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느티나무 낙엽을 쓸며...

찰라777 2021. 11. 12. 19:30

지난 10월 17일 64년 만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추위가 덮친 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자 그렇게 무성했던 느티나무 잎새가 가을바람에 추풍낙엽이 되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앞뜰 정자 앞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는 정자 우측에 우람하게 서 있는 소나무와 경쟁이라도 하듯 무성하게 자라났다. 그런데 찬바람에 옷을 홀랑 벗어버린 느티나무는 이제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나는 해마다 느티나무 낙엽을 쓸어서 화초들이 자라나고 있는 화단에 덮어주었다. 느티나무 주변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떨어져 내린 낙엽을 갈퀴로 긁고 빗자루로 쓸어서 몇 무더기를 만든 후 큰 보자기에 싸서 화단에 옮겨서 뿌렸다.

 

낙엽은 푸석푸석 소리를 내며 힘없이 뒹굴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죽은 것은 힘이 없다. 사람은 죽으면 땅속에 묻히거나 화장을 하여 납골을 하기도 하지만, 낙엽은 썩어서 새 생명을 잉태할 거름이 되어준다.

 

나는 보자기 싼 느티나무 낙엽을 화단의 화초 위에 이불을 덮어주듯 흩뿌려 주었다. 이곳 연천은 한겨울에는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갈 만큼 매우 춥다. 중부 내륙이라 평양보다 더 추운 곳이 연천과 철원 땅이다. 그 추운 겨울에 느티나무 낙엽을 이불 삼아 덮고 있는 화초들은 조금은 따뜻하게 지내리라. 여린 화초의 이불이 되어주고, 썩어서 밑거름이 되어주는 낙엽은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해본다. 사람은 죽으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을 하고 매장을 하는 번거로움을 안겨줄 뿐이다.

 

 

낙엽을 다 쓸어모아 화단에 옮겨갈 무렵 휴대전화기의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지인한테서 온 전화였다. 그는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는데 요즈음 사업차 한국에 와 있다. 오사카에 갔을 때 그가 운영하는 호텔에 묵기도 하고,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다. 그는 사업을 하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가끔 나에게 인생사를 상담하기도 한다.

 

그는 두 가지 소식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그가 목적했던 일은 잘 성사되었는데, 그의 동생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비보를 받았다고 했다. 동생은 공사 현장에서 안전사고로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그동안 그의 동생은 어떻게든 잘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며 열심히 일을 했는데 그렇게 갑자기 떠나가 버리니 너무나 허망하다고 했다.

 

이렇듯 사람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살아 있을 때는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앞뒤를 생각하지 못하고 아등바등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은 우리의 지나온 인생을 회상하며 반성을 해볼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늙어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늙어가는 일을 피할 길이 없다. 사람은 병이 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병이 드는 것을 누구나 피할 길이 없다. 사람은 죽어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죽어가는 일을 피할 길이 없다. 자신에게 소중한 모든 것과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은 변해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헤어지는 일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니 내가 하는 행동만이 정말 내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결과를 피할 길이 없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행동을 근거로 삼아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지만, 그 역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정체를 모른 채 죽어갔다. 다만, 그는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명답이다. 요즈음 사람들(특히 정치인)의 행동을 보면 모두가 자기가 잘났다고 말한다. 자신의 결함을 보기 전에 남의 허물만 말한다.

 

 

낙엽을 다 덮을 때까지 있는데 길고양이 세 마리가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낙엽을 덮고 있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고양이들은 어찌 보면 무사태평하다. 고양이들은 아무리 밥을 많이 주어도 딱 먹을 만큼만 먹는다. 그리고 한가롭게 앉아 혀로 자신의 온몸을 그루밍을 하다가 하품을 하며 낮잠을 늘어지게 잔다. 내가 밥을 주러 가면 꼬리를 흔들며 양 바짓가랑이 사이로 들어가 이리저리 비벼대며 애교를 떤다. 녀석들은 적어도 밥을 주는 집사를 알아 모신다. 내가 부러쉬로 녀석들의 등을 긁어주면 “가르릉”거리며 꼬리를 흔든다.

 

고양이들은 자신을 잘 알까? 고양이답게 행동하는 녀석들을 보면 사람보다 더 나은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낙엽을 다 덮고 나니 어느덧 짧은 해가 지면으로 사라지고 곧 어둠이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