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가 월명수 보살로부터 전화를 한통 받았다고 한다. 곡성 태안사에서 11월 30일부터 12월 2 일까지 김장을 담그는데 일손이 부족해서 원주 보살님으로부터 도우미 요청이 왔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내용이라고 한다. 절집의 1년 김장은 양이 많다. 오죽 일손이 부족했으면 서울까지 SOS를 쳤을까?
“그런데 여보, 우리 집 김장을 하는데도 파김치가 되도록 너무나 힘들었는데 절집 김장을 우리가 도와줄 수 있을까?”
“그러긴 하는데… 무공 거사를 데리고 가면 딱인데요?”
“하하, 그렇군. 무공한테 함께 가자고 전화를 해야겠군.”
일단 태안사 김장을 도우러 가기로 결정한 나는 무공 거사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간청을 했더니 의외로 쉽게 동의를 해주었다. 그날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아들이 다른 집을 얻어서 이사를 가는 날이지만 그거야 짐이 별로 많이 않으니 그가 없어도 된다고 하며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일이 되려고 하면 이렇게 술술 풀린다.
우리는 이미 지난 18일 경에 김장을 끝냈다. 우리 집 김장을 할 때는 매년 나의 절친한 친구인 무공 거사가 거들어 주어서 수월하게 담그고 있다. 사실 나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고, 절이고, 비비고는 일을 무공 거사가 다 해주고 있다. 무공 거사는 30년 동안 김장을 담가온 경력이 있어 <김장 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장을 담그는 일은 김장을 담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김장을 하고 나면 일단 파김치가 되고 만다. 아내는 환자다. 심장이식을 한 아내는 하루에 네 번씩이나 인슐린을 맞고 고혈당과 저혈당이 널뛰기를 하듯 오르내리는 언제 응급실에 실려 갈 줄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환자다. 아내는 몇 포기하는 우리 집 김장도 힘에 겨워 내년부터는 김장을 하지 말자고 하며 배추를 심지 말라고까지 한다. 아무리 김장 도사 무공이 절여주고 비벼주는 등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이래저래 김장은 힘들다. 어떤 친구는 아직도 김장을 하는 사람이 있냐고 반문을 하기도 한다.
▲김장은 주부들에게 가장 힘든 일의 하나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네 사람이 곡성 태안사로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내가 승용차를 몰고 잠실역에서 만나서 가기로 했는데, 아내가 버스로 가자고 제안을 했다. 주말이어서 차가 막히는 데다가 장거리 운전이 너무 피곤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운전도 점점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부터미널에서 8시에 고속버스를 타고 가기로 일정을 바꾸었다. 월명수 보살이 미리 버스표를 끊어 놓겠다고 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난 우리는 도농역에서 중앙선 전철을 타고 옥수역에서 갈아 탄 다음 남부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아마 1시간 반은 족히 걸린 것 같다. 남부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월명수 보살과 무공 거사가 미리 도착을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월명수 보살은 남편이 요양병원에 입원 중에 있는데도 김장봉사를 간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남편이 상태가 좋아 요양원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여행가방을 챙겨 든 그녀는 마치 집 나온 여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부시외버스터미널
구례로 가는 버스는 8시에 출발하는 데 시간이 20여분 정도 남아 있었다. 우리는 김밥을 두 줄 사서 아침 요기를 했다. 버스를 타니 편하기는 하다. 전용노선을 타니 승용차들은 기어가는데 버스는 싱싱 잘도 달려간다. 차를 몰고 오지 않기를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는 3시간 10분 만에 우리를 구례터미널까지 데려다주었다.
지리산 구례! 나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동네다! 10여 년 전 구례에서 나는 빈 농가를 얻어 2년여 동안 살았던 동네다. 버스에서 내리니 노고단이 신기루처럼 서 있다. 미세먼지가 많이 끼어서인지 산정은 보일 듯 말 듯 아련하게 서 있다. 터미널 밖으로 나가니 태안사에서 봉고차를 보내주어 대기를 하고 있었다.
봉고차에 오르니 머리가 반백이 된 노 거사님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 월명수 보살의 말로는 그는 S대학을 나온 수재인데 서울 반포에 버젓이 집과 가족이 있는데도 절집 생활이 좋이 이곳 태안사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태안사 입구 매표소에서 근무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잡다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벌써 1년째 태안사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그는 말이 별로 없었다. 묵언정진 중인가?
▲구례시외버시터미널
우리를 태운 봉고차는 섬진강을 건너 구례구역에서 좌회전을 했다. 섬진강이 햇빛에 반짝이며 유유히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언제 와도 정겹고 그리운 풍경이다. 봉고차는 곡성 압록에서 90도로 급하게 좌회전을 하여 보성강변으로 접어들었다. 오래전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처남 식구들 모두와 함께 지리산으로 여름휴가 여행을 하던 중 태안사를 다녀오다가 압록교 밑에서 수박을 쪼개 먹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 두 분 다 이승의 세계에 아니 계시니 인생은 참으로 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태안사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인연이 있는 절이다. 30년 전 청화 큰스님이 주석을 하고 계실 때부터 아내와 나는 태안사를 들락거렸다. 그리고 최근에는 화엄사에 계시던 각초스님께서 태안사 주지 소임을 맡은 뒤, 장모님 49제를 태안사에서 봉안을 하게 되었다. 그런저런 인연으로 태안사는 우리 부부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봉고차는 보성강을 따라 5km 정도를 가다가 태안교에서 좌회전을 하여 좁은 길로 접어들어 동계천을 따라 올라갔다. 동계 천변에는 연분홍 감들이 까치밥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동계리 마을을 지나니 김종권독도사진전시관이 나온다. 이런 깊은 산골에 독도사진 전시관이 있다니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김종권독도사진전시관은 사진작가 김종권씨가 독도를 60여 차례 방문하여 그곳의 비경과 생태계를 담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관은 2007년 7월부터 옛 동계초등학교 폐교에 섬진강문화학교와 독도사진 홍보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독도사진을 널리 알린 그는 2018년 자랑스러운 대한국민대상 시상식에서 문화예술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독도사진전시관을 지나 약 1.5km를 올라가면 태안사 입구가 나온다. 태안사까지 약 2.5km에 달하는 비포장도로는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호젓한 길이다. 더구나 금년에 곡성군에서 태안사 둘레길을 조성하여 걷기에 아주 편하게 시설을 갖추어 놓고 있다. 태안사 계곡에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고요한 계곡을 걷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청량하다. 태안사로 가는 초입에는 민중시인 조태일 시문학관이 있다. 조태일 시인은 태안사에서 나고 자란 민중시인이다.
수려한 계곡을 한 참을 덜컹거리며 지나니 자연암반 위에 세워진 능파각이 나오고, 화려한 다포계로 지어진 일주문이 나온다. 능파각과 일주문은 태안사에서 불에 타지 않은 유일한 건물이다. 일주문 왼쪽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 놓은 삼층석탑이 연못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태안사 일주문
▲연못 가운데 세워진 삼층석탑.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마침내 태안사 경내에 들어섰다. 태안사는 통일신라 말 문성왕 9년(847) 적인선사 혜철이 동리산문을 열어 동리산파의 중심사찰로 발전했던 사찰이다. 한때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사세가 컸으나, 조선 초기 억불정책으로 쇠락한 데다, 한국전쟁 당시 대웅전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현재 전각은 대부분 청화 스님께서 주지로 머무를 당시에 부영건설 이중근 회장의 시주를 받아 중창을 하여 다시 그 면모를 갖추고 있다.
▲부영건설 이중근 거사 공덕비
대웅전 뒤쪽 높은 터에는 개산조 적인선사 혜철의 부도와 부도비가 자리 잡고 있다. 동리산파의 개산조인 혜철은 남달리 풍수적 안목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수많은 봉우리, 맑은 물줄기가 그윽하고 깊으며 길은 멀리 아득하여 세속의 무리들이 오는 경우가 드물어 승려들이 머물기에 고요하다. 용이 깃들고 독충과 뱀이 없으며,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적인선사 부도비의 내용 중에서)” 동리산에 직접 자리 잡은 태안사이니 풍수와 주변 경치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풍수지리사상의 원조인 도선국사도 태안사에 10년 간 머물며 혜철선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태안사개산조 혜철선사 부도탑과 부도비
지금은 4년 전에 주지로 부임을 한 각초스님께서 선방을 열고 동리산문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절집에는 스님들의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고 참선을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여들어야 한다. 각초 스님은 평생을 선방에서 수행을 한 선승으로 어려운 절집 살림을 꾸려가며 선방을 열고 있다.
벌써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대웅전에 들어가 삼배를 하고 나오니 점심공양을 하러 온 선방스님들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대웅전 앞뜰에는 하얀 동백이 만개하여 나그네를 반긴다. 우리는 곧바로 공양 간으로 들어가 점심공양을 했다.
오늘 오후에는 배추를 다듬어서 절이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원주보살의 지시를 받고 배추를 다듬어 씻고 소금으로 절이는 일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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