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하와이 자유여행

휠체어에 사랑을 싣고 하와이로 떠나던 날

찰라777 2016. 3. 2. 07:14

마치 수학여행 떠나던 전날밤처럼 잠을 설치다

 

드디어...... 출발이다! 오후 37, 도농역에서 아내와 나, 그리고 영이와 경이 네 식구가 각자 여행배낭을 끌고 중앙선 전철을 탔다. 날씨는 춥지만 마음은 모두가 훈훈하다. 생애 처음으로 떠나는 가족여행이 아닌가! 어젯밤에는 마치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모두가 잠을 설쳤다. 그러나 하와이로 떠나는 가족들의 마음은 피곤함을 모르는 것 같다. 피곤은 마음에서 오는 것, 마음이 즐거우면 아무리 힘들어도 피곤함을 잊어버리게 된다.


 

작년 10월부터 준비해온 여행이 아닌가? 우리는 저마다 하와이 여행 꿈을 그리며 이날을 기다려 왔다. 그동안 나는 도서관에서 하와이 여행안내서를 있는 대로 빌려서 훑어 보았다. 여행이란 아는 것만큼 보이지 않겠는가! <프렌즈 하와이>, <Just Go 하와이>, <Enjoy 하와이>, <하와이 여행백서>, <하와이에 반하다>…… 등등. 그 중에서 세계여행의 베테랑 김치군이 쓴 <하와이 여행백서>를 구입했다. 여행준비과정에서부터 현지에서 활용가능한 모든 정보를 알차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여행자에게는 어디를 가나 여행가이드북 한 권 정도는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꿈꾸는 하와이>라는 일본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를 읽어보았다. 천상의 섬 하와이 빠진 일본의 인기작가 요시모토의 에세이는 하와이를 한편의 시로 읽는 느낌이 든다



여행일정표와 여행준비물 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나하나 준비를 시작했다. 하와이에서 입을 옷도 쇼핑을 했다. 겨울에 사는 여름옷은 싸다. 아내와 경이가 동대문시장에서 5천원 정도 하는 반바지와 티셔츠를 사왔다. 아이들의 수영복도 사고 가디건도 샀다. 슬리퍼와 선글라스, 모자, 비상약 도 준비를 했다. 그리고 때아닌 패션쇼를 벌렸다. ㅋㅋ 우린 하와이 패션이야! 싸구려 옷을 입고 패션쇼를 하며 우리 가족은 폭소를 자아냈다. 여행은 여행준비(Plan)-현지여행(Do)-여행추억(See)의 과정을 제대로 즐겨야한다. 특히 패키지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은 이 과정이 필수다. 더구나 이번 여행은 전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이어서인지 참여의식이 매우 높다. 두고두고 우리 가족의 가장 멋진 추억거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준비물중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아내의 약이다. 아내는 인슐린 주사를 비롯해서 거의 20여가지나 되는 약을 복용하고 있다. 심장이식만 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이식 후에 관리를 하는 것이 더욱 많아졌다. 면역 억제제와 혈압약, 이뇨제 등 작은 배낭에는 아내의 약으로 가득채워졌다. 마지막으로 꼭 챙겨야 할 것은 아내의 영문 진단서이다. 여행지에서 어떤 비상 사태가 발생을 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아내의 처방전과 진단내용이 상세히 기록된 전문의사의 영문진단서는 꼭 챙겨야 한다.


휠체어에 사랑을 싣고... 


오후 353분 공덕역에 도착, 47분에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로 바꾸어 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정각 5시다. 도농역에서 24개 역을 경유하여 1시간 53분만에 인천공항에 도착 한 것이다. 문명의 이기는 거의 100km에 달하는 거리를 빠르고 편리하게 갈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더구나 실버세대인 나와 아내는 무임승차로 갈 수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인천국제공항 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긴 통로를 통해 3층 출국장에 도착하여 진에어 체크인 창구로 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진에어 창구의 직원들은 모두가 청바지 차림에 캡을 쓰고 있다. 청바지를 입고 일을 하는 직원들을 대하니 어쩐지 마음이 편해진다. 서민과 한층 더 가깝게 다가서겠다는 각오가 엿보이는 같다. 저가 항공사답다는 생각이 든다.  


 

보딩패스를 받고, 여행가방을 수하물로 부쳤다. 그리고 아내를 위하여 미리 신청을 한 휠체어 서비스를 받았다. “휠체어에 사랑을 싣고” 마치 어느 영화의 카피 같은 느낌이랄까? 심장이식을 한데다 예측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혈당이 오는 아내에게는 휠체어 서비스가 아주 긴요하다. 더구나 아내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고 발목수술로 오랫동안 서 있기가 어렵다여행자들이 끝없이 줄을 서는 출입국 수속은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나는 휠체어에 아내를 태우고 이미그레이션을 급행으로 통과했다. 휠체어서비스를 받으면 VIP출국장을 통하여 곧장 출입국을 할 수 있어서 아주 편리하다환자를 동행하는 여행자는 꼭 신청을 해서 휠체어 서비스를 받기를 권하고 싶다.



보딩패스를 받을 때 나는 아내를 위하여 비즈니스석 바로 뒤 좌석을 부탁했다. 이 좌석은 출입문에서 가깝고, 화장실도 가까우며, 앞 공간이 넓어 다리를 뻗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좌석을 받기 위해서는 공항에 일찍 가서 체크인을 하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우리는 출발 3시간 20분 전에 인천공항 체크인 창구에 도착을 하여 그 좌석을 받을 수 있었다.




불르진을 입은 스튜어디스


하와이 왕복 54만원 저가항공 진에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의 항공요금은 110만원대다. 가격이 절반으로 싼 저가항공 덕에 하와이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거리는 가격과 비례한다. 395석이 모두 꽉 차 있다. 승무원들은 모두 청바지 차림이다예전의 정장차림을 고집하던 전통적인 스튜어디스 복장을 확 깬 모습이다. 기내에는 비디오와 오디오도 없다. 담요도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저가항공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히려 이런 기내의 심플함이 마음에 든다. 비디오가 없으니 눈을 쉴 수가 있고, 오디오가 없으니 귀를 쉴 수 있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여 안정괘도에 진입을 하자 곧 기내식이 배달되었다. 작은 도시락 하나, 파인애플 세 조각이 전부다. 물은 서비스가 되지만 콜라, 사이다 등 다른 음료는 전부 사 먹어야 한다. 도시락에 든 요리는 '로코모코'란 거창한 이름을 가진 요리이지만 내용은 빈약하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기내에서 판매하는 과자, 음료, 라면 등을 사서 군것질을 한다. 농심신라면컴 4,000, 스트라이프 음료 2,000, 투썸핸드드립커피 5,000, 농심새우깡 1,000(겨우 15개비), 기내담요 15,000, 코카콜라 2,000…… 물 외에는 공짜가 없다. 어떤 저가 항공사는 물도 사먹어야 하고, 심지어는 화장실도 돈을 내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승무원들은 마치 기차에서 팔 듯 가판대에 먹거리를 싣고 장사를 한다.



물만 공짜, 모두 돈을 주고 사먹어야...

 

서울에서 하와이까지는 7시간 40분이 걸리고, 돌아올 때에는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기내식만 가지고는 배가 고프다. 우리도 배가 고파 농심신라면을 주문했는데 모두 팔렸다고 한다. 늦게 주문하면 농심신라면도 먹지 못한다. 그러므로 저가항공을 이용할 때에는 군것질을 할 것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과자나 빵 등. 둘째 경이는 비건 식을 한다. 경이는 세관 통과 품목을 촘촘히 검토하여 가방 하나는 자신이 먹을 먹거리로 채워 넣었다. 미국 입국 시에는 과일, 육류, 종자, 음료 등은 반입이 금지된다. 반입이 허용되는 품목도 세관신고서에 기록하여 검사를 받아야 탈이 없다. 괜히 신고를 하지 않고 통과를 하다가 걸리면 문제가 된다.


맛깔 나는 글, 장그르니에의 <섬>을 읽다 


기내식을 먹은 후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장그르니에의 <>을 읽었다. 일고 또 읽어도 글맛이 나는 책이다. 이스터 섬을 가면서도, 발리로 여행을 떠나면서도, 몰디브로 가는 비행기 편에서도 <>을 읽었다. 하얀 백지에 장인이 깎은 고결한 활자들이 조심스럽게 찍히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가? 노랗게 빛 바랜 고전의의 첫 장을 넘기다 보면 마치 깊은 지층 속에 파묻힌 보석을 발견하듯 글을 읽는 맛이 난다. 그런 책 속에는 먼 들판 끝에 있는 어느 집 외로운 창의 밤늦은 등불 빛이 잠겨 있는 듯하다.


▲카우아이 섬 포이푸 비치

 

요즈음 책들은 그림과 사진이 난무하고, 흥미위주의 이야기거리, 목소리가 높은 강도, 난해한 글, 수많은 교훈들을 담고 있으나, <아름다운 글>을 발견하기란 쉽지가 않다. 고요한 시간, 우리가 막연히 읽고 싶은 글, 천천히 되풀이하여, 그리고 문득 몽상에 잠기기도 하면서, 다시 읽고 싶은 글이란 어떤 것일까장그르니에의 단편 <>을 일고 있노라면 고요한 숲 속에 겨울 나무 같은 문장들이 단정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이리도 맛갈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겨울 숲 속의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이따금씩 바람소리를 떠나 보내고, 그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문장들. 단정한 문장 뒤에 찍힌 구두점

 

그 뒤에 오는 적막함, 혹은 환청, 돌연한 향기, 그리고 어둠, 혹은 무(無), 그 속을 천천히 거닐고 싶어지는 문장들. 그 문장들 속에서 나는 마침내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장그르니에의 글은 언제 읽어도 <침묵>의 향기가 난다. <공의 매혹>. <고양이 물루>, <케르겔렌 군도>, 행운의 섬들>, <부활의 섬>, <상상의 인도>, <사라져버린 날들>, <보로메의 섬들>……


 

이 일곱 편의 단편은 언제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주옥 같은 글들이다. 나는 단숨에 <>을 읽고 나서 나만의 섬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폈다. 나만의 하와이 섬 속으로…… 한 숨을 길게 자고 나니 호놀룰루다. 현지시간 아침 9. 밤새 달려왔는데도 다시 해가 뜨고, 같은 날 9시다. 날자 변경선을 지나온 것이다. 하와이는 우리나라보다 하루 늦게 간다. 나는 마치 하루라는 시간을 벌어들인 듯 시간의 부자가 된다.

 

우리는 호놀룰루 공항에서도 아내의 휠체어 서비스를 받기로 되어 있다. 휠체어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가장 뒤에 내려야 한다. 승객들이 모두 사라진 마지막에 우리 네 식구는 출로 빠져 나왔다. 출 문에는 휠체어를 준비한 하와이 안이 활짝 웃으며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