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강원도

오세동자가 준 생명의 주먹밥-설악산 오세암

찰라777 2009. 10. 19. 06:30

세동자와 생명의 주먹밥  

▲오세암에서 바라본 내설악의 웅장한 단풍. 멀리 귀때기 청봉이 보인다.

 

 

오세암으로 가는 길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시인은 끝 간 데 없이 내리 뻗은 이 전나무들을 바라보며 시간적 공간적으로 님의 향기를 느꼈을까? 아니 님의 입김은 너무 향기로워 하늘을 찌르는 나무를 타고 멀리멀리 퍼져 갔으리라. 영시암 갈림길에서 오세암 쪽으로 가는 길은 한적하다 못해 고요하다.

 

그러나 수렴동 계곡의 완만한 길과는 달리 제법 산세가 가팔라진다. 시인은 이 길을 통해 오세암과 백담사를 오가며 님(나라)을 그리워하고 나라의 독립을 간절히 기원했으리라. 

 

▲오세암 오르는 길에 하늘을 찌르고 있는 전나무. 심장이식환우들이 전나무의 기를 받고 있다.

 

오세암으로 오르는 길에는 하늘을 찌를 듯 기세가 등등한 전나무들이 죽죽 뻗어 있다. 세 사람이 양팔을 벌려도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전마무의 아름드리는 크고 거대하다.

나무야 고마워!

미안해!

용서해줘!

네가 우리를 사랑하듯 우리도 너를 더욱 사랑할게.

심장이식으로 새 생명을 받은 동반자들은 나무를 끌어안고 한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나무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이 교감을 하는 순간이다. 나무는 말이 없다. 침묵으로 산소를 발산하고 기를 발산해 줄뿐. 나무에 기대어 서로의 기를 교감해 본다. 산은 정복을 하는 것이 아니다. 느끼고, 교감하고,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산! 전나무 기를 받으면서 올라가다 보니 만경대가 나온다.

 

▲용의 이빨처럼 으르렁 거리고 있는 용아능선

 

만경대! 만 가지 경치를 두루 굽어 불 수 있다는 곳. 우리는 만경대에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설악산에는 만경대가 셋이 있다. 내설악 만경대, 양폭산장 위쪽의 외설악 만경대, 오색 근처의 남설악 만경대가 그것이다. 이 세 개의 만경대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 여기 오세암이 내려다보이는 내설악 만경대다.

 

공룡의 등뼈처럼 구비 구비 이어지는 기암괴석 능선은 기가 막힌 절경이다. 그 공룡능선이 병풍처럼 두른 자리에 오세암이 똬리를 틀고 있다. 풍수에 눈이 어두운 자가 한눈에 보기에도 기가 막힌 명당자리다.

 

▲공룡의 등뼈처럼 우람한 공룡능선의 위용 

 

공룡능선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경계역할을 한다. 그 공룡의 등뼈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보면 설악의 제왕인 대청봉이 육중한 모습이 드러나 보인다. 대청봉 앞에는 제왕의 봉우리를 지키는 용아장성 암봉들이 용의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고 있다.

 

  

동자꽃으로 피어난 오세동자 전설

 

목탁소리를 따라 만경대를 내려간다. 이윽고 천진관음보전의 푸른 기와가 청정하게 나타난다. 법당으로 들어가니 하얀 옷을 입은 백의관음보살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길손을 반긴다. 와락 달려가 안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어머니 같은 보살님!

 

▲어머니의 품처럼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백의관음보살. 와락 품에 안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오체투지 삼배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동자전 밑에 오세동자가 감로수를 흘려주고 있다. 오세동자가 따라주는 감로수 한바가지 퍼 마신다. 물이 달디 달다. 계단을 오르니 동자전에는 오세동자가 천진무구한 눈으로 중생을 반긴다.  

 

▲오세암 동자전 뒤로 관음봉과 동자봉이 보인다.

 

아아, 오세동자! 오세동자에게 앞장 배례를 하고 동자상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들었다. 동자님 저 왔어요. 순진무구한 동자가 내 안으로 웃으며 들어오는 것 같다. 고사리 손으로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큰 스님을 기다리는 오세동자…

 

▲순진무구한 오세동자. 오세암 동자전 

 

때는 조선 인조 1643년, 설정(雪淨)스님의 다섯 살 조카가 양친을 여의고 오세암에 머물고 있었다. 해가 몹시 짧은 늦가을 스님은 겨우내 먹을 양식을 구하러 양양에 가야만 했다.

 

스님은 워낙 길이 험해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불러 놓고 몇 번이고 다짐을 했다. "절대로 절 밖으로 나가지 말거라. 무섭거든 관세음보살을 큰 소리로 불러라." 총명한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 말라는 듯 목탁을 추겨 들었다.

 

양양에 도착한 스님은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시주를 받아 다시 오세암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날이 어두워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스님은 양양 신도 집에서 뜬 눈으로 하룻밤을 지새우고 새벽닭이 울자 부랴부랴 걸망을 챙겨들고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밤새 눈이 내려 마당이 한길 눈으로 덮여 있었다.  

 

▲양식을 구하러 간 스님을 기다리다가 숨져간 오세동자는 죽어서 동자꽃으로 피어 났다고.

 

스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야속한 눈은 그 뒤에도 그치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갔다. 눈에 생기는 발자국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혼자 있는 동자에 대한 걱정으로 스님의 애간장은 점점 녹아내릴 듯 간절하다 못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먹는 것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지만 워낙 많이 쌓인 눈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엄동설한 폭설에 혼자 남겨둔 조카가 어떻게 됐을까'하는 생각만이 화두처럼 온몸을 감싸고돌았다. 스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부처님께 조카의 무사를 서원하는 기도를 열심히 드리는 일 뿐이었다.

 

이렇게 고통스런 몇 며칠을 보내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관음암으로 돌아 가려하니 사중의 모든 스님들이 말렸다. '이러한 폭설에 길을 나서면 죽을 게 뻔 한데 왜 가려고 하느냐'며 적극 만류하여 결국 스님은 눈길이 트일 때까지 신흥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동자전 뒤에 서 있는 관음봉과 동자봉이 전설을 전해주고 있다.

 

그 사이에도 무정한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어느덧 봄이 오고 눈이 녹아 산길이 트이게 되었다. 서둘러 바랑을 챙긴 스님은 뜀박질을 하듯 달려 암자에 들어섰다. 암자에 들어서니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카가 살아있다는 반가움에 스님은 어쩔 줄 몰라 했으며 어찌된 것이냐고 물으니 조카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어머니가 언제나 찾아와서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같이 놀아도 주었어요'라고 답을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환한 백의여인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성불의 기별을 주고는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창공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놀란 스님은 마음을 가다듬고 부처님 전에 큰절을 올리고 조카를 안아 보려 하자 품에 안기지도 않은 채 조카는 그대로 사그라져 승천을 하였다 한다.

 

나중에 살펴보니 법당 경상에 놓여 있던 책장이 스님이 집을 비운 딱 그만큼의 날짜만큼 찢겨져 나가있었다.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종이 한 장으로 그날 하루를 지내게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모든 것을 목격한 설정 스님은 다섯 살 어린 조카가 맑고 무구한 마음으로 삼촌인 스님이 시키는 대로 무념무상의 '관세음보살'을 계속하자 관음보살이 감응하고 그 가피로 영생불멸의 길로 접어든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5살 밖에 안 된 동자였지만 그 순진무구한 마음이 동자를 성불케 하였으며 이 도량에 관음보살의 영험이 있음을 길이 전하기 위해 관음암을 중건하고 절 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설정스님과 동자승은 그 후 얼마 안 되어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성불했다고 믿기도 했다. 또한 얼마 안 있어 동자승은 죽고, 동자승을 묻은 자리에 이름 모를 주홍빛 꽃이 피었다고 하며 이를 동자꽃이라 불렀다. (▶사진:오세암 오른편 건너편에 있는 부처를 닮은 바위 불두암)

 

지금도 오세암 주변 산속엔 이 동자꽃들이 많이 피었다 지곤 한다. 오세암 지붕 뒤로는 관음봉과 동자봉이 있어 당시의 설화를 묵묵히 전해주고 있다.

 

 

오세동자가 준 생명의 주먹밥 

 

▲어둠의 밤을 밝혀 주고 있는 생명의 석등은 꺼지지 않고 새생명을 심지를 태우고 있다.

 

눈을 뜨니 어느새 주변이 캄캄해졌다. 오세동자는 여전히 바루를 들고 천진무구하게 이 중생을 바라보고 있다. 동자전 앞 두 개의 석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깊은 산, 천지의 어둠을 두 개의 석등은 밝히고 있다. 새 생명을 밝히 듯 은은히 빛을 발하는 태고의 석등!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시인은 그렇게 노래했다. 두 개의 약한 석등은 님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잃지 않고 이 밤을 지키고 있을까? 구도의 염원을 담은 채 약한 등불은 꺼지지 않고 이 밤을 지키고 있을까? 타고 남은 재는 무엇으로 화하여 윤회를 할 것인가? 생명은 한줌의 재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져 가지만 다시 소생을 하여 윤회의 탈을 쓰고 다시 돌아오겠지.  

 ▲오세동자가 생명의 주먹밥을 배낭에 넣고 대청봉을 향해 출발하며 화이팅을 외치는 심장이식환자들

 

밤을 새고 나니 자연은 마치 다시 태어난 생명처럼 밝다. 오세암에서 뜨거운 미역국에 밥을 한 그릇 말아 먹었다. 우리의 오세동자는 굶어서 죽었지만 이렇게 오세암을 찾는 중생에게 미역국을 나누워 주고 있다.

 

오, 고맙고 감사해라, 그대 오세동자여!

동자꽃으로 다시 피어나 세상을 밝히는 오세동자여!

석등 심지에 불 밝히고 밤을 지키는 오세동자여!

 

환우들은 오세동자가 준 생명의 주먹밥을 하나씩 받아 배낭에 챙기고 봉정암을 향해 여명의 새벽길을 올라갔다. 주먹밥을 받은 환우들의 결의가 대단하다. 이들은 과연 봉정암에 참배를 하고 대청에 오를 수 있을까? 근심과 걱정을 없애준다는 시무전의 단풍이 걱정이 없는 듯 아름답기만 하다.

  

▲오세암 오세암 시무외전(五歲庵 施無畏殿) 앞의 단풍. 시무외전은 두려움과 걱정을 없애주는 곳이란 뜻이다.

 

양식을 구하러 간 스님을 기다리다가 죽어간 오세동자는 다시 환생을 하여 이렇게 길을 잃은 중생들에게 생명의 주먹밥을 나누어 주고 있다. 비록 그는 생명의 주먹밥을 먹지 못해 관세음보살을 부르다가 승천을 하였지만 그의 영혼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생명의 주먹밥을 나누어주고 있는 것이다.

 

오세동자가 준 생명의 주먹밥이 심자이식환자들을 지켜주리라.

시무외전의 관세음보살님이 천수천안으로 이들을 지켜주리라.

 

▲천수천안으로 중생의 두려움과 걱정을 덜어주는 시무외전의 관세음보살

  

 ▲오세동자가 따라주는 달디 단 감로수로 목을 축이고..

 ▲천진관음보전의 푸른 청기와

 ▲오세암과 요사채

 천진관음보전 사이로 보이는 귀때기 청봉

 ▲동자전에서 내려다 본 오세암 풍경

 ▲삼성악

 ▲마당 한 가운데 바위가 중심을 잡고 있다. 뒤로 보이는 바위가 간음봉과 동자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