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Greece

[그리스 9] 헤르메스! 헤르메스!

찰라777 2004. 8. 28. 07:46

(마지막회)


□ 황금덩어리로 변해가는 '신들의 옥좌'




* 올림포스 산 2100m 고지에서 내려다 본 에게해의 아침 풍경.
태양신 헬리오스가 황금마차를 타고 태양을 끌어올리는 시간이다.












* 에게해로부터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물들었다가
점점 은색으로 변해가는 올림포스 정상의 모습.




* 2100고지 산장에서. 위에서 부터 차례로
- 백구와 이별하며
- 산장에 만들어진 제단
- 산장 전경(140명 수용)
- 산장 내의 스토브

□ 에게해와 올림포스 산

이제, 나는 올림포스 산과 에게해가 펼치는 파노라마를 독자여러분에게 보여드리며 ‘신들의 정원’ 올림포스 산에 대한 연재에 종지 부를 찍고자 한다. 지금과 같은 올림포스 산의 절경은 매우 보기 힘든 장면이므로…

“정말 당신들은 억세게 운이 좋은 부부입니다. 올림포스 산에서 이렇게 좋은 날씨를 맞이하기란 신들의 축복이 없으면 도저히 만날 수 없지요.”

산장의 안내인 말이었다. 비구름이 없는 올림포스 산 정상을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단다.

에게해에서 불어온 습 한 공기가 산을 타고 올라가다가 높은 지대에 다다르면, 낮아진 온도 때문에 수증기가 엉켜 붙어버려 거의 1년 내내 산 정상은 대부분 비구름으로 뒤덮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며칠 안 되는 날을 신들은 우리들에게 열어 주고 있었다. 이 두 자연이 펼치고 있는 파노라마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감히 내 가 이를 글과 사진으로 표현 한다는 것은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크나 큰 누를 끼치는 것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글을 쓴다 .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태양을 에게해의 심연으로부터 밀어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태양신 헬리오스는 자신의 황금마차에 붉은 태양을 끌고 올림포스 산을 향하여 비상을 하고 있었고...

제우스가 주석하고 있는 올림포스 산 정상은 순식간에 금빛 찬란한 황금으로 변해 버렸다. 드디어 ‘신중의 신’ 제우스를 위한 신들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 정말 이 장면은 우리들의 전령, 백구라는 헤르메스가 안내해주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구경할 수 없는 그런 진풍경이다.

올림포스 산은 거대한 하나의 황금덩어리로 변했다가 해가 점점 떠올라 오자 점차 은빛 덩어리로 변해갔다. 천재시인 호머는 이럴 때만 골라서 올림포스 산에 올랐을까? 아니면 그냥 상상의 시를 썼던지… 그는 폭풍도 폭우도 폭설도 침입을 하지 못하고 구름한점 없는 창공에 햇살만 내리 쬔다고 노래를 했으니 말이다.

“오늘 우린 무지하게 부자가 되는 날이네!”
“왜요?”
“저렇게도 거대한 황금 덩어리가 우리들 앞에 놓여있으니 말이요. 자, 당신 마음껏 저 황금덩어리를 가져봐!”
“난 또… 정말 꼭 황금덩어리 같군요!”

오늘 우리는 안내인의 말처럼 억세게도 운이 좋은 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는 이미 우리가 아테네에서 기차를 탈 때부터 예고되고 있었다. 아테네 역에서 만난 털보선장, 기차에서 만난 소년과 리토호로 역에서 마을까지 태워주었던 소피아로렌 같은 그리스 아가씨, 그 리고 우리들의 전령사 백구에 이르기까지…

‘ 이 세상 만물은 책이며 그림이며 또 거울이거니…’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시인인 인술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우리가 홀로 깨쳐야 할 모든 것들을 가르쳐 준다. 지금 눈앞에 전개되 는 에게 해와 올림포스 산이 그렇다. 아침 이슬, 나무들, 떨어지는 낙엽, 우연히 만난 백구와 사람들…

세상이란 위대한 책은 역력히 그 모습을 펼쳐 보이며 우리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세상살이에 녹이 쓴 우리들의 영혼은 그 가르침 을 다 알아 듣지 못하고 있을 뿐.

“여기서 정상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신들만이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무척 힘들겠지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자들만이 오를 수 있는 곳이랍니다. 하하.”



* 올림포스의 스페파니 봉(Mt. Stefani-2907m)의 '제우스 옥좌'의 신비한 모습.



안내원의 말이 더욱 걸작이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자’만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험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단순히 등산코스의 난이도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바람과 눈과 비가 불어닥칠지 모르는 변덕스런 날씨의 장애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금빛에서 은빛으로 변해버린 올림포스의 미티카스 Mytikas 정상이 흰 옥처럼 고운 빛깔을 발산하며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지만, 우린 정상 정복을 여기서 접기로 했다. 이미 목숨을 담보로 하고 여기까지 올라온 우리가 아닌가! 두 번씩이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올라 가기엔 너무도 위험부담이 컸기 때문.


□ 헤르메스! 헤르메스!

이제… 우리의 헤르메스- 백구와도 헤어질 시간이었다. 그는 이미 이별을 예견하고 있었는지 우리를 따라나설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자기의 임무는 이미 다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멀리 에게해의 정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

“백구야, 잘 있어라! 인연이 닿으면 우리 또 만나자! 응?”

언제나 이별은 슬프다. 백구와 이별의 인사를 나누며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아내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백구는 다만 컹컹 하고 두어 번 짖어댈 뿐, 평온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앉아있었다.

육도윤회 六道輪廻 설에 의하면, 금생에 어리석은 짓을 많이 하면 짐승으로 태어나기 쉬운데, 또한 짐승 중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가장 갈망하는 축생이 바로 개로 태어난다고 한다,

‘헤르메스, 헤르메스! 다음에는 인간으로 태어나 다시 만나자꾸나!’

내가 헤르메스를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치자, 백구는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컹컹 짖어댔다 . 올림포스 산에는 백구의 울부짖는 소리가 메아리를 치며 이산 저산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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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산하는 길에 산중턱에서 리토호로와 에게해를 배경으로.
이 지점에서 마을전경을 내려다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점차 흐려지는 에게해. 리토호로는 빨간 전통가옥 200여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로 올림포스 산 등산의 출발점이다.



※ 다음은 델포이 아폴론 신전으로 갑니다.
우리들의 앞날에 대해 아폴론 신으로부터 신탁(神託)을 한번 받아 보고자....^^


(2002.10.19 올림포스 산에서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