다. 아우와 함께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시간이 고소했다. ㅋㅋㅋ 여행의 솔깃한 재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남루한 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다가 비행기 출발 시간이 다 되어 9번 게이트로 갔더니 갑자기 탑승게이트가 8번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배낭여행자는 긴장을 끈을 놓치지않아야 한다. 여행은 트러블의 연속이다. 하쿠나 마타타! 걱정하지 말자. 다 잘 될거야. 오전 11시 20분, 길게 늘어선 탑승자들을 따라 나이로비로 가는 ET 304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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