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달의 골짜기Valle de La Luna'(2)
달의 계곡에서 쓰러지다
▲달의 계곡 트레킹에 나서는 여행자들. 그들은 마치 사막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처럼 보인다.
달의 골짜기는 생각보다 길고 깊다. 스파이더맨은 모래와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계곡을 터프하고 스릴 넘치게 운전을 한다.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혹성탈출 같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스릴에 넘치는 괴기스러운 곡이다. 젊은 여행자들은 꾸불꾸불한 달의 계곡을 아슬아슬하게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음악에 맞추어 괴성을 지르며 발까지 동동 구른다. 역시 젊음은 좋다.
이윽고 스파이더맨이 끼익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멈춘다. 스파이더맨은 우리들을 어느 으쓱한 언덕에서 내리라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부터 걸어서 반대편 계곡에 도착한 자만이 자동차를 태워주겠다고 하면서 흘먼지를 일으키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뿌연 먼지 때문에 차의 꽁무니도 보이지 않는다. 저런! 꼭 무슨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것 같네. 그런데 이거, 큰일났군. 배가 아프지를 말아야 할 텐데… 나는 사실 산 페드로 마을을 출발할 때부터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었는데, 기분 나쁘게 주기적으로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달의 골짜기를 걸어가는 여행자들. 용광로 같은 불볕 더위 속에서 만난 그늘은 천국과도 같다.
버스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마치 UFO가 사막에 불시착하여 조난당한 외계인처럼 보인다. 흙먼지를 둘러쓴 험한 몰골이 하나같이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그들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달의 계곡을 향하여 터덕터덕 걸어간다. 살인적인 햇볕이 온몸을 강타한다. 너무나 건조하여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갈증이 심해져 간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목이 탄다. 아내의 다리는 마치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린다. 아마 저혈당 끼가 있거나 아니면 사막의 고산지대에 적응이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여보, 초콜릿을 좀 꺼내 먹지?”
“그래야겠군요.”
아내는 배낭에서 초콜릿을 꺼내들고 움질움질 씹어 먹는다. 당분은 저혈당의 비상약이다. 아내가 나에게도 초콜릿을 내밀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먹기가 싫다. 어제 무엇을 잘 못 먹었는지 배속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 시장에서 사 먹은 과일이 탈이 난건가? 급기야 뒤가 급해진다. 별 수 없다. 사막의 모래 언덕에 궁둥이를 까고 실례를 할 수 밖에…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흙더미 밑으로 달려가서 체면불구하고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본다. 워낙 급해서 체면을 차릴 새가 없다.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는 흙더미들. 미생물도 살기 힘들다는 이곳은 날파리는 커녕 개미 한마리 구경하기 힘들다.
뱃속에 들어 있는 것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온다. 달의 골짜기에서 실례를 하는 군. 이거, 사막의 자연보호법에 걸리는 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다. 똥을 누면 날 파리 등이 북새통을 이루며 달려 들 텐데, 이곳엔 날 파리는커녕 개미새끼조차 구경하기가 힘들다. 미생물도 살기가 힘든 곳이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이 지역은 일종의 무균지대라고 하던데…. 히말라야의 고산 지역이 무균지대이듯이. 땡볕에서 그 짓을 몇 번이나 하고 나니 현기증이 나고 눈앞이 아득해진다.
그러나 속에 들어있는 것을 남김없이 다 비우고 나니 어지럽기는 한데, 아프 배가 가라앉고 어쩐지 마음이 편해진다. 텅 빈 충만! ‘텅 빈 충만’이란 이런 때를 두고 한 말일까? 죽음 직전의 충만 같은 것이 이럴까? 다리가 후둘 후둘 떨리고 기운은 없지만 눈앞의 풍경은 가물가물 하면서도 황홀하기만 하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러다가 사막의 황홀경 속에서 숨이 끊어지는 모양이다.
▲점점 아득히 멀어져만 가는 사막의 여행자들. 그늘만 만나면 사람들은 쉬는라 머뭇거린다.
나는 배탈과 설사 때문에, 아내는 고산병의 후유증과 저혈당까지 겹쳐 따른 둘 다 기운이 탈진한 상태다. 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동차도 다닐 수 없고 구조대를 부를 수도 없다. 우리는 정말 죽을힘을 다하여 걸어갔다. 어떤 젊은 여행자가 사막의 언덕을 미친 듯이 뛰어가 간다. 그러다가 사막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마치 사막의 연금술사를 발견이라도 한 듯 그는 모래사막의 언덕을 뛰다고 소리를 지르고, 소리를 지르다가 다시 뛰어간다. 힘도 좋네. 우리 아사직전인데… 그렇게도 사막이 좋을까? 모래언덕에 그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이 또한 사막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사막엔 그늘이 없다. 앉아서 쉴 자리가 없다. 그런데 흙으로 된 절벽이 나타나고 그 절벽아래 그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내와 나는 그늘 밑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쉬지 않고 언덕의 저편으로 걸어가 버린다. 그러니 우리 두 사람만 오래 쉴 수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자꾸만 대열에서 뒤로 쳐지는 데, 그들이 너무 멀어지자 무서움 증마저 생긴다. 그늘에서 잠시 눈을 감으니 곧 졸음이 몰려온다. 안 돼 졸면 죽는다!
우리는 일어나서 다시 흙무덤들이 이상한 모양을 하며 하늘로 솟아있는 아득한 길을 걸어갔다. 이대로 몇 시간만 더 가다간 저 용광로 같은 햇볕에 타 죽고 말 것만 같다. 그래도… 가물거리며 눈가에 비추이는 사막의 모습은 여전히 죽여주도록 아름답다. 사막은 오직 모래와 흙더미와 먼지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침묵, 그대로다. 침묵의 밑 어디엔가는 빛나는 보물이 묻혀 있을 것만 같다. 수수께끼 같은 보물 말이다. 그래서 또 사막은 더 아름다운 것일까?
나는 희미해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사막을 향해 카메라의 앵글을 정신없이 돌려댔다. 사실 여기에 실린 사진은 거의 탈진상태에서 비몽사몽간에 찍은 사진들이다. 그만큼 아주 귀한 사진을 여러분은 지금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찍은 더 멋진 사진도 있겠지만 이 사진은 나의 땀이 얼룩진 그런 기가 막힌 사연이 깃든 사진(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이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 비틀거리던 아내가 다시 일어나 힘들게 걸어가고 있다. 사막의 2시간이 마치 200년처럼 길어보인다.
한참을 걸어간 것 같은데도 아직도 스파이더맨은 보이지 않는다. 스파이더맨은 정말 우릴 고사시킬 작정인가? 아내가 돌 뿌리에 걸려 비틀거리며 넘어진다. 다리에 힘이 없다보니 모래톱 같은 작은 돌부리에 걸려도 넘어지고 만다. 그러나 나 역시 아내를 부축해줄 에너지가 고갈 되고 없다. 나도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설사로 완전 탈수 상태가 되어버린 나는 조금만 힘을 주며 움직여도 이마에 노란 불이 튀어 다닌다.
‘아내여, 제발 일어나 다오!’
나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아내는 겨우 먼지를 털고 일어섰다. 일어서준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줄이야! 뒤쳐진 우리를 돌아보며 어떤 여행자가 괜찮으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도 헉헉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들을 부축해줄 힘이 그에게도 없다. 우리는 사투를 벌이듯 겨우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계곡의 2시간이 마치 200년은 지난 듯 했다. 그렇게 기다시피 걸어가 큰 계곡에 다다르니 버스가 보이고 스파이더맨은 계곡의 그늘아래서 앉아서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버스 안으로 기어 올라간 우리는 길게 눕고 말았다.
“왜 그렇게 늦었느냐?”
“나는 배탈이 나고 아내는 고산병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다.”
“이 걸 천천히 마셔라. 그러면 좀 나아질 것이다.”
“뭐냐?”
“마법의 차다.”
“마법의 차…?”
스파이더맨은 커피포트에서 뜨거운 차를 컵에 따르더니 자꾸만 마시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뜨거운 물에다가 파란 잎사귀를 풀어 넣는다. 코카 차다. 아내와 나는 그 코카차를 번갈아 가면서 몇 잔을 연거푸 마셨다. 탈수와 탈진이 겹친 상태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자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스파이더맨은 또 말린 코카 잎을 주며 자꾸만 씹으라고 한다. 스파이더맨이 하라는 대로 코카차를 자꾸 마시고 코카 잎을 씹으니 신기하게도 없던 기운이 다시 솟아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사막의 풍경은 아름답다지만 또 그만큼 잔인하다. 마치 눈에 넣고 싶도록 아름다운 독버섯처럼 말이다. 달의 골짜기에서 쓰러져 버린 우리는 스파이더맨이 차를 몰고 어디론가 가는 동안 죽은 듯이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