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Greece

[그리스 12] '너 자신을 알라!'- 패륜아의 운명

찰라777 2004. 9. 1. 08:03
● 세계의 중심 델포이

□ '너 자신을 알라!'

패륜아 오이디푸스 왕에게 내려진 무서운 신의 형벌 '테바이 돌림병'




이 놀라운 신전의 사진을 반드시 클릭해서 크게 보자.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아폴론 신전은 세계일주 중 보아온 신전 중에서 가장 신성하게 보이는 신전이다.
'신성한 길'양쪽에는 각국에서 아폴론 신에게 헌납한 각종 건조물들이 늘어서 있다.



□ '신성한 길'을 따라서...

- 칠현금을 타면서 헌주(獻酒)하는 아폴론(BC470년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 델포이 박물관 소장)

델포이 유적지는 윈터타임 시즌에는 오픈 시간이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하여 오후 2시 45분에 문을 닫는다. 이 사실을 모르고 간 우리 가 유적지 입구에 도착 했을 때에는 오후 2시가 넘어가는 찰나였다.

유적지 관리인으로부터 그 말을 전해들은 우리는 신전으로 올라가는 ‘신성한 길’을 거의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다. 숨이 턱 턱 차올랐다. 그러다가 옴파로스 카피에서 잠시 멈추어 신전을 올려다보니 아마도 현기증 증세가 일어났던 모양이다.

그러나 페르나소스 산기슭에 안기듯이 서 있는 아폴론 신전은 내가 세계일주 중 지금까지 보아온 유적지중에서 가장 신성하게 보이는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의 성역 중에서도 최고로 숭배를 했던 신전이라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간다.

신의 힘으로 3000년 전에 이루어진 성전! 아마 오늘날의 건축술로도 이런 가파른 장소에 육중한 돌로 저런 신전이나 보물 창고를 짓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 신전을 바라보면서 고대 사람들이 얼마나 신의 힘을 믿었는지 실감이 난다.



* 클릭해서 사진을 크게 보세요!
당신의 눈속으로 생생한 아폴론 신전이 다가 올것입니다



우리의 가련한 오이디푸스도 자신의 출생 진실을 알기위하여 이렇게 허겁지겁 이 길을 올라갔을까? 스핑크스를 죽이 고 테바이의 왕이 된 그는 선왕비인 이오카스테가 그의 친 어머니인 줄도 모르고 결혼을 하였다는 것은 전편에 서술한바 있다. ‘그리 스 로마 신화’를 한 번쯤 읽어 본 독자라면 누구나 그의 비극을 알고 있으리라.

내가 이곳에서 해묵은 오이디푸스의 신화를 다시 꺼내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델포이의 신탁중에서도 오이디푸스 오라 클은 가장 애절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좌우간… 이오카스테 왕비와 함께 젊은 오이디푸스 왕이 다스리던 테바이는 날로 번성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서 두 아 들과 두 딸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크로노스가 절단한 우라노스의 남근(男根)에서 흐르는 핏방울로부터 태어난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는 신 의 뜻에 거슬려 떵떵거리며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오이디푸스를 그냥 둘 리가 없었다.

사자(死者)의 나라를 지배하는 하데스로부터 명부를 넘겨받은 에리니에스는 패륜아 오이디푸스를 징벌하기 위해 춤을 추며 테바이로 진군한다.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 신의 뜻에 어긋나게 사는 인간, 맹세를 어긴 인간, 뼈를 주고 살을 준 부모를 해코지하는 인간이 나타날 때, 이들을 징벌하는 기쁨에 못 이겨 통곡까지 한다는 무서운 여신들이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무고하게 살인을 한 자, 탐욕을 채우기 위해 도둑질을 한 자, 끝없는 쾌락을 쫓아 사음을 한자, 험담과 감언이설로 거짓말을 한 자... 이러한 행위를 한 자들을 복수의 여신들은 하데스로부터 그 죄상을 낱낱이 넘겨 받아 복수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 너 자신을 알라!

에리니에스는 패륜아 오이디푸스를 징벌하기 위해 우선 테바이에 돌림병이 돌게 하였다. 무서운 돌림병은 초목과 곡식, 짐승들을 병들어 죽게 하고, 이어서 그 땅위에 사는 인간들을 역질로 벌하여 죽어가게 하였다. 순식간에 테바이는 통곡 소리로 가득 채워지고 말았다.

이른바 오늘날에도 패륜을 경계하는 말로 쓰이는 ‘테바이 돌림병’이 테바이를 죽음의 땅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 이 돌림병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던 때까지도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친 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베게를 함께하며 동침을 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실체를 모르고 방황하는 오이디푸스! 돌림병으로 위기에 몰린 그는 자신의 처남이자 선왕 라이오스의 처남인 크레온을 델포이 로 보낸다. 이 국가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아폴론 신의 신탁을 받아오라는 명령과 함께...

‘뼈를 준 아비를 죽이고, 살을 준 어미로 짝을 삼는구나!’

그는 왕이 도기전에 델포이에서 이 신탁을 받고 나서도 스핑크스를 죽인 영웅심리에 그 자신을 더욱 모르게 된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오이디푸스는 인간의 절 대 금기 사항인 자기를 낳아준 지어미인 이오카스테와 동침을 하는 패륜을 범하고 말았으니… 그러나 그 후에 크레온이 받아온 신탁은 그를 더욱 놀라게 했다.

‘테바이 한복판에 불결한 자가 있어서 돌림병을 불러 들였다. 이 불결한 자를 제거 하면 돌림병이 그칠 것이다.’

이 신탁을 받고 나서도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죽여서는 안 될 자를 죽인 자, 묻혀서는 안 될 피를 그 손에 묻힌 자’임을 모르고 있 었다. 그는 세상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불러 그의 말에 따라 어린 날 버림받은 자신을 넘겨주고, 넘겨받았던 양치기들의 진술을 듣 고 나서야 비로써 자신의 출생 진실과 어리석은 행동을 깨닫게 된다.
이 사실을 안 그가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난 사실은 전편에 게재한 바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아폴론 신전 옆에는 아테네인들이 살라미스해전(BC479)에서 승리하여 페르시아로부터 노획한 전리품을 보관하기 위 하여 세운 스토와와 다각형의 벽이 있다. 이 벽에는 고대 7현인들의 여러 가지 격언이 새겨져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너 자신을 알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이오니아의 철학자 탈레스인 것으로 알려지 고 있다. 아마 소크라테스는 탈레스의 이 격언을 그의 제1화두로 삼았으리라.



오이디푸스도 이 벽에서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를 읽었을까? 아마 이 문구를 읽고 좀더 깊게 생각을 했더라면, 키타이론 산의 계곡에서 아버지 라이오스 왕을 살해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텐데…

도덕이 땅에 떨어져 날로 험악해져 가고 있는 요즈음 세태는 '죽여서는 안 될 자를 죽인 자, 묻혀서는 안 될 피를 손에 묻힌 패륜아들'이 들끓고 있다. 이 세태를 보고 지옥의 사자(死者) 하데스와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는 또 얼마나 기쁨의 통곡을 할 것인가 !

나는 누구인가? 이는 내 인생의 평생 화두다. 아직도 내 실체의 빙산의 일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나를 따라 나선 여인의 마음인들 어찌 알 수 있으리오.

나는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것인가? 내가 태어난 곳으로 거스르고 거스르고 거슬러 서 천년 만년으로 올라간다 한들 나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인가? 100년도 채 못 된 내 조상의 이름조차 나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 고 있지않은가?

인간은 천년만년 살 것 같이 행동하지만, 겨우 100년도 살지 못한다. 나는 내 사유의 끝에서 결국 카오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그 혼돈의 끝에는 대지의 신 가이아가 있고,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있을 것이리라. 내가 죽으면 내 육신은 대지속으로 사라 지고, 영혼은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말것이므로....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 둘러싸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때도 그는 제자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역설하고 있었다. 그 때 한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이시여, 스승님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자신을 알고 계십니까?’
소크라테스가 대답했다.
‘나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내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모든 불 행은 싹튼다. 탐내는 마음, 화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질투, 논쟁, 전쟁… 자신을 모르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 하지 않으려는 데서 이 모든 불행은 비롯된다.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 찰라의 그리스 여정도

관리인의 호각소리와 문 닫을 시간에 쫓겨 아폴론 신전으로부터 나는 '신성한 길'을 구르다 시피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 나의 뒤통수 에 ‘너 자신을 알라’는 신들의 오라클이 메아리치며 내 마음을 옥죄오고 있는 것 같았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낸들 어찌 패륜아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인가?
'너 자신을 알라!' 델포이를 찾은 이 동양의 나그네에게 아폴론 신이 내린 오라클은 바로 이 말이었다.-계속-



장님이 되어 방랑하는 오이디푸스를 부축하는 딸 안티고네. Jalabert, 1843



델포이 박물관 소장 조각품


(다음은 코린토스를 거쳐 스파르타로 갑니다)


(2002. 10. 22 그리스 델포이에서, 글/사진 찰라
신화의 내용은 토마스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참조하였습니다)


♬~ 야니 : Playing by He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