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Greece

[그리스 13] '빛과 어둠의 도시' 코린토스

찰라777 2004. 9. 2. 11:23
● '빛과 어둠의 도시' 코린토스


□ 사도 바울을 생각하며...



←이오니아 해와 에게해를 연결하는 코린토스 운하

□ ‘매춘의 도시’ 코린토스

우리는 아테네에서 버스를 타고 코린토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아테네의 항구는 많은 무역선으로 활기를 띄고 있습니다. 멀리 또는 가까이 에게해의 흑진주 같은 아름다운 섬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테네에서 80km정도 떨어진 코린토스. 아테네에서 불과 1시간 반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코린토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고대부터 부를 누렸던 무역항구입니다.

이 운하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이오니아 해, 동쪽으로는 에게해를 통하는 코린토스는 유럽과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무역의 거점으로 번영했던 도시입니다.

기원전 6~7세기경 무역 도시로 최전성기를 맞았던 코린토스. 이는 ‘코린토스의 항아리’가 전 세계 각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그 번영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애욕의 신 아프로디테를 숭배했던 코린토스는 번영의 길을 걸었던 '빛의 도시'이기도 했지만, 술과 매춘이 창궐하기도 했던 '어둠의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한 때 아프로디테 신전의 여사제들은 히에로둘리, 즉 '신성한 매춘부'들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로마가 코린토스를 지배할 당시, 로 마인들이 ‘코린토스로 간다’는 말을 할 때에는 ‘신전의 여사제와 하룻밤을 즐기러 간다’ 라는 말로 통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코린토스에 가까이 다가 갈수록 나는 어쩐지 사도 바울이 생각납니다. 소아시아 타르소스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그는 히브리인이자 열열한 바리새파 인 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로마시민 자격으로 예수를 믿는 자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스데반 순교의 현장으로 가던 중 큰 빛을 보고 그만 눈이 멀게 됩니다.

그 후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다시 눈을 뜨게 된 바울은 크게 회심하여 세례를 받고 멀고 먼 전도 여행을 세 차례나 떠나게 됩니다.

나는 터키의 에베소를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갖은 모욕과 학대를 받으면서도 오랫 동안 머물면서, 목숨의 걸고 복음을 전파하였던 바울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죽음을 무릅쓴 전도의 여행을 하면서, 이곳 코린토스까지 온 바울의 고뇌는 무엇이었을까요?

바울은 아마 매춘으로 헝클어진 코린토스의 형제들을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는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2년 동안이나 머물면서 코린토스 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성적인 부도덕에 빠져있는 코린토스 인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했을 바울 …

코린토스를 떠난 후,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면서 그 안타까운 마음을 수백통의 편지를 써서 코린토스 인들에게 보냅니다. 이 편지가 바로 그 유명한 ‘고린도 전서’와 ‘고린도 후서’라는 신약전서가 되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고린도전서 5-9).

고린도 전서를 읽어보면 바울이 여러 차례 음행에 대하여 언급을 하며 성적 부도덕에 빠진 코린토스 인들을 정화시키고자 애를 썼던 흔적이 보입니 다. 바울에 대한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어느새 버스가 잠시 코린토스 운하 근처의 간이역에서 멈추 섰습니다.

“아니, 운하가 이렇게 좁아요?”
"절벽이 너무 높아서 좁게 보이는 게 아닐까?"

양쪽으로 깎아 세운 듯한 절벽 아래 일자로 뚫린 운하는 폭이 23m나 되지만, 높이 70m나 되는 절벽 위해서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매 우 좁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운하는 에게해와 이오니아 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운하 위로는 열차와 버스가 다니는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이곳에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생각은 고대 코린토스 인들에서부터 시작되어, 로마시대 네로 황제 때에는 실제로 수천 명의 유태인을 동원하 여 운하를 건설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갈리아 인들의 침입으로 운하건설은 중단되었고, 그 후 19세기에 이르러서야 프랑스 회사를 통해서 운하가 완성되었다고 합 니다. 아무튼 이 운하가 건설되고 그 위로 다리가 놓여지면서 코린토스는 육로와 수로가 십자가로 겹치는 교통의 요충지대가 되었 습니다.



고대 코린토스의 아폴론 신전(BC 5세기)→

코린토스는 고대 도시인 '아키아 코린토스'와 현대 도시인 '네아 코린토스'로 나누워집니다. 고대 코린토스에는 기원전 5세기경 에 세워졌다는 ‘아폴론 신전’이 가장 탁월한 유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그 유명한 ‘코린토스 항아리’를 진열해 놓은 코 린토스 박물관도 놓쳐서는 안 될 유적지입니다.

고대 코린토스에는 두개의 유명한 샘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피레네의 샘’이며, 다른 하나는 ‘글라우케의 샘’입니다. 이제 나는 이 두 샘에 얽힌 슬픈 비극을 여러분에게 전하며 코린토스를 떠나고자 합니다.


□ 코린토스 샘에 얽힌 두 가지의 비극

흑해의 동쪽 코르스키의 왕녀 메이디아(Medeia)는 흔히 그리스 신화에는 마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영웅 이아손이 금양모피를 훔치러 코르스키에 왔을 때 그의 멋진 풍모를 흠모하여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그녀는 마술을 부려 그를 도와 금양모피를 훔치게하고는 그와 함께 그리스의 코린토스로 도망을 가서 두 아이를 낳습니다. 그러나 이아손은 코린토스 왕의 딸 글라우케 와 결혼을 하고 메이디아를 버리게 됩니다.

이에 화가 난 메이디아는 독을 묻힌 신부 의상을 글라우케에게 보냅니다. 글라우케가 이 옷을 입자 그녀는 온 몸에 불이 붙어 그녀 를 구하려던 아버지 크레온과 함께 불에 타 죽게 될 지경에 이릅니다. 이 때 그녀는 너무 뜨거워서 옆에 있는 샘으로 뛰어들었는데, 그 샘이 바 로 ‘글라우케의 샘’입니다.

그 후 메이디아는 이아손에게 낳은 두 아이까지도 죽여버리고 아테네로 도망을 칩니다. 여인의 복수는 이처럼 오뉴월의 서릿발처럼 무섭 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하는 전설입니다.


←박물관 내에 있는 '코린토스의 항아리'

또 다른 샘에 얽힌 비극은 '피레네 샘'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강의 신 아소보스의 딸 피레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의 사이에 두 명의 아들을 낳습니다. 그러 나 두 아들은 모두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두 아들을 잃은 피레네는 너무나 슬퍼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 마침내 그녀는 흐르는 눈물에 몸이 녹아 그 자리에는 하나의 샘이 만들어 집니다. 그 샘이 ‘피레네의 샘’이라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 슬프지 않은가요?
지금 유적지에 보이는 샘은 보잘 것이 없지만,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치 마술의 샘이 흐르는 것 같은 환상이 보입니다. 알고, 모름에 따라 역사의 흔적을 보는 마음은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리스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리스 신화'에 대한 책을 한 권 읽고 가시거나, 아니면 가지고 가서 읽어시면서 여행을 떠나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신화와 역사의 현장이 생생히 살아나서 여러분에게 다가 올 것이니까요.

이제 나는 이 두개의 샘들 앞에서 다시 바울을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성적 부도덕에 빠진 코린토스 인들에게 설교를 하다가 목이 마르면 이 샘물을 마셨겠지요.

아고라의 연단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을 바울을 상상하며, 나는 '빛과 어둠의 도시' 코린토스를 떠나 스파르 타로 향하고 있습니다. -계속-


(2002. 10. 23 '빛과 어둠의 도시' 코린토스에서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