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사에 울려퍼지는 범종소리
-마음을 깨치는 스님의 도량석과 종송
목탁소리가 꿈결처럼 아련하게 들려온다. 눈을 떠보니 밖은 컴컴하다. 스마트 폰을 켜보니 새벽 3시다. 주지 스님께서 목탁을 치며 낮고 청아한 음성으로 염불을 외며 도량석을 돌고 있다. 손수 목탁을 치며 도량석을 도는 스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도량석은 천지만물을 깨우고,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 목탁을 치면서 천수경을 소리 내어 독송하며 도량의 이곳저곳을 도는 것이다. 오직 깊은 산사에서만 체험을 할 수 있는 독특한 느낌이다. 스님의 염불소리가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진다. 대웅전 모퉁이를 돌아가면 끊어지고 마당으로 나오면 다시 염불소리가 이어진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얼마만인가? 나는 두꺼운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 대웅전으로 향하는데 깊은 산사의 새벽바람이 차갑다. 대웅전에 들어가 오체투지 삼배하고 가부좌 틀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스님의 도량석이 끝나자 법당에서 작은 종을 치며 종송(鐘誦)을 읊는 소리가 자지러지는 듯 아련하게 울려 퍼진다.
▲태안사 새벽풍경
원차종성변법계
願此鐘聲遍法界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하여
철위유암실개명
鐵圍幽暗悉皆明
철위산의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 밝아지며
삼도이고파도산
三途離苦破刀山
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을
떠나 칼산지옥 부수어서
일체중생성정각
一切衆生成正覺
일체 중생 바른 깨달음
얻게 하소서~
이어서 지옥을 깨뜨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이 해탈하기를 기원하는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이 가슴을 파고든다.
나모 아타 시지남 삼먁삼못다
구치남 다냐타
옴 아자나 바바시 지리지리 훔~
범종각에서는 뎅~ 뎅~ 뎅~ 둔탁하면서도 투명한 범종 소리가 산사에 울려 퍼진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아침 종송과 함께 범종소리가 봉두산 자락을 아우른다. 한 번 두 번 세 번… 28번 이어진다. 범종소리에 인간의 온갖 번뇌와 희로애락이 녹아나는 것 같다. 28번 타종은 욕계 6천과 색계 18천, 무색계 4천, 합쳐서 28천의 모든 하늘나라 대중에게 부처님의 도량을 알리는 소리다.
저 땅 속 깊은 지옥까지 스며드는 종소리! 저 하늘 끝까지 울려 퍼지는 종소리! 범종소리와 함께 아련한 종송이 어둠과 밝음, 삼악도와 깨달음이 중생의 마음에 달려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무쇠로 둘러싼 듯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삼악도와 어둠의 나락만이 있음이요,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열어서 사는 이는 영원히 죽지 않는 감로의 세계와 깨달음이 함께 함을 종소리는 설법하고 있다.
법당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나는 범종소리에 취해 들어간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욕계인가, 색계인가? 무색계인가? 켜켜이 쌓아 놓은 김장 더미 속인가? 온 곳도 모르는 나, 갈 곳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것도 모르고 사는 나는 멍텅구리. 백 년도 다 못 살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천년만년 준비를 하다니, 나는 멍텅구리. 무엇이나 다 안다하는 박사라 할지라도 자기를 모르나니, 나는 멍텅구리. 수행자여, 진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라. 망상을 쉬고 가라. 헛길을 가지 마라. 아아, 이 순간만이라도 근심을 내려놓자.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켜켜이 쌓아지는 1000포기 김장배추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어제 소금에 절여 놓은 배추를 씻는 일을 했다. 소방호수로 물을 세게 틀어 놓고 1차는 큰 통에 넣어 이리저리 헹구어 씻어 작은 통으로 넘겨주면 보살님들이 탈탈 털며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씻어냈다. 작은 통 두 단계를 거쳐 헹구어진 배추는 탁자 위에 켜켜이 쌓아 놓았다. 간수 물이 쪽 빠지도록 하루를 묵히는 것이다.
1000포기가 넘는 배추를 하루 종일 씻어 내고 나니 어느새 산사에 어둠이 깔려 내렸다. 범종각 앞에 길게 쌓아 놓은 배추가 마치 작은 성벽처럼 보인다. 켜켜이 쌓인 배추를 보니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은 보람으로 가득 찬다.
1000포기의 배추는 다음날 주지스님을 비롯하여 결재 정진에 들어가 참선 중인 스님들의 울력으로 모두 비벼졌다. 양념에 배추를 비비는 스님들의 모습이 김장삼매에 든 것처럼 보였다. 결재에 들어가 참선 중인 스님들의 울력으로 1000포기의 김장이 다 비벼졌다.
"30년도 넘게 김장을 이렇게 비비고 있어요. 허허허."
▲하루 종일 배추를 비비고 서 있는 주지 각초스님(오른쪽)
은 30년 동안 김장을 비벼왔다고...
하루 종일 서서 배추를 비비고 있는 주지 각초스님의 말씀이다. 1년 동안 먹을 절집의 김장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절집에서도 김장은 1년 중 가장 큰 행사 중의 하나다. 김장 울력을 마치고 선방으로 올라가는 스님들의 모습이 허허롭게만 보인다. 김장봉사를 했으니 화두가 더 잘 잡힐까?
▲김장울력을 마치고 선방으로 올라가는 스님들
완성된 김치는 김장통에 차곡차곡 넣어서 저온 창고 앞으로 옮겨졌다. 김장통은 3일 간 밖에서 숙성을 한 뒤 저온창고로 옮길 것이라고 한다. 저온창고 앞으로 옮겨진 김치통을 바라보노라니 왠지 마음이 뿌듯하다.
▲저온창고 앞으로 옮겨진 김장통
오후 4시 40분 구례 버스터미널에서 서울로 오는 버스를 탔다. 각초 스님이 손수 운전을 해서 섬진강 다슬기 국을 사 주시고 버스터미널까지 바래다주었다. "수고들 많이 했어요. 내년에 또 봬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스님의 모습이 참 보기에 좋았다. "네, 스님 내년에 봬요." 무공 거사는 내년에도 기꺼이 김장봉사를 가겠다고 스님에게 약속을 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8시 40분. 무공 거사와 월명수 보살과 헤어져 지하철 3호선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탔다. 옥수역에서 내리니 엘리베이터가 지척에 있어 중앙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플랫폼에 올라가니 15분 텀으로 오는 중앙선이 또 곧바로 왔다. 중앙선을 타고 도농역에서 내리니 또 엘리베이터가 눈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게 일사천리로 척척 이어졌다. 도농역에서 내려 집에 도착하니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3일간의 김장여행이 별로 피곤한 줄도 모르고 끝났다. 이게 우리 집 김장이었다면 엄청시리 피곤했을 것이다. 산사에서 김장은 분위기상 마음이 힐링되어서 일까? 무언지 모르게 가슴이 뿌듯하고 즐거운 마음이 든다. 봉사란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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