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덴마크 5] 덴마크에 남는 아쉬움

찰라777 2004. 2. 20. 09:25
코펜하겐의 중앙역사 풍경

□ 덴마크에서 남는 아쉬움

비를 홀딱 맞으며 돌아본 인어공주 상. 거기에 인어공주는 없고 애꿎은 갈매기만 슬피 울고 있다. 슬픈 인어공주는 정말 물거품이 되어 공기의 요정이 되어 버렸을까?

“갈매기야 인어공주는 어디로 갔니?”
“끼오, 끼오. 그건 안데르센에게 물어봐.”
“안데르센 아저씨 인어공주는 어디로 갔나요?”
“갈매기에게 물어보렴.”

아내와 나는 버스를 타고 다시 중앙역으로 왔다. 중앙역사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잔 하며 아내와 나는 내일 여정에 대하여 서로가 이견이 있었다. 나는 안데르센의 고향인 오덴세를 경유해서 유틀란드 반도를 거슬러 올라가 배를 타고 베르겐으로 가자는 것이었고, 아내는 바로 기차를 타고 노르웨이 베르겐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안데르센이 태어난 작은 도시 오덴세를 정말 가보고 싶었던 것. 그러나 아내는 갈 길이 구만리라고 하면서, 우리가 무슨 문학평론가도 아닌데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굳이 그의 고향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는 것.

하기야 북극권인 노르웨이에서 남극권인 남미의 칠레까지 가려면 정말 갈 길이 구만리다. 마음에 잠시 갈등의 파동이 지나간다. 나는 아쉽지만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환자인 아내를 위하여 어렵게 떠나온 여행이 아닌가.

의사가 만류 하는 것도 물리치고 아내는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하고 떠나온 여행이나 다름없다. 걸을 수 있는 한 여행을 떠나고 싶은게 아내의 마음이다. 그래 아내를 위한 여행이야.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 아닌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보고자 하는 것은 나의 욕심이지.

여행의 궤도를 상당부분 수정해야만 했다. 중앙역사에는 역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나는 역사의 국제기차표 매표소로 가서 노르웨이 오슬로로 가는 기차표와 오슬로에서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을 했다. 스칸 레일 패스를 한국에서 미리 준비 해 가지고 갔으므로 예약비로 148DKK(약 26,000원)을 지불했다. 만만치 않는 비용이다.

기차표를 사들고 중앙역에서 유스호스텔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러 간 아내가 사색이 되어 들어왔다. 냉장고 안에 넣어둔 식료품이 다 없어졌다는 것. 암스테르담에서 사온 치즈, 한국에서 가져온 김 등…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살펴보니 조그마한 안내문구가 씌어져 있었다. ‘목요일 12시까지 음식물을 청소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냉장고에 들어 있는 모든 음식물을 청소하는 날이 목요일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이 바로 그 목요일날이었던 것.

“아이, 이를 어쩌면 좋아. 치즈, 햄, 맛있는 김….”
“메모를 읽지 못한 우리가 잘못이지. 당신 약을 넣어 놓지 않기에 다행이네.”

정말 아내의 약을 넣어 놓았더라면 어떻게 할 뻔 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데스크에 가서 물어 보았으나 이미 그 음식물은 쓰레기장으로 싣고 가버렸다고 했다.

호스텔의 부엌을 이용할 때는 부엌 안에 붙어 있는 모든 안내문을 빠뜨리지 않고 읽어 보아야 한다. 오늘은 이래저래 잘 풀리지 않는 날이다. 잠이나 자자. 내일은 또 베르겐으로 가는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