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길병원에 다녀 오던 날

찰라777 2015. 5. 30. 06:12

527일 수요일 맑음

 

인천 길병원을 가다 

 

 

금가락지 아랫집에 사는 현이 할머니가 부천 길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다. 이곳 연천 동이리에서 가장 소통을 많이 하고 있는 이웃이다. 현이 할머니는 우리가 이곳에 정착을 한 이후 멘토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고마운 이웃이다.

 

현이 할머니는 몇 달 전에 가벼운 뇌졸중 증세가 있어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곧 회복이 되어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5월 초에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다시 길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교통사고 충격으로 인해 뇌졸중 증세도 악화가 된 모양이다.

 

두 부부가 정말로 열심히 일을 하며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어찌 이리 고통을 당하게 하는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부천 길병원에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일전 현이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셔 저녁 식사를 한 번 같이 했는데, 너무나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 무척 당황스런 모습이었다. 너무나 걱정이 되어 현이 할아버지의 표정이 거의 울먹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를 요즈음은 약이 좋고 의술이 좋아 금방 나을 것이니 너무 상심 말라고 위로를 해주어지만 당사자는 걱정이 아니 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현이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부지런 했다. 더욱이 5월은 농사일이 가장 바쁜 시기가 아닌가? 항상 잉꼬부부처럼 함께 논과 밭에서 일을 하셨는데, 아내를 병상에 두고 홀로 동분서주하는 현이 할아버지의 모습이 영 안 되 보인다.

 

이웃이란 무엇인가? 서로 어려울 때 물심양면으로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사는 것이 진정한 이웃이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현이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인천 길병원에 가기 위하여 연천에서 남양주로 온 후 도농역에서 아내와 함께 전철을 탔다. 도농역에서 길병으로 가는 방법은 중앙선을 타고 회기역에서 인천 동암역으로 가는 1호선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37개 역을 경유하여 소요시간은 1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오전 10시 출발을 했는데 동암역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되었다.

 

동암역에서 내려 다시 길병원으로 가는 마을버스 532번을 탔다. 5월의 작열하는 태양이 뜨거웠다. 20여분 후에 길병원에 도착했다. 1230, 우리는 길병원 앞 고봉민 김밥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환자도 점심을 먹을 시간이므로 점심시간을 피해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고 배도 고팠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김밥을 한 줄씩 먹고 오후 1시가 넘어서 병실을 찾아갔다.

 

 

처음 가보는 길병원은 생각보다 컸다. 전북 옥구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48년 간 의료인의 길을 걸어온 이길여 박사가 오직 사랑으로 환자를 돌보며 일구어낸 병원이다. 참으로 대단한 여성이다.

 

7층 병실에 들어가니 현이 할머니와 그녀의 며느리, 그리고 여동생이 함께 앉아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행히 말도 하고 조금씩 걷기도 한다고 했다. 증세가 심해져 일부 신체 마비와 언어장애가 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재할치료를 받고 말도 하고 걷기도 한다고 했다.

 

사람의 일이란 모른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이렇게 되다니불현 듯 아내가 장기간 입원해 있던 생각이 났다. 아내 역시 40대 후반까지는 병원 문턱 한번 가보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않게 되어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현이 할머니, 그동안 너무 일에만 몰두해 와서 조금 쉬는 시간을 가지라고 이렇게 누워계시게 한 것 같아요. 만사 잊어버리고 빨리 건강을 회복하시는 데 열중하세요.”

 

그래야지요.”

 

그러나 그녀의 모습에서는 바쁜 농촌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모양이다. 날이 새면 남편과 함께 늘 논과 밭에서 쉬지 않고 일을 하다가 해가 떨어져야 집으로 향하시던 현이 할머니가 아닌가? 그렇게 착하게 살아가는 분에게 우환은 왜 다가올까?

 

과연 신은 죽었는가?

 

 

니체가 말한 것처럼 과연 신은 죽었을까? 우리들에게 신이 존재하고 있다면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우환이 없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니체는 <즐거운 학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안식을 얻을 것인가?”(God is dead. God remains dead. And we have killed him. Yet his shadow still looms. How shall we comfort ourselves, the murderers of all murderers?)

 

그의 이 말은 단순한 종교적 공경이나 논박이 아니라, 서구의 지성사를 꿰뚫는 선언인 동시에 19세기 당시 부패한 유럽 문명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니체는 서구사회에서 2천년동안 지배해 왔던 형이상학적인 이분법에 종말을 고하는 선언이었다.

 

우리가 배운 바로는 <형이상학적 이분법>이란 현상계(변화하는 세계, 즉 인간의 세계)와 존재의 세계(불변하는 세계, 즉 신들의 세계)로 이 세계를 이원화 한 것이다. 이 세상은 신의 세계인 존재의 세계가 모든 면에서 인간의 세계인 현상계보다 모든 면에서 고차적이고, 물질보다 정신을 중요시하는 세계이다.

 

형이상학적인 세계는 도덕적 선(신의 계율)VS 악(현상계)이라는 이분법을 형성했다. 그러나 문제는 도덕적인 사람이 반드시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세상은 선보다 악이 우세하게 존재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지 않은가?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을 한 것은, 존재(, 이데아, 도덕)의 세계만 긍정하고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상의 세계를 부정하게 되는 형이상학적 이분법의 세계가 끝났다고 하는 선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상계를 부정하는 것은 비극을 초래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허무주의를 경험하게 만든다. 따라서 현상계의 부정은 결국 인간의 자기부정까지 초래하는 위험한 생각으로 빠지게 한다.

 

만약에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악한 자를 징벌하고 선한 자를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어쨌든 이 문제는 생각할수록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 세상은 악이 성하고 선이 죽어가고 있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하고, 권력을 잡은 자는 영구히 권력을 장악하려고 한다.

 

병실에서 환담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 한 통화가 왔다. 전화를 받는 안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다.

 

 

 

이길녀 여사는 이 병원을 '희망을 잉태하는 곳'이라고 부른다. 희망이 잉태하는 곳에 아픔자들이 모여 있다.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함께 모여 있다. 우리는 현이 할머니가 희망이 잉태하는 길병원에서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하며 병실을 나왔다.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며 아내가 나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아까 전화의 내용이 광주에 살고 있는 처제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라는 것,

 

우리는 오늘 일단 연천으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광주에 문상을 가기로 했다. 인간의 삶은 이렇게 늘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자기를 성찰하고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니체는 말했다.

 

내 과제는 인류 최고의 자기 성찰의 순간인 위대한 정오를 분비하는 것이다.” 라고. 위대한 정오는 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 즉 이분법이 사라진 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우리가 현상계를 살아가고 있는 한 현상계를 부정을 할 수는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악의 셰계와 선의 세계도 영원 존재할 것이다,

 

연천에 돌아오니 밤이 되었다. 정말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