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North America

아아, 그랜드 캐년!

찰라777 2012. 7. 29. 16:32

델마와 루이스가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협곡으로 날아가고 싶어!

 

델마와 루이스가 아니더라도…….

미국인들도 일생에 꼭 한번 와 보고 싶은 그랜드 캐니언. 텍사스에서부터 숨 가쁘게 경찰에 쫓겨 온 델마와 루이스가 자동차를 몰아 그랜드 캐니언의 대협곡으로 점프 하던 마지막 장면이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고 아름다운 협곡의 중간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환상을 본다.

라스베가스에서 하루 종일 달려 우리는 오후 4시에 그랜드 캐니언 노스 림의 브라이트 엔젤 포인트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통나무집 PK로지에 짐을 풀어 놓고 아내와 나는 브라이트 엔젤포인트로 달려갔다.

“아, 아~!”

브라이트 엔젤포인트에서 그랜드 캐니언을 바라보는 아내의 첫 일성은 ‘아아’ 하는 탄성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 필요 하랴. 이 감탄사 하나면 족했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펼쳐진 이 적갈색의 파노라마 앞에 압도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라스베가스를 인간이 일구어 놓은 환상적인 작품이라고 한다면, 그랜드 캐니언은 오직 신만이 빚어낼 수 있는 신비하고 거대한 자연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라스베가스에서 쾌락에 지친 영혼을 쉬게 하는 곳.

브라이트 엔젤 포인트는 노스 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는 전망대다. 사우스 림에는 마더 포인트와 호피 포인트 등 대표적인 전망대가 있다. 그랜드 캐니언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사우스 림의 포인트로 간다. 시설이 좋기 때문.

그러나 사람들이 들끓고 있는 사우스 림에 비해 노스 림에 바라본 캐니언의 모습은 고요함속에서 신비감을 더해주며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이 대자연의 웅장한 파노라마와 아름다움 앞에서 더욱 왜소해지는 인간의 존재. 수억 년의 세월과 콜로라도 강의 급류가 만들어낸 대 협곡 앞에서 우리는 자연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저 아름다운 협곡으로 날아가고 싶군요!”

“날개가 없더라도 날아가고 싶을 텐데.”

때마침 강한 바람이 협곡에서 불어왔다. 몸이 휘청해질 정도로.

“이 바람을 타고 한번 날아가 볼까?”

“여보, 조심해요!”

바람에 밀려 날아가는 시늉을 하는 나를 보고 아내는 기겁을 하며 놀랬다. 쇠로 만들어 놓은 안전대가 없었더라면 이 강한 바람에 날려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기야 이 아름다운 절경에 와서 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다니 바람에 날려 떨어져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으리라.

그랜드 캐니언은 로키 산맥과 워새치 산맥으로 둘러싸인 곳에 애리조나 주를 중심으로 한 유타, 콜로라도, 뉴멕시코 주의 고원지대에 펼쳐져 있다. 해발고도는 1000m에서 3000m로 보기에는 평원처럼 보이지만 매우 높은 고지대에 있다.

협곡의 길이는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거리인 450km. 폭은 6km에서 30km에 이르는 곳도 있으며, 최대 깊이는 1600m에 달한다. 계곡에 흐르는 콜로라도 강은 후버 댐에 저장되어 라스베가스 등 사막의 젖줄 역할을 한다.

라스베가스를 출발한 우리는 유타 주를 거쳐 카이밥 국립 수목원을 통과해서 이곳으로 왔다. 코코니뇨 인디안 원주민들은 이 그랜드 캐니언을 ‘카이밥(Kaibab)'이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드러누운 산’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정말 드러누운 산에 땅이 양쪽으로 갈라져 무간지옥 같은 협곡을 형성하고 있었다.

도중에 거대한 몰몬 템플이 있는 세인트 죠지의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은 후, 황량한 사막에서 때아니게 펼쳐져 있는 카이밥 수목원의 푸른 숲길을 바라보며 이곳 엔젤포인트가 있는 노스림으로 왔다.

“여보, 좀 어지럽군요.”

“나도 좀 어지럽네. 고지대에다가 건조해서 그래요. 로지로 돌아가 일단 저녁을 먹읍시다.”

매우 건조한 날씨인데다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 고지대여서 그런지 호흡을 하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로지의 레스토랑으로 돌아와 콜라와 함께 피자를 한판 시켜 먹었다.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그랜드캐니언의 전망도 너무 아름다웠다.

 

[사진] 노스림의 브라이트 앤젤 포인트에서 바라본 그랜드 캐년

 

 

▪ 방황하는 젊은 날의 영혼

 

피자로 저녁을 해결한 우리는 다시 그랜드 캐니언의 일몰을 보기 위해 엔젤포인트로 갔다. 엔젤포인트에서 우리는 영국인 사진작가인 브레인 부부를 만났다. 전형적인 영국 풍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

그가 들고 온 것은 일제 아사히 펜탁스 사진기 한 대가 전부였다. 그의 부인 재인은 브레인의 손을 붙들고 다니며 언제나 코 먹은 소리로 응석을 부렸다. 그녀의 코맹맹이 목소리는 덜 다듬어진 바이올린 소리처럼 불안하고 간지럽게 들렸다.

“어쩌면 저렇게 어리광스러운 목소리를 낼 수가 있을까요?”

아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귀가 간지럽다고 했다. 브레인은 캐니언의 저편으로 떨어져 가는 태양을 향해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고요한 캐니언의 협곡 속엔 카메라의 셔터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다.

수행자는 이곳에서 자신의 영혼을 보고, 음악가는 아름다운 곡을 떠올리며, 작가는 한편의 인생드라마를 엮어낸다는 곳. 지금 영국의 한 사진작가는 회심의 작품이라도 만들어 낼 듯 카메라의 앵글을 맞추는 데 온 심혈을 다 쏟아내고 있었다.

붉은 노을 속에 펼쳐지는 그랜드 캐니언의 협곡은 더욱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노을 지는 협곡 속에는 모든 방황하는 영혼을 잠재울 수 있는 신비함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신이 계곡의 저편에서 우리들을 부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괴연 내 영혼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20대 후반의 내 젊은 날, 나는 홀로 이 그랜드 캐니언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랜드 캐니언은 내 방황하는 영혼을 바로잡아 주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 날도 나는 라스베가스를 거쳐 이 곳으로 왔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유럽을 한바퀴 돌아 다시 미국으로 건너온 나는 귀국하는 길에 미국 서부를 홀로 여행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맛보는 미국이라는 넓은 세계는 나의 영혼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학연과 지연, 그리고 편견으로 얼룩진 한국과는 달리 내 젊은 눈에 비친 미국은 분명히 기회의 땅이었다.

흘린 땀만큼 보상을 받는 기회의 땅, 아메리카.

이 넓은 세계로 진출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을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구조적인 모순 속에 길들어져 있는 한국의 조직구조 속에서는 뾰쪽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 명문대학을 나오던지 큰 백을 가졌던지, 하는 본인의 실력이외에 뭔가 알파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어야만 했다.

뉴욕의 올 가에서 금융수업을 받은 나는 귀국길에 LA에 도착하였다. 점점 답답해지는 마음을 안은 채, 나는 그대로 귀국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내 소년시절에 서부 영화를 보면서 꼭 가보고 말리라고 꿈을 꾸어 왔던 서부를 돌아보기로 작정했다.

LA에서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로 온 날 밤, 나는 카지노의 슬롯머신에서 백 달러의 거금(?)을 날렸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버스를 타고 그랜드 캐니언으로 왔다. 돈을 잃어서 그런지 마음은 더욱 우울하고 외로웠다.

사우스 림의 마더포인트 근처 로지에서 여장을 푼 나는 경비행기를 타고 협곡의 스릴을 마음껏 즐겼다. 서커스의 곡예를 하듯 일부러 위험하게 비행을 하는 비행사의 연기에 가슴을 졸이며, 나는 발아래 펼쳐진 캐니언의 놀라운 풍경에 거의 반쯤 기절할 것만 같았다.

석양이 되자 나는 마더포인트로 가서 캐니언의 황홀한 일몰을 바라보았다. 해가지고 난 어두운 그랜드 캐니언은 적막함, 그대로였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밤이 오자 모두 어두움 속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나는 어두움 속에 홀로 남은 다시 한 마리 방황하는 새가 되어 있었다. 스릴과 쾌락은 영원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잠시 지나갈 뿐, 근본적인 영혼의 갈등은 그대로 어두움 속에 고스란히 남아 다시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나는 협곡에서 로지로 돌아오는 길에 캐니언의 노천극장에서 협곡과 사막의 생활, 이곳에서 자라는 동식물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한편을 보았다. 사막의 동식물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짧은 다큐멘터리는 나에게 뭔가 교훈을 주었다.

로지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몸은 지쳐서 피곤 한데 정신은 점점 말똥말똥해지고, 다시 내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배회를 하다가 음악이 요란하게 흘러나오는 어떤 클럽으로 들어갔다.

클럽에는 많은 사람들이 밴드에 맞추어 몸을 흔들어 대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곳 그랜드 캐니언에도 밤이 되자 외로운 영혼들이 술집을 찾아오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건조한 날씨에 갈증을 느낀 나는 바에 앉아 작은 병으로 된 맥주를 한 병 시켰다. 나는 맥주를 병제로 들고 벌컥벌컥 마셔댔다. 내 마른 영혼을 적셔 주기라도 하듯이 맥주는 잘도 넘어 갔다. 맥주 맛이 달게 땅기고 있었다.

한 밤에 혼자 마시는 술 이여서 그러지 작은 맥주 한 병은 취기를 확 돌게 만들었다. 그러나 작은 맥주 한 병이 갈증을 해소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니 단순한 생리적인 갈증보다 내 영혼의 갈증이 나를 더욱 목마르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바텐더에게 맥주 한 병을 더 주문했다. 새로 주문한 맥주를 다시 병 채들고 마시고 있었다.

“저와 함께 춤을 추시지 않겠습니까?”

‘설마, 그녀가 나를 보고 한 말은 아니겠지.’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내주위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는 없었다. 모두가 홀에 나가 춤을 추고 있었고, 바텐더에는 나 혼자 앉아 덩그러이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던 것.

“아니, 저하구요?”

“댁 말고 여기에 남자가 또 있나요?”

30대로 보이는 머리가 긴 금발머리의 백인 여자였다. 나는 갑자기 여자가 춤을 추자는 바람에 얼떨떨해졌지만, 맥주라는 알코올 기운이 나에게 용기를 주고 있었다.

“오케이!”

나는 그 여인을 따라 무대의 홀로 나갔다. 그리고 흘러오는 음악의 리듬에 따라 아무렇게나 무턱대고 흔들어 댔다. 그녀도 내 앞에서 열심히 흔들어 대고 있었다. 가끔 사람들이 지르는 괴성이 더욱 춤의 분위기를 고조시켜주고 있었다.

아마 그 클럽에 동양인은 나 혼자였던 걸로 기억된다. 이 동양의 이방인이 막무가내로 흔들어 대는 춤사위에 그녀도 무척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나는 내 답답한 가슴과 영혼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팔, 다리 온몸을 흔들어댔다. 그녀는 나보다 한술 더 떴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온 몸을 이상하게 비비 꼬면서 흔들어 댔다.

몇 곡 째 이어지는지도 모르는 디스코(그 당시에는 디스코가 크게 유행을 하고 있었음)의 리듬에 나는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클럽의 바닥과 천장도, 아니 이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밴드의 음악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방황하는 내 영혼을 떨 구어 버리기라도 하듯 더욱 세차게 흔들어 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흔들리는 모든 것들이 갑자기 일시에 멈추어 버렸다. 디스코 메들리가 끝나고 갑자기 느린 브루스 리듬이 흔들리는 클럽의 분위기를 멈추게 했던 것.

“하우 어바웃 브레이크 타임?(좀 쉴까요?)

“좋지요.”

흔들어 대는 것 말고는 춤은 출 줄도 모르는 나는 다시 갈증이 느껴졌던 것.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주먹으로 닦아내며 바로 갔다. 바텐더에게 맥주 한 병을 더 시킨 나는 그녀에게 맥주병을 내 밀었다.

“오, 땡큐! 저는 샌드라에요. 이 맥주 잘 마실게요.”

“한국에서 온 여행자 초이 입니다. 만나서 반갑군요.”

“아, 초이, 반가워요. 그런데 혼자 오셨나요?”

그녀도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맥주를 병 채로 들고 마시면서 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무언가 우수가 깃들어 있는 표정이었다.

“네, 저는 뉴욕에서 한국으로 귀국을 하는 중에 잠시 이곳을 들렸답니다. 샌드라도 혼자 여행을 오신 모양이지요?”

“네, 저도 뉴욕에서 왔는데요!”

“아, 그래요?”

“저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뉴욕의 어느 특수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요.”

여행길에서 어느 날 갑자기 만난 사람이 몇 십 년을 사귄 친구보다 더 가깝게 느껴 질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감추어 놓은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쏟아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은 긴 여행을 떠나 본 자만이 알 수 있으리라. 아무런 선입견이 없는 여행자들의 순수한 마음의 만남, 아니 그것은 같은 생각들을 가진 영혼들의 만남이라고 해야 맞을 거다.

그날 밤 분위기가 그랬다. 나는 그녀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맥주를 한 잔 마신 그녀는 마치 테이프를 틀어 놓듯 이야기를 술술 꺼냈다. 그녀는 몇 년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고 했다.

그녀가 사귀던 남자가 갑자기 백혈병에 걸려 별 나라로 가 버렸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그 상처 받은 영혼을 달래기 위해 틈만 있으면 홀로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다시 다른 좋은 남자를 찾아서 만나면 되지 않겠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그가 가버린 뒤 다시는 남자를 깊이 사랑하지 않겠노라고 다짐 했단다. 그 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여행을 다니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

샌드라의 영혼은 그랜드 캐니언의 균열만큼 깊이 패어 버렸을까? 그녀는 캐니언의 균열보다 더 깊은 사랑의 상처를 메우기 위해 저렇게 여행을 다니고 있는 것일까?

번 돈을 모두 여행에 쏟아 붓고 있다는 샌드라. 그녀의 사랑의 상처에 비하면 내가 짊어지고 있는 내 장래에 대한 답답함은 행복한 고민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사랑의 상처를 받은 샌드라로부터 내 마음속에 끓고 있는 갈등을 치료 받고 있었다. 여행길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내 심리를 치료 해주는 훌륭한 심리사였다.

클럽의 밴드가 다시 디스코음악을 연주하자 우리는 또 홀의 무대로 나갔다. 그리고 각자의 영혼 속에 끼어 있는 마음의 상처를 털어 내기라도 하듯 광란의 흔들림 속으로 빠져 들어 갔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다.

아마 마신 맥주보다 많은 땀을 흘렸지 않았을까? 답답한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밝아지는 것 같았다. 늦은 밤 우리는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그녀는 지금쯤 지구의 어디를 떠돌아다니고 있을까? 여행으로 그녀의 상처받은 사랑의 영혼이 치유되었기를 기원해본다.

 

 

▪ 그랜드 캐니언에서의 명상

 

그 다음 날 새벽 일직 나는 다시 홀로 마더포인트로 갔다. 캐니언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직 마더포인트의 주변은 어둠 속에 묻혀 그 빼어난 경관이 보이지를 않았다.

멀리 캐니언의 지평선에서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하자 웅대한 캐니언은 신비한 베일을 하나씩 벗겨 내듯 천천히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나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캐니언의 절벽 가장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캐니언의 백척간두에 앉아 나는 눈을 감았다. 태양이 점점 눈부시게 밝아오고 있었다. 캐니언의 먼 지평선에서 떠오른 태양은 눈을 뜨지 않아도 나는 그 밝음을 가슴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태양, 그리고 우주.

태양도, 우주도, 그랜드 캐니언도 눈을 감은 내 마음속에 있었다.

무어라고 딱히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 날 아침의 명상은 나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게 하였다. 그 명상이 있는 날 이후,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가급적 밝게 보기로 결심했다.

어떠한 어두운 역경이 닥쳐오더라도 밝음을 향해 가야 한다는 것.

밝음은 꿈이요, 희망이기 때문에. 그리고 세상은 항상 어둡지마는 않다는 것. 지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속담은 이을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밝은 세계는 천상의 세계다. 또한 항상 밝은 마음을 가진 자는 건강하다는 것.

반대로 어두움은 절망이요, 지옥이다. 온갖 암투와 질병이 어두운 그늘에서 일어난다. 어두움을 이겨내고 밝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 날의 명상이 나에게 준 메시지라고 할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그 명상의 협곡 앞에 아내와 함께 서 있었다.

로지의 통나무 방에서 하루 밤을 묵은 아내와 나는 다음날 아침 브라이트 엔젤포인트를 다시 찾았다. 거기 대협곡에는 웅장한 자연의 드라마가 변함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연은 신이요, 신은 자연이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아주 공평하게 대해주었다. 부자, 권력자, 걸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연이라는 신 앞에서 우리들은 마음을 다 드러 내놓고 깊은 감사를 드렸다. 오늘을 있게 해준 이 자연의 고마움에 앞에서 우리는 감사의 문물을 흘렸다. 한 마리 사슴이 이상 한 듯 자연 앞에 넋을 잃고 있는 아내와 나를 쳐다보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