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North America

장엄한 처녀 바위산, 자이언 캐니언

찰라777 2012. 7. 29. 16:34

 

장엄한 처녀 바위산, 자이언 캐니언

 

 

▪ 언제나 처녀처럼

 

유타 주에 들어서니 도로가 갑자기 좁아지며 마치 요술의 성으로 들어가는 듯한 빨간색 아스팔트길이 열렸다. 우리는 자이언 국립공원의 동쪽 입구를 통해 공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빨간색 도로의 좌측으로는 계곡을 따라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름 하여 처녀의 강(Virgin River)이란다. 처녀의 강 좌우로는 넓적하고 거대한 화강암이 자주색 색깔을 은은하게 뿜어대며 펑퍼짐한 처녀의 엉덩이처럼 매력적으로 벌리고 서 있었다.

처녀의 강. 붉은 색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붉으죽죽한 빛깔의 물빛을 바라보며 어쩌면 그렇게 그 모양에 맞게 강 이름을 지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이란 생각하는 게 다 우멍하단 말이야.’

나는 붉은 색의 선혈이 낭자하게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비시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보, 도로도 빨갛고, 산도 붉은 색, 강물도 분홍색깔로 보여요.”

“저 강 이름이 처녀의 강이래. 바위가 마치 처녀의 엉덩이처럼 생기지 않았소? 하하하.”

“당신은…….”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

마돈나의 이 노래가 갑자기 생각났다. 인생을 언제나 처녀처럼 산다면 늙지 않겠지.

그랜드 캐니언에서 와이오밍으로 이르는 북쪽으로 올라올수록 바위들이 색깔은 더 빨게 졌다. 그랜드 캐니언 쪽은 더 깊은 바다였고 오래된 지층인 반면, 자이언, 브라이스 캐니언에 이르는 지역은 더 얕은 바다에 덜 오래된 지층이라고 했다.

좁은 아스팔트길을 지쳐 들어가는데 이번엔 붉은 회반죽으로 짓이긴 듯한 바위들이 나타났다. 마치 반죽을 하다가 손톱자국만 여기저기 내 놓은 듯한 한 무리의 바위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밀가루 반죽 같아요.”

“나는 바둑판처럼 보이는데.”

반듯한 네모 칸으로 그어진 바위들의 조각모음은 바둑을 좋아 하는 나에게는 마치 바둑판처럼 보였다. 체크보드 메사라는 바위였다.

자연의 오묘한 조화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가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저렇게 가지가지 모양으로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러기에 자연은 신이다. 오직 신만이 빚어 낼 수 있는 예술품이다.

“어? 빨간색 굴!”

회반죽 바위를 지나니 역시 빨간색으로 된 굴이 나왔다. 그 빨간색 터널을 지나니 다시 오른쪽에는 밑 둥을 하얀색으로 칠해 놓은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터널이 나왔다.

“와~, 와~!”

그 기우들 사이로 버스의 창 높이에 바위를 파내어 창문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창문 사이로 잠깐 잠깐 비추이는 풍경은 거의 기절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버스 내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창문을 지나갈 때마다 함성을 질러댔다.

협곡으로 깊숙이 들어 갈수록 사원과 교회처럼 생긴 바위들이 우뚝우뚝 나타났고, 인디언들이 살았다는 동굴도 나왔다.

 

 

▪ 영원한 처녀와 총각

 

버스는 스프링데일 캠프에서 스톱했다. 처녀의 강이 바로 옆으로 흐르는 피크닉 켐프에서 준비해온 점심을 먹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온 매리와 스코틀랜드에서 온 제니,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온 마이클과 합석을 했다. 이들은 모두 홀로 여행을 떠나온 여행자들이었다.

“헤이 초이, 하우 매니 칠드런 두유 해브?(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느냐?)”

떠버리 매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딸만 둘.”

“몇 살이나 먹었는데? 10살, 12살?”

“노오, 큰애는 25살, 작은 딸은 23살.”

“오 노! 믿을 수 없는데, 나는 당신들이 그 나이 처녀와 총각처럼 보이는데.”

“땡 큐, 메리 말이 맞아요. 우린 영원한 총각과 처녀 라우.”

“ 하하하.”

모두가 유쾌하게 한 바탕 웃었다. 서양 사람들은 동양인들의 나이를 보통 10살 내지는 20살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더 어리게 본다. 싱싱한 김치를 사계절 먹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 우리들은 처녀 총각이다. 라이크 어 버진. 언제나 처녀와 총각처럼 살자.’

처녀의 강에서는 고무보트를 타고 래프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보, 나 저거 타고 싶어.”

“나도 타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래프팅은 로키산맥에 가면 또 기회가 있으니 그 때 타자고.”

“피이, 지금 타고 싶은데.”

마치 어린애처럼 토라지는 아내의 손을 잡고 스프링데일기념관으로 들어갔다. 아이맥스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기 때문. 우리는 ‘신의 보물(The Treasure of Gods)'란 다큐멘터리를 30분 동안 관람했다.

아이맥스의 내용은 인디언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신의 유산인 자이언 국립공원과 브라이스 캐니언 내에 있는 금을 가져간 사람들은 다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신의 유산을 신의 허락 없이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

사실 인간은 신의 허락 없이 자연을 파괴하여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고 있다. 신이 물려준 한경은 우리 스스로가 고이 지켜 나갈 때 우리의 후손들이 이를 이어받아 자연의 혜택을 누릴 것이 아닌가.

영화를 관람한 후 우리는 기념품점에 들어가 인디언의 노래 테이프 두개를 샀다. 바람소리, 물소리, 천둥소리, 그리고 인디언이 외치는 소리에 인디언 피리가 가미된 신비한 음악이었다.

기념품 가게를 나오면서 아내는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했다. 아니, 당뇨환자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니…….

나는 아이스크림 두개를 사들고 푸른 잔디밭에 누워 있는 아내 곁으로 갔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내에게 캠코더의 앵글을 맞추었다.

“윤경아, 나 아이스크림 먹는다~.”

“당뇨환자가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되니 윤경아.”

“아빠가 사주어서 먹는다~.”

“엄마가 사 달라고 해서 사왔다~”

오늘 아내는 정말 철부지 처녀처럼 굴었다. 그래,

‘언제나 그렇게 처녀처럼 살아다오. 아프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우리는 처녀의 강을 따라 다시 자이언 국립공원을 나와 브라이스 캐니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