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노르웨이 7] '플름철도 여행'

찰라777 2004. 3. 27. 00:19
☞108일간의 세계일 주 배낭여행 여정도


그리그의 음악과 함께 떠나는 "플름철도 여행"

□ 차가운 아름다움, 웅장한 고독



차갑지만 웅장하면서도 정돈된 아름다움. 북반구로 들어서면서 느낀 나의 첫 감 정이다. 그리그의 음악도 그렇게 느껴진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즉, 스칸디나비아로의 여행은 내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여 행길이다. 같은 유럽이면서도 귀가 빠진 곳에 위 치하여 썩 가기가 힘든 곳이 북유럽이다. 그 북유럽 중에서도 피오르드 해안으로 장식된 노르웨이 대자연의 아름다움! 그것은 차가운 아름다움과 웅장한 고독함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그의 음악을 들으며 베르겐 철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플름철도로의 여행을 떠나고 있다.



플름철도 여행지도. 해발 2미터에서부터 863.5미터까지 총연장 20km 에 11개역, 20개의 터널을
꼬불꼬불 올라가는 플름철도여행은 마치 어린이 대공원의 청용열차를 타고 가듯 매우 흥미
진진하다. 플름철도로의 여행은 노르웨이 자랑하는 가장 인기있는 여행코스중의 하나다.


지구 북극권 노르웨이에서 남극권 칠레까지 가는 긴 여정.... 그 여정의 입구, 공룡의 머리처럼 생긴 노르웨이 베르겐 지역에 나는 아내와 함께 배낭하나 떨렁 걸머지고 이방인처럼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피오르드 해안의 낯선 풍경 앞에...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생긴 모습부터가 어쩐지 공룡의 머리같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공룡의 머리라면 칠레의 파타고니아는 공룡의 꼬리쯤이 되지 않을까?

이번 세계여행길은 이 공룡의 머리에서부터 시작하여 남미의 칠레 최 남단, 공룡의 꼬리택인 파타고니아까지 가는, 우리 부부로서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대장정의 배낭여행 길이다. 아직도 하루에 네번의 인슐린을 투여해야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아내와 함께 단 둘이서 먼 길을 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네 인생의 도박일지도 모른다. 죽음에서 깨어난 아내가 평생 소원으로 삼았던 세계일주 여행.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 다는 세계일주의 단추를 우리는 북유럽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소원 한 가지를 위해서 우리는 우리들에게 덕지덕지 붙어 있는 모든 인연의 고리를 뽑아야 했다. 차단하기에는 아픈 것들도, 아쉬운 것들도 많았지만 죽음과도 바꾸겠다는 아내의 맹렬한 희망앞에서는 모든 것들이 꺾어지지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떠나온 북유럽! 이곳의 음악은 마치 북구의 대자연에 펼쳐진 풍경의 배경음악처럼 고독하면서도 차가운 웅장함이 느껴진다. 스칸디나비아에서 러시아로 이어지는 자연환경이 궤를 같이 하듯 북유럽에서 러시아로 이어지는 음악도 궤를 같이하는 느낌을 받는다. 노르웨이의 '그리그'와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그리고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로 이어지는 북구 음악가들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매우 웅장하면서도 한없이 고독한 애수가 느껴진다. 또한 광할한 자연의 장엄함과 함께 다가오는 인간의 깊은 고뇌가 무겁게 흐른다. 차가운 아름다움과 웅장한 고독 같은...

"그리그의 음악에는 마음을 녹일 듯한 애수가 깃들어 있다. 이것이 때로는 크게 번져서 장엄, 숭고해지고 때로는 잿빛으로 무겁게 흐른다. 그것은 우리 러시아인들의 음악과 무척 닮았고 그래서 그의 음악은 우리 마음에 재빨리 녹아든다. 그의 음악은 노르웨 이의 아름 다운 풍경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내게 느껴진다."
그리그를 극찬해 마지 않았던 차이코프스키의 말이다.

플름역으로 들어오는 송네피오르드 페리 유람선


우리는 스칸디나비아 3국을 거쳐 내친김에 기 차를 타고 러시아까지 가기로 계획을 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동구라파로, 동구 라파에서 남미로 이어지는 외롭고 고독한 길... 인간이 철저하게 고독해져야만이 신과 가깝게 갈수 있다고 했던가? 비록 아내가 내 곁에 있지만 나는 가끔씩 내가 혼자인 것을 발견 할 때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한 동행의 길을 걸을 수가 없는 것. 여행중에 어디 고독을 느껴보지 않는 사람이 있으랴.

그 고독한 길의 초입에서 우린 노르웨의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노르웨이는 어디를 가나 사람을 깜짝깜짝 놀래게 하는 절경들이 널려져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피오르드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눈 덮인 산들도 우리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며 한발한발 다가서고 있다.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것. 내가 인간이 자연과 둘이 아니라는 것 을 깨닫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전, 어머님을 사별하고, 그 무렵 또 다시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던 매우 가까운 형제, 친구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가버리고 난 후, 비명에 가까운 고통 스런 날을 보내고 나서부터였다. 사람 의 몸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4대가 모아 형성되었다가 다음생으로 돌아갈 때는 이윽고 다시 지.수 화.풍으로 어김없이 돌려주고 간다는 것을 나는 내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사랑스런 어머님의 육신을 삽질을 하며 흙속에 묻을 때, 그리고 어이없이 가 버린 형제와 친구들의 관을 땅속에 묻을 때, 정말 견딜 수 없는 슬픔들이 나를 덮쳐왔다. 세월이 흘러 어머님의 묘를 이장하는 순간, 한줌의 흙으로 남아있는 어머님의 뼈를 흙속에서 추려내며 자연속으로 모든 것을 돌려주고 돌아가신 어머님의 영혼을 그 흙 속에서 발견할 수가 있었다. 노르웨이의 플름철도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나는 허공속에서 어머님의 영혼을 보고있다. 버거운 육신을 벗어버린 영혼은 시공을 초월 한 듯 매우 자유로워 보인다.

플름역의 철길을 거닐며.... 유람선 바로 옆에 철길이 있다.


□ 청용열차 같은 '플름철도'로의 여행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했나보다. 북구의 분위기와 음악이 나로하여금 그만 거기까지 생각을 몰고 가 버린 모양이다. 그러나 이 분위기속에서 나는 깊은 고뇌의 껍질을 한꺼풀 벗기우며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 다시 그리그의 음악과 함께 노르웨이의 자연속으로 돌아가 보자. 그리그의 마음속에서 팅겨 나 오는 피아노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인다면 여러분은 결코 노르웨이의 빙하에서 울려퍼지는 자연의 소리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지극 히 서정적인 작곡가인 그리그는 분명, 자연과 하나가 되어 이 곡을 작곡했음에 틀림없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작품 16번" 은 그의 대표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피아노 협 주곡을 들으며 플름철도 여행을 함께 떠나보자.

플름철도 노선은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장엄한 철도 중의 하나다. 미르달-플름, 혹은 반대로 플름-미르달 역 을 오가는 이 철도는 베르겐 노선의 가장 깊숙한 구석에 자리 잡은 멋진 기차 여행길이다. 플름 철도만큼 가파른 협곡을 운행하는 기 차여행지를 발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멕시코의 코퍼 캐년을 관통하는 태평양 철도, 페루의 꾸스코에서 마추픽추 잉카 유적지를 오가는 오지기차여행, 알프스의 고산 지대를 달리는 고공 기차여행, 미국 애리조나 주 세도나의 절경을 달리는 기차여행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모두가 나름대로 독특한 자 연환경과 별미가 있 다. 그러나 이곳 플름철도 여행은 야생 그대로의 노르웨이 멋진 산악풍경을 보게 되는, 분명히 놓치기 아쉬운 아주 매력적인 코스중의 하나다.

리스본에서 온 가브리엘 양과 함께. 플름역사 안에서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면서 강이 흐르고, 눈 덮인 가파 른 산의 절벽에는 웅장한 폭포가 흘러내리고 있는데, 고산지대 농장들은 깎아지른 산비 탈에 아찔하게 매달려 있다. 더욱이 세계에서 가장 긴 송네 피오르드의 지류인 아우를란즈피오르드의 장관과 이어지는 플름계곡의 기 막힌 천연미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노르웨이 정부가 험난한 미르달 고원에서 시작하여 꼬불꼬불한 산허리를 지나 플름계곡 기슭까지 궤도를 건설 한다는 것은 당대 노르웨이 철도 기 술자들에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철도의 80%가 55도 경사율로 가파른 비탈을 구부러지게 건설되었는데, 이 공사는 1923년에 시작 되어 1944년에야 개통을 하는, 무려 20년에 걸친 힘든 난공사였다.

특히 20개의 터널 중 18개는 수작업으로 뚫었다는데 철도 노동자들이 1m 뚫는데 한 달씩 중노동을 해야 했다고 한다. 더욱이 눈사태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강과 계곡의 기 슭을 세 번이나 교차하여 강에 교량을 건설하는 대신 철도 밑에 터널을 뚫어 강물이 흘러가게 설계한 것은 그들만이 갖는 매우 특이한 공법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탄 페리 호가 플름 역에 정박하자, 마치 어느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집과 산이 아름다운 풍경으 로 다가왔다. 호숫가에 밤색지붕으로 지어진 역사는 마치 입센의 "인형의 집"처럼 예쁘고 앙증맞다. 미르달에서 오는 기차를 기다리며 우린 마치 어린아이들 처럼 역 주변의 이곳저곳을 산책을 하였다. 포르투갈에서 온 아가씨 가브리엘라 양도 우리와 일행이 되어 우리 는 그녀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플름철도 기차를 오르기 직전에 (플름역)


미르달 역에서 기차가 도착하자 많은 여행객들이 기차 에서 내려 페리호에 올랐다.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 윽고… 우리가 탄 기차가 긴 기적 소리를 내며 산을 향해 출발을 한다. 해발 2m에서부터 출발하는 기차는 미르달역까지 11개의 역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총연장 20km의 짧은 구 간에 20개의 터널이 있고, 가장 높은 역은 863.5m의 미르달 역으로 매우 가파른 길이다. 기차가 "룬덴"역에 도 착하자 갑자기 깎아지 른 듯한 산이 다가 온다. 그 산을 지나니 계곡이 넓어지면서 그림 같은 농장이 펼쳐진다. "하레이나" 역 위로 급 격히 뻗어있는 산은 비브메스노시산(1,260m)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서는 높이 140m의 폭포가 기막힌 장관을 이루며 쏟아져 내리고 있다 .

"달스보 튼" 역 남쪽에는 거대한 바위가 강을 가로 지르며 천연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 몇 개의 터널을 기차가 서로 교환을 할 수 있는 "베레 크얌" 역을 지나니 눈앞에 아찔한 광경이 펼쳐진다. 기차가 계곡에 매달려 가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어린이 대공원의 청용열차를 타고가는 기분... 블름헬레르역은 플름계곡에서 가장 위험 지역이다. 눈사태가 자주 발생한다는데, 매년 겨울이면 강설이 높은 산꼭대기에서 천둥치듯 눈이 떠밀려 내려온다고 한다.

플름철도여행의 하일라이트 코스폭포. 높이 93m로
엄청난양의 물이 레이농가 호수에서 흘러내려온다.


카르달 역은 플름계곡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 있다고 한다. 드디어 "코스포젠"이다. 이곳에서 기차는 여행객들의 사진촬 영을 위해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약 10여분 정도 정차를 한것 같다. 코스 폭포가 웅장하게 흘러내리는 이곳은 플름철도 여행의 하일라이트다. 레이농가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폭포가 되어 쏟아지는 광경은 입을 벌리게 한다. 모두가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차장이 호루라기를 불며 기차에 오르라는 신호를 한다. 좀 더 머물고 싶지만 여기서 기차를 놓치면 몇 시간을 산간벽지에서 떨며 기다 려야 한다. 기차가 레이농가 역에서부터는 환상선으로 들어간다. 급하게 꺾어진 커브를 몇 번 돌고 나서는 기차는 터널 벽을 뚫어 만든 창문을 천천히 통과하며 계곡의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계곡을 지나 기차는 바트나할젠 역을 통과하여 마침내 미르달 역에 도착한다 .

눈이 펑펑 쏟아지는 미르달 역. 금년(2003년 10월)들어 처음으로 맞이 하는 눈이다.


미르달역에 도착을 하니 흰눈이 정신없 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금년 들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눈이다. 눈 내리는 미르달 역의 모습은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해 낸다. 미르달 은 역은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와 오슬로로 가는 기차의 교차역이다. 드디어 베르겐으로 가는 빨간색 기차가 도착했다. 우리는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 쏟아지는 눈속에 멀어져 가는 미르달 역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시계속에서 미르달역이 사라져 간다. 플름철도 여행은 마치 청용욜차를 타고 아슬아슬한 한편의 파노라마를 지나가는 스릴을 느끼게 한다. 플름철도의 파노라마도 이제 한편의 영상으로 마음속에 각인될 뿐, 멀리 사라져 가고 있다. 모든 것은 이렇게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풍경도 인간도 이 세상의 모든 만물도 블랙홀로 사라 졌다가 다시 태어난다. 날이 어두어지자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차가 베르겐 역에 도착했다는 차장의 안내 방송을 듣고서야 우리는 눈을 떴다. 휘황한 전기불이 베르겐의 피오르드 해안을 밝혀주고 있다. -사진/글/찰라-


미르달 역. 오슬로와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를 여기서 탄다.


플름철도 여행중 다가서는 절벽과 풍경


파란선 부분이 여행한곳. 사실 200km 넘는 송네피요르드의 맛만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로 맛이 있다. 보스, 구드반겐, 피요르드 유람선, 플름철도로
이어지는 변화있는 코스는 색다른 여행의 느낌을 주기때문이다. 베르겐-보스(기차)
/보스-구드반겐(버스)/구드반겐-플름(페리유람선)/플름-미르달(플름 철도)/
미르달-베르겐(기차). 재미있는 코스다. 노르웨이는 이런식으로 교통의 연계가
변화있고, 아주 편리하게 잘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