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191]달의 골짜기에 스며드는 황홀한 일몰

찰라777 2007. 4. 30. 05:20
'달의 골짜기 Valle de La Luna(3)'

 

사막의 동굴을 가다 

 

▲ 모래성에 비추이는 아타카마 사막의 황홀한 일몰. 스파이더맨이 거미흉내를 내며 모래성에 거미처럼 붙어서 기어다니고 있고, 여행자들이 그의 흉내를 내며 따라다니고 있다. 


수천 년간 잉카인들에게 힘의 원천이 되었던 마법의 코카 잎은 잉카인들에게는 매우 소중히 여겨졌다. 잉카의 왕들이 저승으로 갈 때 왕릉에는 왕의 미라가 먹을 음식 단지를 넣어 둔다고 한다. 그 단지 속에는 옥수수 3알과 코카 잎 3,4장이 반드시 들어간다고 한다. 잉카인들이 코카 잎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짐작이 간다.


코카차를 마시고 한동안 잠속에 빠져 있는데 스파이더맨이 우리를 흔들어서 깨운다. 눈을 떠보니 깊은 골짜기 속에 동굴 같은 것이 보인다. 스파이더맨은 달의 계곡에 펼쳐진 암굴을 꼭 보아야 한단다. 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를 한다고 하면서. 잠시 단잠을 잔데다가 코카 잎 덕분에 기운을 되찾은 우리는 스파이더맨을 따라 달의 계곡 트레킹을 나섰다.

 

▲사막의 암굴 속을 탐사하러 가는 여행자들. 모래에 소금이 엉켜 생긴 암굴은 비좁고 어둡다. 


달의 계곡은 안으로 들어 갈수록 신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암굴 속으로 들어가니 매우 어둡다. 스파이더맨이 대형 손전등을 비추어 주지 않으면 걷기가 힘들 정도다. 암굴은 거의 소금으로 되어 있다. 굴의 벽에는 마치 위벽에 붙어있는 폴립처럼 촘촘히 소금돌기가 맺혀있다.

 

그 돌기를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을 보니 무지하게 짜다. 소금이 모래와 함께 굳어서 그런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암굴은 매우 건조하고 딱딱하다. 생물이 살아있는 흔적은 없다. 이곳은 화성의 암굴과 지질이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화성암굴을 탐사하기 위한 사전 트레이닝을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마치 우리가 화성의 동굴을 탐사하는 기분이 든다.

 

아내의 보디가드가 된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은 아내가 행여 쓰러질까봐 아내 곁에 바짝 붙어 서서 보호를 해준다. 마치 아내의 보디가드처럼… 암굴은 사람이 겨우 한 사람 정도 빠져 나갈 정도로 비좁고 울퉁불퉁하여 걷기가 매우 힘들다. 그런데다가 돌출부위가 많아 자칫 잘못하면 걸려 넘어져 상처를 입기 십상이다. 어떤 곳은 겨우 기어서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고 낮다.


“여보, 오늘은 당신이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 것처럼 보이는데.”

“정말요?”

“스파이더맨은 당신을 보살펴주는 특별 보디가드처럼 보여. 그것도 지구가 아닌 달의 골짜기에서 말야…”

“호호, 그럼 당신은 뭐지요?”

“흐음, 나야 물론 엑스트라지, 하하.


스파이더맨이 거미처럼 바위를 기어 다니는 시늉을 하며 아내를 어찌나 자상하게 보살펴 주는지, 그 복장하며 모습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하여간 아내를 극진히 보살펴주는 스파이더맨이 고맙다. 스파이더맨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찌 탈진한 우리가 이처럼 웃으며 달의 계곡과 동굴을 탐사 할 수 있단 말인가! 스파이더맨이여, 축복을 받을 지어다!


아타카마 사막의 황홀한 일몰

 

▲마치 모래로 쌓아 올린듯한 캐슬모양의 언덕에 황홀한 사막의 일몰 빛이 비추이고 있다.

 

▲마리아상을 닮았다는 ‘Tres Marias(세 명의 마리아)’. 빛깔이 하얀 것은 소금때문이다.


암굴 속을 숨바꼭질을 하듯 돌고 돌아 나오니 소금이 하얗게 깔린 벌판이 나온다. 진한 서리나 흰 눈이 내린 듯 벌판 전체가 하얗다. 하얀 벌판 위에는 기둥처럼 돌출된 암석들이 이상한 모양을 하고 하늘로 솟아 있다.


어떤 것은 곰처럼 생겼고, 어떤 것은 하늘로 우뚝 분기탱천하고 있는 모습이 남자의 성기를 닮기도 했다. 돌기둥 세 개가 하늘을 향해 돌출 되어 있는 모습은 마치 마리아상과 같다고 하여 ‘Tres Marias(세 명의 마리아)’라고 한다는데 내가 보기엔 그저 기둥이지 마리아상은 아무래도 닮지 않은 것 같다.

 

▲스파이더맨과 함께 달의 골짜기를 탐사하는 여행자들

 

 ▲마치 서리나 눈이 내린 것처럼  군데군데 쌓여진 소금 무더기는 달의 표면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이곳은 지구상의 별천지다. 신비하게 생긴 소금언덕을 걸어 다니는 여행자들의 모습은 정말 달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거기에 이상한 복장을 한 스파이더맨까지 끼어 있으니 더욱 그런 분위기가 연출된다.

 

우리는 사막의 일몰을 보기 위해서 모래 언덕으로 올라갔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사막의 언덕을 오르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마치 개미대열처럼 보인다. 아내는 도저히 언덕을 올라갈 힘이 없어 차 안에 있겠다고 한다.


“마담, 저 언덕만 올라가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의 일몰을 볼 수 있습니다.”

“도저히 힘들어서 올라가지 못하겠어요.”

“당신 정말 후회하지 않겠소.”

“난 괜찮아요. 여기서도 아름다운 사막이 일몰을 느낄 수가 있거든요.”


행복은 고통 속에서도 느껴진다

 

▲사막의 일몰을 보기위해 모래성을 올라가는 여행자들 

 

 ▲아타카마 사막의 모래 언덕에 비추이는 황홀한 일몰


스파이더맨이 아내의 안색을 살피며 몇 번이나 안위를 묻는다. 아내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내 말에 아내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내의 고통스런 표정 속에서도 한줄기 행복의 선이 흐른다. 고통 속에서 느껴지는 행복!


차 안에 누워 일몰을 바라보겠다는 아내를 두고 나는 모래언덕으로 기어 올라갔다. 힘들게 언덕을 오르니 이건 완전한 모래성이다. 사막의 모래언덕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정말 예전엔 미처 몰랐다. 사람들은 모래성을 걷거나 조용히 앉아 있다. 위대한 자연의 품안에 있는 여행자들은 누구하나 말을 꺼내지 않고 그저 넋을 잃은 듯 바라보고만 있다.

 

 ▲여행자들이 황홀한 사막의 일몰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


모래언덕에 앉아 해가 떨어지는 사막을 조용히 바라본다. 마치 어린왕자처럼… ‘모래언덕에 앉아 있노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그러나 침묵 속에 무언가 빛나는 것이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구절이 다시 생각난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사막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황홀한 일몰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뻘건 태양을 집어 삼키고 있는 사막은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답다.… 낮 동안 이글거리며 사람을 고목처럼 아사 시키려고 했던 뜨거운 태양이 아니던가!

 

 ▲사막에는 침묵 속에 무언가 빛나는 것이 있다…

 

 

스파이더맨은 마치 거미처럼 모래언덕에 붙어서 기어 다닌다. 여행자들도 재미있어라 스파이더맨 흉내를 내며 그를 따라 모래성을 기어 다닌다. 황홀한 일몰이 비추이는 칼날 같은 모래성의 등성이 위로 점점이 도열하여 걸어가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그저 신비하게만 보인다.

 

모래성에는 여행자들이 딛고간 발자국만 도장처럼 남는다.  옆으로 비스듬히 비추이는 석양빛은 발자국을 더욱 선명하게 그려 놓는다. 여기에 그려진 발자국이 과연 얼마 동안이나 남아 있을까? 바람이 불면 발자국은 곧 지워져 버리고 말겠지....


해가 지자 사막은 더욱 고요해진다. 바람소리만 윙윙 들릴 뿐, 사막은 삽시간에 어둠의 적막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현기증으로 어지러워 다리가 휘청 거리면서도 나는 사막의 아름다움에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행복은 심신이 고통스러울 때도 느껴진다는 것이다. (계속)

 

(칠레 아타카마 사막 달의 골짜기에서 글/사진 찰라)