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Nepal

외국인 방문이 처음이라는 버드라칼리학교를 가다

찰라777 2010. 11. 4. 11:58

 네팔에 심은 희망의 씨앗 하나⑤

 

외국인 방문이 처음이라는 버르라칼리학교를 가다

컴퓨터 10대를 기증하여 컴퓨터 교실을 열

 

 

▲저 네팔소녀의 맑은 눈동자 우리에게 맑은 영혼의 거울이 되어주고 있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모든 복덕은 씨앗을 뿌리는 데서 시작한다. 자신의 배만 채우는 데 급급하다면 그 인생은 비전이 없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고 놀기만 했다면 어찌 가을에 수확을 기대하겠는가? 뿌린 대로 거둔다. 복을 거두고 싶다면 복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나 살아가기도 바쁜데 어찌 남을 위해 씨앗을 뿌릴 여유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여기 자비공덕회 회원들은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번에 함께 오신 지도법사 지상스님은 수유리 북한산 자락의 작은 암자에서 심장박동기를 달고 살아가는 도반스님을 8년 동안 시봉하며 살아가고 있다. 절에는 종도 없으며 법당은 거실 겸, 부엌겸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불사를 하기보다는 '남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을 만들어 자비 행을 실천하고 있다.

 

 

자비공덕회 회원들의 구성도 모두 소박하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심장 이식을 한 보살, 홀로 사는 보살, 버스를 운전하는 거사, 공양주 보살을 하는 보살,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보살, 남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보살님, 농사를 짓는 보살님 등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마음은 풍요로운 사람들이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매일 조금씩 남을 위해 보시금을 저축하여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람들. 나는 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산 보살이요, 부처다! 내가 그들 속에 끼어 여기까지 온 것은 필시 전생에 조그마한 복덕을 지은 인연이 있을 것이다.

 

 

▲전통의상을 입고 합장을 하며 환영을 하는 네팔 소녀들

▲시토울나시가 우리 일행을 일일히 소개를 하고 있다.

 

 

 

초롱초롱한 눈동자이 환영에 눈물흘리다

 

여기 한국에서 온 가난한 사람들이 네팔의 더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꽃과 갈채 공양을 받으며 우리는 무대로 올라갔다. 아니 마음이 풍요로운 네팔의 아이들로부터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시토울나씨에 의하면 이 마을에 외국인이 공식으로 방문을 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했다. 마침 네팔의 가장 큰 명절인 더사인 축제 기간이어서인지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 아이들, 노인들 모두가 학교 교정으로 모여들었다. 남녀노소가 빼꼭히 들어찬 교정,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의 시선이 우리들에게 집중되었다.

 

 

전통 옷을 차려 입고 숄을 머리에 걸친 아름다운 소녀들이 꽃을 가슴에 달아주고, 합장을 하며 다소곳이 합장을 하였다.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 시선이 모두 우리들에게 집중되었다. 시토울나씨가 우리 일행을 한사람 한사람 호명을 하며 소개를 하자 우뢰와 같은 갈채가 쏟아졌다.이곳이 극락인가, 천국인가? 일행들은 쏟아지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며 모두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자비공덕회에 감사패를 전달하는 교장선생님

 ▲학교측에 컴퓨터와 장학증서를 전달하는 지상스님

 

 

▲창고 같은 건물에 컴퓨터 10대, 프린트 1대, 팩시밀리 1대로 컴퓨터 교실을 열었다.

 

 컴맹학교에 개설한 작은 컴퓨터 교실

 

 

교정에는 망고나무와 야자수나무가 여기저기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양철지붕으로 이은 학교건물은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먼저 컴퓨터 기증식을 가졌다. 이 학교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전문대학까지 학생 수가 약 1,200명에 달한다. 그러나 교실은 창고수준보다 못했다. 컴퓨터는 물론, 팩시밀리, 프린터기가 한 대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비공덕회는 컴퓨터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처음에는 중고 컴퓨터를 수집하여 기증을 하려고 했는데, 최근에 네팔 정부에서 중고품 반입은 일체 금지시켜버렸다고 한다. 다행히 컴퓨터 모금운동에 동참을 한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 천여만 원의 성금이 모아졌고, 우리는 그 자금으로 네팔 현지에서 델컴퓨터 10대와 팩시밀리 한 대, 프린터기 한 대를 구입하여 학교에 기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컴맹인 학교에 컴퓨터 10대를 기증한다는 소식은 이 학교에 가장 큰 빅뉴스가 되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 지역 신문과 방송 기자단이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Kanfipur FM에서는 생중계를 했으며, Kanchenjunga 방송국, Korkhapatra 일간지, 깐티푸르 일간지, BBC 등 기자들이 열띤 취재를 하였다. 학교 측에서는 허름한 교실에 컴퓨터 교실을 만들고 테이프 커팅 식을 가졌다. 전기사정이 좋이 않아 자주 정전이 되므로 컴퓨터 한 대마다 모두 안전 변압기를 달아야 했다. 이 지역 국회의원, 유지, 학교장과 우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컴퓨터 교실이 오픈되었다. 학생들은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감격스러운 장면이었다.

 

▲교장선생님과 지역 국회의원

▲ 지역 유지들

▲연띤 취재를 하고 있는 지역 방송 신문사 기자들

 

 

 

교장 선생님도 이 메일을 갖고 있지 않는 컴맹학교에 컴퓨터교실을 갖게 되었으니 학생들은 신기할 따름이다. 교사 중에 컴퓨터를 아는 사람이 딱 한 분 있는데, 그 선생님이 학생을 선별하여 컴퓨터를 가르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작은 컴퓨터 교실에 저 많은 학생들이 단 한번이라도 컴퓨터를 만질 기회가 있을까를 생각하니 괜히 변죽만 울리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작은 씨앗 하나를 심는 것에 불과 하다.

 

5시간 동안 진행된 환영회

 

 

이어서 디퍽 까르끼 당지역 국회의원, 처트러퍼티 수베디 학교운영위원장, 레원랄 스레스터교장선생님, 람 꾸마리 퍼우뎀 여성위원, 께섭 서르마 전문대학장 등이 환영사가 진행되었고, 지상스님의 답사가 있었다. 네팔인 들의 인사말은 생각보다 매우 길었다. 의외로 격식을 차리는 의식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3분이나 5분이면 족할 인사말이 20분 30분 동안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지역국회의원, 학교장(위)의 환영사, 지상스님의 답사, 시토울나씨의 경과보고(하)

 

  

 

한 사람이 인사말을 끝내고 나면 아이들이 준비한 축하공연을 선보였다. 제발 간소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시토울나에게 신신 당부를 했지만 네팔 사람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공연과 행사를 무시하면 모욕으로 생각을 한다고 하며 그대로 진행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의 공연은 무려 13차례나 계속되었다. 춤과 노래를 보르는 공연 태도가 너무나 진진하고 소박했다. 그 어떤 공연보다도 값지고 멋진 공연이었다.

 

 

"시토울나 씨, 여긴 점심도 먹지 않나요?"

"아하 점심이요. 우리 네팔 사람들은 행사 중에는 점심을 먹을 생각을 한해요. 행사가 더 주요하거든요."

"허허, 저런! 그래도 저 강열한 햇빛에 아이들이 힘들 텐데."

"걱정 마세요. 모두가 좋아하는 행사이니까요."

  

시토울나님이 상세한 경과보고를 하였다. 시토울나 씨는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이 좋은 모양이다. 5분만하겠다던 스피치가 20분을 넘고 말았다. 맙소사! 그는 고향에 금의환향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18년 전에 한국에 홀로 들어왔다. 그는 역사를 전공했는데 대학교 시절 우연히 한국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하나인 대한민국에서 88올림픽을 치른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무엇인가 배울 점이 있을 것 같아 대학생 자격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더 잘 하는 시토울나씨가 지상스님의 인사말을 통역하고 있다.

 

 

서울의 거리를 행보하다보니 모든 사람들의 바쁘고 역동적으로 보이더라는 것. 그래서 그는 한국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기로 하고 처음에는 디자인공부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노라노패션스쿨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패션사업에 손을 댔으나 성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을 그냥 떠나는 것이 너무 아쉬워 그는 네팔항공 한국지사에 취직을 하여 여행항공업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네팔투어라는 여행사를 차려 독립하였다. 1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독학으로 공부를 했다는 그의 한국말은 수준급이다. 그는 한국사람보다 한국말과 한국의 역사를 더 잘 안다. 네팔 정부에서 한국에 행사를 할 때는 시토울나 씨가 도 맡아 하게되었다.

 

 

한국어를 익히고, 네팔투어 여행사와 네팔관광청한국사무소장을 민간자격으로 역임하며, 네팔의 한국근로자들을 돕고 있다. 한국과 네팔의 문화 교류를 위해 힘쓰고, 최근에는 삼청동에 네팔 음식 전문점인 옴레스토랑을 개업하여 네팔의 맛을 선사하고 있다. 그는 금년 봄에 네팔과 한국을 잇는 여러 가지 공로로 서울시장으로부터 명예서울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5시간동안 움직일줄 모르는 아이들의 눈동자! 망고나무 위에 올라가 행사장면을 보고 있다.

 

 

무려 5시간에 걸친 긴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 긴 시간동안 우리를 감동케 한 것은 아이들이다! 그들은 그 긴 시간 동안 한 사람도 움직이지 않고 무대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일이 이렇게 큰 뉴스거리가 될 줄이야. 우리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이었다. 

 

공식적으로 외국인 방문이 처음인데다가 문명의 최고 오지인 컴맹학교에 컴퓨터를 기증하는 것은 일대 뉴스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허지만 우리들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많았다. 작은 일에 크게 감사할 줄 아는 그들의 마음, 진심, 맑은 영혼이 우리들의 마음을 일깨워주고 맑게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환대를 받는 것은 오히려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학생들의 정성스럽고 진지한 공연장면과 공연을 한 학생들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시토울나씨 

 

 

 

오전 10시에 시작한 행사는 오후 3시에야 막을 내렸다. 우리는 아이들은 쉽사리 흩어지지를 않고 우리들을 따라 다녔다. 우린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에 있는 빠담의 집으로 향했다. 빠담의 집은 논 가운데 있는 작은 농가였다.

 

 

눈동자, 눈동자, 눈동자! 그 해맑은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무언가를 염원하며 맑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저 눈동자는 과거생의 나의 모습이 아닐까? 아아, 나는 그들의 눈동자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녹슬은 학교 양철지붕에 망고나무와 야자수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히말라야의 눈동자

 

 

희망의 씨앗 하나를 들고

태평양을 지나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 하고도 칸젠충가 오지마을에 왔다네.

 

 

아이들의 영롱한 눈동자 속에서

찬란한 히말라야의 영혼을 보았다네.

그 해맑은 눈동자 앞에 감격하여

눈물 흘리네!

눈물 흘리네!

 

 

양손 합장하여 눈처럼 하얀 갈채를 보내는

희망의 씨앗들이여!

희망의 씨앗들이여!

눈부신 햇살 아래 그리움의 시선으로

가슴에 집중되는 눈동자여!

그대들 앞에 심히 부끄럽도다.

 

우린 늘 배부르면서도

더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다네.

 

소녀의 맑은 눈동자가 업경대처럼 다가오는구나

그 티없는 업경대에 내 과거생의 무거운 업이

파노라마처럼 비추어지고 있구나

 

아아, 너의 맑은 영혼 앞에서

참회 하노라

참회 하노라

참회 하노라

 

 

(2010. 10. 9 네팔 동부 칸젠충가 인근 버드러칼리 학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