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North America

유령의 도시, 칼리코 타운

찰라777 2012. 7. 29. 16:30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옥

 

▪ 유령의 도시, 칼리코 타운

 

“땅, 따 당 땅땅!”

총성이 갑자기 사막의 정적을 깨드리며 고막 속으로 뚫고 들어 왔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서부의 총잡이 들이 결투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우리를 태운 버스가 유령의 도시 칼리코 타운 입구에 정차를 했을 때 갑자기 들려온 총성은 우리들을 무척 놀라게 하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화약 냄새가 코를 진동했고, 몇 명은 가슴에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검은 복면을 한 총잡이들이 권총으로 우리를 겨누며 정말 쏠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모두 손들 엇! 그리고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모조리 꺼내시오!”

“아니……. 저 사람들이 정말로 쏘려고 해요!”

아내는 놀란 듯 나의 팔을 잡았다.

“여러분! 유령의 도시 칼리코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 때 복면을 벗으며 서부의 총잡이가 우리들을 향해 웃으며 환영의 인사를 했다. 우리는 오늘 아침 로스앤젤로스를 출발하여 15번 프리웨이를 타고 라스베가스로 향하다가 이 유령의 도시에 칼리코에 잠시 들렸던 것.

 

황량한 사막에는 태양이 불볕처럼 뜨거운 열을 내 뿜으며 땅을 태우고 있었다. 대지는 모든 만물을 녹여 버릴 듯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칼리코란 유령의 도시는 이 불타는 사막의 폐광촌에 정말 사막의 귀신들을 모두 모아 놓은 듯 서 있었다.

칼리코는 당초 은을 캐내는 광산촌이었다. 1881년부터 개발하여 연간 200만 달러 상당의 은과 900만 달러 상당의 붕사를 생산하였던 남가주 최대의 광산촌이었다. 그 뒤 수지가 맞지 않아 1907년부터 폐광을 하여 유령의 마을처럼 변해버린 공동묘지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1951년 월터 노트란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어 이 폐광촌을 관광지로 개발하였다. 폐광촌에 불과 했던 것을 옛날 모습대로 복원을 했던 것. 관리사무소와 교회, 극장, 병원, 우체국, 채광장비, 은광 석을 운반하였던 증기기관차, 마차 들을 전성기 때의 옛 모습대로 복원 시켰다.

거리에는 나비넥타이를 맨 할아버지가 멋스럽게 풍금을 연주하고 있었고, 마치 존 웨인 같은 복장과 모자를 쓴 서부의 총잡이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사금을 채취하는 곳을 재현시킨 사금 채취장, 광산촌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황금마차, 맥주마차, 노새, 그리고 우편배달을 하던 전설적인 개 ‘도우시’의 모형까지 재현시켜 놓고 있었다.

그 당시 은을 실어 나르던 증기기관차가 지금도 붕붕~ 기적소리를 울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광산촌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주말이면 서부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쌍권총을 찬 카우보이들이 벌이는 총잡이들의 쇼, 남북 전쟁 상황 재현 쇼 등이 다채롭게 재현되고 있다.

옛 향수에 젖기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의 심리를 이용한 월터의 아이디어는 적중하여 지금은 전성기 때 광산에서 생산하였던 수입보다도 더 많은 수입을 관광수입으로 벌여 들이고 있다고 한다. 유령의 폐광촌이 관광도시로 변모된 칼리코는 매년 유령의 축제를 벌려 매년 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폐광촌인 사북 탄광촌도 사행심을 불러일으키는 카지노만 떨렁 지어 놓을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관광지로 개발함이 어떨까?

“여보, 저 사금 좀 봐요. 정말로 물에서 금을 건져 내고 있군요.”

“나는 저 존 웨인 같은 쌍권총을 차고 한번 활보를 해보았으면 좋겠는데…….”

유령의 도시에서도 여자와 남자의 관심사는 달랐다. 아내는 금에 관심이 있었고, 나는 서부의 총잡이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지금도 곧 귀신이 어디선가 튀어 나올 것만 같은 유령의 도시는 아직도 쓸쓸함과 황량함이 베어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애수에 젖게 하고 있었다. 칼리코는 불과 1백 년 전에 황금기를 구가하며 골드러시를 이루었던 서부 개척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사막위에 세워진 이 유령의 도시는 분명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서부개척사를 미국인들에게 되새겨 주며,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여주는 교육의 현장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옛 모습을 재현 시켜 놓은 카페에서 점심을 먹은 뒤, 그 유령의 도시를 빠져 나왔다. 삐익~ 삐익~ 증기기관차가 구슬프게 여음을 남기며 사막의 열기를 뒤흔들고 있었다.

 

[사진] 칼리코의 총잡이들과 함께

[사진] 칼리코의 거리 표정

 

 

▪ 사막의 아울렛 바스토우에서 쇼핑을

 

15번 프리웨이는 뜨거웠다.

모하비 사막을 관통하는 15번 도로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우리는 시간이 정지된 듯한 황량한 사막을 달려가고 있었다.

모하비 사막은 캘리포니아 주 시에라네바다 산맥 남쪽에서 콜로라도로 뻗어있는 메마른 땅이다. 북으로는 죽음의 계곡인 데스밸리와 이어지고 남으로는 콜로라도 강으로 이어지는 모하비 사막은 갈색으로 변한 마른 풀만 간간히 보인다.

차안은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는데도 별로 시원한 줄을 느낄 수가 없었다. 뜨거운 아스팔트를 달려가던 버스는 자신의 발인 바퀴가 뜨거워 견딜 수 없었던지 바스토우라고 표시된 팻말에서 갑자기 우회전을 하였다.

허허로운 사막에 갑자기 낮은 건물 하나가 덩그렇게 나타났다. 건물 앞에 도착을 하니 때 아닌 쇼핑가가 펼쳐져 있었다. 바겐세일을 한다는 광고문구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뇌 살스런 햇볕이 볼록렌즈의 뜨거운 광선처럼 머리를 짖어대기 시작했다.

“어휴 뜨거워! 아니, 사막에 웬 쇼핑센터에요?”

“라스베가스를 오가는 도박꾼들이 이곳에서 쇼핑을 한대.”

“아니 하필이면 이런 불모의 사막에서 쇼핑을 하나요?”

“도박꾼들이 아내를 달래기 위해서, 혹은 욕구불만을 채우기 위하여 쇼핑을 한다는 거야. 물건 값도 다른데 비하여 싸게 팔고.”

“이렇게 더운데 쇼핑이나 하겠어요?”

“안으로 들어가면 시원할거야.”

미국사람들은 참으로 기상천외의 발상을 잘도 한다. 또 그 발상의 의도대로 사람들이 호응을 하는 것을 보면 역시 미국은 미국이다. 아메리칸 드림도 따지고 보면 모두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게 아니겠가?.

성공이냐 실패냐?

그러나 기회의 땅 미국에는 분명히 노력하는 자에겐 반드시 보상을 주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라스베가스가 가까워지자 슬슬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대한 유혹의 손길이 뻗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막에 쇼핑센터를 세운 것도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아내는 그 사막의 쇼핑센터에서 티셔츠 4개, 반바지 두개를 샀다. 정말 값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쌌고, 품질도 좋았기 때문. 나는 짐이 무거워져 걱정인데 아내는 연실 싱글벙글.

“사막에서 쇼핑을 할만 허우?”

“물건들이 너무 싸고 좋아요!”

그러니 도박에서 돈을 잃은 사람도, 딴 사람도 어찌 쇼핑욕구를 채우기 위해 이곳을 들리지 않겠는가.

 

 

▪ 지상 최대의 쇼 천국, 라스베가스

 

대박을 노리는 일화천금의 꿈.

도박, 쇼, 섹스, 술, 마약, 쾌락, 그리고 네온의 거리에서의 뜨거운 사랑…….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시키는 무수한 유혹의 손길이 뻗히는 곳이 라스베가스다. 그 유혹의 도시 라스베가스에 드디어 도착했다.

‘라스베가스엔 어두운 밤에 도착하라!’

낮에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죽어 있다가, 밤이 되면 갑자기 모든 만물이 살아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라스베가스. 그래서 라스베가스엔 죽어 있는 낮에 도착을 하지 말고 살아있는 밤에 도착하라는 말이 생겨났으리라.

신이 수십억 년의 세월을 거쳐 아름다운 그랜드 캐니언을 빚어냈다면, 인간은 불모지 네바다 사막에 후버댐과 불야성의 도시 라스베가스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제 라스베가스는 단순한 카지노의 도시에서 온 가족 함께 즐기는 오락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우리가 라스베가스에 도착 한 시각은 서서히 땅거미 지고 있는 저녁나절이었다.

지글지글 짖어대던 태양도 사막의 무덤을 견뎌내지 못하고 모래 언덕위에 묻혀버린 밤의 시각. 긴 열사의 사막을 달려온 버스는 화려한 스트리프(Strip) 거리에 도착하자마자 힘이 버거운 듯 우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스트리프 거리는 약 6km에 이르는 카지노와 고급 호텔이 늘어선 라스베가스의 다운타운이다.

우리들 앞에는 그 황홀한 불야성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독버섯처럼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태양의 신마저 뜨거운 사막의 더위에 견디다 못해 모래성 너머로 잠이 들어버린 사막의 도시. 이제 라스베가스엔 악의 신들과 인간들만이 벌리는 지상 최대의 쇼 연출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파리의 에펠 타워, 이집트의 피라미드, 룩소르 신전, 2천년 전의 로마,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벨라지오, 미국의 뉴욕,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전 세계의 유명 유적지와 관광지가 경쟁을 벌리듯 2백만 여개의 네온이 어둠을 밝히는 스트리프의 거리에 그 화려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 하고 있었던 것.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 가상세계의 체험, 호랑이 사육장, 밀랍 박물관 등 이제 라스베가스는 1990년 이후부터 거리 자체에서 지상 최대의 쇼를 즐길 수 있는 종합 오락 타운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우리가 라스베가스에 도착하여 오늘 밤 묵을 임페리얼 팰래스 호텔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백 대의 슬롯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현란한 불빛과 더불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카지노의 머신들, 거의 나체차림을 한 늘씬한 아가씨들의 춤과 분주한 움직임…….

“아이고, 어지럽군요!”

아내의 그 한마다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다. 넓고 긴 도박장을 한참을 지나서야 겨우 호텔의 리셉션 데스크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여보, 오늘 밤은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요. 알큰한 김치에 된장국 같은 거…….”

호텔방에 짐을 풀어 놓으면서 라스베가스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아내의 엉뚱한 말에 나는 아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허긴 하루 종일 드라이한 사막을 달려 온데다, 미국에 온 이후 맨 날 버터 바른 빵과 치즈만 먹어댔으니 단백하고 얼큰한 한국음식이 그리울 때도 되었으리라.

 

“혹시 어디 한국음식점을 알고 계시나요?”

“슈어(물론이지요), 스타 다스트 호텔 앞에 가면 BBQ라는 코리언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걷기는 좀 멀고 바로 호텔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 남자, 참 상냥하고 친절하군요.”

싱긋 웃으며 안내를 해주는 쾌남형의 데스크 안내원을 뒤 돌아보며 아내가 말했다. 아주 잘 생긴 젊은 남자였다.

‘그럼, 라스베가스는 모두 쇼를 벌이는 배우들의 집합이니 잘 생기고 상냥하지.’

BBQ한국 음식점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된장찌개 한 그릇에 8달라 90센트. 세금까지 합하여 19 달라 20센트를 지불하고 우리는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마음껏 즐겼다. 한국인 종업원들도 매우 친절했다. 고추와 김치도 달라는 대로 더 주었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자, 그럼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돈나, 마이클 잭슨을 보러 갑시다.”

“아니, 그 가수들이 어디에 있는데요?”

“따라와 보면 알아.”

임페리얼 팰래스 호텔에서는 전설적인 스타들을 흉내 내는 모창가수들의 쇼가 공연되고 있었던 것.

라스베가스에 들어서면 도시 전체가 쇼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결치는 네온의 현란한 움직임과 하늘을 찌를 듯한 고급호텔들의 위용. 쇼의 천국에 왔으면 거리에 펼쳐지는 쇼는 물론, 실내에서 벌이는 엔터테인먼트 하나 정도는 보아야 한다.

호텔 임패리얼 극장. 삼페인을 한잔씩 돌리며 시작된 모창 가수들의 쇼는 정말 진짜 가수를 뺨칠 정도로 노래도 연기도 훌륭했다.

“저 사람, 마이클 잭슨보다 춤을 더 잘 추는 군요.”

“원래 무명가수들이 노래는 더 잘 불러.”

우리는 짧은 시간에 엘비스 프레슬리, 마돈나, 존 레논, 마를린 몬로, 비틀스, 엘튼 존 등 전설적인 가수들과 스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저걸 연습하느라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그들이 흘리는 땀과 정열이 무대에서 녹아나고 있었다. 그들에게 누가 창작성이 없다고 하겠는가?

모방도 창조이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다 모방에서 시작된다. 언어와 행동도, 창작도, 과학도 따지고 보면 모두 모방에서 시작된다. 모방이 없이는 창조도 없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원래 있는 것에 한 꺼풀 더 옷을 입힌 스타일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러니 저 무대에 선 모창가수들을 누가 창조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모창 가수들이 혼신을 다하여 부르는 노래에 취해 열광을 했다. 쇼가 끝나자 우리는 다시 도박장으로 나왔다. 라스베가스는 어디를 가나 한발자국만 뛰면 카지노 기계들이 인간들의 마음을 유혹한다.

“한 10불어치만 돌려 볼까?”

번쩍번쩍 돌아가며 코인을 토해내는 어느 슬롯머신 앞에서 내가 한 말이었다. 나도 인간인데, 일확천금을 노리는 원초적인 본능 앞에서 어찌 유혹을 받지 않겠는가?

“여보, 크던 적던 도박만은 안돼요!”

“그럼 무엇은 되고?”

“우리 그만 밖으로 나가요.”

저만치 땅바닥에 어떤 여인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뜨였다. ‘도박을 해서 돈을 날렸나, 아니면 실연을 했다?’ 내가 보기엔 돈을 날려버린 게 틀림없었다. 도박에 빠진 여인은 아편보다도 도박을 끊지 못한다고 했던 어느 소설 대목이 생각났다.

아내의 손에 등을 떠밀려 우리는 카지노 밖으로 나왔다. 다시 스트리프의 거리였다. 네온사인이 현란하게 명멸하는 스트리프의 거리엔 여전히 ‘지상 최대의 쇼’가 공연되고 있었다.

 

 

▪ 라스베가스의 뜨거운 밤

 

스트리프의 거리는 황당할 정도로 변모해 있었다. 나는 이 거리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20여 년 전에 홀로 이 거리를 활보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20대 후반의 혈기왕성한 나이였다. 뜨거운 밤거리를 걷다가 신호등 앞에 잠시 서 있었는데, 어떤 금발의 미녀가 신문지 한 장을 건네주고는 살짝 윙크를 하고 지나갔다.

‘엇, 이게 뭐야?’

그것은 신문지가 아니라 섹스를 어필하는 광고 전단이었다. 여인의 은밀한 부분을 무방비상태로 들어낸 누드사진. 긴 머리 사이로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여인의 젖무덤, 요녀 요염하게 웃는 얼굴…….

‘콜미! 나이 00살, 가슴, 허리, 히프 사이즈……. 전화번호 000번, 당신과 환상적인 데이트를 하고 싶어요!'

뭐 이런 내용들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라스베가스 거리엔 전단지를 돌리는 여인과 매춘 브로셔가 담긴 전단 박스는 있어도 거리에서 직접 손님을 유혹하는 창녀는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은밀하게 전화로 흥정을 하기 때문.

 

모하비 사막을 달려 올 때에는 작열하는 태양 빛 때문에 머리가 뜨거웠는데, 라스베가스의 밤은 네온의 열기와 인간들의 홍수로 온 몸이 뜨거웠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억제 하지 못하고 타락의 늪 속으로 질주하는 뜨거운 날개들이 밤을 뜨겁게 하고 있었다.

몇 억만의 치열한 경쟁을 헤집고 단 한번의 잭팟을 행운을 잡기 위해, 혹은 뜨거운 쇼의 천국을 온 몸으로 느끼기 위해 1년에 3천 5백만 여명의 관광객이 애벌레처럼 이 불야성에 온다. 그래서 라스베가스의 밤은 언제나 뜨겁다.

타락. 타락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타락은 ‘품행이 바르지 못하여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실패를 경험한자가 성공을 하고, 파괴를 해 본 자가 진정한 건설을 이루듯이 진정으로 타락을 해 본 자만이 정도가 무엇인지 알리라.

 

아내와 나는 화려한 스트리프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라스베가스는 무료로 관람을 할 수 있는 쇼가 지천에 널려 있다. 몇 십분 간격으로 벌어지는 거리의 쇼는 잘 만하면 몇 시간의 다리품으로 사막의 불야성에서 벌어지는 지상 최대의 쇼를 공짜로 구경을 할 수가 있다.

 

 

▪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옥

 

시저스 팰래스로 가는 건널목을 건너가는데, 갑자기 빨간색 스포츠카가 찌익 하고 바로 우리 옆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며 그 스포츠카의 운전석을 노려보았다. 분명히 건널목의 신호등은 파란불이었다. 운전석에는 무스를 진하게 바른 젊은 청년이 손을 흔들며 씩 웃었다. 옆 좌석엔 아름다운 금발머리의 아가씨가 함께 웃고 있었다.

“여보, 술을 먹었나 봐요. 그냥가요.”

어이가 없었지만 씩 웃으며 그냥 손을 흔들어 주면서 건널목을 지나갔다. 사라져가는 빨간색 스포츠카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vegas’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LA에서 알코올 중독 때문에 해고를 당한 벤(니콜라스 케이지 역). 그가 라스베가스의 거리를 술을 마시며 차를 몰다가 파란 신호등이 켜진 건널목을 건너는 어떤 여자 앞에서 지금처럼 찌익 하고 브레이크를 밟았던 장면. 급브레이크를 밟은 채로 술을 마시고 있는 벤의 눈앞에 창녀 세라의 터질 듯한 가슴이 자동차의 창 너머로 나타난다.

“운전을 하면서 술을 마시면 안 되지 않아요?”

알코올 중독자 창녀의 만남. 그 건널목에서 벤은 창녀 세라를 운명적인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라스베가스는 왜 왔어요?”

“술을 마시다가 죽으려고 왔지.”

“언제쯤 죽을 건데요?”

벤과 세라. 알코올 중독자와 창녀 세라의 막다른 삶을 그린 이 영화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며, 인간이 나눌 수 있는 오직 단 한 번만의 귀한 사랑으로 승화된다.

그가 싸구려 모텔 사계절(The Whole Year Inn)에 들어와 체크인을 하며, 그 모텔 이름을 ‘The Whole You're In(당신이 빠져 있는 구멍)’으로 읽으며 미소 짓던 모습이 네온사인에 어른거리며 지나갔다.

 

시저스 팰리스 호텔 앞에는 트로이의 목마가 오디세이의 지혜처럼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포럼 숍으로 들어가니 지중해의 24시가 둥그런 돔의 천장에 연출되고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넋을 잃은 채 지중해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시저스에서 나와 미라지 호텔로 발길을 돌리니 거대한 화산의 폭발하며 용암이 흘러내리는 조명 쇼가 전개되고 있었다.

“우와~!”

그 모습은 한 마디로 ‘우와~’였다.

인간이 연출하는 쇼는 벨라지오 호텔에서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수천 개의 물줄기가 춤을 추며 어두운 밤하늘로 솟아오르는 지상 최대의 파운틴 쇼.

“아~! 아~! 아~!”

이 소리는 분수 쇼의 황홀한 모션에 따라 지르는 사람들의 탄성이었다. 너무도, 너무도 아름다운 분수 쇼가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 분수의 물줄기는 휘황한 조명을 받으며 마치 쾌락을 유혹하는 아름다운 독버섯처럼 춤을 추면서 어두운 밤하늘로 감미롭게 타 오르고 있었다.

26층 높이까지 치솟는 파운틴 쇼는 천여 개의 분수가 파파로티, 프랭크 시나트라 등의 음악과 함께 환상적으로 펼쳐져 라스베가스 최고의 볼거리. 라스베가스에서 이 분수 쇼를 놓치면 억울 할거다.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 쇼는 백미중의 백미다.

“살아 있다는 것은 역시 좋은 것이군요.”

“흠~?”

“이렇게 아름다운 밤을 맞이할 수 있으니 말 이예요.”

“......”

아내의 말이 맞다. 살아 있다는 건 아름다운 거다. 그리고 세상은 아름다운 지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아름다운 지옥의 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분수 쇼가 끝나자 우리는 몬테카를로와 룩소르 신전, 뉴욕뉴욕의 화려한 호텔들을 들락 달락 구경하면서 MGM그랜드호텔 앞까지 갔다.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로 생긴 육교를 타고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지상에 에스컬레이터가 가동되고 있는 육교는 라스베가스에서 처음 본다. 육교 밑으로 고급 승용차들이 명멸하며 지나갔다.

MGM입구에는 황금 빛 찬란한 라이언상이 오벨리스크의 기둥들에 둘러 싸여 우리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오벨리스크의 끝에는 성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라스베가스는 말 그대로 밤을 잊은 환락의 도시였다.

우리는 반대편 거리에 서 있는 알라딘, 파리의 에펠 타워, 발리스, 플라밍고 호텔들을 거쳐 다시 우리들의 숙소로 돌아왔다.

밤 11. 아내는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라스베가스의 밤에 상기 되지 않는 여인은 감정이 메말라 버린 여인이리라.

아내는 또 그 시간에 오늘 모하비 사막의 바스토우 쇼핑센터에서 사온 반바지와 티셔츠를 꺼냈다. 아내는 반바지와 티셔츠를 번갈아 입어보며 패션쇼를 벌였다.

“내일은 이 옷들을 입을 거예요.”

반바지를 입은 아내는 이 뜨거운 사막의 도시만큼이나 달아올라 있었다. 옷 6벌을 다 합해봐야 50달러도 안되는 돈이었다. 때 아닌 패션쇼를 끝내고 아내와 나는 라스베가스에 명멸하는 네온보다 더 뜨거운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라스베가스를 떠나 그랜드 캐니언으로 향했다. 그렇게도 북적거렸던 스트리프의 거리도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했다. 거리엔 청소차가 치직거리며 물을 뿌리고 거리를 쓸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밤의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듯이.

밤의 열기가 지나고 네바다 사막엔 다시 작열하는 태양이 모래성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는 우연히도 돈 헨리의 ‘비가 오나 맑을 날이 오나(Come Rain Or Come Shine')란 노래가 흐느끼듯 울려 나오고 있었다.

“여러분! 라스베가스의 뜨거운 밤을 잘 보내셨나요?”

가이드 수잔이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아침인사를 했다. 중년의 농익은 멋을 풍기는 수잔은 언제나 때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우리들에게 서비스를 해 주고 있었다.

 

‘당신을 사랑하겠소.

당신을 사랑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비가 오나 맑은 날이나,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당신을 사랑 하겠소.’

 

단 한 번뿐인 인생의 승부를 사랑에 걸 것인가 갬블링에 걸 것인가? 세라의 품에 안겨 단 한번의 사랑을 고백하며 죽어가는 벤의 마지막 장면이 라스베가스를 떠나는 차창 가에 떠올랐다.

돈 헨리의 감미로운 음악이 밤의 광란에 지친 영혼들을 어루만져 주고 있는 고요한 라스베가스의 아침. 우리는 눈을 감고 돈 헨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옥, 라스베가스를 떠나고 있었다.

 

[사진] 라스베가스의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