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North America

브라이언 헤드-아내는 고삐풀린 망아지

찰라777 2012. 7. 29. 16:35

 

브라이언 헤드

아내는 고삐풀린 망아지

 

 

 

“아이고, 큰일 났네!”

“큰일이라니?”

“내 팔찌가 없어 졌어요.”“무슨 팔찌를?”

“어디다 두었을까? 아, 그랜드캐니언 로지에 두고 온 것 같아요.”

“저런, 어? 그러고 보니 내 수첩도 없네! 나도 그 로지 테이블에 두고 왔나봐…….”

자이언 캐니언을 떠나 유타 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브레인 헤드의 알파인 리조트에 여장을 풀면서 아내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랜드 캐니언의 풍광에 취해 아내는 그만 차고 다니던 팔찌를 로지에 두고 온 모양. 나 역시 매일 일기 식으로 기록을 했던 조그만 다이어리를 그 로지에 두고 온 것 같았다.

아내의 팔찌는 몇 년 전에 내가 아프리카 튀니지를 여행하면서 사 온 이미테이션 팔찌로 값은 매우 싼 것이었지만, 아내를 생각하며 샀던 내 정성이 깃들어 있었던 선물이었고, 다이어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지금까지 지나온 여행을 스케치한 기록이 되어있었던 것으로, 돈으로 환산하면 별거 아니지만 둘 다 잃어버리기엔 아까운 물건들이었다.

나는 수잔에게 전화를 해서 그랜드캐니언의 PK로지에 수소문을 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우리들의 방은 205호실인데, 틀림없이 그 방에 두고 온 것 같아요.”

“오케이, 걱정 말아요. 그곳에 빠뜨린 것이 확실하다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브레인 헤드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원형극장처럼 둥글게 펼쳐진 스키장으로 자동차로 솔트레이크 시에서 4시간, 라스베가스에서는 3시간 정도 소요되는 유타 주 중 북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스키장 면적은 500에이커에 달하고 가장 긴 코슨 2.4km에 달하며 이 곳은 평균 적설량이 1,000cm가 넘는다.

우리가 오늘 밤 묵을 ‘시다 브레이크 로지’는 브라이언 헤드 스키장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순전히 나무로만 지어진 건물이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니 나무향기가 매우 좋았다. 방안으로 들어가니 룸도 매우 컸고, 침대의 매트 또한 넓고 푹신하게 쿠션이 매우 좋았다.

“와~ 좋다!”

방안으로 들어 온 아내는 통나무 향기에 취한 듯 침대의 쿠션으로 철렁 하고 몸을 던졌다.

“우리가 오늘 지낼 신방이야.”

“좋았어!”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거야.”

“좋았어!”

“걱정하지 말고.”

“좋았어!”

“속을 텅 빈 채.”

“좋았어!”

“내일은 내일, 오늘을 즐겁게!”

“좋았어! 그런데 오늘 당신 무슨 시인 같아요.”

“난 태어날 때부터 시인이지 않소?”

“하하, 당신이 시인이라면 나는 뭐죠?”

“그대는 망아지처럼 뿔난 처녀.”

“안돼요! 그건 너무 하지 않아요?”

오늘의 분위기가 그랬다. 자이언 캐니언에서부터 매리한테 처녀 총각이라는 소리를 들은 우리들은 이 분위기 있는 통나무집에 들어오자 정말 바람난 총각과 처녀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는 정말 시인처럼 말을 읊어댔고 아내는 연신 ‘좋았어’를 중얼거리며 침대의 쿠션을 향해 점프를 했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창문에 비추는 석양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밖으로 나왔다. 멀리 나바조 피크가 바라보이는 브라이언 헤드의 일몰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산 바로 중턱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고 하얗게 쌓여 있는가 하면, 산 아래 스키장으로 가는 광장에는 푸른 잔디밭이 싱그럽게 펼쳐져 있었다.

아내는 잔디밭을 보더니 갑자기 침엽수림으로 뛰어 가기 시작하였다. 블루진을 걸치고 노을 지는 산을 향해 뛰어 가는 아내의 모습은 정말 바람난 망아지처럼 보였다.

침엽수림으로 들어가는 산 밑에 다다르니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아내는 눈밭을 풍풍 빠지면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당신 오늘은 눈 속을 달리는 배우 같아!”

“뭐라고요? 안 들려요?”

“초원과 눈밭을 달리는 모델 같다니까!”

“안 들린 다니까요?”

캠코더로 아내의 모습을 담으며 내가 소리를 질렀지만,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아내는 들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6월이라 스키장은 이미 문을 닫아 알파인들은 눈에 띄지 않았고 눈 덮인 산 밑의 초원에는 아내와 나 둘 뿐이었다.

숲에서 내려온 아내는 볼이 상기되어 있었다.

“아까 날더러 뭐라고 했어요?”

“여배우 같다고 했지.”

“아하!”

“인생을 배우처럼 살자고!”

“좋았어요!”

이윽고 노을마저 삼켜버린 나바조의 계곡에도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침묵하는 어두움 뿐, 리조트는 조용했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멀리 ‘YAMAHA'라는 네온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까지 깊숙이 파고드는 일본의 상혼은 알아주어야겠군.”

“정말로 못 당해요. 얄미울 정도로.”

밤이 되자 날씨가 추어졌다. 시다 브레이크 로지로 돌아 온 우리는 그날 밤 나무 향기에 취해 정말로 허니문 같은 달콤한 밤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